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비엔나의 전쟁 분자들은 합스부르크 황위 계승자의 암살이 일어나기 위한 배후환경을 만들어 개정의 원인으로 하는데 노력하였다. 1914년 6월 공식적인 방문 형식으로 대공을 사라예보(Sarajevo)로 보내는 결정은 보스니아의 민족주의적 감정을 고의적으로 자극하였다. 방문 날짜를 세르비아의 국가 기념일인 비도브단(Vidovdan)으로 선택한 것도 세르비아인의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대공을 암살했던 음모자들은 발칸 반도에서 번성했던 많은 민족주의 집단 중 하나인 젊은 보스니아인(Mlada Bosna/"the Young Bosnia") 이라는 혁명 집단의 구성원들이었다. 나로드나 오드브라나(Narodna Odbrana)는 "검은 손(Crna Ruka/Black Hand)" 이라고 알려진 세르비아 지하단체와 교류하며 6월 28일 대공을 암살하기 위해 계획에 맞춰 실행하였다. 총격의 즉각적인 결과는 보다 심한 사회적 격변을 야기 시켰다. 그들의 행위는 비엔나의 전쟁분자들의 골치거리인 세르비아인들을 탄압할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2. 1차 대전 발발
남 슬라브의 민족주의 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대전의 발발은 유럽 각국에서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그러나, 유럽의 강대국 지배 하에 있던 슬라브인들의 입장과 기대는 매우 복잡하였다. 남 슬라브인의 경우, 오스트리아-헝가리 군 속에 편입된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와 세르비아인은 갈리시아 전선에서 러시아 군에 투항하였다. 슬로베니아인도 슬라브인으로서 전쟁에 동원되는데에 불만을 품고있었으나, 이탈리아가 협상국 측에 참전하게 되자 이들은 오스트리아 정부에 협력적인 입장을 취하기로 하였다. 크로아티아인은 세르비아에 대한 오랜 기간의 적대감 때문에 적극적 태세를 취하였으나, 이탈리아의 참전으로 그들은 더욱 애국적으로 열광하였다. 이로서 전쟁 초기에는 대부분의 남 슬라브인들은 이중 왕국에 대해 충성적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사정이 조금씩 바뀌어 지기 시작했다. 1915년부터 1916년까지 유리한 전황 속에서 마자르인과 오스트리아, 독일 정부는 동맹국의 승리를 확신하면서 자신들은 오스트리아-독일 제국의 민족이라고 강력하게 내세워 갔다. 더구나 이 동안에 합스부르크 제국은 독일 제국에의 의존도를 점차 강화시켜 나갔기 때문에, 제국 지배 하의 슬라브인들은 자민족의 장래에 대해서 많은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민족 문제는 다시 절박한 양상을 띄게 되었다. 1917년 2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후, 제국령 내의 소수민족들의 민족적, 사회적 불안이 커졌으며, 미국의 참전으로 민주화, 자유화와 민족적 권리 확대의 요구가 한 층 더 높아졌다.
1918년 초에 오스트리아 제국의 군사적, 경제적 고갈 상태는 극에 달하였고, 국민 대부분이 식량 위기와 기아에 허덕이고 있었다. 1918년 3월에서 7월에 걸쳐서 서부 전선에서의 독일군의 최후의 대 공격은 실패로 끝나고 9월에 불가리아 역시 협상국의 반격에 붕괴하여, 전선에서 철수하였다. 그러는 동안, 제국 영내의 제 민족의 분리 운동이 급속히 진전되었다. 10월에는 남 슬라브인들도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Zagreb)에서 "유고슬라비아 국민 위원회" 를 결성하여 정부로서 권한을 수행했다.
3.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
남 슬라브인의 통일, 독립 운동은 쉽지 않았다. 협상국 측에 가담한 이탈리아가 남 슬라브인의 거주 지역의 일부를 요구하고 있다는 불리한 점 이외에도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의 장래의 통일 남 슬라브국의 형태에 관하여 의견의 대립이 극심하였다는 점이 있다. 1915년 5월에 런던에서 창설한 "남 슬라브 위원회" 는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의 독립, 남 슬라브 왕국을 조직함에 있어서 각 민족이 평등한 자격으로 연합해야 한다는 "남 슬라브적 이념" 에 의거하였으나, 세르비아인은 자기 중심의 중앙 집권적인 민족의 통합을 희망하여, "남 슬라브적 이념" 에 의거한 연방적 통일 국가 건설에 강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에 1916년에 세르비아 전 지역이 독-오 동맹군에게 점령되었고, 세르비아 정부는 망명하였으며, 정세는 달라지게 되었다.
1918년 11월 24일 몬테네그로 의회는 까라조르제비치 왕조 하 통일 국가 안에서의 세르비아 형제와의 통일을 선언하였다. 자그레브의 대표단은 세부사항에 대해 옥신각신할 시간이 없었다. 그들은 1918년 12월 1일 섭정 동궁 알렉산다르 까라조르제비치(Aleksandar Karadordevic)가 발표한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연합 왕국(Kraljevina Srba, Hrvata i Slovenaca/the Kingdom of Serbians, Croatians and Slovenes) 의 선언에 동의 하였다. 이로써 제1차 세계대전은 결말을 짓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