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로마제국이라는 이름은 현실이기보다는 이념이자 상징에 가까웠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도 속에만 존재하는 기묘한(?) 제국이었다. 그 전성기 판도는 오늘날의 독일 전역, 오스트리아, 체코, 벨기에, 슬로베니아,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스위스, 네덜란드의 일부, 프랑스의 일부, 이탈리아 북부에 이르는 드넓은 영역에 걸쳐 있었지만, 한 번도 내부적으로나 대외적으로 단일한 주권과 통치권을 행사한 적이 없었다. 사실상 독립적인 수많은 공국과 왕국의 느슨한 연방체에 가까웠던 것이다.
오토 시대의 르네상스
요한 12세를 몰아내고 오토 1세가 즉위시킨 레오 8세가 965년 세상을 떠났다. 이에 오토 1세는 요한 13세를 교황으로 즉위시켰지만 로마인들은 요한 13세를 쫓아냈다. 오토 1세는 다시 이탈리아로 진격해 로마는 물론 남부의 비잔티움 제국 영역까지 진출했고, 비잔티움 제국과 협상하여 972년 자신의 아들 오토 2세와 비잔티움의 공주를 결혼시켰다. 서방의 새로운 로마 제국과 동방의 로마 제국 사이에 이루어진 정략혼인이었다. 이듬해 오토 1세는 세상을 떠났다.
오토 1세 치세의 신성로마제국은 오늘날 독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중동부 지역에 안정을 가져왔고 이후 유럽에서 하나의 유력한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오토 1세와 그 후계자들이 이룩한 정치적 안정 속에서 문예 부흥의 기운도 일어났다. 오토 1세가 세우거나 재건한 수도원 학교를 중심으로 라틴어에 기반을 둔 기독교적 문화가 비교적 흥성했고, 채식(彩飾) 사본 제작이나 전례서(典禮書) 편찬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라틴어 운율에 따른 우화나 기독교적 요소와 세속적 요소가 혼합된 라틴어 문학도 등장했고, 비잔티움 제국과의 교류에 영향 받은 새로운 건축과 예술도 싹텄다. 이러한 전반적인 기풍을 가리켜 오토 르네상스 또는 오토 왕조의 르네상스(Ottonian Renaissance)라 일컫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