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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8일 일요일(토요무박) 자유인 특별산행 속리산
자유인 산악회
특별산행 코스: 눌재(02:50) – 밤티재(04:20) – 문장대 (08:00) - 관음봉 (10:00) – 북가치 (12:00) –
묘봉 (12:30) – 상학봉 (13:30) – 신정리 (14:30)
산행거리 : 약 22 km 산행시간 : 약 12 시간
북가치에서 하산한 코스 http://www.ramblr.com/web/mymap/trip/409453/1640009
중간에 램블러 시작 http://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639905
특별산행 – 속리산
최 치원
도불원인 (道不遠人)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으나
인원도 (人遠道) 사람이 도를 멀리하는구나
산비속리 (山非俗離) 산은 세속을 떠나려하지 않으나
속리산 (俗離山) 세속이 산을 떠나는구나
날씨 : 맑고 햇볕 쨍쨍 하늘엔 흰구름 일출 풍경 장관
눌재 – 밤티재 어둠속에 행진 : 힘들지 않고 일반 흙길
밤티재 – 문장대 : 일출 암릉
문장대 – 관음봉 : 암릉 및 조릿대 무성한 길
관음봉 – 북가치 : 암릉으로 이어짐 북가치에서 중간탈출 가능. 일부 회원 미타사로 하산
묘봉 – 주변 풍광이 제일 아름답다.
상학봉 – 정상에 있는 바위에 오르지 못함. 주위 풍광은 볼수 없슴.
상학봉 – 신정리 : 경사가 급한 하산길 이후 평탄한 숲속을 지나고 넓은 포장도로
오전 2시 50분 눌재를 출발한다.
멀리 보이는 산을 보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특히 커다란 바위가 능선을 따라 서있고 그 능선 위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넘실대는 풍경을 보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가질까?
한 농부가 산자락 아래 밭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소가 열심히 쟁기를 끌고 농부는 그 쟁기를 잡고 땀을 흘리며 밭을 갈고 있었다. 아스라한 산 능선위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서 잠시 꿈에 젖어 본다. 저 산 속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하얀 구름에는 신선이 타고 있을까.
생각에 잠겨 있는 농부 곁으로 장삼을 입은 스님 한 분이 지나가면서 농부의 눈길을 따라 스님도 눈을 돌려본다. 스님도 농부도 아무 말없이 그저 산 위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본다. 긴 정적이 흐른 뒤 정신을 차려보니 밭을 갈던 소가 스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짐승마저 경외하는 스님의 법력에 스스로 놀라며 농부는 쟁기를 버리고 다른 농부들과 함께 스님을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갔다. 이는 속리산(俗離山 1,058 m) 이름의 유래와 관련하여 선덕여왕 5년 ( 784년 ) 김제에서 법주사로 왔다는 진표율사에 관한 이야기다.
전에 속리산 산행을 하면서 멋진 풍광을 보았을 때 난 이런 이야기가 좀 과장되었지만 또 제법 그럴싸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뾰족뾰족 튀어나온 바위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암릉길은 산행을 하는 내내 눈길을 잡아 끌었었다.
그러나 이번에 충북 알프스 한 구간을 걸으면서 느낀 것은 진정한 속리산의 진면목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속세를 떠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잠시나마 느끼고 온 산행이었다. 지금은 우리가 밤길을 달려와 바쁜 걸음으로 마치 말을 타고 가면서 경치를 구경하듯이 (走馬看山) 지나가는 것도 이 정도인데 정말 작정하고 이 곳에 몸을 의탁한 채 산속으로 들어가면서 이런 풍광에 빠진다면 어찌 속세로 돌아갈 생각을 가질 수 있겠는가.
눌재
지난 가을 청화산 – 조항산 산행을 할 때 들머리였던 눌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밤공기가 선선하다. 국립공원체서 탐방을 금지하는 구간이라서 이처럼 도둑고양이처럼 이른 새벽에 산행을 해야한다. 대형 버스 가득 싣고 온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헤드랜턴과 손전등으로 길을 비추며 앞사람을 따라 긴 행렬을 이룬다. 수풀속을 지나는데 갑자기 날벌레가 윙윙거리며 불빛을 따라 날아든다. 밤에 불빛을 만난 나방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몇 명이 벌에 쏘였다고 아우성이다. 아마 앞서간 사람들이 풀섶에 있는 벌집을 건드린 모양이다.
난 작년 9월에 진행한 이 백두대간 구간을 빼먹은데다 얼마 전에 23기에서 진행할 때도 무슨 일이 있어 참가하지 못했다. 23기에서 진행할 때 밤새 비가 내린 탓에 눌재에서 문장대로 이어지는 비탐구간을 누락한 관계로 이번에 보충할 겸 이 구간을 연장하여 관음봉 – 묘봉 – 상학봉으로 이어지는 충북알프스를 탐방하기로 한 것이다.
산행기를 읽어보면 가파른 암릉으로 위험하다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 관계로 나 혼자서 “땜빵”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평소 가보고 싶은 충북알프스까지 가게 되니 금상첨화라 할 수 있겠다. 처음 밤티재까지는 자그마한 봉우리를 여러 개 넘어가는데 바위가 없고 위험구간도 없어 오히려 지나친 걱정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은 밤티재를 지나 또 다시 작은 봉우리를 올라 길에 걸쳐 있는 무덤 근처에서 휴식을 할 때까지도 이어진다. 다른 산에 비해 오히려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충전식 손전등의 불빛이 점차 희미해지고 아직 서쪽 하늘에 조금 배 꺼진 달이 빛나고 있을 때 주변이 조금씩 밝아 오기 시작한다. 눌재를 출발한 지 3시간 여 지나 새벽 5시가 넘었다. 뒤를 돌아보니 나무줄기 사이로 붉은 구름이 길게 띠를 이루어 펼쳐져 있다. 해돋이다. 오늘은 기어코 아침 일출 풍경을 볼 수 있게 되나보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조망이 트이는 바위에 자리를 잡고 온전한 해돋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바빠졌다.
구름 빛깔이 점점 더 붉게 빛날수록 마음은 더 바빠진다. 조망이 트인 곳에서 잠시 일출을 바라보고 또 조금 오르다가 한 번 더 해돋이를 감상한다. 구름을 뚫고 해가 나오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어느 정도 높은 곳까지 오르는 동안 해가 올라와 버리면 낭패를 겪을까 걱정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5시 40 분 해는 산마루 위로 완전히 올라온 듯하지만 아직은 붉은 구름장막 속에 숨어 있다. 이제까지 검은 베일속에 가려져 있던 풍경이 마치 무대의 장막이 올라가듯 한꺼번에 눈앞에 펼쳐진다. 하얀 안개가 골짜기를 뒤덮고 있고 그 뒤쪽으로 산마루가 실루엣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 산줄기 마루금 위로 시뻘건 구름이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 해가 있는 부분이 유난히 밝다.
달은 서산 너머로 지고
동쪽 하늘에 붉은 해가 떠오른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기암괴석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햇빛 부스러기가 온 산을 뒤덮었다.
뒤를 돌아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보니 소나무 숲 사이사이로 집채만큼 커다란 바위가 이어져 있고 왼쪽으로는 칠형제봉인 듯 바위 능선이 선명하다. 내가 꿈꾸어왔던 풍경이 이런 것이었을까. 새벽 안개가 골짜기를 뒤덮고 그 뒤로는 산줄기가 펼쳐져 있는 가운데 해가 떠오르는 장면, 그렇다 내가 늘 무박산행을 할 때마다 보고 싶어 했던 그 풍경이다.
해가 완전히 올라올 때까지 약 20여분 동안 우리는 좀 더 조망이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아침해돋이를 맞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바위능선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이런 아름다운 조화가 어떻게 생겨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뒤로 접어두고 그저 한 두 마디 감탄사로 그 경외로운 풍경을 묘사할 수밖에 없는 부족한 문장력에 오히려 답답함을 느낀다.
골짜기마다 은은한 빛으로 산안개가 덮이고
그 위에 찬란한 아침해가 떠오른다.
얼마나 오랜동안 살아온 이끼런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바위 위에 이끼가 두껍게 자라나 있다.
발길이 닿지 않는 바위에는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이끼가 푸르름을 자랑하고 발 아래에는 천 길 수직 암벽이 심장을 뛰게한다. 높고 가팔라서 어찌 오를까 싶은 암벽도 앞사람 하는 양을 보고 따라서 오른다. 길고 가파른 바윗길에는 선등자들이 남겨놓은 로프가 있어 스릴있게 넘어가고 바위사이 좁은 통로를 지날 때는 앞사람을 통해 배낭을 먼저 보내고 몸만 간신히 빠져나간다. 바위틈으로 낮게 엎드려 지나가기도 하면서 온갖 험한 길을 넘나든다. 잡았던 로프를 놓쳐서 아찔한 장면도 연출되고 높지 않은 바위에서 미끄러지며 팔 다리에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멀리 산 위쪽에 문장대가 보이는데 저기까지 언제 올라가나 하고 걱정이 들 즈음 등산로는 키 큰 조릿대 숲을 지난다. 앞서 가던 산대장이 길목에 서서 왼편으로 가라고 길을 안내한다. 걸어온 거리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한데 오르내림이 심하고 바위를 많이 탄 탓에 시간도 많이 지났고 왼쪽 무릎에 통증이 느껴진다. 산대장의 안내대로 왼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화북탐방소에서 올라오는 정상적인 탐방길과 만난다. 이곳에서 문장대까지는 나무계단으로 잘 가꾸어져 있다.
험한 바위를 오르는 걸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
힘든 바위를 쉽게 오르는 사람도 있다.
문장대 (文藏臺 1,054 m)
속리산은 조선 일곱 번째 임금이었던 세조(世祖)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속리산으로 가는 길목인 보은에는 세조가 가마를 타고 지나다가 소나무 가지에 걸려 진행을 못하고 있을 때 “ 임금님 행차시다. 가지를 들어올려라 !”하고 말하자 소나무 가지가 번쩍 들어올려져 임금께서 정 2 품을 하사했다는 정이품송이 있다. 이 때 세조는 몸에 난 종기를 낫기 위해서 물이 좋은 이 곳으로 휴양을 왔다고 하지만 실상은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어진다. 이제는 어느 정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속리산 범주사에 딸린 복천암에는 세종대왕의 명을 받들어 한글창제에 큰 곻헌을 한 신비대사가 머물고 있었다. 세조가 법주사를 방문한 후 신미대사의 고향인 영동의 반야사에 들러 법회에 참여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당시 세조의 행차 목적을 잘 알수 있겠다.
지금 우리가 문장대(文藏臺 1,054 m)라 부르는 속리산의 주봉은 당시에는 운장대(雲藏臺)라 불렀다고 한다. 산이 높아 늘 구름에 가려져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세조의 꿈에 한 옥동자가 나타나 가까운 영봉에 올라가 기도를 드리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것이라 일러주는 대로 운장대에 오르니 삼강오륜(三綱五倫)에 관한 책이 놓여져 있었다. 이에 세조는 하루 종이 바위 위에 머물다 내려왔는데 이런 소문이 알려지면서 책이 놓여져 있던 곳이라는 뜻으로 문장대(文藏臺)로 바뀌었다고 한다.
문장대 바로 못미쳐 화북탐방소에서 올라오는 정규등로로 합류한다.
<물봉선>
수 백년의 많은 사연과 전설을 품고 있는 속리산의 아름다운 영봉 문장대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늘 우리가 진행할 관음봉 (觀音峯 983 m)방향이다. 이 곳에 올라서 세 번째 바라보는 풍경이다. 이제까지는 그저 보기만 하고 내려갔지만 이번에는 잠시 후 저 봉우리를 오르게 된다. 그 너머로 이어지는 바위 능선에 묘봉(874 m)과 상학봉 (上鶴峰 834 m)이 있다. 하지만 아직 초행인 관계로 어느게 묘봉인지 또 어느게 상학봉인지 적시할 수는 없다. 그저 멋진 능선길이다.
반대쪽으로는 백두대간 능선길이 신선대와 비로봉을 거쳐 멀리 속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峯 1,058 m)이 조망된다. 하늘엔 구름이 넘실대고 땅에는 산줄기가 굼실거린다. 이태전 겨울 눈이 쌓인 저 산줄기를 따라 걸으면서 바위와 어우러진 풍경에 흠뻑 반했었다.
화북탐방로쪽으로는 칠형제봉이라 부르는 암릉이 ‘너는 절대 못오는 곳이니 괜히 넘보지 마라’는 듯 우뚝 서서 먼 곳을 바라본다. 그 옆으로는 오늘 우리가 지나온 길인 듯하지만 길거리에서 스쳐지나갔던 수 많은 미녀들처럼 또 낯설어보인다.
선두팀은 국공파가 출근하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며 비탐길로 잠입하고 뒤에 남은 사람들도 눈에 담지 못한 풍광은 손에 든 카메라에 담고 서둘러 문장대를 내려온다. 문장대 이름돌 앞에서 또 인증사진을 찍고는 문장대 바위왼편 목책을 넘어 선두팀을 따라간다.
문장대에서 단체 인증을 한다.
문장대에서 바라본 속리산 서북능선 - 바로 앞 봉우리가 관음봉이고 끝에 묘봉과 상학봉이 있다.
백두대간 능선 - 신선대 비로봉을 거쳐 멀리 제일 높은 천왕봉(1,087 m)가 훤히 조망된다. 더 멀리 충북알프스에 속한 구병산 마루금이 조망된다.
원래 구름에 가려진 산이라하여 운장대(雲藏臺)라 불렀으나 세조가 이 산을 찾은 이후 문장대(文藏臺)로 부른다.
이른 새벽부터 해돋이와 암릉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혼이 빠져나갔으니 앞으로 펼쳐질 묘봉과 상학봉의 바위들을 상상하면서 산행을 이어간다. 작은 숲을 빠져나와 상큼한 아침 이슬을 머금은 바위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상큼하다. 아침 9시가 넘었다.
배가 고프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어딘가 앉아서 음식을 먹으면서 쉬고 싶은 생각이 들 즈음 앞서 가던 회원들이 커다란 바위비탈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다. 나도 22기 정구진님과 김종진님과 함께 바위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키작은 산죽나무가 자리고 있어 버팀이 되어 주지만 자칫 헛발이라도 디디면 천길 낭떨어지로 끝없이 떨어질 것 같다. 눈 앞은 활짝 트여 능선길을 따라 펼져진 암릉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발아래 계곡 끝에는 속리산의 상징인 법주사(法住寺)가 눈에 들어온다. 입으로는 아침밥을 먹으면서 눈으로는 또 주변 아름다운 경관을 먹는다.
관음봉 (觀音峯 983 m)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의 현신으로 중생의 심성이나 처한 현실에 따라 33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중 가장 일반적인 모습은 연꽃을 들고 있는 성관음(聖觀音)이고 우리가 많이 보아온 모습은 팔이 1,000 개 달려 있는 천수관음(千手觀音)이다. 관세음보살은 과거불인 석가모니불과 미래불인 미륵부처 사이에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중생이 구제될 때까지 자신은 결코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세상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상징성 때문에 관세음보살은 다른 부처보다도 더욱 중생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에서나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관세음보살을 외치면 달려와 구원해주는 말하자면 서양 만화에 나오는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의 고전적인 버전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문장대에서 내려와 아침을 먹는 시간이 꽤나 길었었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고작 10여분 정도였다. 모두 흥분된 상태에서 느긋하게 앉아서 식사를 즐길 여유가 없었나보다. 지나온 여정이 힘들었고 또 남아 있는 것이 그 만큼 길고 힘든 코스다. 커다란 암봉을 곧 바로 오르는 길이 있고 우회하는 길이 있다. 난 앞 사람을 따라서 우회하는 길을 지나고 나서 보니 그 암봉이 바로 관음봉이었다. 거꾸로 하산하는 사람에게 확인하고 나서야 내가 관음봉을 돌아서 지나온 것을 깨달았다.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속리산의 비경
얼마전까지 살아 있었을 듯한 소나무 둥치
사람 키보다 큰 조릿대 수풀을 지나
관음봉에 오른다. <닭의장풀>
다시 관음봉으로 오르는 암벽에 로프가 두군데나 매어져 있다. 배낭을 조릿대 숲속에 던져두고 달랑 몸만 오르니 편해서 좋다. 관음봉은 그냥 커다란 바위 덩어리다. 오랜 세월 흙은 어디론가 다 쓸려 나가고 바위도 비바람에 닳고 닳아 약한 부분은 움푹 패이고 단단한 부분은 튀어 나와있다. 관음봉의 이름돌은 바위 꼭대기에 작은 오석(烏石)으로 아담하게 세워져 있다. 경사가 심해 이름돌 있는데까지 오르기가 쉽지 않아 대부분 먼 발치에서 인증사진을 남긴다.
관음봉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사방팔방 암릉과 어우러진 산봉우리들이 가득 차 있어 속세에서 멀어진 속리산의 진면목을 보는 듯하다. 지난온 방향으로는 문장대에서 이어져 내려온 암릉길이 뚜렷하고 앞으로 가야할 방향으로 묘봉과 상학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다. 하얀 구름 사이사이로 파란 하늘이 비치고 날씨는 영롱하다. 정말 속세와는 그저 한나절 거리 밖에 안되는데 이렇듯 신선이나 노닐 듯한 별유천지 세상이다.
가파른 바위 꼭데기에 자리잡은 관음봉 이름돌
방금 지나온 길 - 멀리 문장대가 보인다.
관음봉 정상에 오르다.
앞으로 가야할 길
망중한 - 바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단체 인증사진을 남긴다.
북가치 ( 754 m )
아름다움은 그저 먼 곳에서 보아도 좋으련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가서 진면목을 느끼려 한다. 바라만 보아도 아찔한 곳까지 굳이 올라가려 하는 심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얼마전에 이 관음봉 부근에서 산행하던 스님 한 분이 실족하여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이 곳에서는 크고 작은 실족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변의 멋진 풍경에 혼이 빠져 주의력을 잃어버린데다 한 치 너머가 바로 죽음의 낭떨어지라는 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감상적인 산꾼들에게는 정말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사고다.
오른쪽 엄지와 검지발가락 사이에 뭔가 이물질이 낀 듯 통증이 올라온다. 오르막 길은 그런대로 걷기에 좋은데 내리막에는 발톱을 누르는 느낌이 들면서 무척 아프다. 어설픈 걸음걸이로 행렬을 따라 한참 가다보니 앞서가던 선두팀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북가치다.
북가치로 가는 길은 대부분 평이한 숲길이다.
그래도 아직 비탐구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끔씩 조망이 트인다.
북가치 - 미타사 또는 법주사로 하산할 수 있다.
<속단>
수색대 박민기 님은 자유인 14기로 백두대간을 마쳤으나 가끔씩 동참한다. 이곳에서 미타사로 하산하기로 정했단다.
북가치의 이름에 대한 유래는 모르겠지만 진행방향으로 오른쪽은 운흥리 미타사로 내려가는 길이고 왼쪽으로는 여적암을 거쳐 법주사로 내려갈 수 있는 고개마루다. 오늘 새벽부터 눌재에서 시작하여 지나온 거리가 10.7 km 로 그리 긴 것은 아니지만 조밀하게 이어진 암릉을 타고 온 탓에 많이 지쳐있다. 아직 묘봉과 상학봉을 거쳐 하산지점까지 가야할 여정이 많이 남아 있으니 몸이 지친 사람들은 이 곳에서 미타사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묘봉 ( 妙峰 874 m)
북가치에서 묘봉까지는 600 미터 오르막이지만 여기는 탐방이 허용된 코스다. 그래서인지 가파른 바윗길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오르기에 훨씬 수월하다. 계단 옆 바위에는 예전에 설치했던 로프와 안전설비 흔적이 남아 있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문장대까지 안전설비를 갖추게 되면 충북알프스도 정식적인 탐방코스로 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까지는 수 많은 사람들이 비법정탐방로를 오르내린다는 부담감을 안고 산행을 할 것이며 가끔씩 작은 부주의로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위험에 노출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충북알프스라 이름지은 이 아름다운 산길을 찾아올 것이다.
지나온 서북능선 - 멀리 관음봉과 문장대까지 그리고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조망된다.
멋진 조망을 가진 묘봉의 이름돌도 아담하게 잘 만들었다.
상학봉
산의 모양이 오묘하여 묘봉이라 이름지었다는 이 암봉은 그 이름에 걸맞게 주변 풍경이 묘하고 아름답다. 문장대에서 관음봉을 거쳐 지나온 속리산의 서북능선이 한눈에 조망되고 그 반대쪽에는 상학봉고 토끼봉 등 층암절벽으로 이루어진 바위봉우리가 보는이의 가슴을 싸하게 만든다. 우리가 하산하는 코스는 저 상학봉 등줄기를 타고 넘는 것이 아니라 상학봉 정상에서 왼편으로 내려간다.
묘봉은 지금까지 지나온 어느 봉우리보다 조망이 멋지다. 가을날 단풍이 지면 다시 한 번 찾아오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담하게 한글로 새긴 묘봉의 이름돌을 배경삼아 모두들 인증사진을 남기기에 바쁘다. 새벽에 골짜기에 내려앉아 있던 안개가 한낮이 되면서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갔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마치 가을하늘을 연상시킨다. 따가운 햇볕이지만 살랑살랑 불어주는 바람이 시원하다. 아직 가을이라 하기 이르지만 여름은 지나갔다는 느낌이 든다.
상학봉 ( 上鶴峰 862 m)
상학봉으로 가는 1 km 는 철계단이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어 가볍게 걸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긴 구간을 걸어온 터이라 몸이 제법 무겁다. 앞서 가던 한문희 총대장님은 문장대에서 법주사로 중간 탈출한 사람들과 북가치에서 미타사쪽으로 내려간 사람들과의 전화가 여의치 않은지 전화기와 씨름하고 있다. 일반 통신이 잘 안되는지 목소리를 높여보지만 버스기사님과 통화가 잘 안되는 모양이다. 법주사로 하산한 사람들을 태우고 우리의 하산기점인 신정리에서 대기해야 하는데 상호 연락이 원활하지 않은지 총대장님한테 전화가 집중되는 모양이다.
자주 학(鶴)이 날아와 놀다간 산이라 하여 상학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옛날 비행기가 없던 시절 높은 산과 구름 위를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학은 사람들에게 많은 상상력을 가져다주었다. 지금이야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까지 갈 수 있으니 구름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예전에는 저 구름위에 신선들이 사는 천당이 있고 그곳에서 인간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식의 많은 이야기들이 생성되었다. 그러니만큼 구름위를 훨훨 날아다니는 학은 그냥 새가 아니라 선계와 인간계를 이어주는 영물(靈物)처럼 여겨졌다.
<은꿩의다리>
<뚝갈>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지리고들빼기>
상학봉에서 바라본 서북능선
총대장님과 22기 회장님 -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속세로 돌아갑니다.
지금 상학봉에는 학이 없다. 그저 신비로움을 자아내주는 멋진 바위 봉우리들이 즐비할 뿐이다. 전에는 오석으로 만든 정상석이 바위꼭데기에 설치되어 있었고 그 곳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었다는데 잦은 추락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철거하고 지금처럼 바위 아래에 새로운 정상석을 세웠다 한다.
오후 1시 30분 오늘 일정의 마지막 봉우리인 상학봉과 작별한다. 하산길이 가파르다. 또 다시 발가락에 통증이 올라온다. 암릉길이라 스틱을 버스에 두고왔는데 스틱없이 걸은 것이 발가락과 무릎에 부담을 많이 준 모양이다. 이제는 오르막이 없이 계속 내리막길이다.
다시 속세(俗世)로
속세(俗世)를 떠나 선계(仙界)를 노닌지도 열 시간이 넘었다. 철계단을 두드리며 내려가는 사람들이 내는 소음에 앞서 가던 여성 회원이 ‘속세에서 나는 소리’라며 이제 속세가 가까워졌음을 암시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속세를 떠나서는 오래 지낼 수 없는 모양이다. 배에서는 밥달라고 아우성이고 무릎은 좀 쉬었다 가자고 짜증낸다.
산길은 급경사 내리막길이 끝나고 평평하게 이어지더니 갑자기 넓은 임도로 내려선다. 상학봉을 떠난 지 30분 정도 지났다. 왠만한 승용차도 오르내릴 수 있을만큼 평탄하고 넓은 길이다. 길가에 수풀은 깍은지 얼마 안돼 보이고 좀 더 내려가니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로 이어진다. 길 오른쪽 옆으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논밭이 나타난다. 왼쪽에서 흘러오는 다른 계곡물과 합류하는 지점에서 보니 한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탓인지 수량이 적고 깨끗하지 않다. 이미 속세에 내려선 것이다.
선계를 떠나
속세로 돌아간다
<고추나물>
아름다운 속리산 - 아직도 갈데가 많다.
보은의 특산품 보은대추 농장 - 비닐하우스 안에서 대추를 재배한다.
오후 2시 30분 산행을 마친다.
발빠른 회원님들 모두 앞서 걸어가고 한참 뒤따라 걸어가니 충북 보은군 특산품인 보은대추 농장이 보이고 이어서 얼마 안가 자유인 산악회 버스가 나타난다. 장거리 산행으로 목이 마른 회원들이 맥주와 콜라로 갈증을 해소한다. 나도 어딘가에 가서 몸을 씻고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은데 시간관계상 우선 식당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한다. 남아 있는 사이다로 목을 축이고 버스에 탔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운흥리에서 미타사로 하산한 회원들을 태웠다. 미타사 코스로 중간에 하산한 사람들은 내려오면서 계곡물에 몸을 씻은 모양이다. 모두 말끔해보인다. 오리백숙을 잘 한다는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계곡으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가을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한낮인데도 물이 무척 차갑다.
식사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 많이 막힌다. 휴가철 막바지에 돌아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많이 늘어났다. 다행히 경부고속도로를 만나고부터는 버스전용차선을 달려 약 3시간만인 7시 30분쯤 양재역에 도착했다.
첫댓글 고생은 했디만 기억에 남을만한 산행입니다 ㅎ 저고 문장대에서 바라본 관음봉 쪽 용트는 산줄기를 보면서 가 보고 싶다했던 곳인데 아직 몬 가고 있네요
한번 다녀오세요. 정말 멋진 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