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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18.7 km
소요 시간 8h 3m 13s
이동 시간 7h 27m
휴식 시간 36m 13s
평균 속도 2.5 km/h
최고점 1,294 m
총 획득고도 728 m
난이도 힘듦
백두대간 (白頭大幹) 4 – 백운산 (白雲山)
양산박
구름에 둘러싸여 신비로운 백운산아
그 구름 깊은 곳에 무엇을 감추었나
우주가 태동하는 百草萬花 모습일세
구름에 덮였으니 내가 산을 볼 수 없듯
이 구름 밖에서도 나를 또한 볼수 없지
그러나 산도 나도 그자리에 그대롤세
사당역 버스타러 가는 길 - 봄기운이 완연하게 퍼져 있다.
그토록 맑았던 날씨가 하룻밤새 흐려지더니 마침내 예보했던대로 비가 내린다. 원래 오후에 내린다고 했는데 버스를 타고 산행지로 가는길에 벌써 차창에 빗물이 떨어진다. 강한 바람과 함께 최고 100 mm 까지도 내릴거라고 한문희 회장님이 설명하면서 회원들에게 자못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대간을 뛰는 사람은 비바람이 불던 눈보라가 날리던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는 그런 영화 같은 마음가짐을 심어주려는 듯하다. 산행중 비가 정말 많이 와서 냇물이 불면 원래 계획했던 지지계곡물을 건널수 없으므로 영취봉에서 탈출하여 무령고개로 하산한다는 플랜 B까지 얘기하는데도 회원들의 표정에 긴장하는 기색은 찾아보기 힘들다.
덕유산 IC를 빠져나와 급한 오줌환자들을 위해 잠시 정차하여 고속도로 관리공단 건물 화장실을 이용하였다. 어쩌면 비오기 전에 산행을 시작하려는 회장님의 계획에 따라 휴게소를 들르지 않으려 했던 것인지 모르겠으나 동물의 생리현상을 거스를 수는 없는 모양이다.
덕유산 나들목 고속도로 관리사무소 화장실 신세를 지고
산행 들머리인 육십령으로 가는 차창너머로 멀리 덕유산 자락인듯 높은 봉우리에 흰구름이 산등성을 타고 넘는다. 바람이 닿지 않는 계곡에는 그 구름이 모여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어쩌면 우리가 산행하는 중에도 저런 풍광을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안개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차창 넘어 산위로 안개가 피어 오른다.
육십령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차안에서 바라보던 빗방울이 직접 살갗에 닿는다. 그리고 유리창너머로 느끼던 낭만이 그 차가운 빗물 한방울로 인해 걱정스런 현실을 불러온다. 회원들은 차에서 내리자 마자 빗물이 고여있지 않은 보도쪽으로 이동하여 서둘러 배낭커버를 씌우고 우비를 챙겨입는다. 나도 배낭커버를 씌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육십령(六十嶺)은 덕유산 육삼종주하는 출발점이다. 육십령에서 무주구천동의 삼공리까지 약 30 여 km를 걷는 육구종주는 설악산의 태극종주 (서북능선, 공룡능선을 지나 황철봉을 거쳐 청대산 해맞이 공원까지 약 54 km 산행 )와 지리산의 화대종주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약 47 km 산행 )와 함께 산악인들이 무용담으로 술상위에 올려놓는 막걸리 안주중 하나이다. 지난 겨울 덕유산 무박산행할 때 일부는 영각사에서 출발하고, 나를 비롯한 몇 명은 황점에서 출발했는데 서너명이 육십령에서 출발하여 삼공리에 나보다 더 먼저 내려가 있는 걸 본 적 있다. 나한테는 이 육십령이 어떻게 생긴 건지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경상남도 함양군과 전라북도 장수군을 이어주는 해발 734m 에 위치한 이 육십령은 그 산세가 험하여 호랑이와 같은 맹수가 들끓고 또 이곳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서 삥을 뜯던 산적이 준동하던 시절 이런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고개 아래 주막에서 60명이 모일때까지 기다렸다가 넘었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왜 하필 60명이어야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는 다분히 산아래 주막집 주인들의 마케팅 전략의 하나였을 것 같다. 예전에는 이 도로로 차가 많이 다녀 고갯마루 휴게소도 괜챦게 운영되었을 터인데 이제 터널로 주도로를 연결하니 이 휴게소는 산악회 버스가 잠시 머물다 가는 정류소 역할로 그 본분을 다한다.
비 내리는 육십령 - 차에서 내리자 마자 산행채비에 바쁘다.
육십령 주변 풍경
육십령루
육십령루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
산행전 몸을 풀기 위해 체조를 한다.
구시봉 ( 1014.8 미터) - 깃대봉의 다른 이름이다
함양군에서 관광객들에게 풍취를 선사하기 위해 이 휴게소 한 켠에 세워 놓은 전망대에 올라보니 남덕유산의 준봉들과 장수군 계북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회원들이 산행채비를 다 하고 나니 회장님이 이제까지 하지 않던 준비체조를 실시한다.
육십령까지만 해도 그리 심하지 않던 안개가 구시봉으로 올라가는 능선길을 타자 마자 우리 산행 행렬을 휘감아 버린다. 아니 같은 말이겠지만 어쩌면 우리 산행 행렬이 산중턱까지 걸려있던 구름속으로 걸어들어간 것일 터이다. 어쨌든 산안개가 끼어 있는 멋진 조망을 기대했던 가슴속에 짙은 안개가 끼어버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직 잎도 제대로 피지 않은 나무들 사이로 가끔씩 붉은 진달래가 눈길을 끈다.
멀리 볼수 없으니 가까운 땅위에 피어 있는 제비꽃만 눈에 띈다. 제비가 날아오는 이른봄에 다른 꽃보다 먼저 피어나는 제비꽃도 참 종류가 다양하다. 이곳 산에 피는 것은 자줏빛의 뫼제비꽃, 노랑제비꽃과 알록제비꽃이다. 남쪽이라서 가평보다 계절이 조금 빠를 것으로 생각했는데 눈에 띄는 꽃들은 가평보다 조금 늦은 것 같다. 가랑비가 내리고 또 능선길에는 바람까지 불어주니 여느때 산행보다 시원해서 좋다. 그리고 주변에 조망이 없어 걸음이 빠르니 약수터에서 잠시 쉬어왔는데도 2 km 오르막을 한시간만에 걸어 구시봉에 도착했다.
구시봉(1014.8m)은 원래 깃대봉이라고 불렀다 한다. 옛날 삼국시대때 신라와 백제간의 치열한 접경지역이다 보니 이 곡창지대의 땅을 서로 뺏고 빼앗기는 전투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 지배하는 나라를 표시하기 위해 주둔군대가 이 깃대봉에 올라 깃대를 세움에 따라 그 이름을 깃대봉이라 불렀다 한다. 그러던 것을 옛날 어느 풍수가가 이 산을 바라보고 마치 소 여물을 끓여주던 소밥그릇인 구시 ( 구유, 구수 )같다 하여 2006년 산이름을 구시봉으로 바꾸고 이를 표시하기 위해 정상석을 세웠다고 설명한다. 요즘에는 사람이름도 맘에 안들면 법원에 가서 쉽게 바꾸는 것을 많이 봤지만 이렇게 오랜기간동안 불러오던 산이름을 바꾼 것은 처음본다. 그 이름을 바꾼지 12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지도에는 깃대봉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산이름을 바꾸려한 지자체의 의도가 쉽게 먹혀들지 않았나보다. 그런데 왜 이름을 바꾸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깃대봉이 너무 흔한 이름이라서 그랬나 ?
그리 높지 않은 구시봉에 오르고 나서 마루금을 따라가는 길은 그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지 않은데다 주위를 볼 만한 조망이 시원치 않으니 회원들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진다. 백두대간을 걷는 회원들은 모두 동네에서는 내로라 하는 베테랑들이라고 누군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그말에 동감이다. 선두에서 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다가도 휴식을 위해 모이는 걸 보면 후미와 10여분 밖에 차이가 안난다. 깃대봉에서 출발하여 조금 걸어가니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철쭉이 군락을 이뤄 우리가 지나는 길 양쪽으로 좁은 터널을 만들었다. 거기에 하얀 조팝나무가 화룡점정 조화롭게 그림을 완성한다.
노랑제비꽃 - 이제 기지개를 펴며 일어나는 중이다.
은방울꽃 - 화려한 봄을 준비중
족도리풀 - 꽃모양이 신부의 족도리 모양이라서
큰개별꽃
꿩의밥 - 꿩이 먹는게 아니라 하챦게 생겨서 그렇게 부른다.
구시봉 정상석 앞에서 단체로 인증사진을 찍는다.
민령(岷嶺 840 m )
철쭉 터널을 거의 빠져나왔다고 생각할 즈음 앞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다가가서 보니 모두들 점심먹을 준비로 분주하다. 꽤 넓은 공터 한켠에 커다란 소나무가 서있고 그 밑에 나무둥치를 잘라서 만든 의자가 서너개 세워져 있다. 준비성이 있는 회원들은 넓은 비닐매트를 깔고 그 위에 등산화를 벗고 올라 앉아 있고, 어떤 회원들은 그 옆에서 버너에 코펠까지 갖춰 라면을 끓인다. 비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어 주변은 볼 수도 없고 하늘에서는 간간이 빗방울이 흩뿌린다. 점심시간이라서 밥을 먹지만 모두 편안치 않아 보인다. 나도 나홀로 팀에 끼어 새벽에 부랴부랴 싸온 도시락을 꺼내놓고 밥을 먹지만 진바닦에 쪼그리고 앉아 먹는 음식이 맛은 고사하고 그냥 밥을 입으로 떠넣는 수준이다. 그 와중에도 집에서 큰 보온통에 커피를 가득 담아와 나눠주는 회원님이 있어 한컵 얻어 마시고 점심을 마쳤다.
이 너른 공터가 민령(岷嶺 840 m )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정표에 민령이라고 써 있지만 별도의 설명이 없으니 그냥 모른 채 점심만 먹고 지나쳤었다. 이 민령은 펑퍼짐한 ( 민밋한 ) 고개라는 순수 우리말인데 기록을 위해 어쩔수 없이 한자로 쓰다보니 산이름 민(岷)자를 써서 민령이라 이름지은 것이라 한다. 민밋한 고개라는 뜻을 ‘민령’이라고 하면 그 이름의 취지가 제대로 전달될 수 없으나 지명을 짓는데 많은 고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민령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과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을 이어주는 고개이며 그 밑으로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터널이 지나간다.
짧은 점심휴식을 갖고 회원들은 다시 일어섰다. 원래 오래 앉아 밥을 먹을 수도 없는 것이지만 날씨가 궂으니 앉아 있는것이 더 불편하다.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지만 안개가 자욱하여 30미터 이상 먼곳은 보이지 않을 정도다. 겨울 나목 나뭇가지에 올라오는 앙증맞은 새싹이 긴 겨울을 이겨낸 보상처럼 돋보인다. 잎이 나기도 전에 온산을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가 이제는 겨울을 지나 봄의 문턱을 넘어섰슴을 온몸으로 시위한다. 2주전 이미 저멀리 물러난 것만 같았던 동장군이 갑자기 반격해와 큰 상처를 입었던 부지런한 봄꽃과 풀나무가 여기 저기 보인다. 그러나 계절은 결국 승자도 패자도 없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풀나무들이 환경에 맞게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가야 한다.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어 사라져갈 뿐이다.
범꼬리
조팝나무
철쭉-
민령에서 점심 휴식을 갖는다.
철쭉
민령
층층나무 - 늦추위로 잎의 상태가 좋지 않다.
진달래
조팝나무
덕운봉 (德雲峯 728 m )
전쟁에서 승리하면 올라와 승전고를 울렸다던 북바위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 북처럼 면이 넓은 바위가 툭 튀어나온 형상으로 인해 사람들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야기 같다. 깍아지른 바위절벽 위에 우똑 솟아난 바위에 올라 멋진 포즈를 취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회원들의 모습에 생기가 돈다.
이런 전망바위가 나타날때마다 안개로 인한 불량한 조망에 안타까움이 일어난다. 이 바위에 서면 산아래 오동저수지가 보인다고 하는데 지금은 희뿌연 안개바다다.
덕운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키큰 산죽나무 숲이다. 일반적으로 산길에서 보는 조릿대와는 사뭇 다른 것인지 이곳의 산죽은 사림키보다도 훨씬 크다. 빽빽하게 자란 산죽길이 약 1 km 정도 이어지다 끊어지길 반복한다. 이런 길에서는 조망이 좋고 나쁨과 상관없다. 조망이 좋지 않을 때는 시야가 좁아진다. 지나가는 길 주변의 나무와 풀 그리고 꽃만 보게 된다. 가끔씩 나타나는 붉은 진달래가 나무위에 그리고 땅위에 그 꽃잎이 흩어져 신선한 풍경을 연출한다. 그밖에도 산길 내내 보이는 노랑제비꽃과 이제 싹이 막 올라오는 구절초 그리고 개별초꽃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그리고 이제 꽃이 막 피어나는 묏버들과 벌써 꽃이 지고 있는 삼지닥나무, 파릇하게 잎이 돋아나는 낙엽송이 겨울이 끝나고 봄의 향연이 시작되었슴을 온몸으로 시위한다.
덕운봉 (德雲峯 728 m )에 이르기 전에 만나는 바위길은 그 앞에 깊은 낭떨어지가 있어 시원한 조망을 상상하게 한다. 정말 한치앞도 안보인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저 바위 절벽 아래 피어 있는 진달래꽃만 보일 뿐이다. 덕운봉은 실제로는 이 대간길에서 살짝 비켜 있는데 전망이 좋고 커다란 소나무가 멋지게 자란 암봉에 세워진 이정표에 덕운봉이라 표시되어 있다. 지난번 구간에서는 대간길에서 빗겨 있는 월경산에 잠깐 다녀왔듯이 덕운봉에도 다녀올 만 하겠지만 이렇게 별다른 표시없이 이정표에 덕운봉이라 써져 있으니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사진찍고 지나간다.
일월비비추 - 이렇게 잎만 보면 그 꽃의 우아한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삼지닥나무
일본잎갈나무 - 가을에 노랗게 낙엽이 지므로 낙엽송이라 부른다.
할미꽃 - 요즘 만나기 힘든 꽃이다.
신길에서 만나는 진달래는 늘 반갑기만 하다 - 짧은 기간 화려하게 피었다가 순식간 지고 마는 꽃이다.
덕운봉은 대간길에서 벗어나 있다.
영취봉
조망이 없으니 산행발걸음이 빨라질 밖에. 내가 야생화 사진이라도 찍을라치면 회원들의 발길은 벌써 저만치 달아나고 꼬리도 안보인다. 다시 부랴부랴 따라가기를 반복하면서 가다보니 어느새 영취봉이다. 앞서간 회원들이 모여서 사진찍기에 분주하다. 이 산은 지난 겨울에 장안산에 오를 때 무룡고개에서 잠시 올라와본적이 있다. 이곳에서는 날씨가 좋을때 덕유산 장안산 백운산이 조망되는데 오늘은 짙은 안개로 인해 정상에 보여서 있는 우리 회원들이 구분될 정도다. 잠시 머물면서 정상석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오늘의 대표산행지인 백운산으로 향한다. 영취봉에서 백운산까지는 완만하지만 끊임없이 3 km 이어지는 오르막 길이다. 긴 산행구간이 부담스런 사람들은 무룡고개로 하산하였다.
노각나무 - 남쪽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나무다.
시계제로 - 대간길은 고도를 높이면서 점점 더 짙은 안개속으로 들어간다.
영취산 -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으로 분기하는 출발점이다.
백운산 (白雲山 1,278.6 m )
2월달 장안산 눈산행 왔을 때 장안산을 오르면서 코앞에 우뚝 솟은 이 산 이름을 알수 없어 여러 사람에게 불어본 끝에 알게 된 백운산이다. 그러나 오늘은 정작 백운산에 오르면서 백운산을 볼수 없다. 극심한 산안개가 온산을 뒤덮었다. 우리가 주변의 멋진 조망을 볼 수 없듯이 이 산의 밑이나 장안산쪽에서 이곳을 바라보는 사람도 백운산 속의 면면을 볼 수 없으리라. 모든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그 산들은 언제나 묵묵히 제자리에 서 있고 또 앞으로도 수만년을 그렇게 자리를 지킬것이다.
어둠이나 안개로 인해 볼 수 없는 것이 존재를 지워버릴 수 없는 것인데 그리고 그렇게 볼 수 없다고 해서 아름다움이 변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자신이 눈으로 본 것만 가지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실제로 산이나 들에 자라는 풀나무도 그 이름을 알기 전까지는 산길에 흔하게 널려 있어도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관심을 갖고 이름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그 꽃이 보이게 된다. 방안에 있는 사물들이 불이 꺼져 어두운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그 사물들은 엄연히 그자리에 존재한다. 다만 눈으로 볼 수 없으니 그 존재를 느낄수 없을 뿐이다. 우리 현대인은 우주가 아주 광활하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 광활함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인류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어쩌면 우주의 시간에 비한다면 아주 짧은 찰나에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섬광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를 일이다.
백운산 (白雲山 1,278.6 m )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흔한 산이름중 하나일 것 같다. 산이 높아 늘 구름에 가려져 있어 그렇게 부른 것일까. 도교의 신비주의가 빚어낸 이름일지도 모른다. 구름위에는 뭐가 있을까 늘 궁금해 하면서 살았던 옛 선조들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구름을 타고 다니는 신선을 만들어내고 또 구름위를 훨훨 날아다니는 학을 선망해왔다. 언제나 부르면 내려와 올라타고 날아다닐 수 있는 손오공의 근두운도 이런 조상들의 상상력이 뭉쳐져서 생겨난 것이다. 막상 비행기를 타고 구름위를 날아보면 그 구름위에는 신선도 없고 옥황상제가 살고 있는 염라국은 없지만, 우리 조상님들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구름위의 세상모습만은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해본다.
백운산에서 이정표를 잘못 읽은 회원이 앞장서서 엉뚱한 방향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줄줄이 따라서 내려가 짧은 구간이지만 소위 알바를 하게 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백운산에서 중고개재까지 약 2.5 km 남았지만 심적으로는 이 백운산에서 산행이 끝난기분이다. 오르막이 심해 힘들거라고 회장님이 잔뜩 겁을 줘놓았으니 그 힘든 산을 올랐을 때 남은 구간은 가만 있어도 저절로 가게 되는 느낌이다. 실제로 급한 내리막이 이어지는 이 구간을 여유있게 걸었는데도 한시간밖에 안걸린다.
급격한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계절도 함께 따라온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철쭉과 병꽃나무꽃이 보이고, 초록빛으로 물든 숲에 안개가 걷이면서 신선함이 다가온다. 저 백운산 구름위의 세상과 사뭇 다르다. 높은 능선은 아직도 겨울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곳 아래쪽에는 온갖 풀들이 왕성하게 자라나고 꽃이 피어나 완연한 봄기운이 솟아난다.
중고개재에서 큰길로 내려오는 계곡길에는 2주전 지나갈 때 만발했던 현호색은 한발 물러나고 노랗게 피어있던 괭이눈도 차츰 짙은 녹색으로 물들어간다. 멸가치와 비비추 잎도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복수초꽃이 지고 곧바로 이어서 피는 꽃이라 ‘연복초’라고 부른다는 신기한 꽃이 눈길을 끈다. 반쯤 투명한 연록색 꽃대위에 사방으로 한 개씩 총 4개가 달려있고 그 끄트머리에 하늘을 향해 또 하나가 피어 전체적으로 5개의 꽃이 피어 있는데, 그 꽃색깔마저 연록색을 띄고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꽃이다. 자연의 세계는 그 깊이를 가늠할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하다.
지지계곡물을 건너서 큰길로 나와 우리가 지나온 백운봉쪽을 바라보니 비록 희미하게 안개가 끼었으나 산 전체가 제법 선명하게 보인다. 산정상을 비롯한 능선길에만 꽤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다. 지금에서야 안개가 걷힌건지 아니면 백운봉에 살고 있는 신선이 우리를 골탕먹이려 우리가 다닌 길에만 장막을 쳐놓았던건지 야속하다는 생각이 든다.
짙은 안개로 인해 망쳐버린 조망을 아쉬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비가 예상보다 많이 내리지 않아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데 대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산행을 마무리한다.
안개로 망쳐버린 조망을 화사한 봄꽃이 보상해주는 듯 산길에 진달래가 만발해 있다.
현호색
오후 5시가 다 되어 백운산 정상에 닿았다.
중고개재 - 하산기점이다.
중고개재 -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고개를 지키고 서 있다.
신선들이 노니는 구름위에서 내려오니 인간계에는 안개가 걷히고 청명한 봄기운이 흐른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한문희 대장님이 흥미로운 화두를 꺼낸다. 즉, 남북정상회담 이야기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4월 27일 정상회담에서 남북간 군사대치국면을 끝내고 현재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 결과 실제로 남북간 교류가 확대되고 국민들의 왕래가 자유로와진다면 백두대간 산행을 북쪽까지 이어서 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 분위기는 나 뿐만 아니라 그 버스에 탄 사람들은 모두 느꼈을 것이고, 그 밖에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일일 것이다. 만일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대열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 손을 들라하니 모두들 손을 들어올린다. 우리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직간접적으로 접했던 남북분단의 불편함과 혹시 모를 전쟁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실제로 남북교류가 이뤄질 것인가 하는 의구심 그리고 더 나아가 통일비용은 얼마나 들까 하는 우려감 등 수많은 생각이 중력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지지만, 그 반대급부로 꿈이 실현되었을 때 누릴수 있는 현실적 이상에 대한 기대감이 그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고 생각한다. 대장님은 그런 기회가 생기면 자신이 적극적으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여 인원선발을 할 수 있을거라고도 한다. 나도 은근히 내가 이 남쪽구간 산책을 끝내고 났을 때쯤 그 길을 이어서 북쪽길도 걸을 수 있을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연복초
병꽃나무
7시쯤 출발하여 휴게소도 들리는 듯 마는듯 부지런히 달렸는데도 서울 양재역에는 10시 35분이나 돼서야 도착하였다. 집에 도착하니 11시 30분이 넘었다. 윤이가 떡꼬치를 만들어 주어 두 개를 먹고 저녁으로 가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