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서 온 편지
김수열
죽어서 내가 사는 여긴 번지가 없고
살아서 네가 있는 거긴 지번을 몰라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몇 자 적어 보낸다
아들아,
올레 밖 삼도전거리 아름드리 폭낭은 잘 있느냐
통시 옆 먹구슬은 지금도 토실토실 잘 여무느냐
눈물보다 콧물이 많은 말젯놈은
아직도 연날리기에 날 가는 줄 모르느냐
조반상 받아 몇 술 뜨다 말고
그놈들 손에 질질 끌려 잠깐 갔다 온다는 게
아, 이 세월이구나
산도 강도 여섯 구비 훌쩍 넘어섰구나
그러나 아들아
나보다 훨씬 굽어버린 네 아들아
젊은 아비 그리는 눈물일랑 이제 그만 접어라
네 가슴 억누르는 천만근 돌덩이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육신의 칠 할이 물이라 하지 않더냐
나머지 삼 할은 땀이며 눈물이라 여기거라
나 혼자도 아닌데 너무 염려 말거라
내가 거기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없듯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없어
그게 슬픔이구나
봉분 하나 없다는 게 서럽구나 안타깝구나
그러니 아들아
바람 불 때마다 내가 부르는가 여기거라
파도 칠 때마다 내가 우는가 돌아보거라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몇 자 적어 보내거라
죽어서 내가 사는 여긴 번지가 없어도
살아서 네가 있는 거기 꽃소식 사람소식 그리운 소식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너울너울 보내거라, 내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