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익한 비관주의는 안 된다
<복음의 기쁨> 제2장 공동 노력의 위기 속에서
Ⅱ. 사목 일꾼들이 겪게 되는 유혹들
1) 선교 영성의 과제에 대한 응답 2) 이기적인 나태는 안 된다 3) 무익한 비관주의는 안 된다 4) 그리스도께서 가져다 주신 새로운 관계에 대한 응답 5) 영적 세속성은 안 된다 6) 우리 사이에 싸움은 안 된다 7) 교회의 또 다른 도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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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익한 비관주의는 안 된다(84~86항)
그런데, 기쁜 소식을 전한다 해도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그 소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금년 성주간에 세월호 사건이 있었고, 부활을 맞으면서도 그 기쁨에는 분명 상처가 있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시신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활의 기쁨을 노래해야 할 것인가?
대답은 물론 ‘그렇다’이다. 죽음이 없다면 부활도 없고, 부활 신앙이 있어야 할 까닭도 없다. 물론 세상은 그 기쁜 소식을 믿기 힘들어한다.
그렇다고 해서 복음의 기쁨이 빛을 잃을 수 있는가? 예수님은 왜 죽음까지 거치시고 부활하셔야 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복음의 기쁨이 이 세상의 어떤 악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스스로 내려오셨더라면, 복음의 기쁨은 죽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피해갔을 것이다.
“세상의 악이 그리고 교회의 악이 우리의 헌신과 열정을 줄이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84항).
세상의 악을 보면, 과연 저 앞에서 복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의심하게 된다.
교회의 악, 내 공동체의 악을 보면, 아무리 기쁜 소식을 말해도 세상은 우리를 신뢰하지 않고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것 같다.
이러한 의심들은 “자기중심적인 신뢰 부족의 산물”(85항)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
복음의 기쁨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근거하므로, 세상과 교회의 어떤 악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간직할 것이다.
신앙이 박해의 대상 또는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린 세상에는, 희망의 증인들이 필요하다.
모세처럼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을 자신의 삶으로 가리켜 주는”(86항) 사람들이 필요하다(히브리서 11장을 읽어보기 바란다). “희망을 빼앗기지 않도록 합시다!”(86항)
안소근 수녀 (대전가톨릭대 교수,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