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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5일 일요일 백두대간 31 회차 도솔봉
자유인 산악회
백두대간 31회차 : 고항치 – 묘적령 – 묘적봉 – 도솔봉 – 삼형제봉 - 흰봉삼거리 – 죽령
산행거리 : 약 11 km 산행시간 : 약 7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484746
거리 11.5 km
소요 시간 7h 32m 35s
이동 시간 6h 13m 24s
휴식 시간 1h 19m 11s
평균 속도 1.8 km/h
최고점 1,341 m
총 획득고도 608 m
난이도 보통
백두대간 (白頭大幹) 31 – 도솔봉
도솔천을 그리며
양산박
먹고 자고 마시고 사랑하며
갖고 싶은 물건 다 갖추고
남들에게 우러름 받는 마음
도솔천에 오르면 가능하다오
오욕(五慾)을 맘껏 즐기면서
아프지도 죽지도 않는 삶이라면
그곳이 어디인들 상관하리오
인간세상 생로병사 원죄마저도
도솔천에 오르면 사라진다오
내 평생 꿈이라면 죽은 이후에
도솔천 바깥 하늘 자리를 잡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온몸에 존경받고 사는 거라네
먹고 자고 마시고 사랑하면서
9시 50분 고항치를 출발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길이 없어도 자유인이 지나가면 길이 된다.
5월 5일 어린이날이다. 5월은 어린이날 뿐만 아니라 어버이날, 스승의날 등 공휴일이 많은 가정의 달이다. 서로 챙겨야 할 일들이 많은 데다 친목단체나 친구들간의 모임 등이 많은 달이라서 그런지 이번 대간길에 나온 사람이 부쩍 줄었다. 백두대간은 산악회에서 계획을 짜지만 실행은 본인이 참석하야 직접 걸어야 하는 만큼 지리에서 설악까지 대간길을 완주한다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은 여정이다.
소백산 산불방지기간이 예정보다 조금 일찍 풀린 덕분에 원래 계획했던 죽령 출발 – 고항치 하산코스대신 고항치를 들머리로 정상적인 북진 산행을 진행하게 되었다. 대간길 전 구간을 걷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렇게 정해진 대로 남진이면 윗쪽에서 아래로 그리고 북진이라면 아래에서 위로 이어서 가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모처럼 맞은 3일간의 연휴 때문에 고속도로가 정체되었음에도 양재역을 출발하여 2시간 반만에 산행 들머리인 고항치에 도착하였다. 지난회차의 날머리로 눈에 익은 풍경이다. 21명의 단촐한 산행팀이 지난회차 내려왔던 능선길을 거침없이 빠르게 이동한다.
일주일새 따뜻한 날씨 덕분인지 아랫쪽에는 벌써 철쭉꽃이 지고 있고 진달래와 철쭉의 경계가 산 중턱까지 올라가 있다. 또 지난 번 산길 내내 노랑물을 뿌려놓은 듯 산길을 수 놓았던 <노랑제비꽃>도 이미 꽃이 지고 씨방이 맺혔다. 그 자리를 대체하듯 <양지꽃>이 밝은 햇빛을 받아 노란 꽃잎을 활짝 벌리고 벌들을 유혹한다. 털이개처럼 흰 보푸라기가 탐스러운 <쇠물푸레나무>꽃도 산의 중턱까지 많이 보인다. <줄딸기>와 <매화말발도리>도 이제 잔치 벌일 준비가 다 되었다.
개별꽃 - 태자삼(太子蔘)이라고도 불리는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큰구슬붕이 - 결코 크지 않은 꽃인데 큰 접두어를 갖고 있는 것은 더 작은 구슬붕이가 있기 때문이다.
묘적령(妙積嶺 1,020 m)
산을 오르면서 중간 중간 터지는 시원한 조망과 예쁜 꽃을 감상한다. 산을 오르는 중간에 긴팔 옷을 벗고 짧은 소매 옷으로 갈아 입었는데도 몸에 땀이 배어 나온다. 춘하추동 (春夏秋冬)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꼽으라면 단연 봄을 택할 것이다. 긴 겨울 죽은 듯이 잎을 떨구고 마른 나뭇가지만 찬 바람에 흔들리던 나무들이 마치 마술처럼 앙증맞은 새싹을 틔우고 얼어붙었던 땅이 녹자마자 제비꽃이 고개를 내미는 이 계절은 모든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호시절이다. 미세먼지 없이 우주 끝까지 보일 듯 맑은 하늘이 더 없이 아름답다.
어디선가 재잘거리는 새 소리를 듣는다. 가는 소리가 청량하다. 똑 같은 짧은 음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짝을 찾아 부르는 소리인가. 저 소리를 내는 새의 가슴에는 기쁨이 충만해 있을까. 아니면 자기 짝을 찾지 못하면 삶을 헛되이 보내야 하는 절박함이 있는 것일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새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본다. 바로 머리위에 있는 소나무 가지 끝을 오가며 쉼없이 지저귀는 주먹보다 작은 새 한 마리와 작별하고 묘적령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묘적령으로 오르는 길에 트인 조망처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길 - 도솔봉이 우뚝 서 있다.
일주일 전에 마루금을 노랗게 수 놓았던 노랑제비꽃이 져가고 있다.
11시에 묘적령 도착
이제부터 본격적인 백두대간 길을 걷는다.
백두대간 능선길의 시작점인 묘적령(妙積嶺 1,020 m)까지는 어렵지 않게 올라왔다. 여느 때와 같이 선두팀은 묘적령 표지석 앞에서 기념쵤영을 마치고 막 출발하면서 우리 별동대가 그 자리에 도착했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자유인 백두대간팀 22기 회원들은 하나같이 건각을 갖춘 사람들이다. 농담처럼 우리는 북파공작원 같다는 말을 주고받는다. 물론 그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10 kg 정도의 배낭을 메고 10 km 이상의 험준한 산길을 가볍게 걸을 수 있으니 영화에서 보듯 그냥 걷는 것으로만 치자면 그럴 듯한 비유가 될 듯싶다. 뒤에서 얼쩡거리다보면 선두 사람들 얼굴 보기도 쉽지 않다.
다른 때보다 이번 구간에서는 암릉이 곳곳에 펼쳐져 있어 산을 타는 재미도 있을 뿐더러 바위에서 둘러보는 조망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묘적령과 묘적봉의 중간쯤에 있는 커다란 암봉에 누군가 붉은 페인트로 묘적봉이라 써 놓았다. 그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시원하다. 지난 회차에 지나온 촛대봉, 투구봉, 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그리고 능선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묘적봉 정상이 나타난다.
묘적봉(妙積峰 1,148 m)이란 그 봉우리가 신기하게 생겼다는 뜻일게다. 내 눈 앞에 펼쳐지는 풍광은 모두 아름답고 신묘한데 이 묘적봉이라 해서 더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다. 매일 매일 부딪히며 살고 지내는 사람들과 떨어져서 진달래꽃 만발한 산길을 걷고 천지사방 탁 트인 바위 끝에 서서 시원한 바람을 맞는 그 느낌 자체가 신묘한 것이다.
묘적봉으로 가는 중 만난 조망바위에서 되돌아 지나온 길을 보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본다.
매화말발도리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능선길에는 이제 진달래가 차지하고 있다.
묘적봉 너머로 도솔봉이 가까이 잡힐 듯 나타난다.
묘적봉에서는 앞으로 가야할 방향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도솔봉(兜率峰 1,314m) 암봉이 우뚝 서 있다. 약 2 km 떨어진 거리가 가깝게 보이는 것은 쾌청한 날씨 덕분이리라. 하지만 그 가깝게 보이는 도솔봉까지 가는 여정은 그리 녹록치 않다. 묘적봉에서 한참 급한 길을 내려갔다가 계속 오르막길을 걸어야 한다.
묘적봉을 지난지 얼마 안되어 반대편에서 오는 다른 산행팀을 만났다. 지난 회차에서는 안양에서 온 산행팀을 만났는데 이번에는 전북 익산에서 온 산악회 사람이다. 소백산 국립공원에 포함된 이 도솔봉 구간은 산세가 좋아 찾는 이가 많은 것 같다.
이제 여름이 오면 이 산길은 꽃길이 된다. 지금은 노랑제비, 태백제비, 고깔제비 등 <제비꽃>과 <양지꽃> 그리고 꽃이 잘 보이지도 않는 <족도리풀> 등 봄꽃이 만발했지만 좀 있으면 각종 나리꽃이 피어나고 그중에서도 솔나리꽃의 자생지로 유명한 코스다. 길가에는 <동자꽃>과 <송이풀> 그리고 <금강초롱> 어린 싹이 성대한 여름을 예고해준다.
노랑제비꽃 - 꽃색깔이 강렬한 노란 색이다.
태백제비꽃 - 흰 우윳빛 꽃 안쪽에 마치 코털처럼 털이 나 있고 은은한 향기가 난다.
고깔제비꽃 - 잎 모양이 고깔처럼 동그랗게 말려 있다.
도솔봉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지만 뜨거운 기온 탓에 쉽게 지치는 느낌이다. 도솔봉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아직 오후 한 시도 안되었는데 벌써 시장기가 느껴진다. 조금이라도 트인 바위에 올라서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 지난 주까지도 서늘한 기운이 남아 있었는데 일주일새 계절은 마치 시위를 떠난 하살처럼 빠른 속도로 여름을 향해 질주한다.
앞서간 선두팀은 이미 암봉 뒤로 사라지고 뒤에 남은 별동대는 그들이 놀고 간 자리에 서서 활놀이(스틱 두 개를 직각으로 어긋나게 잡고 마치 활을 쏘는 것처럼 연출하는 것)를 즐기고 시원하게 펼쳐진 조망을 만끽한다. 산아래 왼쪽으로 풍기읍이 가까이 내려다 보인다. 되돌아서 진행방향으로 오른쪽 위로는 멀리 소백산 줄기가 시원하게 벋어 있다.
4월까지 눈이 내렸지만 지난 겨울은 그리 춥지도 않았고 눈도 많이 내리지 않아 봄이 훨씬 빨리 올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역시 23.5 도 기울어진 지구의 자전축이 변함없듯이 계절의 시계도 정확하게 돌아간다. 저 아래 펼쳐진 산줄기 허리까지 연록의 향연이 펼쳐져 있고 그 허리 위로는 아직 갈색이다. 1,000 미터가 넘는 산 능선위로는 진달래 등 봄꽃은 피어 있지만 나뭇잎은 아직 잎봉오리를 꼭 감싸고 있다. 혹시 모를 늦추위에 쉽게 경계를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대손손 조상들로부터 배운 깨우침이 DNA에 뚜렷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리라.
묘적봉에서 도솔봉 가는길은
내려가고
또 내려가고
약간 평지를 걷다가
진달래 활짝 핀 꽃길을 오른다.
계단을 오르다 힘들면 '빨간불'하고 외치며 잠깐 쉬어가기도 하고
멋진 조망에 눈호강을 시킨다.
동이족답게 잠깐 짬이라도 나면 활쏘는 기술을 연마한다.
도솔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나무계단이다. 이 계단이 없었다면 어딘가에 붙들어 맨 밧줄을 잡고 힘들게 올랐을 험한 길이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오르다 뒤돌아보고 또 함참 오르다 뒤돌아보길 서너번 가슴이 시릴만치 아름다운 산줄기를 감상하며 오르다보니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데 바로 도솔봉 정상 헬기장이다. 헬기장 너른 바닥에는 앞서 온 선두팀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다. 헬기장 한 켠에는 ‘도솔봉’이라 한글로 쓰인 정상석이 서 있다.
날이 따뜻해졌음인지 점심식사 환경에도 변화가 생겼다. 불과 지난 주까지만 해도 인기가 하늘을찌르던 라면이 푸대접을 받는다. 전에는 라면이 끓는 동안 만인의 시선을 끌던 것이 이제는 밥이나 떡 그리고 과일에 밀려난다. 무거운 물병과 코펠이며 버너를 지고 올라와 짧은 식사시간을 쪼개어 보시하는 큰형님표 라면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이다. 어쩌면 이제 10월이나 지나야 다시 그 영광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점심식사 후 더욱 가까워진 소백산을 건너다본다. 제2연화봉 위에 높다랗게 올라간 타워는 소백산 천문대 건물이다. 그 천문대로 이어진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눈으로 식별 가능할 만큼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제1연화봉 – 비로봉 그리고 그 너머로 아련하게 보일 듯 말 듯 한 것이 국망봉인데 이는 산줄기를 짐작으로 알고 있는 나의 착시현상이다. 이곳에서는 국망봉이 보이지 않는다고 누군가 옆에서 지적해준다.
넓직한 헬기장이 있는 도솔봉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건너편 소백산 마루금을 바라본다.
다음번에 저길 걸어 올라 연화봉 - 비로봉 - 국망봉을 이어서 달려야 한다.
정상석이 있으니 정상인줄 알았지. 멋지게 별동대 인증샷을 남긴다.
또 하나의 도솔봉 (兜率峰 1,314m) 정상석
헬기장에 세워진 도솔봉 정상석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대충 가늠해 보아도 저 위의 봉우리가 여기보다 더 높은데 왜 정상석이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 고 우리들끼리 얘기했는데 알고 보니 실제로 헬기장이 아닌 암봉이 실질적인 정상이었다. 깍아지른 암봉 꼭데기를 잘라내고 둘레에 목책(木柵)을 세워 안전을 도모하였다. 사실 헬기장도 그 넓은 면적만큼 깍아내었으니 그 전에는 높이가 이 암봉 정상과 비슷하였을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지만 지금은 이 멋진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가 더 높으니 이 곳이 정상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한자로 도솔천 도(兜도 또는 투구 두) 거느릴 솔(率)자를 써 놓은 정상석은 작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확인한 내용에 의하면 이 정상석은 2005년 겨울에 부산산사람들 산악회에서 지리산 돌을 다듬고 글자를 새긴 후 죽령에서부터 지게로 져 올려 세웠다고 한다. 그 과정을 생생하게 전하는 카페글이 있어 여기에 링크를 붙인다.
도솔봉 정상석이 서기까지 – 부산山사람들
https://hansemm.tistory.com/m/420?category=451920
어찌 보면 하나의 산악회 회원들의 단순한 무용담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 지난 십여년간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산에 올라 성취감을 느끼고 산길의 이정표를 찾는데 큰 도움을 주었으며 또 앞으로도 수 많은 세월동안 이 정상석은 그 자리에서 많은 이들의 위안이 되어 줄 것이다.
도솔봉의 '진짜 정상'은 따로 있었다. 조망이 너무 좋아 소백산 등줄기가 훤히 보이고
가야할 방향으로 삼형제봉과 흰봉산이 보인다.
소백산으로 가는 방향으로 오늘 산행 날머리인 죽령까지 보인다.
도솔봉에 올라 주변을 둘러 보면 마치 도솔천에 와 있는 느낌이다. 아니, 도솔천 풍경이 이런 것일까.
도솔봉에서 오래 머물 수는 없는 법. 약 6 km 를 더 걸어야 죽령에 도착한다.
도솔봉의 산세는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답다. 도솔봉의 유래가 된 도솔천(兜率天)은 인도 산스크리트어로 두시타 (tusita)라는 말을 소리나는 대로 옮겨 적은 것인데 그 뜻은 지족천(知足天)으로 불교에서는 세계의 중심에 있는 수미산(須彌山)에서 12만 유순(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 = 하루에 마차가 갈 수 있는 거리, 즉 11 ~ 15 km 정도) 위에 있는 총 여섯 개의 하늘 중에서 네 번째 하늘을 말하는데, 이 하늘은 또 다시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나뉜다고 한다. 외원에는 오욕(五欲)을 즐기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며 내원은 석가모니가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기 전에 머물던 곳이며 또 미래불인 미륵불(彌勒佛)이 앞으로 이 땅에 내려오기 위해 잠시 머물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좀 복잡하지만 이 도솔봉에는 심오한 불교철학이 묻어 있는 곳이다. 이 도솔천의 외원에 올라 가려면 열심히 정진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는 등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삼국시대부터 이 불국정토에 태어나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목표로 삼은 이상향(理想鄕)이다.
이 대간길에 있는 산 이름에서 우리가 소백산에 들었음을 알 수 있다.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을 비롯하여 연화봉, 도솔볼, 묘적봉 등 대부분이 불교와 관련된 이름이다.
도솔봉을 지나고 한참을 내려선 후 다시 암봉을 우회하여 지나도 죽령 하산기점인 갈림길은 나타나지 않는다. 점심을 먹으면서 생각 같아서는 대간길에서 떨어져 있는 흰봉산에도 잠시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막상 오르막 암릉길을 걸을 때는 빨리 하산하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안든다. 1 리터 넘게 준비해 온 물이 다 바닥나고 가뭄에 논바닥이 타들어가듯 입안이 바짝 말라간다.
삼형제봉은 암릉길인데다 별다른 이정표도 없어 빗금치기로 우회하는 길을 따른다. 삼형제봉이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다. 그리고 흰봉3거리에도 길 표시가 없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하산길을 밟는다. 죽령이 가까워지는 까닭이라라서 그런지 하산기점부터 키작은 조릿대가 무성하게 자란다.
길가에 핀 귀한 꽃을 만났다. 한 때 멸종위기 2급이었다가 해제된 노랑무늬붓꽃
흰봉산 삼거리에서 죽령주차장까지 3.6 km는 완만한 내리막이다. 낙엽이 깔려 있어 발도 편안하다. 길가에는 곧 꽃을 피울 야생화가 즐비하다. 금강초롱, 큰앵초, 두루미풀, 터리풀 등은 각자 정해진 시기에 맞게 이 짧은 백두대간길을 꽃으로 수 놓을 것이다.
지금은 <태백제비>와 <금강제비> 그리고 <노랑제비꽃>이 한창이다. 습한 바위에는 <금괭이눈>이 진노랑색으로 등대처럼 길을 밝힌다. 잎 양면에 털이 있고 특히 뒷면에 털이 많으며 엽병이 자줏빛인 <금오족도리풀>도 자주 보인다.
평소 목이 마르지 않아 항상 준비한 물을 남겨가곤 했는데 오늘따라 목이 탄다. 그리고 죽령주차장까지 1.3 km 남은 지점에서 약수터를 발견했다. 하산길에서 오른쪽으로 10여미터 내려간 곳에 바위에 박아놓은 가는 파이프 두 개에서 샘물이 쉼없이 흘러나온다. 파이프 아래에는 커다란 양동이 하나가 놓여 있는데 물이 차고 넘친다. 이렇게 흔한 물인데 목마른 이에게 얼마나 귀한 것인가. 배낭에서 빈 물통을 꺼내 고여있는 물을 가득 담아 마셔본다. 뼛속까지 찬 기운이 찌르르 전해온다.
가다가 힘들면 쉬어도 가고
다시 힘내서 오르다가 보면
날머리인 죽령으로 더욱 가까이 가고
멋진 조망처가 나오면 감탄도 해본다.
오후 3시 40분 흰봉산 삼거리를 지난다. 이제 남은 거리 3.6 km 이제 좀 만만해진다.
날머리가 가까와질수록 산객의 얼굴 표정은 밝아진다.
샘물을 지나고 내려가는 길에는 나뭇잎이 파랗게 피어난다. 그만큼 고도가 낮아졌다는 뜻이다. 오른쪽으로 높이 솟은 일본잎갈나무(낙엽송)도 작년 가을 노랗게 물들었던 잎을 다 떨구고 새로 파릇파릇한 잎을 피우고 있다. 낙엽송숲이 끝나고 마침내 산행의 종착점인 죽령(竹嶺)에 도착했다.
죽령(竹嶺 689 m )은 신라 제 8 대 왕이었던 아달라 이사금 5년 (서기 158년)에 개통되었다. 이름이 죽죽(竹竹)이라는 사람이 공사 책임자였던 모양인데 과로로 쓰러져 사망하였다. 이에 고갯마루에 사당을 짓고 죽죽사(竹竹祀)라 부르고 제사하였다. 죽령은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각축전이 수시로 전개되던 격전지였다. 죽령은 2년 전인 아달라 이사금 3년 ( 서기 156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개통된 하늘재(계립령)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고개이다.
하산길에 만난 금괭이눈
금강제비꽃
죽령샘터에서 1.8 km 만 내려가면 오늘 산행 끝이다. 심한 갈증을 씻어 준 고마운 샘물이다.
죽령 근처 숲에는 대나무대신 낙엽송이 울창하다.
오후 5시 10분 하산을 완료한다. 자유인 산악회를 이끌고 계신 한 문희 총대장님
죽령은 현재 경상북도(영주)와 충청북도 (단양)을 연결하는 5번 국도가 지나고 고개 아래 터널은 원주와 대구를 연결하는 중앙고속도로이다.
아직 햇살이 넉넉히 남아 있는 고갯마루는 이미 지난 회차에 다녀간 연유로 눈에 익은 풍경이다. 길건너 영주방향에는 백두대간 산꾼들이 찾아 들어 목을 축이고 가는 산장이 있다. 우리 자유인팀은 충청도 쪽 휴게소 한 켠에 버스를 바람막이 삼아 바닥에 앉아 하산주를 즐기고 있다. 3일 연휴의 중간이자 일요일인데 고개는 한산하기만 하다. 계절이 봄을 지나 여름으로 달리는데 역시 소백산의 이름값을 하는지 죽령에 부는 바람이 제법 거세다.
어제부터 탐방을 허용한 소백산에서 산꾼들이 내려온다. 오전 10시에 고치령에서 산행을 시작했다면서 얼굴에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가 2주 후에 올라갈 산길이다.
죽령휴게소 풍경
귀한 한약재와 나물을 판매하는데 손님이 없어 안타깝다. 상인들은 손님없는 상점에 앉아 있다.
오후 6시 15분 죽령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대강막걸리 양조장에 들렀다가 서울로 출발했다.
휴게소에 흔히 있는 식당이 이곳에는 하나도 없다. 지금은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람들이나 우리처럼 대간길을 걷는 사람들만 찾아올 뿐 일반적으로 통행하는 차들은 모두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 터털을 지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식당이 성업을 이뤘을 건물 앞에는 갖가지 약초뿌리를 진열해 놓고 오지도 않는 손님을 기다린다.
우리는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하는 6시쯤 자리를 정리하고 죽령표지석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출발하여 죽령 아래 충북 단양군 대강면에 있는 대강막걸리 양조장에 들렀다. 조그만 면소재지의 길거리며 건물들이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양조장 앞에 있는 매장에서는 여러가지 주류를 판매하는데 우리 회원들 중에서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여럿이 막걸리를 사간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연휴에 지방으로 내려갔던 귀경차량으로 혼잡했다. 다행히 영동고속도로에도 버스전용차선이 시행되어 전용차선제가 마감되는 9 를 조금 넘겨 양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첫댓글 조은분은 지금 암투병 중,,,아직도 산에다니고 있지만 예전보다 못다니고 있어요 속리산 형제봉 정상석을 할려고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군요. 내용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