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학교 교사를 위한 기초 성경해석 방법
1. 성경해석 방법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
왜 교회학교 교사에게 성경해석방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가?
첫째로 교회학교 교사는 '성경말씀을 풀어 가르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은 성경해석에 대한 최소한의 기초지식들은 알고 있어야 한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듯이, 성경을 모르는 교사가 성경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교사가 공과를 위한 학습지도안 준비나 시청각을 준비하는 것들도 자신이 가르치고자하는 성경본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가 되어졌을 때의 일이다.
다음은 일반적으로 교사들이 공과를 준비하거나, 성경을 읽을 때 범하기 쉬운 실수들을 간추린 것이다.
1) 말씀을 혼잡케하는 해석(세상적인 학문, 논리, 정치이념들이 기준?)
2) 읽어보지 않고 연구부터 하는 해석(성경이 보조교재?)
"한국의 대부분의 성서연구 교재가 성서 그 자체를 텍스트로 하지 않고 필요한 구절을 뽑아서 교재를 만들고, 그 교재가 성서보다 더 중요한 텍스트로 쓰여지는데 문제가 있다. 이것은 한국의 성서연구가 가지는 가장 위험스러운 것이다"
은준관. "한국교회 성서교육의 현황과 문제분석"
3) 기복주의적인 해석(성경의 중심은 축복?)
4) 청중의 입맛에 맛는 해석(청중의 눈치를 살피는 기회주의적 해석?)
5) 전체맥락과 배경을 보지 못하는 편협된 해석(번지수를 모른다?)
6) 기록자의 본래의 의도와 다른 해석(자의적, 우의적, 신비적인 해석?)
7) 경솔한 비평적 해석(무식하면 용감하다?)
8) 문자 우상화에 빠진 율법주의적인 해석(율법으로의 회귀?)
둘째로 꼭 교육을 위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교회학교 교사나 성도들이 평상시 성경를 읽다가 보면 성경 본문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점이나, 은혜받은 본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당황할 때가 있다. 그래서 엉뚱하게 해석을 내리거나, 나름대로 '아마 무엇 무엇일거다'라고 생각해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고, 정도가 아주 심하게 되면 잘못된 이단사상에 젖어 들기도 한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성경해석의 문제인 것이다.
본 강의는 교사들에게 이러한 측면에서 성경읽고, 공과를 준비할 때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성경해석에 관한 최소한의 기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 마련하였다.
2. 성경해석을 바라보는 세 가지 입장
이상훈교수는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했다. 성경에 대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해석의 방향도 결정된다.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자유주의, 근본주의, 복음주의가 있다.
1) 자유주의적 입장
자유주의적(自由主義的)인 신학자들은 성경을 '단지 하나의 역사적인 문헌 중의 하나'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단지 '성경은 인간의 언어'일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에서는 고대의 다른 종교 문헌들과 같은 입장에서 성경을 바라보고, 해석하며, 성령의 초자연적인 개입등은 부인된다.
2) 근본주의적 입장
근본주의(根本主義)는 자유주의와는 반대로 성경은 '다만 하나님의 말씀일 뿐이며, 결코 인간의 언어는 아니다'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주의 입장에서는 성경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이나 연구 또는 해석을 배제한다. 그러나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주장처럼 지나친 문자주의(文字主義)는 오히려 문자 우상화(偶像化)로 빠질 위험이 있다.
3) 복음주의적 입장
복음주의(福音主義)는 기본적으로 성경을 '역사 속에서 인간의 언어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복음주의에서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것이 기록될 때는 인간의 언어와 문학적인 표현양식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해석작업이 필요하고 본다. 성경은 약 1500여년의 기간을 거친 다양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성경이 쓰여질 당시의 언어, 문화, 형식들을 담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이 성경을 해석할 때는 이 말씀이 지금의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당시-그곳(then and there)'에 해당되는 성경말씀이 '지금-여기(now and here)'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복음적인 성경해석을 위한 기본원칙
권성수교수는 성경해석의 원리를 소개하면서, 해석의 기본적인 원칙들을 제시했다. 권교수는 이것을 문맥(文脈), 사맥(史脈), 경맥(經脈)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1) 글의 흐름을 타는 것이 중요하다 : 문맥(文脈)
모든 글에는 흐름이 있다. 성경에도 흐름이 있다. 이말은 곧 문맥(文脈)을 타라는 말이다. 성경을 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문맥의 흐름 속에서 각 단어나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맥에는 근접문맥과 원접문맥이 있다. 근접문맥이란 '내가 지금 해석하고자하는 문장이나 그 문장 가까이에 있는 전후의 흐름을 말한다. 원접문맥이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전체 흐름을 보는 것이다. 크게는 성경전체의 흐름을 보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어떤 본문이든지 근접문맥은 성경전체의 맥락 속에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할 성경의 전체맥락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를 통한 구속사의 흐름'이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中心)으로 전체적인 통일성(統一性)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대해서 증거하는 것임을 밝히셨고, 수 없이 많이 구약의 말씀들을 인용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엠마오 마을로 가던 두 제자에게 눅24:27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24:27)
이러한 것은 초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사도행전에 보면 어떤 말씀으로 시작했든지 간에 그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로 집약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스데반의 설교나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 간다게에 복음을 전했을 때도,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서 시작해서 그것에 대한 해석의 결론을 예수 그리스도도 연결시켰다(행8: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행8:35)
특히 히브리서의 기자는 히브리서 전체 내용을 통해서 구약의 모든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구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기록되고 있음을 증거하였다. 예컨대 히11:26에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모세의 민족을 위한 고난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이라고 표현하면서, 구약의 모든 역사를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하였다(히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6)
그런데 이러한 문장의 맥락을 염두에 둘 때 주의할 것이 있다. 그것은 권성수 교수의 말처럼 흔히 근접문맥을 파악함에 있어서 가장 많은 실수는 단어를 문장이나 문단의 흐름과 관계없이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단어연구 중심의 성경해석과 어원(語原)을 지나치게 의존하는 성경해석에서 흔히 빚어지기 쉬운 실수 이다. 성경해석에서 중요한 것은 문맥 속에서 단어가 사용된 그 당시의 의미인 것이다.
보통 우리가 묵상(QT)를 할 때의 빠지기 쉬운 함정 중의 한가지가 바로 이런 것이다. QT를 하면서 전체 맥락을 보지 못하고, 한 단어나, 문장에 너무 의존하게 되면 자칫하면, 주관주의(主觀主義)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반대로 성경의 전체맥락은 파악하면서도, 개인적인 깊은 묵상이 없음으로해서 말씀이 나와는 상관없는 죽은 말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성경통독이 마치 산맥의 흐름을 보든 것처럼, 전체 구도를 보는 것이라면, 개인묵상(QT)는 숲 속에 들어가서 자세히 살피고, 그 나무들을 취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교회학교 교사들은 개인묵상과 통독(通讀)을 통해서 성경의 전체를 함께 볼 수 있는 노력을 병행(竝行)해야 한다. 언제든지 한쪽으로 치우지는 것은 성경해석에 있어서 균형을 잃을 위험이 있다.
(2) 역사적인 맥락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 사맥(史脈)
성경은 하나님께서 저자들을 통해서 인간의 역사(상황) 속에서 주신 책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맥, 역사적인 배경과 문화들을 이해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이것을 사맥(史脈)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성경의 역사적인 맥락을 이해할 때, 비로서 지금 여기에서의 올바른 적용도 가능하게 된다. 교회학교 교사들은 이것을 위해서 이스라엘의 역사적 배경이나, 지리적인 환경등을 기본적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다음 도표는 성경의 역사와 세계역사의 흐름을 비교정리한 것이다.
(3) 구속사적인 흐름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 : 경맥(經脈)
무엇보다도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어떻게 진행되고, 성취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종말(終末)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기록하고 있다. 필자는 이미 앞에서 성경의 전체문맥을 타야한다는 것을 언급했고, 또한 그 전체 문맥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사의 흐름'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은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 구속사(救贖史)라고하는 성경의 전체흐름을 놓켜서는 안된다. 흔히 구약은 '오실 메시야', '신약은 오신 메시야'에 대한 기록이라고 하는 말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의 흐름을 경맥(經脈)이라고도 한다.
4. 요한 웨슬레가 제시한 구체적인 성경해석방법
지금까지 소개한 성경해석의 필요성과 세 가지 입장들, 그리고 복음적인 성경해석을 위한 기본원칙들을 바탕으로, 이제 구체적인 성경해석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여기서 소개하는 기초적인 성경해석 원리(또는 성경을 보는 시야)는 저명한 웨슬레 신학 연구가인 '윌리암 아네트(W. Arnett)' 박사가 그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웨슬레의 성경 해석의 중요한 원리를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 본 필자가 교회학교 교사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몇 가지 부연 설명들을 첨가하였다.
여러가지 성경해석 방법 중에서도 이 강의에서 요한 웨슬레(John Wesley, 1703-1791)의 해석 방법을 선택하였다. 본 강의에서 굳이 웨슬레는 택한 것은 다음과 같은 나름대로의 이유는 첫째로 성경을 보는 웨슬레의 시각이 종교개혁(宗敎改革)자들을 비롯한 일반적인 복음적(福音的)인 개신교 전통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특이한 해석방법이라 할지라도, 복음적이지 못하면 그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둘째로 웨슬레의 방법은 복음적인 동시에, 신학적인 배경이 적은 교사들이라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웨슬레는 신학자 이기 이전에 열정적인 전도자(傳道者)였고, 인정받는 목회자(牧會者)였고, 또는 복음적인 설교자(說敎者)였다. 아무리 뛰어난 해석법이라도, 너무 전문성을 띠면서 어렵다면, 교사들에게 적용시키기가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 성결교회가 웨슬레의 신학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1) 본문의 문자적인 의미을 중시하며 해석한다.
웨슬레는 성경를 해석함에 있어서 그 본문의 의미가 모호하지 않는 한 본문의 문자적(文字的)인 의미에서 이탈하지 말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 성경을 읽다가 그 문장 자체가 명확하게 무슨 의미인지를 말하고 있다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이것은 성경의 본래 원어(히브리어, 헬라어)의 의미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회학교 교사들이 성경원어를 안다고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럴 경우에는 영어 성경(NIV, RSV, NRSV, NASB등)을 참조하거나, 아니면 한글 번역 중 여러 가지 (예컨대 개역, 공동번역, 표준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현대어 성경 등)을 활용하라는 것이다(이러한 성경들에 대한 자료는 한국컴퓨터선교회, 대한성서공회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처럼 다른 번역성경과 비교하면 원래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우리의 언어로 번역할 때는 원문(原文)에 최대한 충실하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같은 구절을 여러 가지 성경를 대조하여 보면 쉽게 어려운 부분이 이해가 될 때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2) 전후 문맥(文脈)과 연관시켜서 해석한다.
웨슬레는 성경의 구절들을 고립된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전후 문맥에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근접문맥). 성경에서 한 절씩 따로 볼 수 있는 예외적인 책이 있다면, 그것은 '잠언' 정도가 될 것이다. 여타의 다른 책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만약 교사가 공과를 준비할 때 해당된 본문이 "그러므로", "그러나", "그리고"등과 같은 말로 시작되고 있다면, 그 본문은 그 앞의 내용과 필연적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교사는 '왜 그러한 말이 등장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반드시 앞 부분을 읽어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것을 무시하고 해석할 경우에는 그 뜻이 왜곡 될 수 있고, 때로는 정반대의 해석을 할 수도 있다. 예컨대 엡4:30에 보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만을 본다면 성령을 근심케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전후 문맥을 보면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의 삶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흔히 이단(異端) 교파들이 이것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필요한 말씀을 뽑아서 연결한다. 예컨데 행17:2에서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라는 말씀이 있다.
"2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행17:2)
여기에서 "자기의 규례대로(As his custom, 자기의 습관, 관례대로)"라는 말을 '안식교나 하나님의 교회(안상홍증인회)'같은 이단들은 구약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회장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3절에 보면 왜 회당에 들어갔는지를 알 수 있수 있다.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행17:3)
다시말해서 사도 바울은 율법(안식일 등)을 지키기 위해서 안실일날에 회당에 간 것이 아니고, 모든 율법(구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증거하기 위해서 간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전파할 목적을 위해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다. 문맥상 여기서의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 들어가서(2)"란 말은 유대교의 규정처럼 안식일을 준수하기 위해서 들었갔다는 말이 아니고, 사도 바울 '개인이 유대인에게 전도하던 습관대로' 라는 말이다. 또한 본문이 분명히 '자기의(his)'라고 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유대교(또는 구약)의 규례대로'라고 적지 않았다. 실제로 바울은 평상시에도 유대인이 모이는 회당을 전도의 장소로 사용하여 왔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과같은 모습으로 이방인에게는 이방인과 같은 모습'으로 선교방법을 행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회당에 모이기 때문에 안식일에 회당에 간 것이다. 사실 바울은 평상시에도 유대인들이 모인 곳이면 서슴치 않고 찾아갔다. 그런데 안식교나 하나님의 교회(안상홍증인회)에서는 그것을 구약의 율법준수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모두 어느 특정 구절만을 뽑아서 아전인수(我田引水) 방식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정말로 모든 성도들이 구약의 안식일과 율법들을 지켜야 한다면, 왜 사도 바울이 정식적을 다른 목회서신들을 통해서 이것을 직접적(直接的)으로 말하지 않았겠는가? 오히려 그는 율법준수를 강요하는 사람들에 대항해서 피나는 싸움을 싸웠고, 행15장의 예루살렘 회의에서도 이방인에게 몇 가지를 제외한 율법을 준수를 강요하지 않았다.
3) 성경은 성경와 비교하면서 해석한다.
웨슬레는 어려운 부분의 해석에 있어서 다른 성경책의 병행(竝行) 구절들을 찾아서 병행되는 구절들을 성령의 도움으로 비교하면서 해석하였다(원접문맥). 이것은 성경의 중심이 그리스도이므로 각 성경은 내용은 자연히 통일성(統一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교사들이 이를 위해서는 성경의 관주 활용하거나 공관복음서 비교 대조 또는 영어 성경들을 이용할 수 있다. 실례로 마7:11에서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그런데 눅11:13에서는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성령이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최근에는 주석성경들이 많이 보급되어서, 사복음서를 비교대조한 부분들을 잘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심지어는 인터넷상에서도 자료를 제공하고 있고 있으므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4) 체험과 전통에 비추어 해석한다.
웨슬레는 신자가 하나님의 일을 체험하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그는 성경을 성경으로 비교하면서 연구해도 아직 어떤 의심이 남아 있으면, 하나님의 일을 체험한 목회자에게 의뢰할 것을 말했다. 그는 원칙적으로 성도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영감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의 말씀과 일치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웨슬레는 개인의 체험보다는 공동체(共同體)의 체험을 더 중요시하였다. 공동체의 체험이란 곧 교회의 전통과 초대교회의 결정 등을 말한다. 예컨대 삼위일체에 대한 초대교회들의 결정이나 사도신경의 고백같은 것들은 그 실례일 것이다.
5) 이성의 도움을 받되, 믿음의 유추에 따라 해석한다.
웨슬레는 이성(理性)은 이해와 판단과 논술의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성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을 무조건 긍정한 것도 아니다. 웨슬레가 말하는 이성은 성령의 인도함를 받는 이성을 말한다. 그는 성령 아래에서만이 비로소 이성은 복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이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로서 성령 안에서 고상하게 사용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무조건 이성을 마치 하나님과 대적하는 그 무엇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얻어 복음을 바로 이해하고, 해석하고, 가르치는 도구로 이성를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웨슬레는 성경해석에 있어서 귀납적(歸納的)인 접근방법을 사용했다. 이 분야에서 그의 방법은 선구자적이다. 그는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관찰, 해석, 적용'의 단계를 사용하였다. 웨슬레의 이러한 방법은 지금에 와서는 거의 보편적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교사들이 공과를 준비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을 때에도, 이 귀납적인 방법은 적용된다. 예컨데 성경 본문을 읽을 때, "왜?"라는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왜 그랬을까?', '왜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저자의 의도가 무엇일까?' 같은 것들이다. 어느 책이나 글이든지 거기에는 말하는 사람의 목적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그것을 찿을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웨슬레의 시작처럼 본문의 전후 문맥 파악이 중요하고, 성경의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때로 교사가 성경을 해석하면서,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상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을 때 자신이 성경 속의 인물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러한 시도들은 '왜?'라는 질문의 답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성경의 상황 속으로 자신이 들어가면 그 상황과 말씀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다가와 닿게된다. 예컨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거나, 병을 고치시는 장면, 또는 비유를 말씀하실 때 말씀을 듣는 그 현장에 여러분이 제자들과 함께 있다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 감격이 얼마나 크겠는가? 만일 디모데서와 같은 바울서신들을 읽는다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디모데가 되어 바울의 권면을 들어보기 바란다. 때로는 여러분 자신이 감옥에 갇힌 바울이 되어서 성경을 읽어보기 바란다. 그러면 성경 말씀은 살아서 꿈틀거리기 시작할 것이다. 여러분의 가슴에 세찬 물결이 되어 몰려올 것이고, 거기에 성령이 더 깊은 은혜를 더하게 할 것이다.
6) 실제성을 중요시하며 해석한다.
웨슬레는 성경 해석은 철학적인 사변이나 복잡한 추론을 피하고 쉽고 실제적(實際的)으로 해야 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성경 해석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뿐 아니라 실생활(實生活)에 적용(適用)되게 함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웨슬레의 귀납적인 성경해석방법에서 '적용'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성경을 읽으면서 "이 말씀에 비추어서 나는 이제 어떻게(How) 할 것인가?"라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공과의 본문의 성경이 2000년 전 '그때-거기서'의 상황이라면, 이것이 '지금-여기에서' 나와는 어떤 관계가 있고,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때 성경이 죽은 말씀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이 된다.
7)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해석한다.
성경의 저자는 바로 성령 자신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종교다원주의자들 또는 타종교인들은 성경말씀에 있어서 성령의 감동하심을 무시하거나 격하한다. 그러나 벧후1:20-21의 말씀처럼 이 말씀는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며, 성령께서 기록하셨으므로, 성령께 의지하면서 읽고 해석해야 한다.
"20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0-21)
5. 강의를 마치면서
이제 이 강의를 마치면서 몇 가지 권면을 하고자 한다. 말씀에 온전히 서는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을 통독(매일 읽고)과, 묵상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을 읽는 것은 산맥을 보는 것과 같고, 묵상을 숲을 보는 것과 같다. 특히 성경을 전체적으로 읽는 것은 전체문맥을 이해하고, 통일성을 갖는데 좋다,. 그리고 귀납적인 묵상훈련(관찰, 해석, 적용)은 성경말씀이 '그때-거기서'의 말씀으로 뿐만 아니라, '지금-여기에서'의 말씀으로 적용하게 만든다. 참고로 다음은 웨슬레가 권면한 성경을 읽을 때 가질 바람직한 태도이다.
"성경을 읽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일을 이해한는 방법이다. 아침저녁으로 명상하라. 그리하면 최선의 지식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 곧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지식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이끌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먼저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이 결과로서 여러분은 성경에 기록된 거룩한 모든 성품을 즐겁게 체험하면서 여러분을 거룩해 지라고 부르신 그대로 여러분도 모든 언어와 행실에 있어서 거룩해질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 응답이 되기를 바란다면 성경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읽으라고 권면하고 싶다.
1) 가능하면 성경을 상고하기 위하여 적은 시간이나마 아침저녁으로 시간을 따로 정하라.
2) 시간이 허락하면 매번 구약에서 한 장 그리고 신약에서 한 장을 읽으라. 시간이 허락하지 않으면 한 장만 읽든지 또는 일부만 읽으라.
3) 성경를 읽을 대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대로 행하겠다는 결심 그 한 가지 관심을 기지고 읽도록 하라. 또한 하나님의 그뜻을 알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하여야 한다.
4) 항상 신앙의 유추와 성경의 기본적인 교리들 곧 원죄, 이신득의, 중생, 성결 같은 교리들 간의 연결과 조화에 유의하라.
5)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기 전에 진지하고 간절하게 기도하라. 성경는 성경를 주신 성령을 통해서 만이 이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 읽기를 마친 때에도 기도하라. 이는 우리가 읽은 것들이 우리 마음에 기록되기 위해서 이다.
6) 또한 읽는 동안에도 가끔 멈추어 읽는 말씀에 비추어 자기 자신의 마음과 생활에 관하여 검토하여 본다면 유익이 될 것이다. 읽는 가운데 빛을 받으면 최대한 적용하고, 결심한 순간부터 즉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됨을 알 것이다"
조종남,[요한웨슬레의 신학], pp.73-74에서 재인용
둘째는 성경에 대한 주변서적도 참고하라(성서의 배경, 풍속 등)
셋째는 최근에는 주석 성경도 많이 등장하여 도움을 주고있기 때문에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영어, 다른 번역등 활용).
넷째는 성경공부를 준비하기 전에 먼저 해당 본문을 스스로 묵상하고, 적용하기 바란다.
다섯째는 학습지도안을 꼭 작성하라는 것이다(관찰, 해석, 적용을 기본 틀로 하고, 그 위에 각종 시청각이나, 다양한 전달, 표현 방법들을 옷입히라).
참고도서
권성수,[성경해석의 원리와 실제]
이상훈,[해석학적 성서이해],서울:대한기독교서회,1992.
W.G. 맥카운,[웨슬레신학에 의한 성서해석학],이상훈역, 서울:소망사,1989.
조종남,[요한웨슬레의 신학],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1990.
은준관,"한국교회 성서교육의 현황과 문제분석"[제7회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자
신학세미나 강의집], 서울 :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1987.
폴틸리히,[조직신학II]김경수역, 서울:성광문화사, 1992.
노우호,"통독을 통한 쉬운 성경해석의 길"[목회와 신학]1996년 3월호.
김상수 목사(서울제일교회 교육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