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혁신가들’이 또 다른 위대한 역사를 약속하는 이 시대에,
저자는 현명하고 지혜롭게도 평범한 은혜의 수단에 충실하신 하나님을 일깨워준다.
모든 사람이 너도나도 앞다투어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나서는 이 시대에,
저자는 종종 간과되는 회중, 곧 성령께서 거하시는 평범한 회중 가운데서 발견되는 기쁨을 상기시킨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전기를 쓰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대에,
저자는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묵묵히, 충실히 돌보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또 다른 위대한 역사’는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작고 선한 일을 통해 역사하신다.”(제임스 스미스)
우리는 가능한 빨리 위대한 결과를 거두고 싶어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평범한 은혜의 수단을 통해 놀라운 선물을 풍성하게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또한 우리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평범한 인간들을 통해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세상에 보내 평범한 일을 하게 하심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지금 나에게는 평범한 것, 곧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을 견딜 용기가 필요하다. 나로서는 집안 사람들의 말을 잘 듣는 것보다는 고아를 돌보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는 일이다. 평범한 수요일 아침에 남편을 친절하게 대하는 일이나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어머니께 전화를 거는 일보다는, 옷가지를 기부하고 활동적인 기독교 단체를 찾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다.”(티시 해리슨 워렌)
나도 실패보다는 지루한 것이 훨씬 더 두렵다. 평범한 일을 하면서 평범한 사람들과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내 인생의 멋진 꿈을 좇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하나님이 우리를 두신 일상에서 그분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며 다른 사람들의 삶을 퐁요롭게 하는 일을 회피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라는 영화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조연으로 끌어들여 너무나 쉽게 이용해 먹는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의 진정한 핵심은 비범한 일이 아니라 평범한 일, 곧 일상에서 발견된다. 우리의 지나친 활동이 문제라기보다는 부분별한 열정이 문제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신속하게 고치고 쉽게 해결하려고 한다. 우리는 장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단거리 달리기에 익숙하다. 그렇게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품고 끊임없이 불안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다 보면, 심신이 고갈될 위험이 크다.
변화는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목적으로, 어떤 수단을 통해, 어떤 종류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궁극적으로 문화가 아니라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는 설교보다 블로그가 더 권위적일 때가 많다. 그러나 교회는 성령과 말씀에 근거한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믿음의 전선을 형성한다. 교회와 그 전통에 참여하는 것은 일시적인 신앙 운동에 참여하는 것과는 다르다. 개인의 자율성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사역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믿음에 복종해야 한다. 개혁주의는 단지 ‘5대 교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건전한 교리뿐만 아니라 우리를 더 깊은 섬김으로 나아가게 하는 건전한 실천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물론 자손들까지도 대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새로운 피조물로서 더욱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 거짓된 가르침뿐만 아니라 모든 잘못된 습관과 기대와 가치를 거부해야 한다. 그런 것들은 우리의 몸에 깊이 배인 탓에 늘 당연하게 여겨질 뿐 아니라, 심지어 경건이라는 허울로 위장되기도 한다.
마이클 호튼, ‘오디너리’- 평범함으로의 부르심, pp 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