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편 생일이다.
생일 선물은 미리 줬고, 근사한 저녁식사도 하고, 축하 케이크도 잘랐다.
문득, 남편 생애 최고의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단연코
2004년 1월에 받은 전동 휠체어였을 것이다.
지금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동휠체어.
건강보험공단에서 지원하는 장애인 보장구 목록에 전동 휠체어가 지정된 것은 2005년이다.
2003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전동 휠체어를 지원한다는 공고가 떴다.
전국에서 200명을 선정하여 무료로 전동 휠체어를 주는 것이다.
서울에서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후,
남편은 방 안에만 갇혀지냈다.
혼자서는 외출도 어려웠거니와,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기가 힘들었다.
인생의 실패자라는 생각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열일곱 소년으로 다시 돌아갔다.
"하나님, 저 좀 어떻게 해주세요!"
어느 날, 친구의 도움을 받아 외출하다가 고등학교 때 다녔던 교회 장로님을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매일 누군가 와서 데리고 가줘야 해서 미안했지만 그렇게라도 교회에 가고 싶었다.
그러다 전동휠체어 지원 공고를 접하게 되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구구절절 사연을 적어보냈다.
경쟁이 치열했는데, 강원도 12명의 선발자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렇게 받게 된 전동휠체어 선물.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좁고 어두운 방구석에서 창문 밖 세상으로 나와 힘찬 날갯짓을 시작했다.
다행히 자취방은 1층이었고 현관문 바로 앞까지는 걸을 수 있었다.
현관문을 열면 '애마'가 기다리고 있다.
전동 휠체어와 합체가 되는 순간, 천만 불짜리 다리를 가지게 된다.
매형의 추천으로 2004년 6월에 열린 제1회 하늘내린인제 마라톤대회 운영본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전동 휠체어로 일일이 다니며 마라톤 코스를 점검하고, 온라인으로 홍보를 했다. 성공적인 행사였다.
2005년 2회 마라톤대회 역시 성황리에 마쳤다.
행사 내내 전동 휠체어로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때 지역 장애인단체 사무국장이 '너 같은 사람이 장애인 단체에서 일해야 된다'라며 이끌었다.
단체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보호작업장을 맡아 운영하며 편의시설이 갖춰진 기숙사로 이사도 했다.
인제군에서 리프트 승합차량도 지원받게 되었다.
못 갈 곳이 없었고, 못 할 일이 없었다.
전국장애인 기능경기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날이 오기 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