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옛날 이야기 -91-
(1988년에 중국 땅을 밟고 -7-)
내가 중국을 가게 된 동기는 한국에서 생산하여 수출하던 수출품이 노태우 대통
령의 정책으로 노조가 출현하여 매일같이 데모하느라 수출품이 도저히 한국에서
는 경쟁을 할 수 없게 되어 부득이 중국에 와서 생산하여 수출코자 했던 것이었으
나 중국에 투자했던 공장이 별로 신통칠 않아 아예 운영에 참견 안하기로 하였다.
참견하면 할 수록 내 주머닛돈이 나가게 되며 간섭 안하고 있는 것이 덕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장일에 간섭 안하기로 하였더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리하여 중국에 가고 싶어 하는 주위의 많은 분들의 일을 도와주기 시작하였다.
고속뻐스의 중국진출과 호텔의 중국진출의 물꼬를 튼것도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
된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중국의 각지를 관광이 아닌 사업차로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계기가
되어 북쪽으로부터 남쪽까지 많은 곳을 가게 되였다.
북경, 천진, 허베이 성의 대소도시는 물론이요 북쪽은 쟈무스(佳木斯)로부터
티에리(鐵力), 할빈, 장춘, 사평, 길림, 철령, 심양, 안산,대련으로 그리고 용정,
연길, 도문, 훈춘, 목단강, 계서, 벌리까지, 중부는 산서성의 태원, 임분, 그리고
서안, 쓰촨성의 성도까지, 산둥성의 청도, 위해, 연태, 제남, 곡부, 덕주, 양신
까지, 허난성은 개봉, 상구, 민권까지, 남쪽으로는 상해, 소주, 무석, 남경, 항주,
닝뻐 까지, 닝뻐에서 해안을 끼고 광주까지 가는데 온주, 복주, 샤문 그리고
그 근처의 시골마을까지, 또 광주서 동완, 심천까지, 그리고 곤명과 해남도까지
참으로 많은 곳을 다녔다.
그동안 거의 사업차 다녔기에 정작 가보고 싶은 곳을 가보지 못했다.중국에 살면
서 중국의 좋은 곳을 못 가본 데야 말이 되나 하면서 말이다. 최근들어 마음의 여
유가 생겨 그간 가 보고 싶었던 황산, 장가계등을 다녀올수 있게되였다. 앞으로
시간과 건강만 허락된다면 그간 가보고 싶었던 곳을 두루 돌아다닐까 생각 한다.
서울 살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사시는 고향인 옥천을 갈려면 특별한 일이 없을
시엔 일 년에 설날과 추석날 2번 정도만 갔었다. 그것도 애들과 같이 하는 아주
큰 행사였다. 기차로 2시간 거리인데도 말이다.
중국에 오니 2시간거리는 이웃이요 한번 기차를 타면 10시간정도는 아주 가까
운 곳이고 2-30시간은 보통이었다. 한국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중국을 다녀본
사람은 우리나라가 얼마나 작은 나라라는 것은 깊이 느꼈을 것이라 본다.
그러나 중국의 어느 곳을 가도 중국의 보통 한 성의 절반도 안되는 조그마한 나라
(신강성 하나만 해도 우리나라의 17배라한다)에서 온 나를 너무나 부러워하며
극진히 대접해주는 중국인 들에게 우리나라의 명예를 위하여 행동을 더욱 조심하
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하게 하였다.
한국에서 어느 분이 중국의 면 타올을 수입하고 싶다하여 수소문 하였더니 산서
(山西省)의 태원(太原)에 아주 큰 타올공장이 있다하여 태원을 가게 되었다. 그
래서우선 기차표를 사는데 여권이 필요했고 일반 중국인은 160원 하는데 나는
350원인가 450원을 지불하고 기차표를 샀다.
그 무렵은 외국인에게는 무엇이든지 비싸게 받던 때였다. 북경을 거쳐 석가장을
경유하여 산시 성(山西省)을 들어가는데 양쪽에 높이가 10여m나 되는 언덕을
깎은 절벽 사이로 기차가 가고 있었다.
돌로 쌓은 절벽이 아니라 맨 흙의 절벽인데도 수십 년을 무너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였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 절벽 중간에 굴을 파고 사람이 살고
있었다. 태원까지 기차로 12시간이 걸렸다. 할빈까지 18시간? 연길까지 28시
간 걸리니 12시간은 이웃과 한가지다. (지금은 좀 빨라졌다한다)
산시성(山西省)은 고원지대이다. 그리고 성의 거의가 1m만 파도 지하에 석탄
이 나온다고 한다. 남쪽 린푼(臨汾)까지 가는 철길 가에는 높은 굴뚝들이 즐비
하게 서 있었다. 각지방정부가 그 석탄을 코크스로 만들어 팔고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포항제철소에서도 이곳 코크스를 수입해 간다 하니 너무나 부러웠다. 미
리 연락을 하였음으로 기차역까지 사람이 마중을 나와 같이 면 타올 공장을 방문
하였는데 그 공장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컸다.
시설도 서독서 들여온 어마어마하게 큰 자동기계 수십 대가 돌고 있었으며 종업
원도 수천 명이란다. 이 공장은 타올의 생산뿐만 아니라 각종 면 내의등 다양한
면제품이 생산서부터 가공까지 하고 있었다. 공장이 있는 부락은 전부가 이 공
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며 직원들의 자녀 교육을 위하여 탁아소,
유치원은 물론 소학교에서부터 초중, 고중까지 이 공장에서 운영하고 있다 한다.
그때로서는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공장이었다. 상담이 끝나고 태원
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천진으로 돌아오기 위하여 기차표를 부탁하였다. 그런
데 기차표가 없단다. 참으로 난감하였다.
나는 천진에서 다음날 중요한 약속이 있어 이날 꼭 돌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그
런데 이회사의 운전수가 걱정 말라며 나를 태우고 기차역으로 갔다.기차표를 사
는 것이 아니라 그냥 플랫폼까지 차를 몰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거기
서있는 역무원에게 무어라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드디어 기차가 들어와 침대차가 우리 앞에 섰다. 침대차에서 차장이 나왔다. 차
장은 30대 후반쯤 되는 여자 차장이었는데 역무원과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더니
나보고 그냥 타란다. 그리고 기차표는 기차 안에서 사란다.
차안에는 창가의 의자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얼
마 있다가 여차장이 나에게 다가와 아래 칸 침대를 주면서 100원만 내란다. 고
마워서 50원을 더 주었더니 처음은 한사코 사양하더니 돈을 받으며 자기 명함
을 나에게 주면서 앞으로 필요하면 전화를 하라고 하였다.
중국의 침대차(3층이다)
-걔속-
첫댓글 사업상,중국여행을 제대로 하는군요,대단하십니다.
찾아주시고 과찬의 말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즐거운날 되세요
정태림 님
중국에 대헤서 선구자적 혜안으로 중국 시장을 종 횡으로 누비시는 모습이 눈에선합니다
참으로 부럽고요 존경스럽습니다
찾아주시고 과찬의 말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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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주시고 댓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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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감니다,
찾아주시고 댓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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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이야기 잘보고 감사합니다.
찾아주시고 댓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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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글 감사합니다.
찾아주시고 댓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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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음글 함께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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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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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옛날 이야기.91 글 감사한 마음으로 즐감하고 나갑니다 수고하여 올려 주신 덕분에
편히 앉아서 잠시 즐기면서 머물다 갑니다 항상 건강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찾아주시고 좋은말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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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찾아주시고 댓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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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멋진 고은 옛날 이야기을 보내주시어 잘 읽고 잠시 쉬었다 갑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찾아주시고 좋은밀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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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절 중국에서의 사업이야기 잘 보구갑니다
찾아주시고 댓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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