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요르단은 지중해 동남쪽, 아라비아반도의 북서쪽에 위치한 조그마한 나라로써 동쪽으로 부터
유프라데스, 티그리스유역의 인류문명에 발생지인 메소포타미아(이란)와 인접하여 있고 서쪽
으로는 고대 인류문명이 번창하였던 나일강 유역 이집트를 접하고 있는 중요통로의 요지이다.
또한 세계 3대 단일신 종교인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
이기도하다.
요르단에서 볼만한 곳은 사해, 제라쉬, 와이럼, 페트라,아카바를 비롯하여 다수의 그리스도교
의 신구약성서에 명시되어 있는 성지들, 헤스본, 아르논, 베다니, 펠라, 길르앗, 산리, 요르단
골짜기, 엘리산, 가다라, 숙꼿 등과 고대및 중세로 부터 보존되어 내려온 역사적 지역 등이
많이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이의 하나인 페트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와디람 사막에서 지프로 달려
보기도하고 야영도 하였다. 에수님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모세가 40년간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땅을 바라보고 돌아가신 역사적인 장소 느보산을 바라보니 가슴이 서글프다.
거룩한 삶! 영광스러운 은총을 받기도 했다.
알렌비 다리
예리고에서 8km 북서쪽 요르단으로 부터 건너가는 국경 검문소가 있다. 이 요르단강을 건너
가는 다리를 알렌비다리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지금 예리고 남쪽 요르단에서 세례를 받으신것을 기념하기 위한 조그마한 교회가
세워졌다. 그곳의 현재지명은 "베다바라" 인데 요르단지역 이기때문에 이스라엘에서 국경을
넘어와 순례할 수 있다.
암만
요르단의 수도로 암만주의 주도이고 인구는 약 120만명으로 요르단 인구의 사분의 일를 차지
하고 있으며 요르단의 정치, 경제, 금융의 국제무역의 중심지 이기도하다.
자발 아지른 산맥 동쪽 가장자리의 기복있는 구릉지역에 자리하고 있으며 일년내내 물이 흐르는
수로를 갖고 있다.
사해로 물이 흘러 들어가는 요르단 동쪽 75km 지점, 아라비아 서쪽 고원 끝 해발 800m 구약
성서의 필라델피아에 해당된다. 암만 이란 이름은 구약성서 에 나오는 암몬족과 같은 어원이다.
랍바라는 말은 "수도"의 의미라고한다. 우리말로 하면 "서울"이란 뜻인 모양이다.
셈족 일파인 암몬족의 수도였다. 랍바를 중심으로한 암몬왕국은 모세의 출애굽기때 부터 이스
라엘과 끊임없이 전쟁을 겪으며 적대관계에 있었다. 옛날 이스라엘 건국후 에도 요르단강을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과 인접해 있어 두나라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랍바성은 다윗이 범한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가 죽은 장소이다. 우리야의 아내를 범한 후 다윗은
우리야를 죽이기 위해 이 성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우리야를 전쟁에 앞장 서도록 요합장군에게
지시하여 우리야를 죽게만든다. 이 이후에도 암만은 구약성서에 자주 등장한다.
청동기시대 B.C4000-3000의 것을 비롯하여 로마시대 당시 아름다운 유적 가운데 일부도
남아있다. 솔로몬(B.C970-945), 암몬여인을 후비로 들이기도 했다. 그 영향으로 암몬사람의
우상을 따르고 심지어는 그 우상의 헤라클래스 신전을 비롯하여 비잔틴 양식의 건물을 증축
해서 만든 유마야드궁전, 비잔틴 교회터, 원형극장, 청동시대의 동굴 등이 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 보암왕이 이스라엘 분열을 유발한 왕인데 그 모친이 암몬의 여인 "나아마"
였다. 암몬은 여호사밧왕(B.C876-849)때 모압, 에돔과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였고
웃시야왕(B.C785-740)때는 유다에 조공을 바쳤으며 요압왕때는 암몬을 다시금정벌하여 통치
를 강화 하였다. 암몬왕국은 733년부터 앗시리아 속국으로 신 바빌로니아 느븟갓네살 왕(B.C604-562)에 의해 멸망하였다.
구약성서 "랍바"라는 이름으로 불리웠고 기원전 5세기경 로마 비잔틴 시대에는 "필라델피아"
라는 이름으로 로마제국에 합병되어 번성하였으며 4세기초 비잔틴시대 말기에는 기독교가
전파되어 교회가 세워졌으나 6세기 이후 이곳을 정복한 아랍인들에 의해 "이슬람" 으로 현재
암만으로 정착했다. 635년 이슬람에게 점령당한후 역사속에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제1차 세계대전후 트란 요르단 보호 토호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1946년 요르단이 독립된후
빠른 성장을 이루고 있다.
아랍-이스라엘 전쟁후 팔레스타인의 아랍 난민이 유입되었고 1970년 내전으로 심하게
파괴되었다. 위임 통치이었던 영국이 1921년 팔레스타인 서부지역으로 트란스 요르단을
분리해 내어 당시 헤자즈의 왕이자 메카의 샤리프로서 후세인 이분 발리의 아들 이었던
아브둘라를 군주로 삼고 트란스 요르단왕국을 건설하였다.
요르단 지도
와디럼 의 붉은사막 풍광
와다럼. 사막의 버섯 모양의 풍광
마다바
암만에서 30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도시로서 해발 700-800m 고원지대에 있다. 이 곳은 4000년전 부터 존재하던 "왕의 대로"(고대 국제 무역 통상로)상에 위치한 곳이다.
서기106년 로마가 이지역을 정복한 후 그리스도교가 전파 되었고, 로마에 의해 탄압을 받으면서 많은 그리스도 신자들이 순교하게 된다. 서기313년 그리스도교가 공인 되면서 서기 7세기 까지 많은 교회가 세워졌으며 서기 5세기 부터는 이곳에 주교가 임명되어 주재하게 된다. 그리스도교 도시로 번성 되었던 이 곳은 7세기 중반 현재의 요르단, 팔레스타인, 시리아까지 영향을 미쳤던 대규모의 지진으로 인하여 도시가 파괴되어 1000년이상 폐허화된 곳으로 남아 있다가 1800년 말 마다바에서 남쪽 80km지점에 위치한 케락 이라는 도시에서 2000여명의 그리스도교들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도시가 재건되는 계기를 맞는다.
당시 아랍 전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 터키는 이주민 들에게 교회는 서기 8세기경 까지는 이 도시에 많이 있던 교회터를 찾아서 교회를 그 위에 짖도록 함으로써 비잔틴시대의 교회들이 발굴 되게 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1896년경에 발굴한 성 조지 교회이다.
이 교회의 바닥에서는 550년경에 만들어진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모자이크 지도 가 발견 되었는데 이 지도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경 모자이크 지도로 유명하다. 이 지도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중 근동지역의 성지 와 주요도시를 200여만개 이상 의 색상의 돌을 이용하여 16m*6m 짜리지도를 제작하였는데 일부가 훼손되어 현재는 삼분의 일 정도만 남아 있다.
지도의 가장 중심적인 예루살렘이 그대로 남아있고 사해, 요르단강, 예수님의 세레터, 아르논강, 세렛강, 시나이산, 나일강 등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성경 고고학적으로 매우 훌융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 되고 있다.
마다바 성당으로 가는. 시내 도로변
느보다 성당 정문
이스라엘 지도
성당 바닥의 모자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