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 탐방기 <동해 파도소리 들으며> 손 진 담
해맑은 사월의 아침, 대덕과우회원을 태운 승합차는 연두색 산야를 가로지르는 경부고속도로를 줄달음 쳤다. 대구를 지나면서부터 시장기가 발동하여 봉고는 영천IC로 빠져나갔다.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포항할매 곰탕집에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서민갑부“ 할매(70세)를 모시고 기념촬영까지 했다. 경주 가는 국도변에 명소인 만불사(萬佛寺)에 들러 일 억 년 전 화산암층과 수백의 불상 도열을 바라보았다. 신도 수가 수천 명이 된다니 머지않아 불상 만개가 들어설 날이 오겠지요. 아화를 지나고 건천읍 신평리에 있는 주사산아래 여근곡(女根谷)을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다. 최근에는 이 동네에 성 테마 박물관까지 등장했으니 지형 덕을 단단히 보고 있었다.
경주 시내에 들어서자 동궁(東宮)과 월지(月池)가 경로 과학기술인들을 맞이하였다. 야경도 좋지만 햇살 아래 드러난 연못의 생태와 건축물이 신라 천년의 운치를 더해주었다. 공사 중인 반월성은 뒤로하고 일정교(춘양교)를 건너 하류의 월정교(月精橋)로 갔다. 경주 남산에서 발원한 남천(문천)이 월성을 감돌아 교동으로 흘러나오는 지점에 신라 시대 다리 월정 교지가 발견되어, 10년 공사 끝에 멋들어지게 복원이 완료된 상태이다.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를 집자(集子)하여 현판을 만들었으니 그 또한 신라의 다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요석 공주와 원효 대사의 사랑 이야기가 얽힌 징검다리도 이 근처라 한다.
교동의 최 진사 댁에 들러 후손으로부터 상세한 해설을 들었다. 임란 시 의병장인 최진립 장군의 후손으로, 만석꾼 부자이면서도 큰 벼슬을 탐내지 않고 ‘노블리스 오브리제’를 실행한 최씨 가문에 경의를 표했다. 온 김에 민속주인 경주법주를 사러 가게에 들렀다가 현대판 선녀 한 분을 만났다. 계산을 잘못했다고 멀리까지 쫓아와 거스름돈을 건네준 아름다운 그녀는 아마도 최 진사 댁의 깨끗한 피를 이어받은 것 같았다. 숙박지인 감포로 가는 길은 신작로가 생겨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달하였다. 넘실대는 동해의 파도가 회원들을 벌써 취하게 하였다. 해안 공원에 인접한 대도식당은 숙식을 겸하고 있어 여행객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석식으로 나온 싱싱한 동해의 생선회를 두고 준비해간 경주 법주가 위력을 발휘하였다. 저녁 밤공기가 파도에 실려 싱그러운 냄새를 풍기고, 회원들은 삼삼오오 방파제길로 산책 나갔다.
70대 중년 팀은 밤공기를 가르며 감포 번화가(?)로 나아갔다. 경주법주 한 병이 부족해서인지 눈길이 술집으로 향하였다. 이리저리 하다가 ‘충청도 아줌마’ 간판이 눈에 들어오자 4명의 눈치가 통일되었다. 출입문은 좁았지만 반갑게 맞아주는 여주인은 빅마마였다. 둥근 탁자에 주안상 차려놓고 정담을 나누는데, 서비스 좋은 마마도 끼어들어 웃음이 좁은 홀에 넘쳐났다. 젊은 시절 파란만장 끝에 이곳에 정착한 아줌마는 감포 앞바다의 파도와 정이 들어 떠나지 못한 지가 어언 50년이 되었답니다. 취기가 오른 70대 노인네들은 젓가락장단에 맞춰 흘러간 노래<충청도 아줌마>를 합창하였다. 이어서 <청춘을 돌려다오>를 누군가 절규하듯 불러댔다. 잠시나마 즐거운 추억의 밤이 재현되었다.
아침 일찍 동해 일출을 보러 주상절리가 발달한 읍천리 바닷가로 달려갔다. 지금부터 2천만 년 전 (제3기 중신세) 동해가 열릴 즈음, 흘러나온 용암이 냉각 수축하여 형성된 주상절리(柱狀節理)는 너무나 질서 정연하여 멋진 경관을 이루었다. 제주도 서귀포 바닷가의 우뚝 선 주상절리가 남성적이라면, 이곳에 누워있는 부채꼴 주상절리(천연기념물 제536호)는 선녀의 몽환적인 자태라 할까. 어쨌든 세계적인 주상절리 노두이다. 해안초소가 있던 시절에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늦게야 알려졌지만, 지금은 동해안의 최고의 지질명소(경주 주상절리 파도 소리길)가 되었다. 모두 일출과 함께 펼쳐지는 주상절리의 오묘한 자태를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덕과우회 과학탐방 기념사진도 놓칠 수 없었다.
조식 후 우리 팀은 북쪽 해안도로(31번 국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검은 바위에 부셔지는 하얀 물거품을 보니 선경이 따로 없었다. 정다운 어촌마을 몇 개를 거쳐 구룡포에 도달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어업 전진 기지인 이곳은 꽁치 과메기로 유명하지만 백 년 전 일본인 가옥거리(근대문화 역사거리)가 보존되어있어 외지인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많은 일본의 어부들이 구룡포로 이주하여 살았고, 전성기에는 그 수가 300가구에 달했다고 한다. 이거리가 <여명의 눈동자>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데다 하시모토 가옥, 추억상회, 느린 우체통 등 볼거리가 많았다. 가이야 커피점에서 맛있는 라떼를 즐기며 환담을 한 다음 일행은 다음 목적지인 호미곶으로 이동하였다.
한반도 호랑이 형국의 꼬리에 해당된 곳이 호미곶(虎尾串)으로 이곳 대보리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호미곶 등대와 동양 최초의 등대 박물관이 있다. 해맞이 광장에는 새천년 밀레니엄 센터가 있고, 바닷물위로 우뚝 솟아있는 <상생의 손>은 카메라의 세례를 받기에 충분한 구조물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마침 돌 문어 축제가 열리고 있어, 인근 주민들이 많이도 몰려있었다. 필자는 50여 년 전 이곳에서 보낸 공군시절이 생각이 나서, 구만리 텐트에 가서 노인들께 인사를 하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깨끗한 바위에 서식하는 문어 오징어 전복 미역 등은 옛날부터 그 맛이 천하일미라, 우리들도 그냥 갈 수 없어 큼직한 돌 문어를 주문해 막걸리 안주로 실컷 즐겼다.
구만리 대동배를 거쳐 연오랑세오녀 전설이 깃들어있는 호미곶 둘레 길에서 바라본 영일만과 포항시의 60년대 그 모습은 간 곳 없고, 엄청난 규모를 과시하는 세계적인 경제 산업도시가 되어있었다. 지난 50년간 거친 파도를 감내하며 일구어낸 영일만의 기적은 튼튼한 국방력과 과학기술력의 결과임을 감안할 때, 대덕 과우회원의 일원이자 이곳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던 필자로서 마음이 마냥 뿌듯하였다. 이여행에서 마지막 식사는 포항 죽도시장에 위치한 '영천 물회 식당'으로 정하다 보니, 어제 첫 식당인 영천중앙시장의 '포항 할매 곰탕'과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2018년 봄날 대덕과우회원의 과학문화탐방은 맑은 날씨, 푸른 바다, 녹색 산야, 풍성한 눈요기와 먹거리에다, 의미 있는 대화로 일정을 마무리하고 무사히 연구단지 운동장에 도착하였다. 끝으로 박성열 회장님과 김웅기 사무국장님의 애정이 어린 노고에 감사 박수를 보냈다.
2018.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