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의 習學 /문수의 지혜와 미륵의 자비와 보현의 실천 /2018.07.31.화 /단나사
▊ 문수의 지혜와 미륵의 자비와 보현의 실천
‣ 慈와 智의 공동작업
석가세존은 영취산의 정상 가까운 광장에서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게 “無量義”라고 하는 존귀한 가르침을 설하시고 나서 깊은 명상에 들어가셨다. 그 모습을 예배하고 있자, 사람들의 혼에는 다음의 설법이 얼마나 위대한 것일까 하는 예감이 절로 느껴져 다 가슴이 뛰고 있었다.
그리고 참지 못한 미륵보살이 문수보살에게 물었다. 문수보살이 다음 설법이『묘법연화경』의 가르침을 설할 것이라고 확신 있는 예상을 말하는 것이다.
미륵보살이 자신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심중도 살펴 질문했다고 하는 것, 그리고 질문상대가 문수보살이었다고 하는 것, 이 두 가지에는 큰 의미가 들어 있다.
1. 모든 인간을 대신하여 질문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들에게 법의 보시를 하고 싶다고 하는 자비의 표현이다. 미륵보살은 여래로서 미래세의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널리 구제할 것이라고 예언하신 보살, 곧 자비의 권화(權化)이니까, 그러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
2. 왜 문수보살에게 질문했는가 하면, 문수보살은 과거세부터 현세에 걸쳐서 쭉 부처님 곁에서 가르침을 듣고 그 지혜를 잇고 있는 보살이다. 법왕의 아들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지혜의 權化인 것이다.
그래서 자비가 지혜에 호소한 것이 된다. 자비의 호소에 응해 지혜가 발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살도를 행하는 자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본보기이다.
보살행의 계기가 되는 것은 자비이다. 상대를 구제해 주고 싶다고 하는 어쩔 수 없는 정심(情心)이다. 그런데 情만이 먼저 치달리고 지혜가 따라 가지 않으면 결코 바른 인도라고는 말할 수 없다. 또 훌륭한 결과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혜와 자비의 두 가지”는 언제나 짝이 되어 견밀한 공동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문수의 智·보현의 行”. 이 두 보살은 하나의 對로서 생각할 수 있다.
智는 진리를 깨닫는 것, 行은 진리를 행하는 것이다.
문수는, 지·혜·증(智·慧·證)
보현은, 이·정·행(理·定·行)
此二脅士는 表法 文殊師利는 顯智 慧 證, 普賢은 顯理 定 行, 共詮本尊如來 理智 定慧 行證之完備圓滿 文殊 普賢 共爲一切菩薩之上首
문수의 지혜
미륵의 자비 지혜 실천(中) 자비
보현의 실천
또 미륵보살은 실재인간이었음을 알아두면, 서품의 뒷부분의, 그 전세에 대해서의
“號曰求名이라 貪着利養하야 雖復讀誦衆經이나 而不通利하고 多所忘失일새 故號求名이라 是人이 亦以種諸善根因緣故로 得値無量百千萬億諸佛하야 供養恭敬하고 尊重讚歎일러니라”라고 있다.
즉 선행을 쌓고 진리를 깨닫는 것에 의하여 法身의 보살이 되고 그리고 미래세의 사바세계를 구제하는 부처님으로서 출현하시는 것을 약속하시고 있다.
상불경보살품의 상불경보살도 대단히 인간미 풍기는 보살이다. 이 미륵보살도 또한 인간미 풍기는 보살이다. 상불경보살은 석존의 前身이고 미륵보살의 前身은 살아 있는 인간, 아일다(미륵비구)이었다. 이렇게 보면 법화경이 얼마나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이고 그 내용이 얼마나 심심미묘한 것인가를 새삼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 경전에 의한 “덕분이라고 하는 마음”
“일일문문시진불(一一文文是眞佛)”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경전에 설해진 일자일구(一字一句)가 부처님의 진리 그것인 것이다.
‣ 불법(佛法)을 만난 감격
경전 속에는 “모든 사람이 구제되었으면”하는 부처님의 원願이 들어 있다.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受持)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 <개경게開經偈>
개경게라는 것은 글자대로 경의 처음에 외우는 게문偈文이다. 동시에 만나기 어려운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었던 우리들의 안목을 열어주신 것이기도 하다.
불법을 만나 독송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고 고마운 것이다. 얻기 어려운 생명을 받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난 것을 수호守護라고 받아들여 행복함에 감사하고 진리·법을 구하고 싶다.
‣ 우주는 나의 것
금차삼계 개시아유(今此三界 皆是我有)
기중중생 실시오자(其中衆生悉是吾子)
이금차처 다제환난(而今此處 多諸患難)
유아일인 능위구호(唯我一人 能爲救護) <비유품譬諭品>
이 우주는 전부 나의 것이다. 그 가운데 있는 중생은 전부 나의 자식이다. 더구나 이 세계에는 여러 고민이나 괴로움이 충만해 있다. 인간을 그 고통에서 구제할 수 있는 것은 나 한사람이다.
얼마나 자비에 넘친 말인가. 이 일게一偈에서 부처님은 “일체중생을 수호해 주시고 있다.” “일체중생을 가르쳐 인도해 주시고 있다.” “일체중생을 사랑해 주시고 있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있다.
우주가 나의 것이라고 하는 마음이 되면 그곳에 사는 모든 것은 전부 나의 자식과 같고 형제이고 동료이다. 형제, 동료를 구제하기에도 부처님은 법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의 경지이다.
‣ 살려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자각
상주차설법常住此說法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16>
나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항상 이 사바세계에서 설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비유해서 말하면 우리들이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산소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산소(酸素)는 항상 우리들의 주위에 있고 체내(體內)에도 충만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산소의 존재 따위는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과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 없는 인연에 있고 우리들을 항상 살려주시는 것이 부처님이다. 절대적이고 무한의 존재인 것이다.
부처님은 언제나 우리들의 곁에서 진리·법을 설하시어 우리들을 구제해주시고 있다.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 우리들은 커다란 안심과 용기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매자작시의 이하령중생(每自作是意 以何令衆生)
득입무상혜 속성취불신(得入無上慧 速成就佛身) <如來壽量品16>
어떠한 중생에 대해서도 나의 본심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중생을 불도에 인도할 수가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빨리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일까 라고 항상 그것만을 염하고 있는 것이다.
여래수량품의 결론의 말이야말로 부처님의 자비의 극치이다. 부처님은 상대방의 근기에 응하여 여러 방편을 사용하신다. 그 최종목적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부처님의 경지로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단순히 그 때, 그 경우의 괴로움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구제로 인도해 주시는 것이 부처님의 본원(本願)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부처님의 위대한 생명에 살려지고 있다고 하는 자각을 가지고 부처님의 원을 나의 원으로서 정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 부처님에게 보호받고 있다고 하는 확신(確信)
위제불호념(爲諸佛護念) <보현보살권발품普賢菩薩勸發品28>
나는 제불(諸佛)에게 호념(護念)받고 있다고 하는 절대적인 신념을 갖는 것
법화경의 매듭으로서 부처님은 사법성취(四法成就)라고 하는
신앙의 요점을 가리키시고 우리들에게 커다란 안심과 격려를 주시고 있다.
그 첫 번째의
“諸佛에게 호념받고 있다고 하는 것[一者 위제불호념爲諸佛護念]이란
(부처님에게 살려지고 보호받고 있다고 하는 것을 확신한다)”
고 하는 의미이다. 살려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확신하는 것에 의하여
2 “많은 德本을 심고[二者 식중덕본植衆德本]
(언제나 선행을 하려고 마음먹는다)”
3 “正定聚에 들어가고[三者 입정정취入正定聚]
(바른 신앙자의 모임에 들어간다)”
4 “일체중생을 구제하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四者 발구일체중생지심發救一切衆生之心]
(언제나 남을 위하여 다하려고 한다)”고 하는
사법성취의 가르침의 남은 세 가지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 전인류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일체중생 불성개현(一切衆生 佛性開顯)
대승불교의 이상은 어디까지나 전인류가 편안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에 있다. 세계평화의 실현은 불도수행의 최종목표인 “성불成佛”과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멀고 한사람 한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러나 작은 힘의 결집이야말로 커다란 문제를 해결하는 원동력이고, 먼 길이기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의 전진이 중요한 것이다.
신앙을 갖는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인류가족의 일원(一員)으로서 마음을 하나로 하여 평화(平和)라고 하는 목적을 위하여 기도를 할 때 강한 연대감(連帶感)과 일체감(一體感)이 탄생한다.
첫댓글 상현스님 더운날 무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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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자비를 겸비한 실천 . . .!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