오십 센티의 유머 (외 1편)
조재학
바구니 안에서 입을 두리번거리는 사람
볼에 닿는 것 있으면 빨려고 고개 돌려 입을 대는 사람
그러다가 찡그리고 입 벌리고 우는 사람
가래떡 같은 팔다리 버둥거리는 사람
어미가 물려주는 젖 물고 빨다가 스르르 잠드는 사람
흔들어도 눈 안 뜨는 사람
말없이 똥 싸고 오줌 싸는 사람
하나같이 누런 탯줄을 달고 나온 사람들이 어미 품에서 울고 있다
아직 눈뜨지 못한 사람이 입을 벌리고 목청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다
양수를 막 빠져 나온 알몸이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울고 있다
고개 옆으로 돌리고 잠만 자는 사람
아무 생각 없이 속싸개에 똘똘 감긴 사람
자다가 문득 웃는 사람
목욕하고 배내옷 갈아입고 새카만 머리털에 잠만 잔다
뜨개실 왕관을 씌워도 잠만 잔다
바구니 안에서 잠만 잔다
웃고 울고 잠자고 싸고 버둥거리는
50센티의
사람
새들의 슬로우 비디오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플라타너스의 몸이 뒤쪽으로 기운다
그리움이 어디서 오는지 나에게 묻는다
없는 나무에 앉아 있는 새들의 소란이 슬로우 비디오로 지나가고 있다
생각은 땀을 흘리고 증발해서 소나기가 된다
문자 같은 물의 뿌리가 얕은 여울목에 걸려 넘어진다
직선으로 왔다가 곡선으로 흐르는 것들 회오리를 숨기고 있다
그 정원의 사철나무는 말이 많다
햇볕을 피해 목피가 터진 가지를 나뭇잎 아래 감춘다
입을 다문다
어젯밤엔 어둠에 기대어 없는 그림자와 이야기했다
아무도 듣진 못했다
신들의 정원엔 없는 게 많다
나는 팔이 길지만 어떨 땐 생각만으로도 사과를 훔칠 때가 있다
신은 가끔 무상으로 사과를 빌려줄 때가 있다
내 발자국은 신의 눈매를 닮았다
날개가 긴 새들은 언제 오는가
조재학 / 1998년 《시대문학》등단. 시집 『굴참나무의 사랑 이야기』『강 저 너머』『날개가 긴 새들은 언제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