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의 훼불과 조선 패망
■ 덕산 가야산 금탑 훼손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 세도정치로 인해 조선의 왕권이 짓밟히고 있을 때 야인으로 살았다. 마음속에 야망을 품고 있던 그는 그 부인 여흥민씨(驪興閔氏)가 다니던 화계사를 종종 찾았다.
하루는 답답한 마음을 안고 화계사를 들어서는 데 일주문 앞에서 동자승이 나타나 흥선대원군에게 혹시 ‘선비님! 혹시 이름이 이하응 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흥선대원군이 '어찌 내 이름을 아오?' 하니 우리 스님이 '귀한 손님이 오시니 기다리다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만인 스님을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안동김씨 세도 정치로 무너져가는 조선을 살릴 방법을 물었다. 그런데 만인 스님이 방법은 있는데 말 할 수 없다고 하다가 그 방법을 알려 주었다.
(萬印)만인스님은 인연의 도리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탄식하고 자신이 불가(佛家)의 중죄인이 되어 업보를 면할 수 없을 것이나 시운(時運)이라 하며 그 방법을 일러주었다. 충청도 덕산(德山) 가야산의 가야사(伽倻寺) 금탑 자리가 제왕지지(帝王之地)이니 대원군 아버지 남연군 묘소를 그리로 이장하면 제왕이 될 귀한 왕손을 얻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만인 스님의 이야기에 혹 빠진 흥선대원군은 절을 빼앗을 궁리는 시작했다. 그는 절을 불태워 버리려는 마음을 내었다. 그런데 한 날 한 시에 대원군 집안 모든 가족들 꿈에 화엄신장이 나타나서 칼을 휘두르면서 어찌 감히 부처님 도량에 불을 지를 생각을 하느냐고 호통을 쳤다.
“어찌 감히 부처님 도량을 불을 지르고 묘를 쓸 생각을 하느냐?”
이런 꿈에 대해 흥선대원군은 더욱 더 큰 확신을 갖고 많은 돈을 마련하여 가야사를 찾아가 그 곳 주지를 매수하여 가야사에 불을 지르도록 하였다. (건달들에게 돈을 주어 절을 불태웠다는 설 등이 있음) 탑을 허물고 여러 형제들을 설득하여 그곳으로 남연군의 묘를 이장해 갔다. 묘를 이장하고 7년 후에 대원군의 둘째 아들 고종이 탄생하였다. 고종은 12살에 왕이 된다.
■ 법주사 청동대불 훼손
법주사 청동미륵대불은 신라 제36대 혜공왕 12년(776)에 진표율사가 7년간의 노력 끝에 조성, 1,000년 넘도록 법주사를 지켜왔다. 이 미륵대불은 국보도, 보물도 아니지만 천년불교의 역사를 대변하며, 중생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미륵부처님이다. 이 청동미륵대불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도 파괴가 되지 않고 1,000여 년 동안 보존 된 대불이다.
조선말 흥선대원군이 왕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경복궁을 비롯한 무분별한 공사를 진행한다. 그런데 공사 중 화재가 발생하고 무리한 공사로 인한 부족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당백전(當百錢)이라는 동전을 주조했다. 흥선대원군은 당백전을 찍기 위해 청동으로 만든 법주사 미륵대불을 가져갔다.
■ 대원군 훼불 행위와 업보(業報)
흥선대원군의 무지몽매한 훼불 행위가 있고 난 후 그의 아들 고종과 손자인 순종은 비참한 생을 살았다. 500년 조선도 망한다.
불법승(佛法僧) 삼보에 공양하면 그 공덕도 무량합니다. 그 반대로 불법승 삼보를 훼손하면 그 악업에 대한 과보 역시 어마어마하게 큰 것입니다.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훼손한 자는 반드시 큰 업보를 받게 된다. 이 업보는 한 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 동안 갚아도 갚을 길어 없다고 한다.
출처 : 불교신문/불교방송 (광우 스님 법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