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직지(直旨)》 - 김진명
작가 김진명은 196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대표작으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천년의금서〉,〈1026〉,〈사드〉,〈고구려〉,〈글자전쟁〉, 〈미중전쟁〉〈나비야 청산가자〉등이 있고, “현대과학의 성과에 역사적 상상력을 더하여 이제 「직지」와 한글이 지식혁명의 씨앗이 되는 과정을 추적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밝히고 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책을 소개했다. (표지에서)
“최고(最古)의 목판 다라니경,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직지」, 세계의 언론학자들이 꼽는 최고(最高)의 언어 한글, 최고(最高)의 메모리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지식 전달의 수단에 우리가 늘 앞서간다는 사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한국문화가 일관되게 인류의 지식혁명에 이바지 해 왔다는 보이지 않는 역사의 긍지를 느끼게 된다.”(머리말에서)
「직지」는 고려 말인, 1377년 충주(忠州) 흥덕사(興德寺)에서 두 권 인쇄되었으나 상권은 소실되고 하권만 프랑스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직지」의 본래명칭은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 佛祖直旨心體要節)’로 ‘백운화상이 마음의 실체를 가리키는 선사들의 말씀을 모아 편찬한 책’정도로 해석되고, 「직지」는 구텐베르크 「42행성서」보다 78년 앞선 것으로, 2001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최근에 「직지」와 관련하여 바티칸 수장고에서 1333년 당시교황 요한 22세가 고려왕(충숙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양피지 편지가 발견된 사실이 있었는데 이것은 고려시대에 교황청과 고려 간의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교황의 편지가 주목받게 된 데는 「직지」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이전에 이미 유럽에 전파되었을 것이라는 가능성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구텐베르크 박물관 측과 독일 학자들은 직지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제조방법이 다르다고 주장하며 그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 학자들은 「직지」가 유럽으로 전파됨에 따라서 구텐베르크에게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들 학자들은 「직지」의 인쇄면과 구텐베르크 성경의 인쇄면을 전자현미경으로 비교한 결과 놀랍게도 구텐베르크의 성경에서 「직지」활자주조법의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났다는데 있다. 이런 사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작가는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소설은 30년 베테랑 형사반장까지도 깜짝 놀라게 만든 엽기살인사건이 서울 한복판 주택가에서 발생하면서 시작된다. ‘드라큘라’에 물려 피를 빨린 듯 보이는 네 개의 이빨자국이 목덜미에 박혀있고 칼이 아닌 창끝에 가슴을 찔려 등까지 관통한데다 귀를 잘라낸 피해자의 시신은 예사로 볼 수 있는 그런 주검이 아니었으며 피살자는 고려대학교 언어학과 교수로 퇴직한 전형우. 그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입힌 적도 없는 모범적 가장이었다. 그렇다면 살해된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사건 추적에 나선 중앙일보 김기연 기자는 전 교수 부인인, 미망인으로부터 전 교수가 평소에 운전을 좋아하지 또 운전을 잘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나서 차량 내비게이션을 확인하던 중에 전 교수가 최근 몇 차례 청주를 다녀온 사실을 확인하고 피살자 휴대폰에 찍힌 청주 서원대학교 김정진 교수를 찾아가 만남으로써 피살된 전 교수가 직지와 관련하여 ‘직지세계화 추진위원회 연구자모임’(이하 연구자모임)으로부터 1333년 쓰진 교황 요한 22세의 편지 번역을 자문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김정진 교수 등 연구자모임 회원들은 교황의 편지는 「직지」가 유럽에 전파된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 믿고 교황의 편지 해석을 전 교수에게 의뢰하였던 것이었으나 전 교수는 그럴 가능성을 부정하는 해석을 내놓음으로써 회원들로부터 불신과 분노를 싸게 되어 살해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김 기자는 범행동기가 나타남에 따라 연구자모임 회원들을 용의선상에 올리게 되지만 범행동기와 살인현장이 전혀 매치되지 않는 모순적 상황에 고민하다가 범행수법으로 보아 범인이 외국인이거나 외국단체의 범행이 아닐까하고 의심하게 되고, 전 교수 서재에서 단서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남프랑스 여행안내서와 책에 적힌 ‘스트라스부르 대학 피셔’ 교수와 ‘아비뇽’의 ‘카레나’라는 이름이었다. 김 기자는 전 교수가 계획했던 동선을 따라서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프랑스로 날아갔다.
김정진 교수와 피셔 교수를 만난 김 기자는 그가 전 교수와 로마대학 동문으로 이메일을 주고받은 사실은 확인했으나 전 교수의 죽음과 관련한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다. 다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직지」와 구텐베르크가 찍어낸 42행성서를 현대과학으로 비교한 것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는데 그것은 이미 전 교수에게 메일로 보낸 것으로 “제가 사용한 방법은 전자현미경이었습니다. 7,200배로 확대 가능한 3D전자현미경으로 구텐베르크 43행성서 표면을 관찰한 결과, 표면에서 모레 알갱이 흔적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것은 독일이 주장하는 펀칭 방식이 아닌 직지와 같이 주물사주조법을 사용해 성경을 찍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입니다.
이런 특징들로 미루어 봤을 때 구텐베르크의 초기 인쇄물은 고려 혹은 조선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정하래야 부정할 수 없습니다.”
피셔 교수가 전 교수에게 보낸 메일이 위험이 될 수 있느냐는 김 기자 질문에 피셔 교수는 단호히 ‘아니요.’라고 대답했고 위험요인이 있다면 자신이 가장 먼저 위험했을 것이라고 했다. 김 기자 일행은 당시 교황이 머물렀던 아비뇽으로 가서 카레나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떠난다.
당시 프랑스의 힘에 의해 아비뇽에 유패 되어 있었던 교황의 흔적도 ‘카레나’라는 사람도 찾을 수 없었던 김 기자는 영국 작가로 코난 도일처럼 〈살인의 역사〉책을 쓴 ‘펨블턴’을 찾아가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카레나라는 이름은 실제 하지 않고, 그는 과거에 죽었으되 직지와 교황청 양쪽에 걸쳐있었을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면서 전 교수의 죽음은 그가 로마대학 유학시절 교황청 지하 서고에 보관되어 있던 교황청의 비밀문서를 발견하고 또 그것을 밝힘으로 인해 피살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면서 범인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구태여 범인을 잡을 필요도 없는 사건일지 모른다고 했다. 그것은 갱단의 두목이 수백 명의 부하를 시켜 사람을 죽이게 했을 때 실행자를 잡는 건 그리 큰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러면서 죄인을 살해 후 귀를 자르는 형벌은 오직 로마 종교재판소에서만 행해졌고, 17세기 이후 교황 클라멘스 9세가 ‘신의 목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거’라는 교시를 내린 후 그 형벌은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그런데 전 교수 살해범은 귀를 자른 형벌을 가한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이 기쁨이든 고통이든 몰입은 대상과 자신을 하나로 일체화한다는 점에서는 같은데 예부터 선지식들은 몰아일체(沒我一切)를 인식의 최고 단계로 두고 이런 경지를 얻기 위해서 때로는 육체를 희생하기도 했던 것이다.”한국으로 돌아온 김 기자는 혼자 조용히 칩거해 사건에 몰입했다.
살해현장에 남아 있던 피해자의 귀는 국내 다른 살인현장에서는 본적이 없기에 범인은 한국인이 아닐 거라는 추측, 목덜미에 난 네 개의 구멍은 누군가 금속으로 만든 송곳니를 목에 박고 피를 빨았다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 결과, 창에 찔린 시신은 한국에서의 살인사건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그 무엇... 〈살인의 역사〉저자 펨블턴을 만남으로써 귀를 자르는 형벌은 신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단에게 가해지는 종교적 징벌의 상징, 가슴을 관통한 창과 목의 흡혈은 중세부터 시작된 전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전 교수가 여행안내서에 남긴 스트라스부르 피셔 교수를 만나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가 직지와 같은 방법으로 주조되었다는 것은 직지가 구텐베르크에게 전해져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커다란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하지만 전 교수 살해범을 찾고자 시작되었던 이번 추적은 범인을 찾는 일 외에 깊숙이 감추어진 교황청의 비밀이 무엇인지로 확장되었고, 이제부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던 김 기자는 카레나가 누구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전 교수는 어떻게 카레나를 알게 되었는지 그 경로를 밝혀야 한다는데 생각이 미쳤다.(2.11)
《직지》2권은 ‘카레나’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시작되는데 은수라는 이름의 그녀는 세종 시대에 아버지와 같이 금속활자를 만들던 주제소에서 일한 앳된 소녀였다. 그녀는 세종이 백성을 위해 ‘한글’이라는 새로운 글자를 만들고 금속활자로 많은 책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반대한 세력들에 의해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본 후, 자신도 추격을 피해 명나라로 도망가게 되고 거기서 교황청의 신부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다시 로마로 가게 되고, 죄수들을 돌보는 일을 하다가 교황 앞에서 금속활자 제조법을 시연을 해 보이기도 하나 결국은 마인츠로 보내진다.
마인츠라는 도시는 성경 등 고전을 필사경하는 필경사들이 많이 살았고 그곳에서 그녀는 금속활자의 존재를 알리려 하다가 오히려 갖은 고초와 죽음일보 직전에 이르게 되는데, 거기도 조선과 마찬가지로 지식이 널리 퍼져 자신들만의 기득권을 잃은데 대한 두려움을 느낀 교황과 추기경들의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와중에 선각자 한 사람을 만났고 그를 통해 구텐베르크를 알게 되었으며 그에게 금속활자 제조법을 소개하니 구텐베르크 역시 죽음을 각오하고 금기시된 42행성서를 대량으로 찍어냄으로써 구텐베르크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 2권의 줄거리다.
탐정 ‘펨블턴’은 스트라스부르 대학 피셔 교수가 자신의 업적을 과장하기 위해 논문을 바꿔치기 하면서 전 교수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피서 교수는 교황청에 의해 “요하네스 폰 피셔를 파문하노라”는 선고를 받게 되고 스스로 자살하고 마는데 이로서 이 소설은 끝이 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는 김정진 교수가 김 기자를 초청해 청주의 유력인사들 앞에서 사건과 직지의 연관관계를 밝혀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고 이 자리에서 김 기자가 한 이야기가 결론 같다고 생각되어서 옮겨 본다.
“청주 흥덕사에서 직지를 찍었고, 초정약수터에서 세종대왕이, 복천암에서 신미대사가 한글을 마무리했으니 청주는 직지와 한글을 모두 키워낸 우리겨레의 문화인큐베이터입니다. 대한민국의 그 어느 도시보다 민족의 문화예술에 이바지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위대함이‘최계최고’같은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직지와 한글에 담긴 인류의 위대한 지성, ‘나보다 약한 사람과의 동행’이라는 정신을 보아야 합니다. 저의 애기는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김 기자는 청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버스 차창을 내다보며 처음 사건을 접한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를 돌아보고, 세낭크 수도원의 보랏빛 라벤더 정원에서 만났던 카레나(은수)를 그리며 그녀의 삶을 관통했던 한마디를 가만히 입 밖으로 내보냈다.
‘템푸스 푸지트 아모르 마네트(Tempus Fugit Amor Manet)세월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 10일만의 독서 ‘아모르 마네트’- 202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