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석 교수의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김형석 교수는 1920년생으로 이제 만100살이 되었다. 죽을 수도 없을 만큼 모질거나 끈질기기 때문인지, 원통해서 죽을 수도 없는 것인지, 자신의 말처럼 할 일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죽을 수가 없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나이에도 매일 한두 차례 강연도 하고 집필도 한다고 하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존경심이 인다.
생각해 보면 어르신의 말처럼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것은 혈기 왕성해 자살 충동을 느끼는 청소년이거나, 혹은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에게도 유용한 질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을 공유해야 하고 또 답해야 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그것은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신분이 낮고 높음이나 직업에 따라 차이 나는 질문이 아니다.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외면할 수 없는 삶에 대한 질문이다.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길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통해 행복을 찾아 누리려는 신념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책 내용을 독자들이 공감해 줄 것으로 믿으면서도 이 책은 내가 갖고 있던 보물단지 속 아끼던 물건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마음의 선물로 내놓는 심정이다. 책이 나오도록 도와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 ‘서문’중에서 -
“어머니와 아내마저 잃었을 때 두 가족을 대신해 내 옆에는 두 친구가 있었다. 안병욱 교수와 김태길 교수였다. 우리는 50년 동안 우정을 쌓고 함께 일했다. 김태길 교수가 서울대로 갔다는 소식을 외국에서 들었을 때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김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의 새로운 터전을 만들었고, 안병욱 교수도 함께 있다가 떠났기 때문에 허전함을 남겨주었다. 그러나 떠나갔기 때문에 숭실대학교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그 뒤에 우리 셋은 세 대학(서울,연세,숭실)에서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철학계의 삼총사 역할을 담당했다. 많은 후배와 제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두 분 다 나에게 많은 도움과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나 세상사는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만났던 사람은 헤어지게 마련이었다. 내가 90을 맞이하기 전 해에 김태길 선생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내가 90을 넘긴 다음해에 안 선생 집을 찾았을 때 휠체어를 타고 나를 맞은 그의 웃음은 옛날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헤어질 때 그는 오른손을 들어 ‘다시 봅시다.’라고 말했고, 목소리도 변함이 없었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었다.
어머니와 아내, 두 여인이 떠나 가정이 비어 있는데 두 친구마저 먼저 간 후에는 세상이 비어버린 것 같아졌다.” - 18쪽,‘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중에서 -
나는 김형석 어르신 같은 분은 세상 풍파에도 초연하고 많은 사람들과 사교하면서 파란만장 없이 세상을 달관하고 사시는 분이 아닐까하고 막연히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분도 세상 여느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가 말한 것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는 이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3월 하순 어떤 추운 날 밤 갑자기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을 했고 머리 수술까지 받아야했다. 1개월 동안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기에 이르렀다. 수술 끝에 겨우 생명은 건졌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대단한 것이었다. 의사들은 식물인간 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온갖 정성과 의약의 도움을 얻어 식물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가족들은 그것을 기적적인 사실로 감사해야 했다. 90%이상 불가능했던 상황임에서 생명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를 데리고 미국으로 갔다. 재활 의학은 미국이 아무래도 앞서 있었고 사위 중의 하나가 재활과를 전공했기 때문이었다. 세브란스에서 퇴원하는 길이 김포공항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두 달 동안 작은아들과 셋째 딸, 그리고 사위의 도움을 얻어 모든 정성을 아내에게 쏟았다. 아내로 하여금 남은 생애를 침상에서만 누워 보내는 고통에 빠지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눈물과 한숨을 겪어야 했고, 가족들의 정성어린 기도의 보람이 있어 아내는 휠체어를 타고 실내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걷는 데까지 이르렀다. 나와 가족들은 그 결과를 눈물로 감사했다. 제1의 단계를 넘어선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앞에 다가온 운명의 절벽을 피할 수 없다. 어떻게 그것을 넘어 새로운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창조해 가는가에 성패가 있다. 만일 그것이 하나의 운명이라면 그 운명은 조물주께서 내게 준 값진 시련일 것이다. 조물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시련을 주었기 때문이다.”
- 43쪽, ‘사랑이 있는 산문’중에서 -
“그렇다. 사랑이 있는 고생이 곧 축복이다. 그 사랑이 클수록 고생도 많겠지만 그 많은 고생이 인생의 보람이며 행복이다. 국민을 정말로 사랑했던 정치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생애를 바친 기업가, 누구보다도 제자들을 사랑했던 스승, 환자를 가족같이 위해주었던 의사, 인류의 고통을 나누어 짐 지길 원한 종교인들, 모든 사람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었던 신앙인들, 그들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대표적 인물이 공자, 석가, 그리스도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들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 66쪽, ‘무소유의 삶을 생각한다.’중에서 -
“인간은 자기완성을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완성이 과연 가능한지는 언제나 의문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완성은 인간이 신과 같이 완전해진다는 뜻도 아니며, 흠잡을 것이 없는 인격의 완성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생의 의미를 영구한 것으로 만들며 그 가치를 최선의 것으로 이끌어간다는 뜻이다. 세상의 만물은 모두가 자신을 완성으로 이끌어갈 의무가 있다. 완성을 위한 노력이 삶의 기본적인 원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완성을 육체적이거나 자연적인 욕망으로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인간의 운명적인 과정이다. 그것을 거부하거나 무無로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완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격의 충분한 성장과 우리의 삶의 의미를 역사와 사회에 남기는 일이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나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와 역사 속에 남길 수 있을 때 참다운 완성이 가능해진다.” - 76쪽, ‘산다는 것의 의미’중에서 -
“운동을 많이 할수록 건강해진다는 사고 때문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가 건강을 해치기 쉽다. 보약도 그렇다. 양의사들은 보약을 권하지 않는다. 음식물을 고르게 적절히 섭취하면 보약은 필요 없을지 모른다. 지나친 보약 때문에 건강을 해치는 사람들이 많다. 옛날 우리나라 임금들이 단명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보약 때문이라고 한다. 또 일본 왕실의 병은 대부분 소화기 질환이라는 말이 있다. 맛에 취해 과식하는 것이 건강을 해쳤다는 것이다. 중국 왕실도 그랬다. 보약을 멀리하는 친구들이 건강과 장수하는데 남보다 앞서는 경우를 나는 항상 보고 있다.”
- 85쪽, ‘욕심과 의지는 다르다’중에서 -
“노인들은 젊은 세대들에 대한 불만이 많다. 예의범절을 모르며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른다고 불평을 한다. 그러나 그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우리가 모범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인들에게 이렇게 대하라고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이 젊은이들을 선도하는 바른길이다. 나는 내 자녀와 또는 후배들과 식당에 가는 때가 있다. 그때 그들보다 더 정중하게 서비스 하는 이들을 대한다. 그것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늙은이들이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키워가는 방법이며 봉사이기 때문이다.”
- 95쪽, ‘노인의 자산은 지혜이다’중에서 -
“내가 있다는 것, 이것이 모든 것의 출발이며, 빛의 근원이며 존재의 바탕이다. 나는 하나의 내던져진 존재일지 모른다. 이유도 조건도 없는 하나의 우연한 선물일지 모른다.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었던 한 우연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저녁노을이 생길 무렵 날아드는 한 마리의 부유(蜉蝣)같이, 물구렁텅이에 아침에 생겼다가 낮에 없어지는 벌레같이 우연하고도 무의미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일단 내가 여기 존재하게 된 뒤에는 내가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모든 것은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내가 있다는 사실보다 더 절대적인 것이 없으며 나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을 까닭이 없다. 유아독존唯我獨尊 이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내가 있다는 것, 이것이 모든 것의 출발이며, 이로부터 세계와 우주는 그 자리와 의의가 있게 된다. 우주의 중심점이 내게 있으며 세계의 모든 무게가 나라는 초점 위에 머물게 된다. 나의 존재는 이렇게 귀중할 뿐만 아니라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전체 세계의 발단과 근원이 되고 있다.” - 123쪽, ‘내가 있다는 것’중에서 -
“시인 윤동주의 고향은 간도 용정이다. 나는 윤형과 숭실중학을 같은 학년,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의 곧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까이서 느끼곤 했다. 그때부터 그는 시를 쓰고 있었는데, 황순원 선배와 학교 잡지 《숭실활천》편집에 정성을 쏟던 흔적은 지금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작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조선총독부는 우리학교의 문을 닫게 했다. 신사참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를 자퇴했고 윤형은 신사 참배가 없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뒤 윤형은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했고 계속 시를 썼다. 그가 남긴 대부분의 시는 그 당시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지금 연세대 교정에는 그의 친필을 옮겨 쓴 시비가 세워져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東柱
- 116쪽, ‘처음과 마지막 시인’중에서 -
“삶의 애착보다는 삶의 완성욕(完成慾)을, 사망의 공포보다는 삶의 주체아(主體我)를 생각할 때 비로소 여기에 또 하나의 자아 실존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신촌 화장터의 죽음을 무시하고 사망의 허무를 박차고 삶의 줄을 타고 떠났다. 안심과 희망과 기대가 있었다. 화장터가 멀어질수록 마음의 만족이 찾아왔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또 하나의 화장터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비존재(非存在)에의 가능성, 삶의 공허화가 있을 뿐이다. 결국은 내 삶이 화장터에서 시작해 또 다른 화장터에 매여 있는 것뿐이다.
니체의 말과 같이 ‘모든 삶은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앞으로 가려니 공허 위에 달려 있는 줄이기에 두렵고, 뒤로 돌아서자니 마찬가지의 공허가 있고, 그대로 머물러 있자니 밑으로 떨어질까 두려워진다. 다만 다행한 것은 내가 사색에 잠겨 앞뒤도 모르고 살아왔던 일, 앞을 보지도 않고 생각에 몰두했던 것뿐이다. 그것은 먼옛날 석가세존의 젊은 시절 생각의 한 갈래에 지나지 못하는 이유, 나사렛 예수가 가리키는 손끝을 세인(世人)들이 부정 못하고 바라보는 이유가 성립되는 것이 아닐까…. -185쪽, ‘길과 구름과 실존’중에서 -
김형석 어르신께서 그동안 쓰서 모은 글을 2018년 3월 ‘김영사’에서 발간한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를 모두 읽었다. 그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철학자도 아니고, 세상을 둥글게 사는 것이 좋다며 그냥 평범하게 살라고 자기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지도 않다. 그는 ‘암흑을 밝히는 촛불은 스스로를 태운다. 초는 불타서 사라지고 말지만 그 빛은 우주에 영원히 남는다. 그리고 암흑은 그 빛의 힘으로 자취를 감춘다’고 했다.
- 2019.12.26. 오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