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무봉 (無縫) - (2)
설봉료(雪峰了)가 염하였다.
"국사의 부자가 국왕을 위해 있는 힘을 다했으나 보는 앞에서 무너져 버렸다.
무봉탑을 본 적이 있는가? 만일 보지 못했다면 거짓말로 황제를 속인 것이다.
만리 타향 애주(崖州)로 귀양을 가리라."
보녕용(保寧勇)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옛말에 있듯이 아비가 아니었다면 자식이 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숙종
한 사람을 속이기는 가능할지라도 천하 납자들의 눈이야 어찌하겠는가?
어떤 것이 납자들의 눈인가?
해회연(海會演)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대중에서 모두들 말하기를 '국사께서 양구(良久)하셨다' 하니, 북을 달아놓고
망치를 기다린 꼴임을 전혀 알지 못한다.
당시에 숙종이 깨달은 황제였더라면 그가 '탐원에게 하문하십시오'라고 말하
자마자, 그에게 이르기를 '국사여, 국사여! 하필 그래야 하는가? 라고 하기만 했
어야 할 것이다.
숙종이 나중에 탐원에게 하문하였는데, 탐원이 게송을 바쳤으니……스님이 숙
종을 대신하여 말하기를 '부질없는 소리로다'라고 하였다.
설두도 이에 대해 송을 했으니……' 스님이 이르기를 설두는 천추에 이름을 날
릴 만하지만 나는 그의 게송 속에서 맑은 못은 청룡이 도사리지 못하게 한다' 는
구절만을 사랑하노니 머리와 꼬리를 일시에 꿰뜷었도다.
지금까지의 한토막 이야기는 한쪽에 밀어 두고 말해 보라. 끝내 어떤가? 차
녀(姹女) 50)는 이미 은하수를 건너갔거늘 어리석은 총각은 빈 방만 지키네."
또 상당하여 이 이야기에서 황제가 탐원을 불러 물은 곳까지를 들어 말하였다.
"앞쪽은 진주 · 마노요, 뒤쪽은 마노 · 진주요, 동쪽은 관음 · 세지요, 서쪽은
보현 · 문수이다.
중간에 하나의 높은 깃발이 있으니 바람에 펄럭인다. 호로호로!"
자수(慈受)가 상당하여 이 이야기에 이어 설두의 송을 들어 말하였다.
"옛사람의 이런 말이 좋기는 매우 좋으나 자손들에게 누를 끼쳐 그들로 하여금
썩은 물 속에서 한결같이 잔재주를 부리다가 활달한 길거리에서 살림을 해 보지
도 못하게 하는 실수를 면치 못했다.
누군가가 당장에 나 혜림(慧林)에게 '어떤것이 무봉탑입니까?' 하고 물으면, 그
저 그에게 이르기를 '봄바람 부는 후원 담장 밑에 아무도 오는 사람 없으니, 들 살
구산 복숭아 화창하게 피었다'고 하리라."
지해청(知海淸)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보았는가? 국사가 똑똑치 못해서 탐원에게 누를 끼쳤고, 숙종은 함이 없어서
〔無爲〕앉아서 천하를 태평케 했다.
여러 선덕〔禪德〕들이여, 만일 말에 의해 뜻을 결정지으려면 나귀와 준마가 앞
을 다투는 꼴이요, 다시 뜻에 의해 종지를 밝히려면 납칼로 막야검〔鏌鎁刀〕과
겨루는 격이다. 조사께서 '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나니, 올 때엔 말이 없다'
고 하지 않았는가?"
영원청(靈源淸)이, 회당(晦堂) 노인이 탑에 드는 일을 인하여 대종황제 충 국사
에게 물은 이야기 속에서 "아는 이 없어라" 한 데까지를 들어 말하였다.
"애비는 죽고 자식은 남아서 가풍이 타락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지난 날에 시
자(侍者)로 있으면서 들으니, 선사(先師)가 응진(應眞 : 耽源)의 네 구 게송을 들
고 겸하여 네 구절의 주석을 내리기를 '소상의 남쪽과 담수의 북쪽'이라 하니, 그
대는 악기를 연주하고 나는 손뼉을 친다.
'복판에 황금이 있는데, 한 나라를 꽉 채웠네'하니,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 같고,
입이 있어도 벙어리 같다. '그림자 없는 나무 밑에서 함께 한 배를 탔다'하니, 그
는 본래의 국토가 없으매 곳곳에서 그를 만난다. '유리 대궐 위에 아는 이 없다'
하니, 남의 소 한 마리를 얻고는 남에게 말 한 마리를 갚아 주리라."
이어 다시 말하였다.
"산승도 조사의 종풍을 이어 떨칠 것이니, 나도 네 구절의 주석을 내려서 대중
들에게 알리리라."
양구했다가 말하였다.
"저마다 자세히 보고 잘 기억하라. 사람을 만나거든 여럿이 알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니라."
삽계익(霅溪益)이 이 이야기를 들고, 연이어 설두의 송을 들어 말하였다.
"숙종 한 사람을 속이기는 쉽거니와 천하 사람들의 입초세를 끊지 못한 것이야
어찌하겠는가? 그가 '소상강의 남쪽과 담주의 북쪽이라' 하니, 말해 보라.
무봉탑이 어디에 있는가? '층계가 또렷또렷하고 그림자가 동글동글하다' 하니,
무봉탑의 높이가 얼마나 되는가? 내가 오늘 두 눈썹을 아끼지 않고 숙종황제와
충 국사를 위하여 본래의 서원을 다하리라."
그리고는 주장자를 번쩍 들어 올리고 말하였다.
"알겠는가? 만일 이 속에서 분명히 알면 남쪽과 북쪽이 낱낱이 분명하고, 범이
웅크리고 용이 서려 앞앞이 구족하며, 백천 가지 삼매가 하나의 원광(圓光)이요,
모든 부처님의 사리(舍利 : 시체)가 동일한 보장(寶藏)이라.
비록 그러하나 가로 · 세로 · 바름 · 모남은 그만두고 말해 보라.
결국 무봉탑의 높이가 얼마나 되는고?"
양구했다가 말하였다.
"풍운이 모이는 곳에 천 길의 벼랑이 깊었고, 일월이 중천에 떴을 때 사방이 밝
으니라."
그리고는 향대(香臺)를 쳤다.
심문분(心聞賁)이 어떤 스님에게 다비탑(茶毗塔) 공사를 주관해 달라고 청하면
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이는 탐원의 무봉탑의 본이거니와 장로(長蘆)에게도 한 가지가 있는데, 그의 것
과 대체로 동일하나 장엄이 약간 다르니 그 속에서 찾아내어 보겠다.
하늘의 남쪽과 땅의 동쪽이며, 복판에 광명이 있는데 이글이글 붉었네. 그림자
없는 나무 끝에 배가 보이지 않으니, 공연히 버들가지만 남겨 두어 바람에 흔들리
게 하리."
50) 사단(謝丹)이라는 사람이 바닷가에서 큰 조개를 얻었는데 그 조개 속에서 차녀라는
이름의 미인이 나왔다. 그로부터 그와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차녀가 말하기를 "아
궁이에 불을 좀 때시오. 나는 물을 길어오겠소"하고 나가더니, 이내 돌아오지 않고
하늘로 날아갔다. 그러나 단(丹)은 아궁이에 불만 때면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옛 이야기에서 온 말이다. 제 1권 제14칙 운개본(雲盖本)의 염(拈)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