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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2일 일요일(석가탄신일) 백두대간32회차 황장산
자유인 산악회
백두대간 32회차: 생달리 – 작은차갓재 – 황장산 – 황장재 – 헬기장 (점심) – 폐백이재 – 928봉 – (벌재) – 문복대 (백운산 운수봉 ) – 장구목 – 저수령
산행거리 : 약 19km 산행시간 : 약 9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496598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496592
거리 16.6 km
소요 시간 9h 51m 6s
이동 시간 8h 21m 20s
휴식 시간 1h 29m 46s
평균 속도 2.0 km/h
최고점 1,090 m
총 획득고도 1,008 m
난이도 힘듦
백두대간 (白頭大幹) 32–황장산 (黃腸山)
양산박
봄에 피는 꽃이라고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라네
꽃이 핀다는 건 아기 낳는 산통인 것을
꽃이 핀다고 다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라네
이런 저런 사연으로 꺽이고 시드는 것도 있기 마련
꽃피고 열매맺고 싹 틔우고 자라는 것은
나고 자라서 늙으면 죽는 것과 같은 이치라네
세상 모든 생명은 자기 숙명이 있는 법
나는 언제 또 꽃으로 태어날꼬
다시 찾은 생달리
가시 있는 장미꽃을 닮은 산이다. 깍아지른 암릉 위를 걷는 스릴도 있고 그런 바위 위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산군(山群)을 바라보는 눈이 시원하다. 지난 겨울 대미산 구간 산행때 남진을 하면서 들머리로 삼았던 안생달 마을을 거의 반 년만에 다시 찾았다.
화창한 봄날이다. 아니 실제로 계절은 이미 여름 문턱을 넘어선 듯 하다. 지난 주 산행 때 더운 날씨 탓에 약 1 리터 물도 부족하여 갈증을 겪었던 일을 상기하며 2리터 정도 물을 배낭에 담았다. 만사 불여튼튼이라 했으니 이렇게 준비하면 산에서 목이 탈 일은 없을 것이다.
작은차갓재로 오르는 산길은 초여름 야생화 화원이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정말 봄이 오려나 싶을 만큼 풀과 나무들이 죽은 듯 마른 듯 회색빛으로 잠들어 있었는데 햇볕 드는 시간이 조금 길어졌다고 이렇게 짧은 기간에 풍경이 완전히 다르게 변모하는 것은 정말 마술 같다. 전에는 그저 당연히 생겨나는 자연현상일 뿐 별다른 주목거리도 아니었는데 점점 자연의 힘에 대한 경외감이 생겨난다. 풀과 나무는 각자 자신만의 노하우에 따라 꽃과 잎을 피우는 시기를 결정한다. 그 시기에 맞추려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햇볕이 비치는 동안 또 한 번의 윤회를 만들어 낸다. 작은차갓재로 오르는 산길에는 이렇게 한 시기를 풍미하는 갖가지 귀한 생명들이 태동하고 있었다.
안생달마을의 가정집 뜰에는 <매발톱꽃>이 만발했다. 원예종으로 개량한 <장미매발톱>과 숲에서 자라는 것을 뜰에 옮겨 심어 놓은 <금낭화>도 새로운 환경에 완전히 적응한 듯 선명한 색으로 미모를 뽐낸다. 이 마을의 특산물인 <오미자>밭에는 덩굴로 올라간 오미자잎 사이로 꽃이 활짝 피었다. 길 가에는 봄부터 여름까지 우리나라 어딜 가나 환하게 길을 밝히는 <애기똥풀>꽃이 만발해 있고, 지금 한 철 활짝 피었다 갑자기 사라질 <미나리냉이>하얀 꽃도 한창이다. 매화꽃처럼 묵은 가지에서 하얀 꽃을 피우는 <매화말발도리>도 꽃이 피기 시작했다. <홀아비바람꽃>은 이미 꽃이 지고 있고 <윤판나물>도 노란 꽃잎이 땅에 지는 중이다. 계절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봄과 여름의 경계에서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다.
작은차갓재에서 오른쪽으로 향한다. 왼쪽은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하는지라 출입금지 팻말과 철제펜스로 입산을 제한한다. 산세가 좋아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듯 작은차갓재에서 다른 산행팀을 둘이나 만났다. 이제까지 대간을 뛰면서 이렇게 여러 산행팀을 만난 경우는 드문 편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산악회 사람들은 대간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황장산만 돌고 내려가는 원점회귀 산행을 하는 것이었다.
작은차갓재를 지나 본격적인 대간산행이 시작된다. 헬기장을 지나 나무가 촘촘하게 자란 잣나무숲에서 간단한 휴식을 갖고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이제부터 각자도생 점심먹는 장소까지 부지런히 따라가야 한다.
오미자는 다섯가지 맛 ? 달고 시고 떫고 ...... 또 ?
불빛 없는 밤에도 환하게 빛나는 야광나무꽃이 지고 있다.
미나리냉이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홀아비꽃대는 꽃이 지고
윤판나물도 꽃은 끝물이다.
봄에 풀과 나무가 물을 다 마셔버려 계곡에는 물이 없는 건천이다.
오랜만에 참석한 별동대장님
황장산에는 황장목이 없다.
다른 이들이 써 놓은 산행기를 읽어보면 황장산 마루금에는 묏등바위가 있어 그곳을 지날 때 밧줄을 잡고 조심해서 움직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문경시에서 안전설비를 갖춰 놓은 덕분에 다른 산보다 오히려 편안하고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실제로 묏등바위를 의식하지도 못한 채 지나갔다. 더구나 두 군데 멋진 조망처에 데크를 설치하여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조망을 즐길 수 있게 해 놓았다.
첫 번째 데크에서는 남쪽의 산군들을 조망할 수 있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전에 걸었던 대미산과 그 산에서 흘러내리는 돼지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고 그 건너편으로 운달산이 보인다. 그리고 아주 먼 곳에 눈에 보일 듯 말 듯 월악산 영봉이 그림자처럼 비친다. 산 이름은 일일이 다 알지 못해도 저렇게 끝없이 펼쳐지는 산줄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이 시원해진다.
두 번째 데크로 가는 길 왼 편으로 그리 높지 않은 암봉이 있는데 모두 그 곳에 오르지 않고 지나쳐 간다.뒤에 남은 별동대는 또 그 곳이 궁금하여 올라가니 다른 산악회 사람들이 벌써 점심인지 아침참인지 한 상 차려 놓고 먹고 마시며 즐기고 있다. 그 바위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더욱 신선하다. 아래 전망데크에서 보았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높은 만큼 더 멀리 볼 수 있다.
이번 산행길에 만난 야생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진 <쇠물푸레나무>다. 작은차갓재에서 대간길로 들어서자 마자 산 전체가 미색의 쇠물푸레나무꽃으로 덮여 있다.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쇠물푸레나무는 나무의 크기가 물푸레나무에 비해 작다는 뜻이다. 나뭇가지를 물에 담가 놓으면 나무에서 나오는 염료로 인해 물빛이 푸르게 변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얀 솜털같이 또는 솜사탕처럼 한껏 부풀어 있는 쇠물푸레나무꽃은 지금 도심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이팝나무>꽃과 흡사하다. 이팝나무도 물푸레나무과에 속한다.
두 번째 데크 전망대에서 건너편으로 보이는 커다란 암릉으로 이루어진 산은 도락산(道樂山 964 m)이고 그 오른쪽으로 이어진 능선에 있는 것이 황정산 (黃庭山 959 m)이다. 그 황정산 뒷편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저수령에서 죽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도솔봉 구간이다. 그 뒤로는 아스라하게 소백산 등줄기가 비쳐진다. 이제까지 걸어왔던 대간길 중에서 아기자기한 산세나 주변에 펼쳐져 보이는 조망 등을 감안하면 이 황장산은 그 으뜸이 된다.
11시 30분 마침내 황장산 정상에 도착했다. 겨울산행과 산불방지기간 등을 감안하여 순서가 많이 바뀌었지만 어쩌면 이 아름다운 산을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오르려고 일부러 남겨두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다. 일반 산악회 회원들이 정상 헬기장 군데 군데 둘러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데 우리 회원들은 단체 사진을 찍고 나서 서둘러 정상을 빠져 나간다.
황장산은 황장봉산(黃腸封山)을 줄여서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원래 이 산은 작성산(鵲城山)이라 불렀던 것을 일제시대에는 황제의 정원이라는 뜻이 담긴 황정산(皇庭山)이라고 불렀는데 이후 국토지리정보원에서 황정산으로 등록하였다 한다. 황장봉산이라는 이름은 고려시대부터 전국 여러 지역을 구분하여 함부로 벌목을 하지 못하도록 지정하고 그 곳에서 나오는 목재는 왕궁을 짓거나 왕족의 관을 짜는 등 특별히 황족을 위해 필요할 때 벌채하는 보호구역으로서 지금으로 치면 그린벨트 지역과 유사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 산을 지나면서 둘러 본 양상을 보면 나무들이 대부분 작은 참나무류인데다 토질도 암릉으로 이뤄져 있어 나무속이 누런 창자처럼 생겨 황장목이라 불렀다는 커다란 소나무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 산도 주제넘게 뭔가 크고 장엄한 의미를 부여해 보려는 지자체의 근거없는 욕심이 빚어낸 허명(虛名)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료에 의하면 이 산 아래 단양군 명전리에 황장봉산(黃腸封山)이라 새겨진 돌로 된 말뚝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산의 아래부분이 봉산으로 지정되었을 수도 있겠으나 대간길을 걸으면서 살펴본 바로는 나무가 너무 빈약하다.
황장산 온 암릉길에 쇠물푸레나무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꽃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가 마음을 즐겁게 한다.
첫 번째 조망처에서
녹색 향연 - 대미산, 돼지능선 그리고 운달산이 조망된다.
첫 번째 암봉 조망처에서 바라본 산군(山群) - 머리 월악산 영봉이 보인다.
묏등바위를 지나고
두 번째 조망 데크가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왼쪽 앞에 바위로 된 도락산과 그 옆에 황정산 그리고 뒷쪽으로 도솔봉 능선과 끝없이 펼쳐지는 소백산 마루금
황장산 (1077m) - 작성산으로 불리던 이름이 바뀌었다.
오늘 산행의 주봉인 황장산 정상풍경
멋진 조망처에서의 점심식사
황장산을 지나 처음 만나는 안부에서 일반 산악회 사람들은 오른쪽 안생달 마을로 하산하고 백두대간 팀만입산금지 표식을 넘어 벌재 방향으로 진행한다. 감투봉 (1,063 m)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잔잔한 암릉이다. 오랜 풍화로 약한 부분은 마모되어 흙으로 쓸려나가고 단단한 부분만 남은 것이 이렇게 뾰족뽀족한 칼날 능선이 되었고 또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깍아지르는 절벽이 되었다. 모든 것이 어느 한 순간에 생겨난 것이 아니고 수 만 년의 풍파세월을 겪으면서 추위와 더위, 비와 바람 그리고 작은 풀씨와 커다란 나무뿌리가 끊임없이 바위와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감투봉에는 누군가 스프레이로 산 이름을 써 놓았다. 이렇게 이름이 있어도 이름표가 없으면 그냥 무심코 지나칠텐데 그 누구가의 작은 수고 덕분에 우리처럼 처음 지나는 산객들이라도 그 봉우리를 인지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렇게 이정표를 세우거나 정상표식을 설치할 때는 위치가 정확한지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감투봉에서 황장재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 흙길이다. 이미 수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난 길에는 흙이 깊이 파이고 나무뿌리가 드러나 있다. 언뜻 생각에 저런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나무가 자라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져본다. 비탈길에 선 나무의 뿌리와 작은 줄기마저도 산객들의 손과 발의 버팀목 역할을 해 준다. 어쩌면 이것이 저 나무들의 운명인지도 모를 일이다. 살신성인이라는 숭고한 정신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풀과 나무의 궁극적인 사명도 종족보존이라면 이곳에 씨가 떨어져 자라는 나무의 운명은 분명 산꾼들이 밟고 당기고 부러뜨리더라도 끝까지 살아 남아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일 것이다. 깊이 파인 산길 옆에는 눈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큰구슬붕이>가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멋진 풍광에 취하고 예쁜 꽃에 정신을 팔다 보니 배고픈 것도 잊어나보다. 12시 30분 황장재를 지나 조금 오르다 보니 눈앞이 확 트인 넓은 공간이 펼쳐지고 앞서 간 대원들이 마당바위에 둘러 앉아 점심먹을 준비를 하고 있다. 원래 이렇게 평퍼짐한 바위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헬기장을 만들기 위해 일부분 깍아낸 것인지 모르겠지만 꽤 넓은 바위 자락이다.
오랜만에 참여한 별동대장님이 끓여주는 라면은 배가 불러도 거절하지 못한다. 산행하면서 땀을 흘린 탓에 소금기가 있는 라면국물이 보약처럼 흡수된다. 여느때처럼 떡과 과일 그리고 김치 등 다양한 음식으로 배를 불린다. 짧은 점심시간만큼은 백두대간 산행을 온 것이 아니라 소풍을 나온 기분이다.
점심 식사 후 한문희 총대장님이 주변 산군들을 가리키며 산 이름을 설명해주신다. “ 저어기 저것이……… “ 대미산과 돼지능선, 그 뒤로 뾰족 올라왔다가 길게 이어진 능선이 주흘산, 요 건너편 높은 산이 운달산이다. 죽 둘러선 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대장님이 가리키는 스틱방향으로 시선이 움직인다.
헬기장에서 조금 내려서니 또 한 번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번에는 북쪽으로 펼쳐진 산군들을 가리키며 산 이름을 불러준다. “저어기 저거 …… “ 바위로 뒨 산이 도락산(道樂山)이고 그 오른쪽에 있는게 황정산 그리고 멀리 이어진 산줄기가 지난 번에 다녀온 도솔봉 능선이다. 그리고 그 뒤로 아스라이 펼쳐진 큰 산마루금은 다음 회차에 예정되어 있는 소백산 줄기다. 이처럼 사방이 트인 산줄기를 언제 걸어 보았던가. 미세먼지 없이 깨끗한 공기로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아찔한 칼날능선을 지나고
감투봉에서 멋진 조망을 감상한다.
생달리에서 저 바위능선을 타고 오를 수 있다고 한다.
급경사 내리막 길에서 만난 고운 꽃 - 큰구슬붕이
아직도 노랑제비꽃이 남아 있네. 늦둥이인가 ?
멋진 경치를 보면서 먹는 점심은 최고급 식당 부럽지 않다. - 멀리 주흘산 능선이 보인다.
치마바위에서 웃고 즐길 때가 좋았지 - 아직 갈길이 멀어유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지식기부를 하는 하늘비님 - 멋진 조망에 취한다.
벌재 (625 m)
치마바위 조망처를 지나고 벌재로 향하는데 반대 방향에서 올라오는 다른 대간팀 회원들과 마주쳤다. 벌재가 가까워 지면서 그 곳의 소식이 궁금해진다. 정확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으나 몇 몇 사람들 말이 서로 엇갈린다. 판단은 대장님이 한다. 폐백이재에 이르니 앞서 가던 회원들이 앉고 서고 간식을 먹으며 쉬고 있다. 긴급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우리는 결국 벌재를 우회하여 통과하기로 했다. 또 한 번 백두대간과 국립공원의 갈등 현장이다. 2005년 1월 1일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지 1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백두대간 탐방을 허용하지 않는 구역이 여러군데 남아 있다. 이는 국립공원 관리에 관한 법률과 상충되어서 생겨난 현상인지 아니면 백두대간 탐방에 필요한 절차를 몰라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앞으로도 수 많은 탐방객들이 ‘불법’으로 관리인의 눈을 피해 지나가던지 우리처럼 우회해서 지나가면서 잠정적인 범법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폐백이재에서 벌재에 이르는 능선길에 있는 산이 928봉이다. 928봉 조망처에서 내려다 보면 문경시 동로면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로 뾰족한 뿔처럼 생긴 천주산과 그 옆에 공덕산(914.5 m)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천주산은 마치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기둥처럼 보여 그 이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 본다. 928 봉에서 우리는 잠시 대간길을 벗어난다. 오른쪽이 정상적인 대간길이고 왼쪽은 산나물이나 버섯을 채취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이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길 옆으로는 우산나물과 둥굴레가 지천이다.
928봉에서 30여 분 잡목을 헤치며 내려가자 마침내 넓은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예천군 효자면과 단양군 대강면을 이어주는 927번 지방도로다. 회원들은 머뭇거림없이 빗물배수롤 타고 도로에서 벗어나 숲으로 들어선다. 벌써 1년 넘게 함께 산행에 익숙해진 회원들의 일사불란한 행동이다. 숲길은 그러나 길이 아니다. 산딸기 가시나무와 으름과 다래덩굴이 낯선 방문객에 놀라서 달려든다. 가시가 옷을 할킨다. 스틱으로 풀섶을 헤치며 얼마간 숲길에 들어서자 한대장님이 누구에겐가 갈 길을 설명하고 우리와 헤어졌다. 대장님은 이 벌재에서 힘들어 하는 다른 대원을 인솔하여 중간 탈출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남은 대간길을 이어간다.
어림 짐작으로 조금만 가면 뚜렷한 산길이 있을 것 같았다. 작은 개울을 만나고부터 의견이 분분해진다. 오른쪽 능선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는 사람이 있고 왼쪽으로 이 언덕을 넘어서 가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筆有我師)라 했던가. 누군가 왼쪽 좀 가파른 길로 인도하고 대원들은 세렝게티 초원에서 선두를 따라 강물로 뛰어드는 들소떼처럼 선두대열을 따라 낙엽에 발목이 푹푹 빠지는 길이 아닌 길을 따라 내려간다. 곧 이어 큰 오미자 밭이 나타나고 우리는 그 밭 가장자리로 돌아서 마침내 포장된 농로를 만난다. 짧은 구간이었지만 잠시 당황했었고 가시밭을 헤치고 나온 다음이라 모두 지친 모습이다. 나무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길위에 앉아 짧은 휴식을 취하고 본격적인 산행길에 나선다.
폐백이재에서 긴급 회의 - 928봉에서 우회하기로 결정한다.
928봉 조망처에서 바라본 예천군 동로면 - 천주산과 공덕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오후 4시 마침내 벌재에 도착
가시밭길 숲을 헤치고 벌재 등산로 아래에 섰다. 짧은 휴식으로 전열을 가다듬는다.
덩굴꽃마리가 예쁘게 피어 있다.
이제 또 다른 여정이 남아 있다. 문복대까지 3.5 km 그리고 저수령까지 5.7 km 남았다.
복이 들어오는 문 문복대(門福臺 1074 m)
벌재에서 문복대까지 3.5 km 그리고 문복대에서 저수령까지 2.2 km 도합 5.7 km 면 보통 3시간은 잡아야 한다. 벌재에서 4시 10분에 출발했으니 어쩌면 해가 지고 나서야 저수령에 도착할지 모른다. 928봉에서 내려와 벌재를 우회하며 잠시 헤메는 동안 황장산 암릉길에서 보았던 멋진 풍광에 대한 기억은 머리에서 완전하게 지워져 버렸다. 벌재에서 문복대로 가는 길은 나무가 울창한 흙길이다.
길이 편하다 보니 지친 몸이지만 대원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선두팀은 진작부터 눈에서 멀어지고 별동대만 남았다. 이 구간 초입에는 <애기나리>와 <둥굴레> 그리고 <은방울꽃> 군락이 유난히 많다. 누구의 무덤인지 봉분마저 은방울꽃으로 덮여 있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곧 꽃이 피면 이 고인은 꽃이불을 덮고 있는 택이다.
이번 산행에 많이 보일 것으로 기대했던 붓꽃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새 다 져버리고 늦게 핀 <각시붓꽃>이 간간이 눈에 띈다. <노린재나무>꽃은 아직 만개하지 않았고 <민백미>는 조만간 활짝 필 조짐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봄꽃 철이다.
벌재를 지나 첫 번째 봉우리인 822 봉에 이르니 총무님을 비롯한 여러 회원들이 앉아서 쉬고 있다. 내 뒤에 오고 있는 대원을 걱정하는 눈치다. 오랜만에 참여한 김 대원이 조금 힘에 부치는 모양이다. 별동대장과 서너 명이 함께 뒤에 남아 김 대원을 인솔해 오겠다고 하기에 별동대원들은 짧은 휴식 후에 길을 나선다.
잠시 내려섰던 산길은 끊임없는 오르막이다. 경사가 급한 곳도 없다. 완만하게 한참 오르는 산길은 호젓한 오솔길이다. 일찍 핀 <쥐오줌풀>과 아직도 싱싱하게 피어 있는 <줄딸기>꽃 그리고 오늘 산행 들머리에 이미 져 있는 <홀아비꽃대>도 아직 꽃을 달고 있다. 오르막 길 왼편으로 이어진 낙엽송 숲속은 온통 <애기나리>밭이다. 꽃이 두 개면 <큰애기나리>라 하는데 어떤 것은 꽃이 세 개다. <양지꽃>과 <제비꽃>도 아직 남아 있다. 꽃이 어우러진 한적한 오솔길을 걷는다.
산행에 지치면 앞으로 가야할 방향을 보게 되고, 산행이 쉽고 편안하면 뒤를 보게 마련인가 보다. 봉우리를 두 세 개 넘으니 몸이 조금 지쳐간다. 저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우리가 가야 할 문복대인가 싶어 부지런히 걸어가 안부에 올라서면 저 멀리 다른 마루금이 나타난다. 산이란게 다 그런거지 어디 정상에 오르는 것이 그리 만만한 때가 있었던가.
내가 야생화를 사진에 담느라 지체하는 동안 별동대원들은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달아나고 뒤에 남았단 대원들은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데 갑자기 숨을 헐떡이며 황일병(황일영 님을 그렇게 부른다)이 따라온다. 회사 일 때문에 이틀간 한 숨도 못자고 오늘 새벽에 잠깐 눈붙이고 나왔는데 몸이 몹시 힘들다고 한다. 자유인 22기 회원들 중에 유일하게 전 구간을 빠짐없이 참여한 소위 퍼팩트 대원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가겠다며 뒤에 남고 나는 또 다시 혼자가 되었다.
오후 6시 25분 벌재를 출발한지 약 2 시간만에 문복대에 도착했다. 앞서 간 큰형님과 김종진님이 아직 남아서 기다리고 있다. 나무로 둘러싸여 조망도 없는데다 펑퍼짐한 길 옆에 위치하고 있어 한자로 문복대(門福臺 1,074 m)라 쓰인 정상석이 없다면 이곳이 산 정상인지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벌재에서 저수령에 이르는 구간에는 이처럼 고만고만한 봉우리가 늘어 서있어 특별히 눈에 띄는 봉우리는 없다. 다만, 그중에서 제일 높아서 대표로 뽑힌 모양이다. 문복대라는 산 이름은 원래 운봉산(雲峰山)의 운수봉이었다. 옥녀봉과 함께 천 미터가 넘는 산봉우리가 늘어선 산에 구름이 걸쳐진 멋진 모습을 떠 올려 본다. 그리고 원래의 그 산 이름을 그대로 두었으면 더 좋았을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누구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산 이름만 문복대로 바꾼다고 하여 없는 복이 들어오는 것도 아닐 터이다.
문복대에서 과일을 먹으며 잠시 기다리자니 피로에 지친 황일병이 도착한다. 아직 뒤에 남은 사람들은 아직 아무런 기척도 보이지 않는다. 여름이 가까워 진다고 하지만 이제 곧 해가 질 시간이다. 문복대를 지났으니 마음으로는 이미 하산을 마친 기분이다. 여전히 나무숲에 둘러싸인 오솔길 같은 흙길이 이어지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누구의 무덤인지 온통 은방울꽃으로 덮여 있다.
각시붓꽃은 이미 다 지고 흔적만 조금 남아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
쥐오줌풀도 꽃을 피운다.
홀아비꽃대도 산 위에서는 아직 싱싱하다.
줄딸기
일본잎갈나무 숲에는 애기나리가 밭을 이루고 있다.
꽃이 세개나 달린 큰애기나리
오후 6시 25분 문복대 ( 운봉산 운수봉 1074 m)에 도착했다.
개별꽃도 꽃이 싱싱하다.
저수령 가는길
날은 저물고 갈길은 멀다
그러나 내리막길만 남은 것으로 기대했던 내 눈앞에 또 하나의 커다란 산이 버티고 있다. 뒤로는 방금 지나온 문복대 운수봉 너머로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다. 왼쪽으로는 벌써 도로를 지나는 차소리가 가끔씩 들리는 것이 정말 저수령이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아직 산 하나를 더 넘어야 한다. 산을 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날이 저물어가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린다.
옥녀봉을 넘어 하산하는 길이 아직 어둡지 않다. 오른쪽 사면에는 일본잎갈나무가 빼곡히 자라고 있다. 지난가을 노랗게 물들었던 잎을 떨구고 겨울을 나는 나무다. 잎모양이 솔잎처럼 여러 개의 바늘모양으로 되어 있어 낙엽송이라고도 부르지만 등록된 공식 이름은 <일본잎갈나무>다. 마찬가지로 낙엽이 지는 나무라는 뜻인데 일본에서 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본명보다는 별병이 더 멋지다. 이제는 꽃이 있어도 잘 보이지 않으니 발걸음이 빨라진다. 아니, 발걸음이 빠르니 꽃이 보이지 않는건지도 모른다.
산이 낮아지고 왼쪽 도로에서 차 지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분명 날머리인 저수령이 가까워진 것이 분명한데 산의 모양으로 보면 곧바로 질러서 내려가는 형세가 아니다. 봉우리가 서 있는 모양은 분명 또 하나의 봉우리를 넘어서 왼쪽으로 꺽어지는 형상이다. 오미자터널이 설치되어 있으나 오랫동안 관리를 하지 않은 듯 쇠로 된 터널형태의 구조물만 남아 있다. 그리고 곧 바로 낮은 고개를 만난다. 장구목이다. 경상북도 예천군 동로면 석항리에서 올라와 저수령을 거치지 않고 단양군 방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먼저 내려간 일행들이 떠드는 소리, 버스에서 연결한 먼지 터는 기계음이 들린다. 여기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길이 빨라질 듯 싶지만 대간길은 분명 작은 산 하나를 더 넘어야 저수령으로 연결된다.
서산에 해는 지고
저수령까지는 조금 더 가야 한다.
갈림길 - 마침내 저수령이 가까와진다.
가시달린 장미꽃이 향기롭다.
산행을 하다 보면 너무 짧아 아쉬울 때도 있지만 몸이 지치는 긴 산행도 있다. 이렇게 긴 산행을 할 때 날머리 전에 있는 마지막 작은 산은 중간쯤에 위치한 큰 산보다 더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그만큼 몸이 지쳐있다는 뜻이다. 7시가 넘으니 날은 어두워져 주변 사물이 점점 흐릿해진다. 오늘 지나온 여정이 얼만데 이까짓 마지막 남은 언덕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뛰다 시피 빠른 걸음으로 산마루에 올라서니 잘 단장된 무덤이 있다. 마침내 왼편으로 저수령 너머 촛대봉이 어둠속에 실루엣으로 비친다. 이제 다 왔다.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저수령(低首嶺)에 내려서기 전 앞서 가던 큰형님을 만났다. 몹시 지친 모습이다. 평소 목소리가 큰 젋은이 같은데 산행기록을 꼼꼼히 챙기는 것을 보면 전문 산악인 같다. 세월의 무게를 두 다리와 어깨에 걸머지고도 아직 건재함을 과시하는 노익장이다. 이제까지 꼭 한 번 빠지고 나머지 구간을 완주한 몇 안되는 준 퍼팩트 주자이다.
오후 7시 30분 마침내 산행 날머리인 저수령에 도착했다. 아직 미명이 남아 있음인지 후레쉬 없이도 저수령 표지석이 제법 선명하게 카메라에 담긴다. 앞서 내려온 사람들은 진작부터 버스 옆에 자리를 잡고 라면을 끓이고 있다. 몇 명은 버스 의자에 기댄 채 지친 몸을 쉬고 있는 모습이다. 고개마루에 있는
저수령 휴게소는 주유소와 함께 문을 닫은지 오래된 듯 주변은 폐허상태다. 황량하다. 게다가 저녁 늦은 시간이라 지나는 차도 몇 안보인다. 손수건에 물을 묻혀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으니 한결 시원하다. 그나마 더운 여름철이 아니라서 힘이 덜 부치는 것 같다. 만일 기온이 30도 넘는 여름날이었다면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7시 30분 저수령에 도착했다 - 큰형님 몹시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황량한 저수령 휴게소 - 주유소도 편의점도 화장실도 문을 닫았다.
모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뒤에 쳐져 있던 김오진씨와 일행이 한 시간쯤 늦게 도착했다. 모두들 걱정어린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한대장님이 장구목까지 마중나가서 인솔해 온 모양이다. 오랜만에 대간길에 합류한 김오진씨는 이번 산행에서 탈진했다고 한다. 다행히 김 옥신 총무와 이현구 별동대장 그리고 지회장과 이명순씨가 그와 함께 해서 산을 무사히 내려왔다.
장미꽃은 예쁘고 고운 향을 내지만 그 줄기에는 가시가 있다. 산행에서도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려면 그 만큼 수고해야 한다. 산행을 마친 지금 몸은 힘들지만 쇠물푸레나무와 진달래 그리고 철쭉이 어우러진 황장산의 그림 같은 풍경과 숲길이 이어지는 오솔길 같은 문복대길은 백두대간 산길 중 몇 안되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듯 하다.
밤 11시에 양재역에 도착하여 전철 막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멀리 일산과 안산 지역에 사는 분들은 대중교통이 끊겨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고 걱정이다. 힘든 만큼 이 모든 일들이 지나고 나면 또 하나의 멋진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