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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민수기22장1~20절
제목 : 시험대에 오른 약속
신7:1~2절을 보면 가나안의 일곱 족속이 나옵니다.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보다 많고 센 족속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족속들을 이스라엘에게 넘겨 네게 치게 하겠으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비스가 산에 도착하였을 때에 아모리 족속을 만나게 됩니다.
아모리 남왕국 '시혼'(Sihon), 북왕국 '옥'(Og)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사신 보내어 지나가기를 원했지만 오히려 그들이 침입하게하여 이스라엘이 그들을 완전 진멸 시키고 그들의 점령하여 시혼의 땅은 르우벤 지파와 레위 지파의 므라리 자손에게 분할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길을 떠나 여리고 맞은 편 모압 평지에 진을 칩니다.
22~24장에서 소개되는 발락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다룹니다.
오늘 말씀은 모압왕 발락이 발람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를 요청하지만 발람은 이를 거절합니다.
1. 발락의 첫 번째 요청(1~6절)
1) 이스라엘 자손이 또 길을 떠나 모압 평지에 진을 쳤습니다(1절)
“[1] 이스라엘 자손이 또 길을 떠나 모압 평지에 진을 쳤으니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이더라”
모압 평지에 진 쳤으니. – 모압 평지는 요단 강 건너편(동편)에 위치한 초목 지대로서 곧 사해 북쪽에서 얍복 강 근처까지 형성된 거대한 평원(plain)을 가리킵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머문 최종 지점입니다.
이스라엘은 수 개월 동안 이곳에 머물렀는데 그동안 이곳에서
-제 2차 인구 조사를 실시(26장)하였으며,
-군대를 재검열하고 율법을 거듭 선포하였으며(신 1:1-3),
*신1:1~3 “[3] 마흔째 해 열한째 달 그 달 첫째 날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으나”
-가나안 정복을 위해 여호수아를 차기(次期) 지도자로 임명하였고(신34:9),
*신34: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출애굽의 영웅 모세가 죽어갔습니다(신 34장).
-그리고 신명기 전체의 기록이 이곳에서 행한 모세의 설교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여리고. – 요단 강 서쪽 약 8Km지점과 예루살렘 동북 약 29Km 지점에 위치한 큰 성읍으로, 요단 강을 건넌 이스라엘이 최초로 점령한 가나안의 성읍이다(수 6:21).
*수6:21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2)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발락이 보았습니다(2절)
“[2]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
십볼의 아들 발락. - '발락'(Balak)은 '약탈자', '파괴자'란 뜻으로 당시 모압의 왕이었습니다(삿 11:25).
*삿11:25 “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툰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 – 곧 이스라엘 군대가 아모리 남왕국 '시혼'(Sihon)의 모든 성읍과 아모리 북왕국 '옥'(Og)의 모든 성읍을 완전 초토화시킨 일을 가리킵니다(21:24, 35).
3)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여 번민하였습니다(3절)
“[3]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 모압인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정복했던 강력한 아모리왕 시혼이 이스라엘을 쉽사리 섬멸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는 달리 이스라엘이 아모리를 여지없이 무찌르고 요단 강변까지 전진해 온 것을 보고,
모압은 이스라엘의 위세에 눌려 큰 두려움에 휩싸였고,
따라서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무찌를 묘책 찾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스라엘은 그들이 형제 민족이란 점에서
모압에게는 아무런 적대 감정이나 살의(殺意)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신 2:9).
*신2:9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모압과 암몬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두아들.
이스라엘 백성의 많음을 인함이라. - 비평가들은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 이토록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가 많았다는 것에 의심을 품고, 본 기록을 왕정 시대의 작품으로 돌립니다(B.Gray).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은 200만명 가량의 인구 중 군대에 참가한 수가 60만명 이상이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전체 백성 중 대략 1/3가량이 군대에 편입되어,
전쟁에 참가했기 때문에 모압 왕으로부터 이러한 말이 나왔을법 한 것입니다.
아울러 이 말은 반드시 인구의 수효가 많다는 점 외에도,
그 위세가 등등한 점을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겁먹은 자에게 있어 적군 백명은 천명보다도 더 많아 보이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4) 자신들의 땅이 멸절 될 것을 예측합니다(4절)
“[4]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방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 하니 그 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 미디안(Midian)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네째 아들입니다(창 25:1-4).
따라서 이 자의 후예들이 후일 미디안 족속을 형성하였는데,
주요 거주지는 시내 반도 일대였습니다(출 2:15, 16:3:1;민 10:29, 30).
그러나 그들 중 일부 족속은 모압과 암몬의 동편 경계 지대에서도 살고 있었습니다(창 36:35).
이들의 주요 생계 수단은 대상(隊商)을 통한 무역이었으나,
때로 유목 생활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장로들은 고대 족장 체제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각 부족의 지도자급 인사들로서, 그들 중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는 '왕'으로 호칭되기도 하였습니다(31:8;수 13:21).
한편 당시 발락은 이스라엘 대군을(3절) 군사력으로는 무찌를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백방으로 묘안을 찾던 중 이처럼 아카바 만 동북쪽 아라비아에 살고 있던 '미디안 장로들'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입니다.
추측하건데 이 장로들은 모압 왕실에 고용되어 각종 문제들에 조언을 해주던 마술사 혹은 복술가이었거나, 아니면 왕실을 드나들며 외방의 정보와 문물을 전해주던 유력한 대상(caravan)들이었을 것입니다.
즉 교역 여행을 통해 해박한 정보를 가진 미디안 장로들이었기에,
위경에 처한 발락은 그들의 지혜를 빌리기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술사(術士) 발람을 왕에게 추천했습니다(7절;수 13:22).
*수13:22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살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점술가 발람도 칼날로 죽였더라”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 자신들의 영토가 초토화되고 자신들 역시 멸절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말입니다.
이러한 모압 왕 발락의 비유는 당시 유목 생활에 익숙한 자들에게 이스라엘의 위협을 알리기에 매우 적절했습니다.
아울러 실제 유목 생활을 하던 미디안 족속들에게도 조만간 거친 소 이스라엘이 밀어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은연중 암시하여 그들도 모압과 공동의 운명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공동대처해야 할 위급 사항임을 권면한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5) 사신을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합니다(5절)
“[5]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 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브올의 아들 발람의 본향 강변 브돌. - 여기서 '강변'이란 고대 근동에서 가장 문화가 발달했던 '유프라테스 강변'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브돌'(Pethor, 앗시리아 자료에는 Pitru로나옴)은 유프라테스 상류 서안(西岸)에 위치해 번창했던 메소포타미아의한 성읍으로서,
갈그미스(Carchemish) 남쪽 약 19km 지점에 있었다(따라서 이스라엘이진 친 모압 평지로 부터는 대략 640km나 떨어져 있는 곳이다).
이곳은 그 당시 정치, 경제의 중심지인 동시에 종교의 중심지였던 관계의 중심지인 동시에 종교의 중심지였던 관계로 많은 마술사들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Strabo).
한편 '브올'(Beor)은 '멸망시키다'는 뜻의 '베올'에서 유래한 이름이며,
'발람'(Balaam)은 '탐닉하는 자'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란 뜻의 이름으로서, 묘하게도 물질에 현혹되어 이스라엘을 전멸시키려 했던 그의 성격 및 행적과 조화를 이룹니다.
한편 발람이 어떤 인물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즉 혹자는 발람을 단순히 이방의 거짓 우상숭배자로 보아, 그가 이스라엘을 축복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또 혹자는 그가 본래는 참선지자였으나,
다만 물질에 눈이 어두워 모압을 위해 일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는 그가 본래는 바벨론의 제사장이었으나,
후에 이스라엘 종교로 개종하였다가 결국 모압 왕에게로 넘어간 자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 본문(Text)에 충실할 때 발람이 단지 이방 메소포타미아의 유명한 복술가(卜術家)라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메소포타미아에 살던 '발람'(혹자는 이 자를 창 36:32의 에돔 왕 '벨라'와 동일시하나 근거가 없다)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하나님을 단순한 이방의 신 중 하나로 생각했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발람은 그의 아버지와 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복술로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 왔었기에, 모압 왕 발락이 그를 이용하여 이스라엘을 치려 했던 것은 당연했습니다.
한편 발람은 거듭되는 여호와의 경책에도 불구하고 물질에 눈이 어두워 발락의 요청을 이루려 하다가 마침내 이스라엘을 음행하게 하여 몇몇을 멸망시켰고(25:1-5), 결국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31:8).
*31:8“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이 일로 인해 그는 '불의의 삯을 탐낸 탐욕의 선지자', '거짓 선지자', '음행으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던 선지자'등으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벧후 2:1-22;계 2:14).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 발람의 거처 브돌과 모압과의 거리는무려 400마일(약640km)이나 떨어져 있는 먼 거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압 왕 발락이 메소포타미아의 술사 발람을 부르려 미디안 장로들을 보낸 것은
(1) 이스라엘에 대한 모압 왕의 초급한 심정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고
(2) 아울러 당대에 술사(術士)로서 발람의 명성이 어떠했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합니다.
6)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6절)
“[6]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 그 당시 고대인들은 복술가(卜術家)나 마법사들의 주술적(呪術的)인 주문(呪文)이 초자연적인 세계와 연결되어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상대방이 저주를 받고 큰 피해를 입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복술가들의 영험스런 힘에 대해 익히 알고 있던 발락은 그 중에서도 가장 영험한자로 알려진 발람을 초청하여 이스라엘을 멸하려 했습니다.
복을 받고...저주를 받을 줄. – 성경은 결코 사단의 권세와 능력을 부인하지 않습니다(엡 6:12).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오히려 그 세력에 대하여 '공중 권세 잡은 자'로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있다(엡 2:2).
*엡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따라서 이교의 각종 점술가, 마법사, 박수, 복술가 등도 나름대로
사단의 초자연적인 힘을 빌어 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대인들은 복술가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점에 있어서 발람의 명성은 탁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방의 술사 발람의 특이한 점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교통하여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대신 축복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발람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는 분분하나(5절),
후일 성경의 기록으로 보아 그는 분명 참선지자는 아니었습니다(민 31:8, 16;신 23:5, 6;수 13:22;24:9;느 13:2;벧후 2:13-15;유 1:11;계2:14).
이것은 그의 비참한 종말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수 13:22) 분명 '선지자'란 칭호의 '나비' 대신 '술사'(術]士)란 뜻의 '코셈'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서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결과론적 축복은 (발람의 본래 심정은 모압 왕의 의도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을 것이다),
발람에게 임하는 사단의 저주의 영(靈)을 여호와께서 강권적으로 차단시키시고, 오히려 여호와께서 개입하사 그 이방의 술사 발람을 통해서도 이스라엘을 향한 당신의 원대한 뜻과 계획을 선포하시기를 기뻐하신 결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Keil).
2. 요청을 거절하는 발람(7~12절)
1) 모압과 미디안 장로들이 복체를 가지고 발람에게 가 발락의 말을 전합니다(7절).
“[7]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을 그에게 전하매 ”
*벧후2: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2) 발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8절)
“[8] 발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모압 귀족들이 발람에게서 유숙하니라 ”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 여행자에 대한 호의(好意)라기 보다 장로들이 가져온 복채에 마음이 있어 그들을 머물게 한 것입니다.
만일 발람이 여호와의 참 선지자였다면, 이때 그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라는 저들을 오히려 저주하면서 여지없이 되돌려 보냈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짓 술사(術士)로서 불의의 삯만을 사랑한 자였습니다(벧전 2:15,16).
*벧전2:15,16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한편 밤 사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발람에게 임한 것으로 보아 그 계시 수단은 필시 '꿈'이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 이 말로만 보면 발락은 선지자 대열에 낍니다.
그러나 실제로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감화로 받은 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발람은 하나님을 거스리는 복술가요 악한 영과 신접(神接)한 자로서 멸망 당해야 옳았습니다(신 18:11, 12).
그런데도 그가 여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들먹인 것은,
그가 당시 입의 각종 민족신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자로서, 역시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 민족의 운명이 걸린 이번 일에 대해 그 신의 신탁을 한번 받아 보겠다는 의미였습니다.
3)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합니다(9,10절)
“[9]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되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10] 발람이 하나님께 아뢰되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들이니이다 이르기를”
하나님의 발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 하나님은 발람이 비록 이방의 사악한 복술가(卜術家)지만 그에게 초월적으로 강림하셔서 그의 비뚤어진 인격과 계획을 바로 잡고자 하셨습니다.
이는 멸망 받을 발람을(신 18:11, 12) 사랑해서라기 보다 선민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인격을 주관하셔서 당신의 거룩한 뜻을 성취해 가십니다(행 9:1-6).
이 사람들이 누구냐. – 이는 물질에 마음이 뺏긴 발람을 질책하시는 하나님의 역설적인 질문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발람의 혼탁한 영혼과 양심을 깨우치고자 하셨습니다.
4) 발락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라 합니다(11절)
“ [11]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 ”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있어. – 당시 애굽과 바벨론 두 강대국의 세력이 쇠퇴해 가던 상황인지라 곳곳에서 새로운 세력들이 출몰하던 때였습니다.
따라서 발락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 역시 흔히 있는 민족 간의 사소한 갈등 정도로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5절).
5)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그들에게 저주하지 말라 합니다(12절).
“[12]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인간에게는 그 자체가 큰 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며(신 30:19),
시여자(施與者)가 되시기 때문입니다(6:23-26).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복 받은 민족이었으며, 특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그 민족을 세상을 향한 '복의 전달자'(창 12:1-3)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광야 여정 동안 불평과 원망을 일삼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만 백성 중 하나님이 함께 하는 복 받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압 왕 발락의 기대(6절)와는 반대로 이스라엘은 결코 저주받을 수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리고 술사 발람 역시 저주 할래야 할 수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3. 발락의 두 번째 요청(13~20절)
1) 발락이 발람과 함께 가기를 거부합니다(13절)
“[13]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발락의 귀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느니라[14] 모압 귀족들이 일어나 발락에게로 가서 전하되 발람이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절하더이다”
여호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느니라. – 발람은 여호와의 영에 완전히 압도되어 자신의 사악한 계획과 의지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만유의 주인으로서(롬 11:36) 온 인격을 관할하십니다.
한편, 발람의 이 완곡한 거절은 오히려 이 일에 대해 발락의 분발을 더 촉구했습니다(15절).
그러므로 혹자는 여호와를 핑계 댄 발람의 이 말을 더 좋은 조건을 위한 일종의 계략으로 보기도 합니다.
2) 발락이 다시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냅니다(15절)
“[15]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내매”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내매. – 사절단의 보고를 통해 물질에 약한 발람의 마음을(7, 8절) 간파한 발락은 지난번 보다 더 강하게 유혹하기 위해 더 높은 인사(人士)와 더 많은 물질(17절)을 발람에게 보냈습니다.
결국 발람은 탐욕에 찬 본성을 억제치 못하고 끝내 발락의 제의에 순응하게 됩니다(21절;벧후 2:15;유 1:11).
3) 발락을 위해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십니다(16절)
“[16] 그들이 발람에게로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십볼의 아들 발락의 말씀에 청하건대 아무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17]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
아무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 이 부분을 좀 더 의역하면 '제발 네가 내게로 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를 바랍니다'로 할 수 있습니다.
즉 발락은 발람이 자기에게 오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방해 때문임을 깨닫고, 발람에게 그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의 뜻에 동조하라고 종용했습니다.
아울러 발락의 이 말 속에는 만일 오게 되면, 발람에게 원하는 모든 부와 명예를 보장해 주겠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17절).
4)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하십니다(18절).
“[18]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 17절의 발락의 유혹에 대한 발람의 대답이지만 19절로 미뤄 볼 때 이 대답은 진실치 못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발람은 물질에 이미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으나,
사신(使臣)들 앞에서 자신의 탐욕스런 마음을 감추고 동시에 하나님을 속이기 위해 위선적인 대답을 한 것입니다.
5)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19절)
“[19]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 하나님의 뜻은 이미 12절에 분명히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또 한 번의 기회를 살피고자 한 것을 보면 지금 그가 얼마나 물질에 연연해 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경험 많은 복술가로서 발람은 신탁(神託)을 거역함으로써 임할 재앙이 두려워 발락의 사신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뿐, 내심으로는 이미(불의의) 삯을 따라 모압 땅에 가고픈 심정이 간절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발락에게 갈 수 있는 가능성과 어떤 변화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6) 함께 가서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하라 하십니다(20절).
“[20]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일어나 함께 가라. – 이는 12절의 '가지 말라'는 말씀과 모순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칼빈(Calvin)은 '이같은 하나님의 허락은 풍자적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나머지 허락하신 것이 아니고, 발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듭 거역하고 가기를 소원했기 때문에, 그의 자유 의지에 따라 거역하는 상태를 그대로 방임하신 것이다'란 말로써 적절히 해석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 의지를 방임한다고 해서 당신의 주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의 술사 발람을, 당신의 뜻을 세상에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그의 사악한 소원을 허용하셨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신 광야의 가데스를 떠나 호르 산을 거쳐 요단 동쪽을 점령하고 드디어 가나안 접경까지 이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모압 왕 발락이 발람을 사주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이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 어떤 세상의 위협과 저주도 자기 백성에게 복 주실 하나님의 작정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복을 받습니다.
재물에 눈이 어두어서는 안됩니다.
적은 멈춤이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도 멈춤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서도 자기의 뜻과 맞지 않으면 이유를 붙입니다.
단서를 붙이지 말고 하나님의 뜻만 쫓아 행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이스라엘은 신 광야의 가데스를 떠나 호르 산을 거쳐 요단 동쪽을 점령하고 드디어 가나안 접경까지 이릅니다(1절).
하나님이 인도하셨기에 가능한 여정이 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안전과 승리는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목자도 되시니 내일을 걱정하지 맙시다.
2) 모압 왕 발락이 발람을 사주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지만 허락하지 않으십니다(7~13절).
그 어떤 세상의 위협과 저주도 자기 백성에게 복 주실 하나님의 작정을 막을 수 없습니다.
위기와 절망의 때에 중요한 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발락은 이스라엘의 거침없는 진격과 강성함을 보고 심히 두려워합니다(1~4절).
메뚜기 떼 같던(13:33) 이스라엘이 열국이 큰 위협을 느낄 만큼 강대한 공동체가 된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복을 보면서 열국은 두려워 떨 것입니다.
하나님만 경외하는 우리를 하나님이 건사해주시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놀라고 두려워하도록 기도합시다.
2) 이스라엘 때문에 번민에 빠진 발락은 다른 왕들처럼 물리적으로 대항하지 않고 복술가 발람의 저주를 이용한 비군사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려고 합니다(5,6절).
이스라엘은 싸우려는 의지가 없는데, 발락은 섣부른 판단과 근거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문제를 확대하고 긴장을 조성하여 사태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아서 일이 복잡해질 때가 많지 않습니까?
더 많은 계산보다 더 빠른 순복이 문제 해소의 지름길이 아닐까요?
3) 발락이 더 높은 고관을 보내 더 많은 복채로 회유하자 발람은 하나님의 명열(12절)을 어길 수 없다며 거듭 거절합니다(15~20절).
그런데도 그는 하룻밤의 기한을 더 쓰면서 하나님께 다시 묻습니다.
혹시 다른 말씀을 하실지도 모른다는 그의 기대에는 발락의 달콤한 제안을 떨치지 못하는 욕심이 묻어 있습니다.
사탄이 노리는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은 언제나 ‘탐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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