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자아 만들기
유다서 1:17-21
사람 눈 속에는 간상세포 1억 3천만개가 들어있고 1백조 분의 1에 해당하는 약한 빛까지 식별하는 초감도 기능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눈은 볼 수 있는 것도 있고, 볼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제아무리 눈이 밝아도 박테리아나 세균을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종이 한 장 너머에 있는 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눈으로 보고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예를 들겠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멋지고 신사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은 정반대의 경우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하고 미약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기품과 풍요가 꽉 찬 사람이 있습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 대로인 것입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하는 것은 어떤 기준을 정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우리는 그 기준을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경계해야할 부류의 사람들과 따르고 본받아야 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경계해야 될 사람들
첫째, 정욕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18절을 보면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라고 했습니다. 정욕대로 행한다는 것은 자기욕심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절을 보면 정욕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세를 밝히고 있습니다. "원망하는 자며 불평을 토하는 자며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아첨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원망, 불평, 자랑, 아첨은 모두가 입으로 뱉는 심리적 표현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속 깊은 곳에 그런 것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입을 열면 튀쳐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만 챙기는 사람, 세상에 깊이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 원망, 불평, 자기 자랑, 아첨을 일삼는 사람, 그런가하면 경건생활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경계해야 될 사람들입니다.
둘째, 기롱하는 사람들입니다.
18절 끝을 보면 "기롱(譏弄)하는 자들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기롱이란 "다른 사람을 속여 희롱하거나 농락하는 것", "실없는 말로 시시덕거리는 것"을 말합니다.
열왕기하 2:23-24을 보면 그 당시 벧엘에서 동네 청소년들이 엘리사 선지자를 기롱하다가 곰에 물려 40명이 찢기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키가 작고, 몸집은 크고, 머리는 벗겨진 대머리였습니다. 어떤 날 벧엘 동네 앞을 지나는데 청소년들이 떼로 몰려나와 엘리사를 조롱하며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며 놀려댔습니다. 24절을 보면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 아이들 40명을 찢었더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 아이들은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선지자를 조롱하고, 희롱하고, 희희덕거리며 기롱했기 때문에 암곰에게 찢기는 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남을 조롱하고 비난하고 희롱하는 짓거리는 삼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경계할 사람들입니다.
셋째, 당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19절을 보면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라고 했습니다. 당을 짓는 다는 것은 당파를 만들어 뭉친다는 뜻입니다.
요즘 신당창당을 하겠다는 모 정당 때문에 정치권에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신당을 만들겠다는 속사정은 뻔합니다. 이대로는 국민의 지지도 받을 수 없고 정권 재창출도 어렵기 때문에 뜻맞는 사람들이 헤쳐 모여 당을 새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를 잘 모르는 문외한으로서 한마디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당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새로운 사람들이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새 당을 만든다해도 석달 채 못되어 헌 당이 될 것입니다. 그곳은 여당, 야당도 같습니다.
교회 안에는 당이 있으면 안됩니다. 교회는 특정 정당 편을 들어도 안되고 당을 만들어도 안됩니다. 교회 안에서 끼리끼리 모여 쑥덕거리고 파벌을 만드는 것도 있으면 안됩니다. 지역끼리 따로 모이고, 출신끼리 따로 모이고, 친인척끼리 따로 모여 무엇을 만들어도 안됩니다.
교회 안에는 예수당이 있을 뿐이고 베드로파도 바울파도 있으면 안됩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편을 만들고 세를 규합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짓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 정치판으로 나가는게 좋습니다.
넷째, 성령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19절을 보면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없다는 것은 성령님을 부인하고 육신의 지시를 따라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경건을 멀리합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고, 기도를 멀리하고, 말씀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남의 말을 좋아하고, 남을 희롱하고, 폄하합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당을 짓고 제 편을 만듭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은 경계해야 될 사람들인 것입니다.
2. 따르고 배워야 될 사람들
첫째,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는 사람들입니다.
20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라고 했습니다.
건축의 3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설계, 시공, 관리입니다. 특히 설계 가운데 기초 설계가 잘되어야 좋은 건축이 가능하게 됩니다. 100층 빌딩을 지으려면 100층 건물이 올라갈 수 있는 기초가 설계되어야 합니다.
본문은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라"고 했습니다. 기초는 "거룩한 믿음"이고, 건물은 "자기"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룩한 믿음이란 깨끗하고 순수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의지하고 따르고 순종하는 믿음이 거룩한 믿음인 것입니다.
서강대 장영희 교수가 쓴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 한 사람이 도로 건널목을 건너기 위해 서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혼자 건너는 것은 힘들고 위험해 곁에 서 있는 사람에게 "길 건너까지 저와 함께 가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아 ,그렇게 하지요."라며 쾌히 승낙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손을 잡고 건널목을 건넜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안전하게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시각 장애인이라 앞을 못 보는데 당신이 도와 주셔서 무사히 길을 건널 수 있었는데요." 두 시각장애인의 순수한 신뢰에 얽힌 일화인 것입니다.
본문의 강조점은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나치게 강조되다보면 이기주의자가 됩니다. 지나치게 자신을 비하하다보면 열등감에 빠지게 됩니다. 자기를 건축한다는 것과 자기를 과대포장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입니다.
1972년 제 20회 올림픽이 독일 뮌헨에서 열렸습니다. 처녀로 출전한 미국의 마라톤 무명선수 쇼터(Shorter)가 월계관을 차지했습니다. 그 당시 세계언론이나 미국언론도 그런 선수가 출전한 것조차 모르고 있을 정도로 이름 없는 선수였습니다. 우승을 한 후 우승 인터뷰에서 그는 "저는 남과 겨루기 위해 훈련을 하거나 의식한 일이 없습니다. 저는 남과 겨루지 않고 철저하게 저 자신과 싸우고 훈련했습니다. 우승도, 미국의 명예도, 제겐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나와 싸우고 훈련했을 뿐입니다."
돈을 벌면 뭘 합니까? 성공하고 출세를 하면 뭘 합니까? 권력을 잡으면 뭘 합니까? 내가 쓰러지고 무너지면 그걸로 끝이 나고 맙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건축하는 것입니다. 어떤 나를 건축해야 합니까? "예수 닮은 나, 믿음 위에 지은 나"로 건축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닮은 나"가 될 수도 있고, "마귀 닮은 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518장은 「신자되기 원합니다」라는 흑인영가입니다. 우리 찬송가는 "신자되기 원합니다, 사랑하기 원합니다, 거룩하기 원합니다, 예수 닮기 원합니다" 4절로 되어 있습니다만 미국 찬송가에는 "유다 닮기 원치 않습니다(Lord I don`t want to be like Judas)"라는 소절이 들어 있습니다.
누구 닮은 집을 짓느냐에 따라 행불행과 성패가 결정됩니다.
"예수 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예수 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아멘.
둘째,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20절을 보면 "성령으로 기도하며"라고 했습니다. 19절의 "성령은 없는 자며"라는 말씀과 대비됩니다.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8:26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내 힘을 믿고 기도하면 낙심될 때가 많습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흐렸다, 갰다를 반복하게 됩니다. 이유는 내 배짱이라는 것은 내 기분을 따라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은 불변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기도하면 변덕부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분으로 기도하면 오래 못합니다. 감정으로 기도하면 오래 못 갑니다. 내 힘으로 기도하면 하다가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기도하면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고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과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자기를 지키며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21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지킨다는 것은 자기를 보호하고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예수 닮은 사람, 예수 믿는 사람, 예수의 종으로 나를 건축했으면 그 집을 올바르게 보호하고, 유지하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긍휼을 기다리라는 것은 긍휼을 베푸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결혼 날을 기다리는 신랑신부처럼, 여행 날을 기다리는 여행객처럼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리며 자기를 지켜야 합니다.
제 친구 중 한사람은 여행 떠나기 석달 전부터 여행가방을 채기고 짐을 쌉니다. 여행 스케줄을 수첩과 메모지, 그리고 일기장 세 군데에 써넣습니다. 이유는 하나를 잃어버려도 다른데서 일정표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행 떠나기 전까지 세 번, 네 번 짐을 챙기고 검사하고 확인합니다. 그 철저한 준비는 아무도 흉내내지 못합니다. 좀 지나치긴 하지만 배울 점이 많습니다.
그 날을 기다리며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나를 건축하고 지킵시다. 순결을 지키고, 믿음을 지키고, 나를 지킵시다.
죄와 유혹과 시험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믿음의 집을 지킵시다. 그리하여 영광의 나라에 들어갑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