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환상
해방과 6.25를 거친 대한민국은 6,70 년대 급속한 경제 성장을 경험합니다. 많은 인구가 도시로, 도시로 발걸음을 옮겼던 시기입니다. 시골에서 상경한 이농민은 거대한 빈민층과 산업예비군을 형성했고, 교회는 이들을 광범위하게 흡수하면서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김진호 선생은 한국의 경제 성장을 '돌진적, 폭력적 성장'이라고 정의합니다. 압축성장의 이면에는 장시간·저임금 노동이라는 대가가 따랐기 때문이죠.
"교회는 이러한 압축 성장과정에서 형성 될 수 밖에 없는 노동자 계층의 적개심을 순화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사람들은 각박한 현실의 도피처인 기도원에 들어가 종교체험을 하면서 마음을 순화하는 거죠. 또, 교회를 통해서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성공담론이 확산되기도 했습니다."
김진호 선생은 “제도화된 교회 시스템의 역할은 다른 종교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특정 장소에 나가 자신을 '리프레쉬(refresh)'할 수 있는 종교는 개신교가 유일했기 때문이죠. 김진호 선생은 "십일조를 매주 빠짐없이 낼 정도로 충성도가 높은 종교 집단은 전 세계에서 한국의 계신교가 유일하다"고 말합니다. 압축 성장기를 거치며 월남자형 교회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소위 '대형교회'의 모습으로 커나가게 됩니다. 김진호 선생은 이들을 "선발대형교회"라 부릅니다.
“이농민을 흡수하면서 거대하게 성장한 교회를 '선발대형교회'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순복음 교회죠. 수많은 교회가 순복음 교회를 성장의 모델로 삼아 벤치마킹했고, 선발대형교회로 탈바꿈 하게 됩니다."
50년대 교회는 전쟁과 혼란의 상처를 밖으로 돌리기 위해 외부의 적, 즉 이단논쟁과 반공이데올로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 역사상 첫 안정기" 인 70년대에는 누가 더 빨리, 많이 성장하느냐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또, 이전까지 공공연히 정치에 개입했던 교회들이 이 때부터는 정부와 은밀한 협력관계를 맺게 됩니다.
강남으로 이사 가는 후발대형교회
성장을 지속하던 선발대형교회에도 정체기가 찾아옵니다. 1987년을 전후한 한국사회의 민주화 열풍에 교회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한 거죠. 김진호 선생은 정치적 민주화의 이면에 놓인 개인의 변화에 주목합니다.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국민'에서 내 삶의 권리를 국가와 교섭하는 존재, 나의 권리를 위한 민주화 투쟁을 경험한 ‘시민’이 됐죠. 사회정치적 민주화뿐만 아니라 일상의 민주화가 찾아온 거죠. 또, 88년 이후 ‘소비자로서의 시민’의 욕구가 증대됩니다. 국가가 잠자고 일어나는 시간까지 정해놓은 시대에서 시간과 공간, 물건과 기호, 취향까지 개별화된 시대로 변한 것이죠."
몸집 불리기에만 열중했던 교회들도 사회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합니다. 민주화 이후 형성된 중산층을 흡수하기 위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소위 '문화 선교'로 방향을 틀게 됩니다.
"서울의 한 교회의 경우 청년 신도가 무려 4~5천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요청을 해 올 경우 이들을 500명씩 한 그룹으로 묶어 지원을 해줄 정도였죠. 요새는 주일마다 나이트클럽을 예배당으로 활용하는 교회도 등장했고요. 그 정도로 교회 문화가 변한 거죠. 이들을 '후발대형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는 이미 지역 간의 계층이동과 변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후발대형교회들은 탄탄한 중산층이 모여 사는 강남으로 몰려가기 시작했죠."
사회, 경제적으로 균일한 계층이 모인 후발대형교회는 커다란 결혼시장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 만나는 청춘 남녀들이 주로 '종내혼'을 통해 짝을 찾게 되는 거죠. 한 교회 안 청년부에 출신 학교에 따라 'SKY 라인', '이대 라인'이 생기고,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합니다. 중, 고등부 학생은 예배 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카페 하나를 통째로 대여합니다.
“권위와 억압에 대해 저항했던 386세대와 달리 교회에 다니며,
안정적인 중산층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말 잘 듣고, 착한 아이로 성장합니다. 한국에서 착하다는 것은 규율에 잘 순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변화에 소극적이고, 도전적이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똑똑하기만 한 사람 말이죠.”
천국보다 달콤한 현실세계
'고소영' 이라는 말까지 등장시켰던 한 교회를 기억하실 겁니다. 김진호 선생은 이 교회의 사례를 들어 후발대형교회의 전반적인 성향을 진단합니다.
"이 교회 신자들을 직접 만나보면 예상과는 달리 대부분 성격이 쿨합니다. 쿨한 만큼 남한테 관심이 없죠. 보통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교회 다녀라, 예수 믿어라' 식으로 간섭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이 교회 신자들은 남의 생각을 무시할지는 몰라도 간섭은 하지 않아요."
이들의 쿨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김진호 선생은 만족지수와 기대지수라는 개념으로 그 이유를 풀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