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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퍼비스 엘리슨
신입생으로 결승전 듀크를 클러치득점포함 25-11로 뚜까패며 44년 이후 첫 신입생 MOP로 선정되었던 선수.
뛰어난 블락슛 타이밍감각, 빠른 점프로 1픽에 선정될만한 포텐셜은 분명 있던 선수였고 NBA 3년차 20-11을 기록하며 MIP에 선정되며 그를 증명했다. 하지만 이후 그의 무릎은 계속해서 말썽을 일으켰고 거기에 가구를 옮기다 발가락이 부러지는 사고까지 생기며 11시즌동안 출전 경기는 474경기. 실패한 1픽에 이름을 올리고있다. 은퇴이후에는 뉴저지에서 농구코치를 해오고있으며 그의 아들 말릭 엘리슨은 현재 G리그에서 뛰고잇다.
2. 대니 페리
대학 재학시절 듀크를 파이널 4로 세번 이끌었으며 듀크의 통산 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에서 모두 10위안에 들어가는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하지만 이 다재다능함이 상위레벨에서 통용되지는 않았고 그가 두자릿수 득점을 올린 것은 단 두시즌.
그래도 플옵에 꾸준히 나가던 클리블랜드의 일원이었고, 은퇴 직전엔 스퍼스에서 우승반지도 하나끼고 은퇴했다.
3. 션 앨리엇
로빈슨, 던컨에 가려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있지는 못했지만 스퍼스를 묵묵히 지탱했던 기둥. 양 무릎에 부상을 입어도,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서도 복귀한 스퍼스의 정신. 현재는 스퍼스 TV의 해설위원으로 일하고있다.
4. 글렌 라이스
학창시절 여자친구를 데려왔다 슛을 못넣고 쪽팔려서 연습에 매진한 라이스는 15시즌 통산 4할에 달하는 3점슛을 기록했다.
3회의 올스타, 샼&콥의 사이드킥으로 우승도 1회 차지했다. 대학시절엔 현 미국의 정치인, 보수의 아이콘(...) 새라 페일린과 원나잇을 즐긴 경력이 있다. 은퇴 이후로 재정적인 관리는 그다지 잘 하지못한듯하고, 히트의 엠베서더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는듯.
5. J.R 리드
86년 고교최고의 선수로 지목되었던 선수. 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한 미대표팀의 일원이기도 했다. 루키시즌 11득점 8리바운드로 루키 세컨팀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거기서 더 성장하지는 못한채 11시즌 백업 빅맨의 커리어를 보냈다. 18년부터 22년까지 몬머스 대학의 보조코치로 재직했다.
6. 스테이시 킹
1순위까지 예상되던 선수를 여기서 낚았지만...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는 못한채 첫번째 쓰리핏 불스의 일원으로 반지를 세개챙긴뒤 롱리신과 트레이드 되었다. 8시즌을 뛴 뒤 99년까진 선수생활을 지속했다. 은퇴후 06년부터 불스의 해설로 일하고있다. 불스의 3점 작렬 이후엔 핫소스를 찾기바쁜 불스의 목소리, 데릭 로즈의 " Too Big Too Strong Too Fast Too Good"이 그의 작품,
7. 조지 맥클라우드
볼을 꽤 다룰줄 알고, 전미 3점슛%를 리드한 슈터였지만 이미 인디애나에는 레지밀러가 자리잡고있었고 별다른 기회를 받지못했다. 루키시즌 발목수술을 받았고, 이어진 2년차 시즌 중반 괜찮은 3점슛%로 3점슛 콘테스트 참가를 기다렸지만 그 자리엔 마이클 조던이 참석했다 (그리고...) 이어진 어머니의 사망으로 우울증에 빠진 아버지의 사망, 손목부상등 꽤나 굴곡진 12시즌의 커리어를 보냈다. 은퇴 이후엔 플로리다에 거주하고있다.
8.랜디 화이트
대학무대에서는 칼 말론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 메일맨2 라는 별명이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8번픽에 선정되었지만 역시 원작보다 나은 속편은 거의 없었다. 오배송이 너무나 잦은 메일맨. 통산 필드골 확률이 .401에 불과했다. 주로 블루워커로 뛴 댈러스에서의 다섯시즌뒤 해외무대로 건너가 99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이후로 별다른 소식은 없고, 2019년 루이지애나 테크 대학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9. 톰 해먼드
1986년 FIBA세계선수권에 참여하여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 백업빅맨으로 12시즌을 뛴 뒤 은퇴하였다.
대학시절부터 차에 관심이 많아 프로생활중 드래그 레이싱에 참여했으며, 쉐보레 대리점을 운용하기도 했다고한다.
현재는 앨라바마에서 Hammonds Enterprises라는 화물운송업체를 운영하고있다. 최근엔 주짓수에도 빠진모양이다.
10. 푸 리처드슨
할머니가 '곰돌이푸'와 닮았다고 지어준 별명 '푸' 리처드슨은 고교-대학무대 전설적인 활약을 남긴후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신생팀으로써 미네소타 팀버울브즈의 가장 첫번째의 선수지명이었다. 아들도 농구선수를 했지만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한 모양. 농구 영화에 두어편 참여했고 최근엔 농구코치를 하면서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11. 닉 앤더슨
신생 올랜도 매직의 첫번째 선택. 데뷔부터 두자릿수 득점을 올렸고 이후 샤크-페니와 함께하는 올랜도의 일원으로써 일익을 담당했다. 45번의 조던에게 예전 23번만 못한 선수라며 극딜을 가했고 올랜도는 결승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1경기 22득점을 올린, 당해 7할의 자유투를 기록한 앤더슨은 승부를 결정지을 자유투 4개를 연달아 놓치며 역사에 남았다. 이 사건 이전까지 7할 가까이 기록한 그의 자유투는 나머지 커리어동안 6할로 곤두박질쳤으며, 자유투를 얻으려는 시도도 곤두박질, 신뢰할수 없는 자유투 슈터로 접전에서도 빠지게되는등 그의 커리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현재 올랜도에서 커뮤니티 앰베서더로 일하고있다.
11.무키 블레이락
2년연속 스틸 1위를 차지한 5인중의 한명. 스틸의 숫자만큼이나 뛰어난 수비력을 자랑했으나 당대엔 조던과 페이튼이 있었기에 수비 1st팀수상은 조던 은퇴시기의 2회에 불과했다. 뛰어난 중장거리 슈터이기도하며 현재까지도 호크스의 3점슛개수, 스틸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3년 면허 정지상태로 음주운전을하다 낸 사고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후 근황은 들려오지않는다.
여담으로 록밴드 펄잼이 무키 블레이락의 이름을 밴드명으로 하려고했었다고.
13. 마이클 스미스
6'10의 파워포워드지만 1300여분동안 플레이하는동안 블락은 단 5개. 두시즌을 뛴 뒤 해외무대에서 3년을 가다듬었으나
그다지 나아진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선수생활 이후엔 클리퍼스에서 오랜기간 해설로 일했다. 부동산 관련 사기혐의가 있었는데, 해결이 된 것인지 어떤건지 나오는건 없다. 최근엔 유타에서 피자 프랜차이즈의 투자자로 일하고있다고 한다.
14. 팀 하더웨이
크로스오버로 유명한 팀 하더웨이는 13시즌을 NBA에서 뛰며 5차례의 올스타, 1번의 퍼스트팀을 포함해 6번의 올NBA팀 선정등 영예로운 커리어를 보냈다. RUN TMC의 일원, 동부의 다크호스 히트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히트-닉스의 동부 라이벌리가 한창이던때 하더웨이는 닉스를 향해 '할 수 있는 모든 증오를 다해 그들을 증오한다' 라고 했으나 세월이 지나서일까, 2022년 닉스의 스카우트로 고용되었... 으나 또 1년만에 관뒀다. 3&D로 리그에서 오래 뛰고있는 팀 하더웨이 주니어가 그의 아들.
07년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발언을 했다가 반성했는지 성소수자 지지활동을 해왔고 그 덕에 2022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15. 토드 릿치
20년이 넘도록 스탠포드의 득점기록을 가지고 있었던 슈팅가드로 첫시즌 8점, 소포모어 14점 발전해오고 있던중
약혼자가 사망에 이르는 큰 사고를 겪으며 이후 더는 그 레벨에서 플레이 할 수 없었다. NBA 이후엔 호주에서 커리어를 3년정도 보낸후 은퇴했다. 현재는 호주 맬버른에 거주하며 와인 대리점을 운영하고있다.
16. 다나 브로스
통산 4할에 달하는 3점슛에 일가견이 있던선수. 게리 페이튼의 백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94-95시즌엔 20-3-7을 기록하며 올스타와 MIP의 영예도 안았으나 이후엔 그 레벨에서 플레이하지 못했다. 14시즌의 커리어를 마친 이후 방송, 사업등을 해오다 현재는 메사추세츠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농구교실을 운영중이다.
17. 숀 켐프
어마어마한 운동능력으로 90년대를 풍미했던 파워포워드. 짐승같은 운동능력과 더불어 자기관리부족으로 뚱땡이가 되길 반복한, 어찌보면 자이언의 선배님 되시겠다. 전성기가 다 지나고 나서야 자식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싶다며 복귀를 타진했으나 실패. 그대로 은퇴했다. 현재는 시애틀에서 마리화나 매장을 운영중이다. 23년 총격사건에 휘말렸다 구금되었지만, 보석금 없이 풀려났다.
18. BJ 암스트롱
정확한 슛과 두둑한 배짱으로 1차 쓰리핏에 기여한 선수. 조던의 1차 은퇴 직후 암스트롱은 14.8득점을 올리며 괜찮은 활약을 보였지만, 이 기록으로 올스타 투표 전체 3위에 오르며 (피펜보다 위였다!!) 생애 유일한 올스타에 등극한다. 여튼 12시즌을 보낸 암스트롱은 시카고에 복귀하여 13시즌을 보낸뒤 은퇴했다. 프런트, 방송일을 거쳐 현재는 스포츠 에이전트로 일하고있다.
19. 케니 페인
대학시절엔 50-40-80 170클럽에 가입했고 괜찮은 사이즈를 가진 스몰포워드였지만 식서스 4년간 3.5점으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후엔 2000년까지 해외서 선수경력을 이어갔다. 이후엔 지도자로 시작해 현재는 모교 루이빌의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첫해 팀 역사상 최악의 성적 4승 28패를 올리며 부진했다.
20. 제프 샌더스
피펜의 트레이드때 받은 시애틀의 픽으로 뽑힌 선수. 불스에서의 2년도 호크스에서의 2년도 인상적이진 못했고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계속했다. 연사로 가끔 나서는거 같기는한데.... 뚜렷하게 알려진 근황은 없다. 아래 사진은 3년전 의료기기 홍보를 위한 인터뷰 중인 제프 샌더스.
21. 블루 에드워즈
어렸을적 숨이 막혔을때 여동생이 그의 얼굴이 퍼런색으로 변하는걸 봤다고 해서 붙은 별명 '블루' 에드워즈는 뛰어난 운동능력을 가진 선수로 10시즌을 NBA에서 뛰었다. 밴쿠버 그리즐리스 역사상 첫 트리플 더블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 01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현재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여자고교팀을 지도하고있다.
여담으로 그는 캐나다에서 유명한 법정다툼의 주인공이기도하다. 그리즐리스시절, 이미 유부남이던 그는 '때때로 NBA선수들에게 여자를 소개시켜주는 웨이트리스'인 킴벌리를 만나 내연의 관계에 빠졌다. 이후 아이를 낳았고 블루는 아이를 데려오기위해 법정 공방을 벌였는데 '킴벌리는 흑인으로 사는것이 어떤것인지를 모른다, 가르쳐 줄 수없다'며 양육권을 받아왔다. 하지만 항소한 킴벌리에게 완전한 양육권을 빼앗기자 일체의 방문과 경제적 지원을 끊어버렸다(...) 이 법정다툼은 영화로 제작되었다.
22. 바이론 어빈
닥 리버스의 사촌으로 고교-대학에서는 괜찮은 득점원이었으나 NBA에서 뛸 실력은 아니었다. NBA에서 세시즌 이후엔 해외에서 주로 뛰었다. 은퇴 이후 현재는 스포츠 에이전트로 활약중이다. '다이너스티 스포츠'의 부사장으로 재직중.
23. 로이 마블
루카 가르자가 경신하기 전까지 오랜기간 아이오와의 통산 득점 기록을 가지고있던 선수였다. 하지만 NBA에서는
2시즌 통산 29경기 출전, 1.9득점. 주로 CBA에서 많은 경력을 보냈다. 2014년 폐암을 진단받고 투병끝 2015년 사망했다.
향년 불과 48세, 아들 데빈 마블도 아버지와 같은 대학교에서 활약했으며 현재 이스라엘 리그에서 뛰고있다.
24. 앤소니 쿡
첫해 20분간 출전해 5득점 5리바를 올렸으나 그게 커리어의 가장 고점이었다. 이후 4시즌간 58경기에 출전하며 벤치워머로 시간을 보냈다. 이후 근황 없음.
25. 존 머튼
NBA에서 세시즌만을 뛰고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스페인에서는 득점왕도 두차례 차지하며 괜찮은 커리어를 보냈다. 현재는 세인트피터대학에서 보조코치로 지도자생활을 하고있다.
26. 블라디 디박
유럽에서 넘어온 재능들의 1세대격 선수로, 당대엔 보기 드물었던 포인트센터의 모습을 보여줬다. 당대 두터웠던 센터의 뎁스에 단 한차례, 늦깎이 올스타에 올랐지만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음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도 유럽권 선수들의 대부격인 존재로 공로를 인정받아 피바, 네이스미스 명예의전당 모두에 올랐다. 킹스에서 자문역을 거쳐 GM도 꽤나 오랜기간 맡았는데 그 기간동안 '돈치치 거르고 베글리' 하고 말았다. 팀도 계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2020년 GM에서 물러났다.
27. 케니 배틀
이름처럼 뛰어난 투지와 에너지를 코트에 불어넣으며 대학시절 팀을 파이널 포에 올려놓았던 선수. 일리노이 대학에서는 매해 가장 열심히 플레이한 선수에게 케니 배틀상을 수여한다고 한다. 하지만 NBA에서 투지만으로는 부족했던 트위너로 단 4시즌만을 뛰었다. 현재는 KB HOOPS라는 단체에서 유소년을 지도하고있다.
2라운드
28. 셔먼 더글라스
플로터의 대가로 알려진 선수로 2라운더이지만 올루키 퍼스트팀에 선정되었다. 하위권팀 주전 정도는 할 수 있는 기량의 선수였고 12시즌을 뛴 뒤 은퇴하였다. 커리어동안 마이클 조던과 30번을 붙었는데, 30번 모두 패한 특색있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모델이자 방송인 지젤 브라이언트와 연인관계였는데, 공원에서 구강성교 매춘을 하다 경찰에 적발되어(...) 헤어졌다.
36. 클리포드 로빈슨
시대를 앞서간 플레이스타일로 장신에 모바일하면서 3점능력까지 갗췄던 선수이다. 올해의 식스맨, 디펜스 세컨팀 2회, 올스타 1회등 많은 영광을 얻어낸 로빈슨은 무려 18시즌을 NBA에서 뛰었다. 18시즌중 플레이오프에 진출 못한 시즌은 단 한차례에 불과했으며, 33살 첫 50득점 게임을 기록하며 50득점자중 가장 늦게 50득점을 기록한 선수로 기록되고있다. 1300스틸/블락 이상을 기록한 7인중의 하나이다. 통산 19591득점으로 아깝게 2만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은퇴 이후엔 방송, 대마초 사업등을 해오고 있었으나 2020년 림프종으로 사망했다. 향년 53세.
38. 더그 웨스트
신생 미네소타와 신생 밴쿠버에서 모든 커리어를 보냈다. 12시즌의 경력에도 플레이오프 경험은 단 세경기. 케빈 가넷 이전까지 울브즈의 득점리더자리를 차지했었다. 은퇴이후엔 고교, 대학, 프로에서 지도자생활을 했으며 현재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보조코치가 되었다.
40. 디노 라다
드라잔 페트로비치와 함께 크로아티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선수.
93년 데뷔와 동시에 15-7을 기록했고 3년차에는 19.7-9.8, 거의 20-10에 가까운 기록을 올리며 엘리트 빅맨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무릎에 말썽이 생기며 셀틱스로부터 버림받았고 이후 유럽으로 돌아가 명예로운 커리어를 보낸뒤 은퇴했다.
2018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3. 처키 브라운
무려 12개 팀에서 뛴 저니맨. 그 사이사이 해외팀과 하부리그까지 뛰었다는걸 생각하면 정말로 프로 생활 내내 팀을 옮긴셈이다. 그럼에도 13년을 뛴 사실 자체는 충분히 존중할만한 커리어였다. 은퇴 이후로는 로어노크 대즐의 보조코치로 지도자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NBA진출을 타진하던 방성윤을 지도한바 있다. 현재는 세인트 어거스틴 대학의 감독으로 재직중.
49. 헤이우드 워크맨
애틀란타-워싱턴에서 별볼일 없는 두시즌이후 NBA에서 사라지나 했지만 해외에서 기량을 갈고닦은 헤이우드는 레지밀러 시기의 인디애나에서 백업 포인트가드를 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전성기무렵입은 십자인대 부상으로 기량을 잃고 은퇴하였다. 은퇴후 운동중 NBA심판 밥 딜라니를 만나 심판이 되는것에 대해 물었고 심판일을 시작해 현재 NBA 심판이다. (2023년 현재인지는 불명) NBA선수가 심판이 된 세번째 케이스이며 그들중 가장 긴 경력을 가지고 있다.
언드래프티
알렉산도르 조르제비치
29살 딱 한시즌, 8경기만을 포틀랜드에서 뛴 선수이다. 유럽에서는 매우 성공한 선수였으며 감독으로도 마찬가지였다.
현재는 중국 농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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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억의 이름들이 많이 보이는데,,그 중에서도 무키 블레이락의 말년이 참 안타깝네요.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팀 하더웨이, 숀켐프가 최고 아웃풋이려나요.!? 잘 봤습니다. 항상 감사드려요
좋은글 잘봤습니다.
정보력만 보였습니다만 이제 보니 필력도 대단하십니다. 인기시리즈 맞아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좀 더 기대해도 되죠??
아직은 조금 더 해볼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힝상 잘보소있습니다^^
아이고 클리포드 로빈슨이 고인이 되었었군요. 할 말이 너무 많아지는 시리즈 정말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점점 제가 모르는 선수들이 나오는데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네요.ㅎㅎ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보력에 늘 감탄합니다!
잘 봤습니다.
감사히 잘 봤습니다!
우와 전 미농 안보는데도 이런 컨텐츠는 되게 좋아보여요!! 농구판 근황올림픽이네요!
감사히잘봤어요~
ㅋ ㅑ~ 잘봤습니다!!
늦었지만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