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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8일 일요일(토요무박) 백두대간 38 회차 오대산
자유인 산악회
백두대간 38 회차 : 진고개(02:10) – 동대산(03:20) – 차돌백이 (04:45) - 신선목이 (06:00) - 두로봉 (07:30) – 신배령 (09:45) – 만월봉 (10:35) – 응복산 (11:40) – 약수산(14:50) – 구룡령(15:40)
산행거리 : 약 22 km 산행시간 : 약 12 시간
http://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611116
거리 22.3 km
소요 시간 13h 45m 47s
이동 시간 12h 40m 54s
휴식 시간 1h 4m 53s
평균 속도 2.1 km/h
최고점 1,446 m
총 획득고도 1,006 m
난이도 힘듦
백두대간 (白頭大幹) 38 – 오대산
붕우리
- 김민기 -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저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 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 볼 수 있을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같은 것이 저며 올때는
그럴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진고개
장마철이다. 태풍 다나스가 남부지방에서 소멸되고 나서 중부 이남 지역으로 많은 비를 뿌리더니 장마전선이 북상한 건지 서울에도 수요일 목요일에 비가 많이 내렸다. 그 동안 가뭄이 심했는데 이제 어느 정도 해갈이 된 듯하다. 토요일 오전에 약간 비가 내리고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일요일까지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가 있으나 많은 양은 되지 않을 듯 보인다. 그래도 우중산행에 대한 준비는 갖추어야 한다.
새벽 2시 깜깜한 진고개 휴게소에 도착하니 전광판 온도계가 21도를 표시한다. 아마 서울은 적어도 26~7 도 정도로 열대야일텐데 이 곳 평창 산지에는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강수량 0.00 mm 라는 것은 아직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말이리라.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사이로 별이 초롱초롱하다. 그래도 살갗에 느껴지는 습기는 비가 내릴 거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이번에는 맞을 거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지난 번 노인봉으로 오른 길 반대편으로 오른다. 오리보다 좀 일찍 도착한 타 산악회 버스에서 내린 산님들이 아직 주차장에 남아 머뭇거릴 때 우리는 풀섶에 매달린 이슬을 털며 그 반대편 동대산을 향해 어둠속으로 발길을 내딛는다. 헤드랜턴이나 손전등이 없으면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일텐데 앞서 간 긴 행렬이 점점이 반딫불처럼 이어진다. 불빛에 비친 왼쪽 고랭지 채소 밭에는 무가 벌써 어른 팔뚝만큼 자랐다.
서울에는 지금 열대야에 시달릴텐데 여기 오대산 진고개는 21.6 도랍니다.
진고개 산행 들머리에 펼쳐진 고랭지 채소밭에는 무가 벌써 어린대 팔뚝만큼 자랐다.
오늘 산행의 첫 번째 봉우리인 동대산(東臺山 1,433 m)로 오르는 1.7 km 구간은 상당히 가파르다. 그래도 처음부터 끝가지 돌계단을 잘 다듬어 놓아 오르는데 불편함은 없다. 공원 관리공단에서는 왜 이렇게 산길을 잘 가꿔 놓고 비탐방구간이라면서 단속하는건지 모르겠다며 우스개 소리로 힘을 북돋으며 한 발 한 발 오른다. 가슴 속까지 파고 드는 깊은 숨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른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옅은 안개가 흐르기 시작한다. 손전등에 비치는 동자꽃과 노루오줌 그리고 자주여로 등 수 많은 야생화가 오늘 산행의 예고편처럼 우리 곁을 지나간다.
힘들게 올라온 동대산 정상에는 아담한 이름돌이 세워져 있다. 아직 숨을 고르고 있는 선두팀 산님들은 잠시 눈 인사를 나누고 휭 하니 떠나간다. 그리고 산행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선두팀은 모두 걸음이 빠른 준족(駿足)들이다. 한 발 내딛으면 거침없이 산 능선길을 내닫는다.
뒤에는 일반적으로 산악회에서 후미팀이라 부르는 별동대(別動隊)만 남았다. 정상 주변에 보이는 <송이풀>과 <동자꽃> 그리고 이제 피기 시작하는 <오리방풀>에 눈길을 주고 다 함께 모여 단체로 인증사진을 남긴다. 걸음은 좀 느리지만 산행의 진정한 별미를 느끼면서 중간 낙오없이 끝가지 간다는 별동대 대원들이다.
오늘도 무사완주를 다짐하는 별동대
동대산에서 갑자기 길이 가파라진다. 그러나 잠시 내려가던 산길이 차츰 평이해지고 그리 큰 굴곡없이 이어진다. 랜턴불빛에 수풀 속 예쁜 꽃들이 스쳐지나간다. 고대하던 <말나리>가 눈에 띄어 사진에 담아보지만 약한 불빛과 몸부림치며 흔들어 대는 꽃 사진을 찍는 것이 쉽지 않다. 간간이 빗방울이 듣는 느낌이 든다. 앞서간 회원들을 따라가는 마음이 급하다.
자주색 꽃이 뭉쳐서 피어 있는 것은 <광릉갈퀴>다. 콩과 나비나물속에 속하는 이 광릉갈퀴는 산행을 하는 동안 내내 따라다니며 자기를 봐달라고 조르는데 비에 젖은 모습이 번들거리는데다 꽃은 이파리 속에 감추고 있어 보기에 안쓰럽다. 바람이 불면 온 몸을 흔들어대고 빛이 없어 꽃도 제대로 피지 않았다. 맑은 날 다시 보자 해도 막무가내다. 나비나물과 설악산의 네잎갈퀴와 혼동된다.
<속단>꽃이 피기 시작한다.
사느라 힘든 것은 나만이 아니다. 이 나무도 정말 힘들게 살아온 흔적이 몸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광릉갈퀴>
차돌백이 (1,200 m)
평소 맑은 날 같으면 먼동이 터서 주변이 어스름하게나마 보일 시간이지만 전등불빛이 미치지 않는 곳은 칠흑같이 어둡다. 차돌백이 이정표 근처에 차돌바위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어두운 주변에 눈빛을 던져본다. 이정표에서 얼마 가지 않아 어둠속에서도 쉽게 구분될 만큼 하얀색의 차돌바위가 여럿 나타난다. 용문산 등 여러곳에서 차돌 바위를 본적이 있지만 이 곳 차돌백이에 있는 차돌은 그 이름값을 한다. 집채 만한 차돌이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다. 중생대 주라기때인 1억 8천만년 ~ 1억 3천 500년 (엄청 오래전)전에 마그마가 기반암에 스며들어 형성되었는데 상대적으로 약한 기반암이 풍화되어 없어지고 단단한 석영인 차돌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 한다. 어렸을 때 차돌을 주워다 공기돌을 만들어 놀던 추억이 떠 오른다.
아직 어두운 밤길인데도 걷기에 불편함이 없다. 길도 상당히 뚜렷하여 조금만 주의하면 대간길에서 벗어날 염려도 없다. 몸에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나뭇잎에 모여있던 이슬이려니 하는데 그 물방울이 더욱 잦아지고 커지는 것을 보니 가랑비가 내리는 것이다. 날이 궂은 탓인지 산새들도 조용한 아침을 맞는다. 옅게 흐르는 안개가 약간 붉은 빛을 띠더니 점차 여명이 밝아온다. 어둠속에 숨어 있던 숲의 정령이 천천이 나무 그늘속으로 또는 땅속으로 꼬리를 말며 숨어들고 숲은 온전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름답다. 보랏빛 안개가 흐르는 숲은 고요하다. 그 고요함 속에 움직이는 건 낯선 산객 뿐이다.
5시 30분이면 해가 떴어도 벌써 떴어야 할 시간이다. 빗방울이 굵어진다. 가랑비에는 귀챦아서 배낭 커버도 씌우지 않고 비옷도 입지 않은 채 걸어볼 참이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내릴라 치면 귀챦더라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미 등산화도 꽤 많이 젖었고 바지 아랫단도 흙으로 범벅이 되었다. 배낭을 내려 비채비를 갖춘다.
비는 오락가락한다. 어두운 숲길 오른쪽이 갑자기 환해지길래 살펴보니 훌륭한 조망처다. 멀리 동해바다 위로 구름이 두텁게 끼어 있고 그 구름속에 아침해가 잠겨있다. 바다 위로 햇빛이 반사되어 해돋이 풍경을 연출한다. 희미한 산 그리매 뒤로 모든 것이 어두운데 오직 바다에 비친 해 그림자만이 찬란하게 빛난다. 맑은 날이면 강릉시라도 보일 듯한데 이런 날에는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이 안간다.
차돌바위
이제 서서히 여명이 밝아온다.
안개에 아침 햇빛이 물들면 어떤 모습일까. 바로 이런 모습이다.
바다위 구름속에 오른 태양 빛이 바다에 비친 모습은 해돋이 모습에 덜하지 않다.
<단풍취>꽃도 자세히 보면 예쁘다. 대충 보면 그저 그런데....
신선목이 ( 1,120 m)
날이 조금씩 밝아옴에 따라 꽃들도 잠에서 깨어난다. 아직 설잠에서 깨어난 <단풍취>의 꾸미지 않은 얼굴도 꽤나 예쁘다. 이른 봄 보송송한 털을 온 몸에 감싸고 올라와 두 세 달 동안 자라나 어엿한 아가씨가 되었다. 꽃대를 세운지도 꽤 오래인 듯한데 이제 꽃대 끝에서부터 하나씩 꽃이 피어난다. <꿩의다리>는 아직도 피고 있고 <개시호>는 이제 피기 시작하는 꽃이다.
평탄한 산길 숲이 조금 훤해지면서 <거제수>가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공터가 나타난다. 이정표에 신선목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오대산 신선들이 드나들던 길목이라니 그 신선들도 백두대간을 즐겨 걸었나보다.
신선목이에서 두루봉(1,421 m)까지는 약 2 km 오르막이다. 평소같으면 이런 산길이야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올랐을 터인데 비가 오는 날에는 행선이 더디다. 길가에 <지리강활>이 큰 키를 자랑하듯 2 m 는 되어보이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건들거린다. 난 이런 애들을 만나면 자꾸만 외면하게 된다. 이른바 산형과(傘形科)식물이다. 꽃 모양이 마치 우산을 펼쳐놓은 모양으로 피는 미나리과에 속한 식물이다.
신선목이에는 <거제수나무>가 많이 보인다.
비가 그치고 내리길 반복한다.
<두메고들빼기>는 날이 흐려 꽃을 오무린채 필 생각을 안한다. 이런날에는 피어봤자 찾아오는 벌 나비도 없을뿐더러 괜히 헛물만 켤게 뻔한데 굳이 필 이유가 없다. 비라도 날이 더 밝고 비라도 그치면 피어볼 요량이다.
한꺼번에 피었다가 져버리는 <참취> 꽃이 만발했다. 얘네들은 꽃 피는 시기도 짧으니 밤에도 야근을 해야 한다. 비가 내릴 때 찾아오는 벌이 있을까만은 그래도 꽃을 열어놓고 기다린다. 밤에 찾아오는 손님을 맞기 위해 하얀색 꽃으로 단장하고 있다.
<참취> 꽃
두로봉 (頭老峯 1,422 m)
동대산까지 힘들게 올라왔던 큰 형님이 힘들어 할 만한 코스인데 어디까지 가신건지 꼬리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우리가 일출 풍경에 잠시 빠져있는 동안 평지성 숲길을 달음박질 쳐서 내 빼셨는가보다. 큰형님은 평지와 내리막 코스에서는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이다.
맨 꼬리쪽에 나와 박상범님 그리고 정구진님이 남았다. 꽃이름과 풀이름을 갖고 갑론을박 다퉈보기도 하지만 모두 자연의 신비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물을 마시면서 잠시 쉬는데 길에서 가까운 숲에 키가 훤칠하게 큰 <독활>꽃이 피어 있다. 이 꽃 이름을 처음 들었을때는 독초라는 느낌이 들었으나 이는 한자로 홀로獨 살㓉자를 써서 어디에 기대지 않고 꿋꿋하게 잘 살아가는 강인함을 표현한 것이다. 달리 <땅두릅>이라고도 부르며 봄에 땅에서 올라온 새싹을 나물로 먹는다.
<독활>꽃
<갈매나무> 열매
긴 오르막 숲길을 오르는데 앞서가던 이현구 별동대장님이 전화해서 어디쯤이냐 묻는다. 평소같으면 이렇게 뒤지지 않는데 오늘은 선두가 너무 빠른건지 시간차가 꽤 나는가보다. 두루봉을 지날 때 카메라가 있으니 주의하라는 말과 거기서 500 여미터 내려온 곳에서 아침을 먹을참이니 빨리 오라고 당부한다.
오전 7시 30분 마침내 두로봉 (頭老峯 1,422 m)에 도착했다. 이 두로봉에서 길이 둘로 갈라진다. 계속 직진하면 만월봉 응복산 약수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길이요 왼쪽으로 꺽으면 오대산 상왕봉 비로봉을 거쳐 양평 두물머리에서 끝나는 한강기맥으로 이어진다. 그런 연유로 길이 두 개로 갈라진다는데서 두로봉의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두루봉은 우리가 지나온 동대산 그리고 이 산의 주봉인 비로봉과 상왕봉, 호령봉과 함께 5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어 오대산(五臺山)이라 부른다.
두로봉 벤치에 타 산악회 회원 한 분이 인솔대장으로 보이는 사람한테 간호를 받고 누워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지병이 있는데 산행 중 두통이 찾아와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두로봉에서는 한강기맥이 갈라진다. 우리는 요쪽으로 쭈욱 가야 한다고요.
두로봉 이름돌은 비탐구간 안쪽 헬기장 한켠에 세워져 있다.
신배령( 1,080 m )
이 두로봉부터 신배령까지는 소위 비법정탐방로이다. 탐방로는 탐방로인데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탐방로라는 것인데 그 개념이 이상하다. 이 구간을 탐방하다가 적발되면 벌금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백두대간을 걷는 사람들은 이래 저래 다 지나가는 길이고 그 산길은 왠만한 마을길처럼 잘 다듬어져있는데 비법정탐방로라니 그 이름이 공허하게 들린다.
비법정탐방로 안으로 목책을 넘어서 있는 헬기장에 세워진 이름돌 앞에서 간단하게 인증을 하고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힘들게 올라온 만큼 내리막길은 급경사다. 산꾼들이 지나 다닌 길이 패여 나무뿌리가 드러나고 빗물로 인해 길이 미끄럽다. 키 큰 주목 군락이 나타나고 또 오랜만에 작은 조망처가 나타난다.
두로봉에서 신배령으로 내려가는 내리막 길에 <주목>군락이 있다.
응복산 너머 약수산 보이나요?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안보이나요?
아침식사를 마치고 이제 출발합시다.
조망처라고 하지만 그저 미역줄나무 덩굴 너머로 산줄기가 보이는데 산의 반은 또 안개로 덮여 있다. 아마 저 곳이 만월봉에서 응복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일텐데 안개로 인해 산 모습은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두로봉 정상에서 500 미터 정도 아래에서 아침을 먹는다던 별동대 본대는 어째서 500 미터가 그리 먼 거리인가 하고 의문이 들 때쯤 나타났다. 이미 선두팀은 자리를 뜨고 그들이 앉았던 자리에 이리 저리 풀들이 누워있다. 별동대도 거의 식사를 마친 상태라 우리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일어선다. 오늘따라 사람들의 발걸음이 왜 이리 빠른건지 모르겠다. 너무 뒤에 쳐지면 안되기에 우리는 서둘러 아침을 마친다.
비탐구간이 끝나는 신배령까지는 넓은 평원 같은 느낌이 든다. 비는 그쳤으나 오락 가락 하는지라 비옷을 입은채로 산행을 이어간다. 길가에는 야생화가 즐비하다. 봄에 아카시아 같은 하얀 꽃송이를 뽐내던 <귀룽나무>는 벌써 열매가 까맣게 익어 있다. 약간 떫은 맛이 나는 열매 속에는 팥알만큼이나 큰 씨가 들어 있다. 혹시 이번 산행에서 볼 수 있을까 기대했던 <박새> 줄기가 기나긴 가뭄으로 쓰러져 있어 아쉬웠는데 자주색 <박새>꽃이 이제 막 피어나고 있는 것이 반갑다. <큰까치수염>도 군락으로 피어 바람에 흔들린다.
<귀룽나무>
<박새>
아름다움 숲 - 이런 평지가 신배령까지 이어진다.
길에 떨어진 돌배를 보고 나서 주위를 살펴보니 이 구간에는 <돌배나무>가 유난히 많다. 이태 전 응복산 산행을 할 때 돌배꽃을 보고 신기했었는데 지금 보니 이 곳은 좀 과장해서 말하면 돌배 과수원같다. 우리는 농담으로 가을에 배가 익을 때 다시 한 번 와야겠다고 걷는다. 그러고 보니 신배령( 1,080 m )이란 고개 이름도 이곳에 맛이 시큼한 배가 많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니 어쩌면 이 돌배나무들은 저 옛날부터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큼한 돌배가 많이 나는 고개라서 신배령이라 부른다고 한다.
신배령에서 - 잠시 휴식을 갖고 나니 힘이 나지요?
만월봉(滿月峰 1,281 m)
비탐구간을 빠져나와 자리를 잡고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리다 보니 한 무리의 산꾼들이 반대방향에서 내려온다. 대구에서 왔다는 그 사람들은 새벽에 구룡령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출발했던 진고개까지 가는 중이라 한다. 지난 주에 산행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대구 마루금 산악회 회장을 아느냐 하니 그 사람이 하두 유명한 사람이라서 잘 알려져 있다 한다. 70세 정도 되었는데 대구에서는 백두대간 및 정맥을 뛰는 산악회로서 그 산악회뿐만 아니라 이한성 회장님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한다. 우리는 간단하게 과일을 나눠먹고 또 길을 나선다.
신배령에서부터는 능선 왼쪽으로 약간 돌부리가 흐트러져 있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다리힘이 좋은 별동대장은 만월봉에서 총대장님을 만나기로 한건지 빠른 걸음으로 먼저 올라가고 뒤에 남은 대원들은 다시 지구의 중력을 이겨보려고 안간힘을 써 가며 만월봉(滿月峰 1,281 m) 으로 오른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한 <동자꽃>
만월봉에 오르기 전 잠시 서쪽하늘에 조망이 터진다. 상왕봉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흰송이풀> - 이제 송이버섯이 나는 철이 되어 가나보네요
지금 우리가 여기에 있고요 ~ 구룡령까지 가려면 바쁘다구요 ~
옛날 어느 시인이 이 산 봉우리에 올라 동해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면서 시를 읆었는데 그런 연유로 이 봉우리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2년전 봄날에 저 아래 명개리에서 출발하여 이 만월봉으로 올라 응복산을 거쳐 산행한 일이 있다. 그 때는 백두대간이란 개념이 없이 자동차를 명개리에 주차하고 당일 산행으로 올랐었고 <눈개승마>와 <매발톱나무> 꽃 등 여러가지 귀한 야생화가 피었었다. 비는 잠시 그쳤지만 안개가 짙게 끼어 바다든 산이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응복산(鷹伏山 1,359 m)
총대장님에게 오후 3시까지 하산하기로 하고 뒤에 남았다는 별동대장의 보조에 맞춰 지체할 시간 없이 만월봉을 떠난다. 대간꾼 외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는데다 큰 나무가 없으니 덩굴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진행이 힘들다. 가끔씩 뭔가를 찾아 먹으려 땅을 헤집어 놓은 멧돼지 흔적이 눈에 띈다. 만월봉에서 응복산까지는 1.5 km 짧은 거리이지만 50분이나 소요되어 11시 40분에 도착했다. 구룡령까지 6.7 km 남았으니 일반적인 산행이라면 3시간 남짓 걸릴 것이다. 그러면 오후 3시쯤 하산이 가능할 것 같다.
너무 빨리 뛰어 왔더니 좀 힘이 드네요. 천년 묵은 주목 앞에서 큰형님 잠시 포즈를 취하고.....
<쉬땅나무>꽃도 예쁘네요.
응복산으로 오르는 짧은 오르막에 수풀을 헤치며 전진한다.
응복산(鷹伏山 1,359 m)은 산세가 마치 매가 업드려 있는 모양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지만 이와 달리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을 의미하는 ‘수리’에서 그 유래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즉, 새 중에서 제일 높이 나는 새를 독수리 또는 수리라 부르고 사람의 신체중에서 제일 높은 곳을 정수리라 하듯이 높은 산을 부를 때 수리산이라 불렀다 한다. 수리를 우리말로 ‘매’라고 하니 달리 ‘매봉’이라 불렀고 이를 한자로 써서 ‘응봉’으로 바뀌었다가 응봉산이 되었다. 지역에 따라 응복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아마도 이는 옛날 군사적인 필요에 따라 중요한 의미를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웃어도 웃는게 아닙니다요. 그래도 남은 거리가 얼마 안되네요. 힘을 내자고요.
<긴산꼬리풀>
명개리로 내려가는 갈림길 - 이곳에서 힘든 사람은 중간탈출을 할 수 있다.
멧돼지 놀이터인지 집단 훈련장인지 꽤 넓은 숲을 파헤쳐 놓았다.
마늘봉(1,126 m)
응복산에서는 명개리로 갈라지는 삼거리까지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통나무 계단이 물에 젖어 미끄럽다. 잠시 멎었던 비가 다시 내리려는지 먼데서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구룡령까지는 아직 6 km 남짓 남았다.
마늘봉(1,126 m)에서 구룡령까지는 4.78 km 다. 남은 거리가 마디게 줄어든다. 으르렁 거리던 천둥소리가 조용해졌다 싶더니 제법 강한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옷은 이미 젖었고 바지며 등산화는 진흙으로 범벅이 되었으니 이렇게 비가 계속 내리면 전자기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핸드폰과 충전기를 넣어둔 크로스백을 이미 찢어진 우비로 감싸 보지만 여의치 않다.
잎이 줄기를 감싸고 있는 <두메고들빼기>
<연령초>도 열매를 맺었다.
아미봉( 1,282 m)
산행을 하다보면 어떤 때는 자신의 몸보다 장비를 더 보호하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몸은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비옷으로 배낭을 덮고 자신의 몸은 비에 노출한 채 산을 오르는 큰 형님이 저체온으로 힘들어 할까봐 걱정이다. 더운 여름날이라도 비를 오래 맞으면 체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한다. 큰 형님이 옷 매무새를 바꾸고 우의로 몸을 가린다.
힘들게 오른 봉우리가 바로 약수봉이겠거니 했는데 정상에 오르니 이정표만 하나 덩그러니 서 있다. 구룡령까지 아직도 3.32 km 를 더 가야 한다. 이 곳이 구룡령과 응복산의 중간쯤에 위치한 아미봉( 1,282 m)이다. 아직 오대산 품속에 들어 있으니 산 이름도 불교식 이름이다.
아미봉 정상에서 - 근데 큰형님만 비옷을 안입었어유?
<회목나무>열매 - 이젠 모든 초목에게는 결실의 계절인가 ?
<가막살나무> 덜꿩나무에 비해 잎이 크고 입맥이 뚜렷하며 입자루가 길다. 그래도 구분이 쉽지 않다.
원래 우리나라 산이 그렇듯 저 곳이 정상이다 싶어 부지런히 올라가면 또 다시 더 멀찍이 더 높은 봉우리가 떡 버티고 서서 웃고 있게 마련이다. 아미봉에서 또 한참 내려갔다가 가파른 경사를 올라간다. 통나무 계단이 비에 젖어 미끄럽다. 산행을 시작할 때야 이런 길 쉽게 오를 수 있지만 산행을 마칠 때쯤 나타나는 이런 가파른 경사는 몸속에 남아 있는 진을 다 빼가고 만다.
힘겹게 올라 안부에 서니 오른쪽 끄트머리가 앞이 시원하게 뚫린 전망대다. 날이 맑으면 설악산 줄기와 양양시가 보인다고 안내판에 사진이 붙어 있으나 지금은 안개밖에 안보인다. 산의 고도가 높아서 그런건지 안개가 무척 심하다. 조망처 옆 구석에는 백두대간 중 사망한 동료(용인 산악회 이제윤 )를 그리워하는 용인 산악회회원들이 남긴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모처럼 만난 조망처에서 그저 마음속으로만 설악산을 바라본다. 쩌~기가 귀때기청봉이고 또 쩌~기가 대청봉이고 ...
인생은 한 번 왔다가 가는 소풍길이라오. 조금 앞서 간 사람을 그리워 하는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
진흙으로 범벅이 되었어도 빗물로 샤워를 했어도 행복하다. 행복해서 죽을것 같아요?
약수산에서 구룡령까지는 급경사다. 1.38 km 로 짧은 거리를 발에 날개 단 듯 빠른 걸음으로 내닫는다. 어디에다 저련 괴력을 숨겨놓았었는가 싶다. 미끄러운 길에 넘어질까 노심초사하며 걷다 보니 앞이 훤하게 트이고 좁은 풀밭길 너머로 버스가 보인다. 이번 산행 구간의 종점인 구룡령(九龍領 1,013 m)이다. 오전 2시 10분에 시작한 산행이 13시간 만인 오후 3시 40분에 끝이 났다.
한문희 총대장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젖은 몸을 씻고 식당에서 뒷풀이 중이라고 한다. 구룡령은 꽤나 높은 고개다. 해발 1,000 미터가 조금 넘는 고개이니 충청도에는 그런 높은 산이 없다. 경기지역에서도 1,000 미터가 넘는 산이라 하면 손으로 꼽을 수 있다. 양장구절(羊腸九折) 굽이굽이 길게 이어진 고갯길을 한참 달려서야 홍천군 내면에 있는 샘골휴게소에 도착했다.
약수산에서 급경사를 내려간다. 끝까지 조심 조심 내려가지만 미끄러운 나무계단에 넘어지고 만다.
이제 다 왔슈 ~ 동물이동 통로를 보호하기 위해 철조망으로 막아 놓았다.
오후 3시 40분 마침내 산행 날머리인 구룡령(九龍嶺)에 내려섰다.
늦게 하산한 별동대를 걱정하며 마중나온 한문희 총대장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