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르(인도네시아 전 수상)의 말
아시아의 희망은 식민지 체제의 분쇄였습니다.대동아전쟁은 우리 아시아인의 전쟁을 일본이 대표해 감행 한 것입니다.
2006년에 미국 메릴랜드 대학과 영BBC가 공동으로 행한 조사에서,「세계에 가장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라고 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그 중에서도, 일본 긍정파가 제일 많았던 것은 인도네시아.「일본이 호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하는 회답이85%에도 오르고 있습니다.
전후의 반일 주의에 듬뿍 물든 한국인에 있어서는 「아시아=일본 침략의 피해자」라고 하는 도식이 세뇌 교육으로 박아 넣어지고 있으므로, 이 결과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인도네시아와 일본과의 사이에는, 짧으면서, 한 때의 대만과 같이 모두 걸어, 고난을 넘은 역사가 있습니다.
네델란드에 의한 350년의 압정
1602년, 네델란드는 쟈와섬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식민지 경영을 시작했습니다.수도의 쟈야카르타는 바타비아로 개칭된 이후 350년간에 걸치고, 네델란드는 동 티몰 이외의 영토를 지배합니다.
제1차 대전 후, 1930 년 전후부터 인도네시아에도 독립을 희구하는 민족 운동이 발생했습니다만, 네델란드는 이것을 어렵게 탄압했습니다.
네델란드는, 철저 한 우민 정책으로 교활하게 인도네시아 전 국토를 지배했습니다.100이상 있는 부족을 서로 적대 하게 하도록(듯이) 해 향해 일부의 네델란드인에 온순한 부족을 경관으로서 고용해, 경제는 화교를 이용해, 현지인의 반감이 네델란드인에 직접 향하지 않게 했습니다.통일 언어를 할 수 있으면 저항 운동이 일어나므로, 부족 사이의 말은 뿔뿔이대로시켜,도찜질해 3명 이상의 인도네시아인이 이야기하고 있으면 처벌하는 만큼 철저한 지배였습니다.
일본군의 쾌진격, 예언의 신병
그런데 , 대동아전쟁이 발발, 세계 정세는 풍운급을 고합
이것이야말로, 예언에 구가해진 노란 사람들이 아닌가! 인도네시아인은 놀라 환영했습니다.그들의 협력도 얻고, 낙하산 부대, 바퀴 부대는 굉장할 기세로 인도네시아를 진격해, 네델란드군은 불과 9일간으로 완패하게 됩니다.
인도네시아에는, 옛부터 전해지는「죠요보요왕의 예언」이라고 하는 전승이 있었습니다.
니다.란인에도 일본군이 오는 것 같다고 하는 소문이 흐르기 시작한 어느A 일본, 인도네시아인이 폭음에 하늘을 올려보면, 하늘에 얼마든지의 흰 꽃이 피어, 전사들이 강하해 왔습니다.우리들이 하늘의 신병, 일본군의 낙하산병입니다.
「우리들이 왕국은, 흰 사람들에게 지배된다.
그들은 떨어진 곳부터 공격하는 마법의 지팡이를 가지고 있다.
이 흰 사람의 지배는 길게 계속 되지만,
하늘로부터 노란 사람들이 와 흰 사람을 구축한다.
이 노란 사람들도 우리들이 왕국을 지배하지만,
그것은 옥수수의 수명과 같은 정도의 기간이다.」
이것은 12 세기 전반, 동쪽 쟈와의 쿠디리 왕국의 죠요보요왕이 적은 「바라타유다」라고 하는 민족 서사시의 일설입니다.
스스로가 350년간 계속 저항해 그때마다 전멸 당해 온 네델란드를, 9일간으로 구축해 버린 노란 사람들.이것은 확실히 예언의 실현인 것을 지 와 함께, 인도네시아인은, 백인이 결코 전능의 신이 아니고, 아시아인이 그들의 노예는 아닌 것에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군정 시대
이후, 인도네시아는 일본 군정의 지배하에 놓여졌습니다.이 때, 국명은 란인으로부터 인도네시아에, 네델란드명이었던 수도 바타비아는, 고인도네시아 왕국의 쟈야카르타에 모방해 자카르타로 개칭됩니다.
한층 더 네델란드어는 폐지되어 새로운 국어로서 인도네시아어가 만들어졌습니다.(당시 , 쟈와어를 아는 일본인이 있지 않고, 특무 기관으로 학습되고 있던 말레이어 하지만 채용된) 또 공적 기관에도 인도네시아인이 고용되게 되어 인도네시아인의 조직화, 사회참가가 진행되었습니다.
또,일본은 장래의 인도네시아 독립을 예측하고, 인도네시아인의 젊은이로부터 되는 조국 독립 의용군(PETA)을 조직 해, 일본군식의 군사 교련을 베풀었습니다.이 PETA가, 독립전쟁의 중심 전력이 되어, 후의 인도네시아 국군의 모체가 되었습니다.지금도 PETA 출신의 군고관은 「일본 정신 덕분에 네델란드로 향할 수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일본은, 1945년의 9월에 인도네시아의 독립 승인을 약속하고 있었습니다.그런데 8월 15일, 일본은 패전을 맞이합니다.일본의 군정은 3년반.이것은 기이하게도 옥수수가 자랄 때까지의 기간과 같았습니다.
여하튼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이것으로 독립일까하고 기쁨했지만, 다시 인도네시아를 식민지 지배하기 위해서, 영국군과 네델란드군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통치에 의해서, 「인도네시아인은 고양이로부터 범으로 변해있었다」 것입니다.일본군은, 포츠담 선언 수락 이후, 연합군이 올 때까지의 현지의 치안 유지와 무 그릇의 관리를 명령받고 있었습니다만, 비밀리에 무기를 흘리는 등, 스스로가 기른 의용군을 지원합니다.무기고의 차례를 하고 있던 어느A 일본병은, 폭도화한 인도 네시아인에 살해당합니다만,그는 스스로의 피로 「인도네시아의 독립에 영광 어」라고 벽에 써 숨 끊어져 이러한 일본인의 자세도 인도네시아인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또,2000명 이상의 일본군장병이, 현지에 남아 PETA와 운명을 같이 해, 4년에 달하는 독립전쟁을 싸워냈습니다.PETA는 어려운 훈련을 넘었다고는 말할 수 있어 실전의 경험은 없습니다.그들 역전의 일본군장병은, 인도네시아인을 지휘해 항상 최전선에서 싸웠으므로, 사망률도 매우 높았다고 말합니다.
남은 장병들의 동기는 개별적으로 보면 여러가지이겠지만, 그들은 옥음 방송에 있어서의
「짐하제국트 모두니 시종 동아노 해방니 협력 셀제맹방니대시 유감노뜻표세사르이득스」(나는 일본과 함께, 시종 동아시아의 해방에 협력해 준 제맹방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생각한다)과의 쇼와 천황의 천황의 마음을 대신 완수해, 인도네시아의 독립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패전 후에도 세계의 여기저기에서 아시아 독립을 위해서 수행되고 있던 싸움.이것도 확실히 대동아전쟁(이)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런영령들의 영령은, 자카르타에 있는 국립 영웅 묘지에 모셔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남은 것
8월 17일에는, 후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에 의해서, 독립선언문이 읽혀졌습니다.그 선언문의 일자는 170805(05년 8월 17일), 05년과는서기는 아니고 황기입니다.
이 날에는, 매년 성대한 독립 기념제가 행해집니다.거기서 화들 까는 행진하는 인도네시아 국군의 퍼레이드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PETA 마치입니다.
「조국 방위 의용군(PETA) 마치」
1,
아시아 벌써 적을 향해 봉기 경배
당신을 버리고 전력을 다하는 연합국을 분쇄 천도
구슬 가시는 일도 싫어하지 않고 진행해 진행해 의용군
아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영웅 깨끗한 동양에 행저것
2,
고 나무 아시아 불행하게 괴로워하는 참석해 나무 압제에
몇 세대기도 참는 대일본 용감하게 립 윤
아시아를 구해 우리들을 지키는 진행해 진행해 의용군
아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영웅 깨끗한 동양에 행어
일본의 점령은, 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점을 남겼다.
인도네시아의 중학 3년용의 역사 교과서
제일에, 네델란드어와 영어가 금지되었으므로, 인도네시아어가 성장해, 사용이 퍼졌다.일본 군정의 3년반에 길러진 인도네시아어는 경이적 발전을 이라고 나막신.
2번째로, 일본은 청년들에게 군사 교련을 부과하고, 죽창, 나무총에 의하는 것이었다고는 아니요 어려운 규율을 철저히 가르쳐, 용감하게 싸우는 것이나 참는 것을 훈련했다.
제3에, 직장에서 네델란드인이 모두 없어져, 일본은 인도네시아인에 높은 지위를 주고, 우리에게 높은 능력이나 클 책임을 요구하는, 중요한 일을 맡겼다.
이거보면 이상한사실을 알수있는데 인도네시아 대륙일본이 어떻게 열도로 이동해갔는지 궁금하군요
자기전쟁도아닌 독립운동에 2000명이나 지원을해서 남았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될겁니다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때 열도인들이 엄청나게 지원해준걸로 나오네여
첫댓글 일본인 이름 중에 조와(爪蛙)라는 이름이 적지 않게 있는데, 제가 보기엔 이들이 원 출신지가 원 일본인 인도네시아의 자바(java=japan=자바인)에서 2차 대전 패전 후 현 열도로 기어들어온 게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중에도 자바 스크립프트라는 것이 있죠,
어린 쥐(orange=hamster) 집단의 최상부층인 하노버(漢=hanover) 왕가에서 따로 국밥으로 관리한 것이 자바의 탄생이라고 봅니다.
네덜란드 식민정책이 이상한점이 한두개가 아닙니다 일딴 언어입니다 동방의 정원이라는 자바에서 말이져 네덜란드인들은
동인도회사를 만들면서 인도네시아인들의 유학이나 해외여행을 막았다는점입니다 영국에는 자국으로 인도인들을 초정하고
유학생들을 만들어서 자기정권에 충성하게 만드는데 말이져
언어메서 말이져 네덜란드 인들은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언어를 가르치지않았다구하네여 스스로 네덜란드인들이 자발적으로 자바어를 배웠다구 나옵니다 그게 말이 안되지않나여 영국에서는 영국어를 가르치듯이 일본이 한국인한데 일본어를 세뇌하듯이 해야될건데 이부분이 무척이나 의심이 갑니다
선남님의 지적이 상당히 예리하십니다. 인도와 영국은 그 문화나 역사가 한통속이어서 누가 지배를 하던지 언어를 가르쳐 교육을 시키는데, 왜 화란인들은 자바인을 가르칠 생각을 못 했을까요?
제가 볼 땐, 그 만큼 어린 쥐공의 나라인 화란인들의 문화가 저급해서 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상대적으로 티무르(大明)의 번국인 순다 열도의 문화가 지금의 왜놈천지가 되기 전에는 상당히 수준높은
문화가 존재했기에, 화란인들이 자바까지 와서 오히려 자바어를 배워 간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또 의심이 가는걸 찾아보니 중국사람들의 중화사상은 동양과 서양을 구분하는 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원나라 말에는 복건성의 천주(泉州)라는 곳을 기준으로 했다. 그 동쪽에 있는 필리핀과 자바를 동양, 서쪽에 있는 인도 주변을 서양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청나라 때에는 현재의 유럽을 대서양, 인도를 소서양이라고 했다. 대만과 필리핀 등을 동남양, 인도차이나, 자바 등을 남양이라고 했다. 일본은 동양이라고 불렀다. 일본이 나중에 중국을 침략하자 일본사람들을 '동양귀(東洋鬼)', 동양귀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석이되는거 아닙니까?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던왜놈들이 복건성이랑 이런데로 대륙남부로 몰려와서
동양귀라고 불렸는데 서양 과 동양을 나누는 기준을 누가 잡았냐 보니깐 메이지 시대때 왜놈들이 잡았군요
바로 유럽을 서양 , 아시아를 동양으로 말이죠
왜 동해를 corea를 korea로 바꾸고 소동양 대동양이라고 하는걸 바뀌어야했는지 이해가 갑니다
자바와 말레이 반도를 기준점으로 보면 모든 바다의 명칭이 자연스레 이해가 되는 셈이죠. 현 일본 열도인들이 동해를 일본해로 바꾸려고 지랄 떠는 걸 보면, 현 열도의 남양을 소동양이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고요. 영.일 동맹은 말레이의 영국과 인근의 순다 열도의 일본과의 동맹으로 봐야지 이해가 되는 것이지, 대서양의 브리튼 섬의 영국과 현 일본열도는 배타고 왕래하는 데 만도 몇 달이 걸리는 데,
동맹의 목적인 공동의 음모를 꾸미기에도 힘든 거리이고요. 영국여왕과 어린쥐(왜 원숭이)공이 결혼하기에는 더더욱 먼 거리였다고 봅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네덜란드인들 화란 즉 형제의 나라라고 하더군요 또 특이한점은 300년동안 지배하면서 혼혈이 없다는점인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돼는부분이 많습니다 혼혈이 없다?
이부분또한 의문인게 유럽놈들 식민지를 만든다면 일딴 남자들을 학살하고난후에 여자들만 남기고 자기들씨를 퍼트리더군요 혼혈이 적거나 없다는게 말이안됩니다 네덜란드인이 정말 지배한게맞나여???????흔적이 잘안보이는군요
동남아 에가보면 왜놈들이 씨뿌리는거랑 서양놈들의 튀기들이 넘처나는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적다는게 납득이 안됩니다 그시절에 콘돔이 있었는것도아닐건데
동남아의 흔한 혼혈인과는 달리 인도네시아에만 튀기들이 없다는 선남님의 발견은 참으로 어마아마한 사실을 첨으로 발견한 일일 것입니다!!! 화란 자체가 일본(javan=japan)일 수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럽다고 봅니다. 영.일 동맹이란 것도 인도의 영국과 인도네시아의 일본인 동.서 인도의 동맹일 수 있는 것이고요.
화란인(=javan=japan)들이 고려(大明=티무르 제국)를 배반하여 동티모르로 몰아내고, 인도에 있던
하노버(漢兵=hanover=私兵=세포이)조와 영합해 하노버의 신인 시바(java)로 수도 섬을 이름을 바꾸고
그 때부터 티무르인들이 아니라, 자바인인 일본인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 영.일 동맹의 은폐된 사실인 것 같습니다.
명예혁명의 결과로 어린쥐 공과 영국여왕이 결혼하여 공동통치를 했다는 시기가 강희제(숙종) 나선 정벌 시기와 거의 같은 시기군요.나선정벌이 러시아 정벌이 아니고, 라(羅)의 번국 정부인 선(鮮=庭)을 정벌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강희제(숙종) 때의 나선정벌이 승전도 패전도 아닌 어정쩡한 휴전 상태로 결말이 나자, 위기감을 느낀 자바의 왜인(어린 쥐)들이 서인도의 여왕에게 결혼을 청해(mary=merry=맺음=결혼), 서인도의 여왕이 자바에 군사적,문화적인 지원을 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19세기말에 또 의심이 가는게 말이져 식민주의 시대때 일본놈들이 자기들이 동양문명 이라고 동양과 대륙조선?(중국)으로 구별해서 지나 라고 부르게했군요 다시 생각해보니깐 뭔가 이상합니다 일본이 유럽문화를 서양 ?지나국을 동양으로 바꾸었다????
동양?이라는게 바다이름입니까???아니면 왜놈들이 문화적으로 나눠버린 경계선입니까?세뇌를 시키는 이유가멀까여??
지리 개념이 이해가 잘안되는군요 라틴아메리카를 서양으로 바야됩니까??미국은 서양입니까?동양입니까?선교사 예수회놈들이 먼저 조작한게 지도라는데 동서양의 개념이 머리속에서 떠나지않는군요
고려가 오대양 육대주에 걸쳐 있었으므로, 고려(朝鮮)가 동아시아에 찌그러져 있다는 사기 정보를 퍼트리기 위해 시작한 것이 지도를 통한 지명과 바다명 조작이었다고 봅니다. 대서양도 고려해요, 태평양도 인도양도 고려해인데, 그걸 동서로 그리 표기하려 했던 까닭은 지들 나라가 고려로부터 오래 전부터 독립국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했던 이유 같습니다.
제주도에서 발악을 하더군요 서해도 황해로 배았기고 동해는 분쟁지역이라서 동해and 일본해라고 부르게될겁니다 아마도 서해에서 왜놈들 이지스함이 다니는것도 다 분쟁을 시키기위한 사전작업이라고봐야되겟네여
멍청한 코리안들은 일본놈들이 말하는 죽도의 위치도 모르거니와 독도 이야기가 영국에 있다구 아무리이야기해본들 울등도에도 왕국이 있다구 믿는놈들이 90%이상이더군요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더군요 코리아해를 한국해로 바뀌부르는 등 신들 수천년동안쓴걸 한국해? 바꾸는 김장훈같은 등 신들이 왜노들한데 놀아나는한 계속될겁니다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부근에 있던 히브리 세력의 여왕인 시바라는 뇬의 이름을 분석해 보면
java를 스페인식이나 아랍식으로 읽으면 시바,히바,사바로 읽히고요. 원숭이들의 남방불교에서 말하는 서방 극락정토를
사바세계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그 시바와 사바의 세력들이 고려인 대명(大明=티무르 제국)이 통치하던 남양의 순다 열도로 침공해 온 것이 건륭시기의 어린 쥐들의 바타브 침공이라고 봅니다.
침공이 성공한 이후에 그들의 원 거주지에서 떠받들던 여왕의 이름이 시바를 붙여 java로 표기하고, 영어식으로 자바로 읽고, 자바인들은 자반,자판,재팬으로 불렸꼬,
바다 건너 서왜에 살던 천조대신(天詔大神)인 아마테라스 오가미인 시바의 여왕의 이름을 붙여 바타브 섬은 자바 java로 개칭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바인들이 아랍인이라면, 영국인들은 인도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국인이 잔나비 원숭이라면, 자바인들은 고려의 최하층 노예집단으로 볼 수 있고요.
자치번국의 중상류층과 반란자들을 유배에 처하는 환란을 만나서야 가는 곳(사막과 밀림)에 사는 두 집단이 말레이와 수마트라에서 만나 동맹을 하고, 왜인들에게 그들의 이룩한 신세계를 보여줍니다.신사유람단이라는 이름으로 메이지(明治=명복,고종의 치세) 시대에 화란인(=영국인)들이 원숭이들에에게 가르친 유일한 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