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 2018년 4월호
베트남의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박해를 받고 있다.
가톨릭교회가 16세기에 베트남에 진출한 후로 계속 박해를 받아왔다. 그 때부터 아시아국가에서 죽음을 당했던 베트남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130,000에서 300,000 사이를 넘나드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순교자들 중에는 예를 들면 반 투안 추기경의 어머니가 살던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1885년에 교구 본당에서 산채로 불태워졌던 곳도 있다.
가톨릭교에 대항하여 일어났던 박해로 온몸으로 고통을 겪었던 베트남의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공경자’로 선포되었다. 반 투안추기경은 13년 간 공산정권 치하의 감옥에 격리되었다. 그 해들 중 9년은 고립된 채 지내야 했다.
현재 베트남에 있는 교회는 계속해서 공산당의 괴롭힘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그 증인이 바로 가르멜 수도자들인데, 가르멜수도회 신부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티엔은, ‘이전과 같은 박해는 없다고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2등급시민으로 여겨지고 있고 교회 밖에서의 베트남을 통치하는 공산당의 허가가 없이는 어떠한 종교적 활동을 거행하는 것은 금지되고 있다.
그 금지는, 예를 들면, 베트남 북부의 어떤 주교에게 교회가 없는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로 가서 일반 주택에서 미사를 드리도록 명령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쳤다. 경찰이 그것을 강제로 시켰다고 그 가르멜 신부는 증언했다.
베트남에서의 그리스도교의 성장
베트남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성장에 대해 몇 달간 이 sit지에서 전달한 적이 있다. 종교박해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질식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고 베트남에서 계속해서 그 수를 증가시켰다. 베트남은 자유의 공간을 여는 경제성장을 시작했다. 거주민 8천만명 중에 그리스도교인들은 6백 5십만 명이고, 5백5십만 명이 가톨릭이다, 공산주의 통치로 나쁜 취급을 받기 전까지는 오순절교회와 개신교가 무엇보다도 산악지역. 시골, 소외지역의 소수종족들 사이에서 가장 크게 성장했다. 1999년에 시민들에게 “종교를 믿거나 믿지 않거나 바꾸는” 그러나 나라의 단합을 해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려는 이들에게는 혹독한 벌을 가하는 자유의 법령이 시행되었다. 이 조항은 감옥에 20년간 구금되었던 타데우스 뉴엔 반 리신부의 경우처럼 한 목사가 베트남 인권침해를 비난했을 때 적용되었다. 통제된 감시의 상황들 속에서 베트남의 그리스도인들은 2050년에 지금보다 세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공산정권이 더 많은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체제로 넘어간다면 더 급속히 증가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에서 그리스도인노예들
감옥에 끌려간 그리스도교 신앙 고수를 드러낸 베트남 그리스도인 노예들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의 질문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은 특히 가톨릭활동은, 아주 왕성하다. 공경자 반투안 추기경과 유명한 인권운동가 타데우스 뉴엔 반 리 신부 둘 다 Sit 스페인지에서 수년간 밀접하게 다뤘다. 가족의 어머니이자, 그리고 인권과 자유의 수호자 리처럼 감옥에서 활동한 가톨릭 활동가의 이름을 첨가하자면: “mother mushroom”으로 더 잘 알려진, 6명이상의 사람들과 함께 감옥에서 10년 동안 투옥생활을 했던 뉴엔 엔곡 뉴 퀸이 있다. 메 남(mother mushroom을 위한 베트남인)은 인권수호를 위한 열성적 활동으로 여러 차례 상과 감사장을 받은 어머니이자 가톨릭 활동가이다. 이 전에 활동가는 2009년에 9일간 감금되었던 적이 있다. 베트남 북부에 있는 보크사이트 광산에서 일어난 활동에 대해 주인이 공개적으로 고발함으로써. 지금 그녀는 반대의견과 비판적인 목소리의 활동가를 탄압하는 하노이 당국의 억압캠페인에 따라 반정부 선전에 대한 일급범죄 혐의로 기소되었다.
익명의 아시아뉴스 기자는 베트남 정부에 대해 “베트남 공산정권은 어떤 경우에도 그들 관점에 반하는 결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첫댓글 위대하신 어머니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