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감수성이 넘쳐흐르던 고등학생 시절, 이 책을 읽고 오열했던 기억이 난다.
스무살까지만이라도 살고 싶다니. 얼마나 가슴 아픈 사연인가.
김창완이 엮어낸 이 책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그 당시 사춘기 소년소녀의 감성을 적셨다.
꿈 많던 강원도 산골 소년은 아빠와 함께 찾은 병원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을 받았다.
"진행성 근이영양증"
희귀질환이며 치료방법이 없고, 스무 살을 넘기기 힘들다고 한다.
희망이 없으니 하고 싶은 거 실컷 하게 해주고, 먹고 싶은 거 다 해주란다.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17세의 나이였다.
전조증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집 마당처럼 뛰놀던 산에 오르기가 힘들어지고, 뜀박질이 힘들어지고, 앉았다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졌었다.
디스크인가 싶었는데 근육병이라니.
가족 모두 통곡의 시간이었을 그날 밤, 두 눈이 퉁퉁 부은 아빠는 아들에게 물었다.
가장 갖고 싶은 게 뭐냐고.
철없던 아들은 대뜸 "컴퓨터!"라고 소리쳤다.
아빠는 전 재산인 소를 팔아 당시 최고 사양의 펜티엄급 컴퓨터를 사주었다.
그렇게 소원이던 컴퓨터를 갖게 되었다.
학교에 안 가도 뭐라 할 사람 없었고, 힘든 농사일도 열외가 되었다.
그날부터 소년은 컴퓨터에 빠져 살았다.
그렇게 남편은 스무 살이 되었다.
처음엔 게임하고 영화 보고 노는 게 전부였지만,
PC 통신을 통해 근육장애인 모임에 접속하게 되면서 그의 세계는 점차 확장되었다고 한다.
이들과의 소통을 통해, 같은 근육장애라도 타입이 수백 가지이고 타입별로 증상이나 진행속도, 수명 등이 다 다르며
스무 살 이상 사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도 접할 수 있었다.
희망의 신호였다.
고등학교 3년을 컴퓨터에 빠져 이것저것 독학으로 마스터한 남편은
인근 초등학교 방과후교실 컴퓨터 강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급여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스무 살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남들처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그 해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손써볼 틈 없이 돌아가셨다.
집안의 가장이 된 그는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서울 생활을 하며 이 일, 저 일 다 망하고 빚만 지게 되었고
근육병은 더 진행되어 혼자 걷는 것도 힘들게 되었다.
그렇게 쓰디쓴 사회 경험을 마치고 돌아온 고향.
반기는 것은 어머니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