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즈는 ‘사랑은 이기적인 정신과 반대된다’는 설교에서 이웃을 사랑하며 살라고 권면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사랑을 준 사람의 행복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심오하게 증가시킬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심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려고 애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일,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바지하는 일을 우리 자신의 일에 반대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빌2:21). 기독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우리의 가장 주된 목적으로 삼도록 요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사는 한, 자신에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것처럼 살아간다(빌1:21).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모든 일에서, 우리의 주인이신 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엡6:6).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신적인 사랑 또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자기 사랑을 넘어가는 것이다. 질적으로 훨씬 높고 고귀한 사랑이다. 자기 사랑이 생래적인 자연적 원리의 요약인데 반해, 신적인 사랑은 초자연적인 원리에서 비롯된다. 이 신적인 사랑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흙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나지 않는다. 신적인 사랑은 하늘에서 사람의 마음에 이식된 나무이다. 이 사랑은 신적인 것이고, 하나님의 거룩하고 복된 성령으로 말미암아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랑의 기초는 하나님께 있고 우리 자아 속에 있지 않다.”
에드워즈는 사랑의 원천을 묘사하는 데 기억에 남을 이미지를 제시해 준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있는 사랑은 ‘하늘에서 사람의 마음에 이식된 나무’와 같다. 이 나무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복된 성령’이 주시는 선물로서, 이것을 받은 신자는 자기 목전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애쓰는 신자는 결국 다른 사람에게 큰 유익을 끼치게 된다. 에드워즈는 신적인 사랑을 어떻게 구현하는지 설명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심령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내어놓게 한다. 그리스도의 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 왕국의 진보를 위해 자기의 사사로운 세속적 이익에서 손을 떼고 전적으로 그리고 결연히 포기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21:13). 이런 심령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경우에 이웃들에게 유익을 위해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을 포기하고 내놓는다. 그리고 기꺼이 다른 사람의 짐을 지고 이웃들의 더 큰 유익을 위해 자신들의 더 작은 이익을 기꺼이 내놓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형제들을 위해 자기 목숨도 기꺼이 버린다(요일3:16)”
애드워즈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본질과 능력을 감동적으로 요약한다.
“그리스도인의 신적인 사랑은 세상적인 모든 사랑을 초월하고, 이기적인 정신에 반대된다. 도덕적인 사랑은 이기심과 반대되나, 이기적인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도덕적 사랑도 자기 사랑의 원리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적인 사랑은 그 원천이 다른 곳에 있다. 신적인 사랑의 근원은 그리스도 예수이다. 따라서 신적인 사랑의 원천은 하늘에 있다. 신적인 사랑은 이 사랑이 나온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어 있다. 자아를 지향하지 않는다. 신적인 사랑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기뻐하되,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기뻐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유익을 추구하고 기뻐하되,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뻐한다. 그리스도인의 신적인 사랑은 원수에게까지 마음을 쓴다. 이로 보건대, 기독교적인 사랑이 얼마나 기이하게 뛰어나며, 이기적인 정신에 전적으로 반대되는지 분명하다.”
여기서 에드워즈는 그리스도인의 행복의 독특한 성격을 정확히 포착해 내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적인 사랑’에 뿌리는 둔 ‘타인 사랑’으로 사랑한다. 그리스도인의 삶, 즉 좋은 삶은 이타적이고 겸손한 사고에 의해 움직여진다. 생래적인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사랑이다. 이런 사랑은 매우 역설적이고 의심할 여지 없이 신적인 것이다.
- 스위니, '에드워즈의 좋은 삶', pp 4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