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걸 못 보고 떠납니다.
잘 마무리 하고 나갔으면 했는데 제가 먼저 포기해 버렸네요.
포기라는 단어를 쓰니까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해지고 부족해 보이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제 이기심 때문이겠지요.
작가들이 스스로 수업과 노동 그리고 자기 일을 하면서 작업을 진행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수업을 잘 만들지도 못하겠고 사람들과 대화도 못했습니다. 거부했어요.
저는 그저 밖에서 조금 일하고 제 시간에 작업하기를 원했습니다.
제가 조금 마음이 열려있고 적극적으로 임했다면
분명히 다른 좋은 결과를 가졌을지도 모르겠으나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혼자서 조용히 도인처럼 독립해서 작업하기를 원했던 것 같아요.
작업을 그만두려는 작가를 위한 레지던시.
저는 이 레지던시는 작업의 성과를 기록하고 판단하는 레지던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 개월 동안 소품 한 점과 채색을 덜 끝낸 백호 한 점을 그렸습니다.
쓰고 있던 장편 소설도 스무 페이지 정도 쓰고 논문도 조금 썼네요.
준호작가님에게 식물과 정원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함께 벽돌도 나르고 나무도 조금
옮겨 심었습니다. 꽃돌이와 산책도 자주 했고 똥냥이를 많이 쓰다듬었네요.
레지던시를 정말로 원하는 작가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작업하려는 사람이 저래도 되나 생각할 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방황했습니다. 들어온 전시도 힘에 겨워 포기했고 그저 조금만 더 조용해지고 가벼워지길 원했어요.
자정이 넘은 밤과 새벽녘이 되면 이곳은 어둡고 춥고 완벽한 적막 속에 둘려 쌓이게 됩니다. 별들은 빛나고 개들은 가끔 짖어 댑니다. 작업을 하다 화장실이 급해 문을 열고 나오면 야생동물들이 저를 보고 놀라 도망가고 날아오릅니다. 숲이 우거져서 숨쉬기 편하고 흙과 낙엽을 밟으며 걸을 수 있습니다. 바깥 세계와 완벽히 차단됨이 느껴지는 순간 완벽한 자유를 얻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적막함과 외부와의 차단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그리워 할 것 같아요.
이곳에서 조금은 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고 지원해주신 준호작가님 정말 고맙습니다.
계획대로 생각대로 앞으로의 일들을 풀어 나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짐을 싸다보니 여러 감정이 교차해서 무뚝뚝하게 나갔네요.
더욱더 멋진 담비 스튜디오 만들어주세요.
테디베어 해바리기 씨앗은 고향 집 옆 담에다 심었어요.
자라나면 사진 찍어 올리께요.^^
고맙습니다. 준호형님~!!
첫댓글 동진작가, 고생 많았어요! 나무들은 열심히 살려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