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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녁은 없다
정진명(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1. 맞힌 것과 맞은 것
"눈앞에 뻔히 있는 과녁은 없다니? 미친 거 아냐?"
제목을 보면 이런 반응이 훤히 예상됩니다. 그런데 왜 그런 미친 소리를 할까요? 사말이 환갑을 넘기더니 정말 미친 거 아닐까요? 한 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한 가지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내가 발시를 했는데 화살이 무겁 근처에 가서 바람에 떠밀려 과녁에 맞았습니다. 이건 맞은 건가요? 결과만 놓고 보면 맞은 게 맞겠지요. 하지만, 쏜 사람으로서 의도하지 않았는데 화살이 맞았다면, 그것은 맞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거꾸로, 홍심을 정확히 겨누고 날아가던 화살이 바람에 떠밀려 불났습니다. 이건 맞은 걸까요? 안 맞은 걸까요? 안 맞은 거라고요? 그렇게 대답하시는 분은 정말 생각없이 사시는 분입니다.
둘 다 안 맞는 게 맞습니다. 홍심으로 가다가 바람에 떠밀리는 화살은, 방향은 맞았으되 한량이 힘을 제대로 못 써서 그런 것이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제대로 맞은 화살이라면 바람을 뚫고 가야 하고, 바람을 이기고 가서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 날 좋은 날 바람의 영향이 거의 없을 때는 이런 문제가 안 생깁니다. 하지만 활 쏘는 사람이 바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죠. 그래서 이런 고민이 생기는 것입니다. 맞힌 것과 맞은 것 사이에 놓인 한량의 마음.
우연히 맞은 것과 일부러 맞힌 것은 다릅니다. '맞은'이라는 말 앞에는 '우연히'라는 말이 생략됐고, '맞힌'이라는 말 앞에는 '일부러'라는 말이 생략됐습니다. 반드시 그렇습니다. 이 기준으로 놓고 보면 바람에 떠밀려 맞은 살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므로 맞은 게 아닙니다. 홍심으로 날아가던 화살이 바람에 떠밀려 안 맞은 것도 맞은 게 아닙니다.
물론 도박이나 스포츠에서는 이런 것을 따지지 않죠. 왜냐? 결과만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결과만 놓고 보기 때문에 그런 것 따위는 따지지 않습니다. 과녁에서 소리가 나느냐 안 나느냐 하는 것으로 판정을 합니다. 이른바 목성시행!
그렇다면 우리가 대회를 하지 않는 자정에서도 이렇게 해야 할까요? 과녁에 가서 맞으면 무조건 만족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내가 잘 못 쐈는데, 가서 맞는다? 이게 기분이 좋습니까? 아니면 그 반대입니까? 기분이 좋다고요? 이 분도 너무 생각 없이 사시는 겁니다. 그럴려면 뭐하러 자신을 돌아본다는 반구저기라는 말을 돌에 새겨 활터 여기저기에 세웠을까요?
활터에서 승부를 가르는 것은 목성시행이 기준이지만, 그것만으로 활을 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런 구절이 증명해줍니다. 그러면 도대체 활터에서 뭘 하란 말인가요? 도대체 어떻게 쏘라는 말인가요?
2.무술과 활
바람에 떠밀려 맞은 화살이 마음속에 영 찜찜함으로 남는 것은, 활터의 내력과 활쏘기의 성질 때문입니다. 결과만을 보는 것은 스포츠나 도박의 조건이지만, 활쏘기는 원래 스포츠나 도박이 아닌 내력이 있습니다. 그 내력은 불과 120년 전(1894)까지만 해도 조선에서는 활이 무기였다는 사실입니다. 무기는 내가 적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실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적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기 때문에 반드시 내가 의도한 대로 무기가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에 떠밀려 맞은 화살은 적을 죽인 게 아니라, 적에게 자신을 죽일 기회를 준 것입니다.
무기는, 적을 죽이되 나는 다치지 않아야 합니다. "내 팔을 내주고 적의 목숨을 취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건 더 이상 승부가 나지 않을 때의 조건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해야 할 때의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싸우면 싸움박질 서너 번에 내 몸뚱이는 남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게 되죠. 그러니 가장 훌륭한 무술은 적을 죽이되, 적에게 나를 공격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죠. 그래서 무술에서는 실수를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실수를 여러 번 용납해서 재미로 바꾼 것이 바로 스포츠입니다. 축구의 경우 진 쪽을 모조리 죽인다는 조건으로 경기를 한다면 분위기는 지금과 다르겠죠. 하지만 오락이기 때문에 조건을 답니다. 그게 경기규칙입니다. 모든 무술은 이런 경기화를 거치면서 현대에 적응했습니다. 그래서 결과 판정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흘러온 것입니다.
바람에 떠밀려 맞은 화살을 맞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스포츠입니다. 무술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죠. 그러면 우리는 활쏘기 경기가 아닌, 활터에서 활쏘기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포츠로 해야 할까요? 무술로 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즉답을 하지 못하고 어물대는 사람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사람입니다.
당연히 무술로 해야 합니다. 왜냐? 내가 죽을 수 없기 때문이죠. 내가 죽다니? 또 이렇게 묻는 사람은 바보요 등신입니다. 지금 수많은 궁사들이 죽어가고 있잖습니까? 팔꿈치와 어깨가 아프다가 목디스크가 와서 폐궁에 이르는 한량들이 수두룩하잖습니까? 그게 죽는 게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
무술이 경기화 되면 이런 희생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물질로 보상이 따르기 때문이죠. 축구선수들은 수 억 수 십 억 수백 억하는 연봉을 받고, 태권도, 유도 같은 스포츠도 세계 대회에서 입상을 하면 그에 따르는 연금을 주고 상금을 줍니다. 쏠쏠하죠. 뭐, 그렇게 살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니, 굳이 말릴 것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물질 보상이 없는데도 굳이 강궁경시를 써서 화를 자초하는 이 시대의 한량들입니다. 왜 활을 쏘는지, 활터에 처음 올라올 때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까맣게 잊고, 눈앞의 과녁에 미쳐 허송세월하다가 너덜너덜 망가진 몸으로 활터를 떠납니다. 이러니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죽어가는 길이 전통사법을 벗어난 오늘날의 이른바 '반깍지' 사법입니다. 최소한 이렇게 되는 일을 막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답이 사법의 기준이고, 온깍지입니다.
따라서 활쏘기에서는 1차 목적이 과녁 맞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다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된 다음에야 과녁을 맞히든 돈내기를 하든, 뭘 하면서 놀 수 있는 것이죠. 활쏘기는 무술의 본질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대회 부지런히 다녀서 3~4년만에 폐궁하면 그게 훌륭한 궁사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회에서 죽을 쑤더라도 40년 50년을 넘어서 늙어 죽기 전날까지 활을 쏘는 게 정말 훌륭한 진짜 한량입니다. 그게 똑똑한 한량입니다.
이 글의 제목이 <과녁은 없다>입니다. 동의하시나요? 과녁은 무겁에 멍청하게 서있지만, 그건 맞히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궁체를 확인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겨눈 대로 정확히 화살을 보내어 맞히라고 거기 서있는 것입니다. 바람에 떠밀리는 화살이 맞는 것을 보며 "휴, 다행이다!"라고 안심하는 자신의 한심한 작태를 보라고 거기 서 있는 것입니다. 활터에는 과녁이 없습니다. 내가 맞혀야 할 과녁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겨누었는데 가서 맞으면 그게 과녁이고, 그렇게 겨누지 않았는데 그렇게 맞으면 그게 과녁이 아닌 겁니다. 세상에 누구에게나 같은 과녁은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만의 과녁이 있는 법입니다. 그러니 과녁은 없는 것이죠. 마음 속의 과녁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선 후기 무인 이춘기의 「사예결해」에 <장차 자신의 한 몸이 활 속으로 들어가 과녁을 향한다.(將自己一身。入弓裏以向的)>고 한 것이 그런 증언입니다. 모든 무인은 이런 것을 꿈꾸며 과녁과 마주섭니다. 그러니 무겁에 서 있는 과녁은 과녁이 아니고 과녁의 허울입니다. 그거 맞혔다고 좋아서 시시덕거릴 일이 아닙니다.
3.온깍지의 중요성
그러면 내가 겨눈 대로 맞히는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막막강궁에 엿돈짜리 가벼운 살을 들이대서 화살이 풀잎의 이슬을 스칠 만큼 평찌로 날아가게 할까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전국의 활터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사격술을 터득한 사람들이 대접 받으며 명궁으로 등극하기 위해 자학을 하는 중입니다. 힘이 셀 때는 몰기가 마구 쏟아지다가, 힘이 조금만 달리면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습니다. 이게 얼마나 무식하고 뿌리 없는 사법이냐면, 화살을 조금만 올려보면 압니다. 7돈 카본살로 몰기를 마구 해대던 한량이 죽시로 바꾸면 각궁을 10파운드는 더 센 걸로 해야 합니다. 50파운드 개량궁으로 쏘던 사람은 65파운드 각궁으로 바꿔야 하죠. 그래야 표가 비슷합니다.
그러면 조선시대로 돌아가서 무과에서 무인들이 기본으로 테스트하는 육량전을 쏘라고 줘보지요. 육량전은 촉의 무게만 여섯 냥입니다. 죽시 6돈짜리를 10개 합친 무게입니다. 여기에 살대까지 더하면 8냥은 쉽게 넘습니다. 이럴 때도 지금의 명궁들처럼 무식하게 쐈을까요? 그런 식으로 쏘면 육량전은 60미터도 못 나갑니다. 육량전의 무과 기본 과녁 거리는 120미터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그 수많은 덩치 좋은 근육 덩어리들이 옛날 무인들이라면 누구나 쏘던 그 거리를 못 보냅니다. 이래 놓고서 전통 사법 어쩌고 말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결국 막막강궁에 엿 돈짜리 가벼운 살을 들이대서 맞히려는 방법은 우리의 전통과는 상관이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전통 사법에서 과녁 맞히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 아니라면 무엇에서 '전통'을 찾아야 할까요? 그 답이 바로 궁체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활을 쏘느냐 하는 것이 '전통'의 답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과녁 맞히기로 승부를 결정짓는 각종 대회에서 반드시 궁체상을 주었습니다. 결과를 낸 시수꾼들보다 더 흘륭하다고 상을 준 것입니다. 사람들은 푸짐한 상품 때문에 등수 상을 좋아했지만, 정작 그 대회의 가장 큰 명예는 궁체상을 받은 사람에게 돌아갔습니다. 오늘날 온깍지 관련 대회를 빼놓고 궁체상이 모조리 사라진 것은, 우리 시대 정신의 반영입니다. 우리 시대 활터 사람들의 수준이 그러하기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이런 것을 지적하며 국궁계의 수준을 탓하기도 지쳤고 지겹습니다.
그러면 궁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이때 가장 중요한 전통 사법의 지표로 등장하는 것이 깍짓손의 동작입니다. 즉 '봉뒤'나 '게발깍지', '조막깍지', '반깍지'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깍짓손은 '온깍지'로 펼쳐야 한다는 것이죠.
온깍지가 전통 사법이라고 했더니, 또 옹졸한 인간들이 시비를 겁니다.
"전통 사법을 깍짓손 펼치는 크기로 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소심한 인간들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태입니다. 완곡한 부정어법으로 하지말고, 차라리 직접 반깍지가 정답이라고 크게 외치는 게 더 용기 있는 일입니다. 온깍지가 전통 사법임은, 깍짓손의 크기만을 말하지 않는다고, 지난 2001년 온깍지궁사회가 출범하면서부터 말한 것입니다. 전통 사법을 드러내는 여러 지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깍짓손의 동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말은 아마도 여러 사람이 수백 번도 더 했을 것입니다. 책으로도 했고, 인터넷으로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말들을 모두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느닷없이 무슨 심판처럼 나타나 법관 행세를 하는 꼬락서니는 '꼰대'의 표본이자 막장 사법의 본보기입니다. 이런 소인배들이 여기저기서 물을 흐리며 오랜만에 나타난 사법 논의를 물타기합니다.
전통 사법을 규정하는 지표는 『조선의 궁술』 속 「궁체의 종별」에 잘 나와있습니다. 발 모양, 죽, 허리, 줌팔....... 이런 식으로 설명이 되었죠. 그런데 그게 겉보기로는 반깍지와 잘 구별이 안 됩니다. 그런데 유독 깍짓손을 뿌리는 동작은 확연히 구별됩니다. 그래서 전통을 나타내는 표지 중에서 깍짓손 동작이 중요한 지표로 떠오른 것이고, 그것을 해방 전에 집궁한 구사들은 '온깍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윤준혁, 백남진, 이종수 같은 분들.)
물론 20년이 지난 지금은, 온깍지 동작으로 쏜다고 해서 그것을 전통 사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조선의 궁술』을 흉내내면서 전통을 표방하는 사람과 단체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전통 사법에 관한 한, 가히 사이비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통 사법으로 가기 위한 첫 걸음이 깍짓손 동작이기에 온깍지를 강조하는 것은, 앞으로도 중요합니다. 일단은 온깍지가 되어야 그 다음 단계로 진짜냐 사이비냐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죠. 반깍지로 쏘면서 전통을 논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뜻을 '온깍지'라는 말은 함축하고 있습니다.
4.끊어진 전통을 되살릴 수 있을까?
1970년대까지 대회에서 으레 주어지던 궁체상은, 무심한 듯하지만, 정말 중요한 전통의 지표입니다. 사람이 어디를 갈 때 안내판을 살피는데, 그 안내판 노릇을 한 것이 1970년대까지 주어진 궁체상입니다. 궁체상 탄 사람이 반드시 시수 상을 같이 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특별히 궁체상을 준 것은, 당시 국궁계의 고수들이 바라는 어떤 모습의 본보기가 그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적어도 활쏘는 모습은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식의 바람이 그 궁체상에는 들어있습니다.
그러면 그 궁체상을 주던 분들은 어떤 기준으로 궁체를 판단하고 가치를 부여했을까요? 그건 딱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옛 어른들이 무심코 되뇌이던 말을 떠올리고, 집궁할 때 자신에게 가르쳐주던 접장님의 지도방법을 떠올리며, 그때 몸이 기억한 어떤 모습을 기준으로 여기고, 궁체상에 점수를 준 것입니다. 이것은 거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입니다. 나는 그렇게 못 하더라도 궁체의 본보기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판단이 스며든 것입니다. 이런 판단은 개인의 의식을 넘어서 거의 집단무의식에 가깝습니다. 집단무의식의 작용이 어떤 이성의 이끎으로 논리를 얻어 형상을 갖출 때 그것을 우리는 집단지성이라고 합니다. 극히 최근에 나온 말이죠. 얼룩말이나 순록이 몇 백 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끊임없이 되짚어 가는 것하며, 동남아의 긴꼬리딱새가 우리나라에 와서 새끼를 낳고 제 본래 떠나온 곳으로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것들이 그들의 무의식에 심어진 기억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궁체상이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준을 잃고 혼란을 겪을 때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것은 '과녁'이 아니라, 우리 선배들이 이런 집단무의식으로 전해준 '궁체'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2000년대 초반 온깍지궁사회 활동 때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달으며 겪었습니다. 온깍지궁사회가 출범할 때 깍짓손만 크게 뻗으면 온깍지라는 규정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의 구사들(주로 해방 전후에 집궁한 분들)을 초청하여 저녁에 세미나를 하고, 그 다음날 대회를 치르면서 궁체상을 지정해달라고 했습니다. 선수들의 이름을 모르도록 각 띠의 순서만 구사분께 넘겨주고 일일이 궁체를 평가하여 궁체상 수상자를 지정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때의 결과가 놀라웠습니다.
전날 세미나 때 전통 사법에 대해서 열강을 하며 좌중을 압도하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던 사람들은 거의 다 이 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당시 집궁한 지 몇 년 안 되는 애송이들이 궁체상 수상자로 지정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류근원 명무는 불과 집궁 2년만에 향촌할매가 주는 궁체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것은 정말 중요한 점을 암시하죠. 궁체는 말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몇 번을 해보니, 구사들이 본보기로 여겨온 궁체가 어떤 것인지 저절로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선의 궁술』에서 그리고자 한 궁체가 어떤 것인지를 또렷하게 본 것입니다. 입으로 전통사법을 확정하려던 많은 사람들이 온깍지궁사회를 떠나갔습니다.
이 궁체 속에 깃든 몸의 길을 잘 찾아가면 우리는 우리가 그리는 꿈의 궁체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끊어진 사법을 얼마든지 되살릴 수 있습니다. 예컨대 애기살 사법과 육량전 사법이 지금은 끊어졌지만, 『조선의 궁술』에 숨겨진 길을 찾아서 더듬어가면 어느 정도는 살려낼 수 있습니다. 육량전 사법인 『정사론』으로 가려면 먼저 『조선의 궁술』을 알아야 하고, 거기서 그리고자 하는 궁체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너머에 있는 육량전 궁체가 어느 정도 그려집니다. 그 반대 방향은 불가능합니다.
『조선의 궁술』은 '전통'의 열쇠 같은 것입니다. 『조선의 궁술』을 통해서 다른 곳으로 갈 수는 있어도, 다른 글을 통해서 『조선의 궁술』로 갈 수는 없습니다. 근래에 적잖은 사법서들이 발견되어 많은 한량들이 그것을 두고 연구하고 실제로 연마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조선의 궁술』을 통하지 않고서는 '전통'과는 거리가 먼 창작물이 될 것이라는 단정을 저는 내립니다.
하지만 글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 전통을 원래의 모습대로 살려내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우선 『조선의 궁술』에 대한 이해 수준이 낮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선의 궁술』대로 쏘는 사람도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한, 『조선의 궁술』대로 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라고는, 국궁인구 15,000명 중에서 온깍지 관련 활량들 50명 정도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정사론』과 「사예결해」 같은 글들이 제대로 판독된다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한문을 한글로 완벽하게 번역을 해도 안 됩니다. 어떤 동작을 베낀 글을, 그 동작이 사라진 상태에서 재구성한다면, 재구성된 그 동작이 원래의 동작을 닮으리라는 생각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입니다. 그 수많은 조선시대의 사법관련 글들이 『조선의 궁술』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풀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조선의 궁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죠. 저도 30년 가까이 『조선의 궁술』에 코를 파묻고 있지만, 이제 겨우 뼈대만 추렸다는 느낌입니다. 여기에 살을 붙이는 데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다른 한문 원전으로 뭘 하겠다는 분들을 제가 못 믿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어쩌면 저의 무능력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능력과 무능력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게 그렇게 안 되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을 저는 『조선의 궁술』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궁술』을 집궁 1~2년만에 다 판독하고 이해하고, 심지어 그것을 넘어선 분들이 우리 국궁계에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그의 주장인지 실제 사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말로는 에베레스트산도 날마다 앞산처럼 다녀올 수 있습니다.
『조선의 궁술』을 30년 가까이 읽은 저로서는 이제 겨우 『조선의 궁술』이라는 열쇠를 복사해온 느낌입니다. 『조선의 궁술』이 안내문이라면, 온깍지궁사회 활동 때 우리에게 궁체상을 지정해준 구사분들은 그것을 실제로 실천한 분들이고, 그들의 눈 속에 들어있는 열쇠를 몸으로 간직한 분들이 제 곁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굳게 잠긴 문을 열려고 합니다. 딸깍! 열리기를 기대합니다. 그럴 것입니다. '온깍지'라는 이름으로.
5.온깍지이어야 하는 까닭
활쏘기에서 온깍지는 무술의 기본조건입니다. 궁체 전체의 방향을 가르는 중요한 지표죠. 그러면 왜 그럴까요? 바람 때문입니다. 화살이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과녁까지 날아가게 하는 방법은 가장 중요한 조건이 동작을 크게 하여 화살에 최대한의 힘을 실어주는 것입니다. 물론 반깍지에서도 바람을 이기고 가는 화살이 나옵니다. 방법 상 불가능한 것도 아니죠. 하지만, 그런 조건이 동작으로 드러나는지 안 드러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온깍지에서는 분명히 확인됩니다. 온깍지 동작이 제대로 터지면 100% 화살이 바람을 이기고 갑니다.
바람에 대한 고민은, 다른 나라의 활에서는 별로 없습니다. 조준점을 옮겨서 쏘면 됩니다. 양궁이 그렇고, 모든 활이 그렇습니다. 그 증거가 과녁 거리가 100미터를 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00미터 밖에 과녁이 있으면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람의 영향에는 상하좌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리도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일정한 거리까지 날아가게 하는 것을 '한배를 얻는다.'고 표현합니다. 한 통도 얻어야 하지만 한 배도 얻어야 합니다. 아랫배를 불거름이라고 하는데, 화살이 날아가는 거리를 '한배'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이것은 불거름의 뱃심으로 결정되는 것임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화살이 일정한 거리를 날아가는 것도 활이 아닌 사람의 뱃심이었음을 우리 조상님들은, 우리 자랑스러운 선배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100미터 안의 바람은 상하좌우의 조정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0미터 밖의 과녁은 이렇게 조절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바람의 방향이 한 번 꺾이기 때문입니다. 풍기의 방향과는 약간 다르게 돌아갑니다. 그래서 상하좌우를 조정해서는 맞히기 힘듭니다. 그걸 보란듯이 우리 활은 과녁거리의 최소가 150미터입니다. 따라서 100미터 밖의 과녁에는 바람과 상관없이 겨누는 곳으로 날아가게 하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 사법에는 그 비법이 있습니다. 그 비법이 드러나는 실마리가 바로 온깍지 동작이라는 것입니다. 바람을 이기는 내면의 기운이 겉으로 드러나는 1차 지표가 온깍지입니다.
그래서 우리 전통 사법에서는 온깍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반깍지나 봉뒤는 안 된다고 『조선의 궁술』에서 잘라 말한 것입니다. 바람을 이기려는 꼬리표가 바로 우리 활의 온깍지입니다. '꿩 잡는 게 매'라고 했는데, 이걸 시수가 더 중요하다고 이해하는 등신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 요령으로 활을 대하니, 그렇게 쏘다가 폐궁에 이르는 겁니다. 꿩 잡는 게 매라면, 바람 잡는 게 온깍지입니다. 무술이죠. 적을 잡고 나를 살리는 무시무시한 세계입니다.
6.온깍지에는 과녁이 없다
이 글의 처음에 과녁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결론을 맺어야겠죠. 과녁이 없다는 것은, 활쏘기를 오락이나 도박이 아니라 무술로 본다는 뜻이며, 무술로 활쏘기를 접근하려면 궁체가 중요하고, 궁체에서 전통을 판별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바로 '온깍지' 동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수는 어떻게 할까요? 온깍지가 반깍지보다 시수가 떨어진다는 생각 말이죠. 이런 의문은 반푼어치의 가치도 없습니다. 조선시대 내내 온깍지로 쏜 사람들이 반깍지를 『조선의 궁술』에서 분명히 탈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조선의 궁술』을 쓴 분들은 온깍지가 반깍지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의문대로 시수가 더 떨어지는 사법을 권장했다는 뜻입니다. 이게 말이 안 되죠. 오늘날 온깍지 궁사가 반깍지 궁사보다 시수가 더 떨어진다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온깍지 활량의 숫자가 너무 적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이런 상황을 두고서 "시수로 입증해봐라!"라고 까부는 것은 제 조상을 욕하는 것입니다. 그런 놈들은 활을 쏠 자격이 없습니다. 당장 활터를 떠냐야 합니다. 하지만 온깍지 활량들은 날마다 그런 소리를 듣죠. 주인은 어디 가고 뜨네기들이 주인 행세를 합니다.
온깍지 사법을 배워서 과녁을 마주하면 과녁이 과녁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기준으로 보입니다. 거기쯤에다가 쏘라는 뜻입니다. 내가 겨눈 대로 가서 맞으면 그것은 과녁이지만, 내가 겨누지 않은 대로 가서 바람에 떠밀려 맞으면 정말 기분 나쁩니다. 온깍지 사법에서는 과녁이 무겁에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온깍지 사법에서는 과녁이 할일이 별로 없습니다. 순전히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반구저기가 갈수록 깊어집니다.
7, 과연 이 세계를....
2012년의 일입니다. 온깍지활쏘기학교를 만들려고 류근원 교두와 마주 앉아서 고민했습니다. 그때 고민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홭터의 예절을 비롯하여, 전통 문화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는 대로 가르치면 되는데 우리가 터득한 이 전통 사법의 세계, 무술의 세계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물론 가르칠 내용이야 있지요. 그런데 그 내용에는 배우는 사람이 곧이 곧대로 배워서도 안 되고, 제 멋대로 실험해도 안 되는 영역이 있습니다. 스스로 연구하고 실험을 하되, 그게 가르침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죠. 이 두 박자가 딱 맞을 때 비로소 전달될 수 있는 것임을, 우리 두 교두는 고민했고, 아마도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결론을 맺었습니다.
그래도 온깍지활쏘기학교를 2012년 2월에 개교한 것은, 그래도 지금처럼 놔둘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고민이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이런 방향으로 가면 된다는 길 안내 정도만 하면 그 사람의 근기에 따라서 우리가 본 그 세계를 볼 사람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온깍지궁사회 사계원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며 양해를 구하고, 정진명과 류근원 두 사람의 책임으로 학교를 개교한 것입니다.
그리고 2021년, 벌써 9년이 흘렀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처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기대했던 그 이상입니다. 우리에게 배운 분들 중에서 5년차로 접어들자,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는 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산해도 된다고 선언한 사람이 서너 명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올 것입니다. 이 정도면 된 거 아닌가요?
이제는 학교 문을 닫을 때가 되었다는 말도 합니다. 더 이상 가르쳐봤자, 귀찮고 힘들기만 하다. 그러니 이쯤에서 문 닫고 조용히 편하게 살자, 뭐 이런 말도 가끔씩 합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진리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제 자랑이나 하다 가지, 진리를 파고 들어서 무엇이 진짜인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그런 사람들 몇 명에게 이것이 『조선의 궁술」이다, 라고 알려줬으면 됐지, 우리가 오일장을 떠도는 약장사도 아니고, 마치 광고하듯이 교육생들을 모아서 자랑하듯이 이 세계를 전해줄 필요가 뭐 있겠느냐, 뭐 이런 넋두리들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배우겠다는 분들이 꾸준히 있어서 문을 닫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문은 언제 닫힐지 모릅니다. 두 교두가 떠벌이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남들과 뿔을 내밀어서 다투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들인데, 그게 시절과 인연 때문에 잘 안 되어, 이런 어릿광대 짓을 하고 있을 뿐이죠.
8. 2021년 4월. 21일
온 산천이 어린 새싹을 내밀었습니다. 나무마다 초록 빛 아름다운 꽃송이입니다. 잎사귀에서는 형광빛이 납니다, 이 아름다운 날에 과녁을 바라보며 그 뒤의 산과 그 위의 하늘, 그리고 그 하늘 너머의 까마득히 넓은 세상을 봅니다. 과녁을 내려놓으면 활터의 세계가 무한대로 넓어집니다. 그 무한대를 감싼 허공의 고요함을 눈감고 조용히 음미해봅니다. 잠시 후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활터는 과녁 맞히라고 있는 곳이 아니고, 이런 걸 감상하라고 있는 곳입니다. 활터에 과녁이 있었나? 사말의 마음속엔 과녁이 없습니다.
첫댓글 다시 읽지만 정말 좋은 글입니다. 마지막의 씁쓸함은 다시 읽는 지금도 그때와 똑같습니다...
다시 집궁 전으로 돌아가 1년만에 공부가 끝나는 반깍지와 10년도 모자란 온깍지 뭐 공부할래를 선택하라면 저는 두말없이 온깍지를 선택 할 것입니다.
10년동안 풀어야 할 숙제를 주시고 의문 날 때마다 성의껏 가르쳐 주시는 스승님이 있어 행복합니다. 많은 분들이 참스승 밑에서 오랫동안 참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이 행복을 함께 했으면 하지만 인스턴트 세상인지라 오래 배울 생각도 깊이 배울 생각도 없이 오로지 빠른 결과만 바라보시고 활을 대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기에 지금 갖고 계시는 고민들이 이해가 갑니다. 그래도 학교를 닫고싶다는 말씀을 들을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저희 정 사원 대부분은 과녁판이 나와있는 어플을 폰에 깔아 놓고 매일 과녁에 몇 발 그리고 과녁의 어느 부분에 맞았는지 기록합니다. 신사가 오면 그 어플을 깔아 놓으라고 가르쳐줍니다.
저는 메모 어플을 깔아 놓고 거의 매일 고쳐야 될 부분, 책에서 느낀 부분을 한 번 몸으로 체험해 보고 그 느낌을 메모해 둡니다.
온깍지활쏘기는 책이나 스승님들의 말씀을 몸이 적응해가는 과정을 체험으로 알아가며 변화를 지켜보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