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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0일 일요일 백두대간 44 회차 매봉산
자유인 산악회
백두대간 44 회차 : 두문동재 – 금대봉 – 비단봉 – 수아발령 – 바람의 언덕 – 매봉산 – 삼수령 – 피재 – 건의령
산행거리 : 약 17 km 산행시간 : 약 7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85030/1741796
(램블러이 작동하지 않아 yskim391 님의 기록을 인용함)
거리 17.8 km
소요 시간 7h 11m 50s
이동 시간 6h 7m 1s
휴식 시간 1h 4m 49s
평균 속도 2.9 km/h
최고점 1,448 m
총 획득고도 917 m
난이도 보통
백두대간 (白頭大幹) 44 – 매봉산
푸르른 날
서정주 시 송창식 곡. 노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꽃 가을 끝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오
비가 또 오면 어이하리오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날씨 : 맑음, 단풍 절정, 미세먼지 나쁨, 기온 온화,
옷차림 : 겹겹이 옷을 준비했으나 따뜻한 날씨에 셔츠만 입고 산행함..
뒷풀이 : 이보연 님이 불고기를 준비하여 하산 후 버스옆에서 저녁 먹음
뜻 밖의 귀중한 선물을 받았다. 참 인연이란 것도 묘한 것이다. 재작년 여름 남설악에 가고 싶은 마음에 어느 산악회의 백두대간팀을 따라서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산악회의 산행 모습을 아주 맛깔나게 올리는 스텔라 님의 글에 반해서 내 느낌을 댓글로 남기곤 했는데, 얼마 전에 그 분이 직접 쓴 책을 보내주시겠다고 카페로 문자가 왔다. 그러고선 내가 러시아 여행을 다녀와서 주소를 알려줬는데 정말 택배로 두 권의 책이 배달되었다. 화요일 아침에 출근하니 저자이신 황 성자 님께서 손수 인사말까지 넣어서 보내주신 <아버지의 꽃 지게>와 두 번째 수필집 <단 하루의 마중>이라는 제목의 책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나와 같은 세대가 어렸을 때 보고 느꼈던 생활상이 내 기억보다 더욱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도저히 흉내낼 수도 없을 만큼 감칠맛나는 표현력으로 가난과 고달픔을 아련한 추억으로 살려내고 있다. 물론 삶이란 것이 각자의 것이지만 비슷한 환경에서 보고 느꼈을 일들을 마치 어제 있었던 것처럼 써 놓은 글을 읽으면서 나는 또 하나의 귀한 추억 거리를 만들고 있다. 5년 후에 아니면 또 10년쯤 후에는 또 다른 장면으로 추억의 책장으로 펼쳐질 것이다. 난 참 복도 많다.
황성자 님의 수필집
요즘은 백두대간 산행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지난 주말에 북설악 무박산행에 이어 이번에는 다시 태백으로 내려와 두문동재에서 당일 산행으로 진행한다. 원래 격주로 설계되어 있었는데 10월 3일 개천절과 9일 한글날이 포함되어 있던 것을 삭제하고 주말에 끼워 넣다 보니 연속 산행으로 계획을 수정했나 보다.
토요일에는 하느님도 시샘할 만큼 날씨가 청명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가을이 빨리 나와보라고 유혹하는데도 난 어짜피 일요일에 산행을 할 참이니 오늘 하루는 집에 머물면서 선물 받은 책도 읽고 외국어 공부도 좀 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온전한 휴일을 보냈다. 윤이는 일산 진골 산악회를 따라서 북한산에 가고 미리는 친구 결혼식에 가고 어짜피 토요일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것이 되었다. 시장에 나가 김치찌개용 돼지고기 한 근과 포도와 복숭아를 각 한 상자씩 사왔다. 하루 종일 맘껏 먹으면서 실컷 게으름을 부려 보았다.
전날 너무 많이 먹은 탓인가? 일요일 5시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도 훨씬 전에 잠에서 깨었다. 몸이 떨릴 정도로 으슬으슬 춥고 왼쪽 손목이 뭔가에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머리속까지 통증이 전해진다. 몸이 추운것과 손목통증이 서로 관련이 있는 것인가? 손목통증은 낯선 것이 아니다. 오래전에 몸이 피곤할 때면 손가락이나 손목 또는 무릎 등 마디 미디가 벌겋게 붓고 아픈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소염진통제를 먹으면 가라 앉는 류머티스 관절염이었다. 불치병처럼 여겨졌던 관절염은 내가 정기적으로 산행을 하면서 거짓말처럼 잊혀 졌는데 찬바람과 함께 불청객처럼 다시 찾아온 모양이다. 오늘 산행을 하는데 괜챦을까 걱정을 하면서 우선 소염제 한 알을 먹고 산행 준비를 했다.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자 괜챦을거라는 믿음이 일어난다. 양재역에서 버스를 타고 산행 들머리인 두문동재로 가는 동안 봄날 병든 병아리마냥 꾸벅꾸벅 졸면서 그야말로 비몽사몽간 3시간을 지나왔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점차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손목 통증은 차도가 없어 스틱을 가져갈까 말까 마음속으로 망설여진다.
한 달 반만에 다시 찾은 두문동재 (1,268)
아침에 먹은 약효 덕분인지 아니면 차에서 잠깐 누렸던 휴식 덕분인지 두문동재에 도착했을 때는 손목에 붙어 있는 약간의 통증 말고는 컨디션이 제법 좋은 상태가 되었다. 아무래도 내 병은 쉬지 않고 계속 움직여야 재발하지 않는 불치병인가보다. 자전거 패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는 것처럼 나도 움직이지 않으면 온갖 벌레들이 달려들어 먹잇감으로 삼고 쓰러뜨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문동재는 지난 번 함백산 산행 때 날머리로 삼아 내려왔던 곳이다. 고려 유신 일곱 명이 경기도 포천의 광덕산 골짜기에서 겨우 죽임을 면하고 삼척 땅으로 유배당한 공양왕을 찾아 불원천리 찾아왔는데 그 공양왕마저 죽임을 당했다는 비보를 전해 듣고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정선의 골짜기에 틀어박혀 두문불출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는 사연으로 두문동(杜門洞)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 두문동재는 그들의 왕이 죽임을 당한 삼척땅에서 두문동으로 넘나드는 고개 이름이다.
금대봉으로 들어가는 입구 공원 관리소
이른 봄부터 계절을 가리지 않고 야생화 탐방객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태백산 국립공원 관리소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예약을 확인한 다음에야 들여보내준다. 하루에 300명까지 입장을 제한하는 관계로 주말마다 북새통을 이룬다. 그런 야생화 탐사도 9월 30일에 종료되어 두문동재에서 시작하여 대덕산을 거쳐 한강의 발원지라고 알려진 검룡소(劍龍沼)까지 이어지는 야생화 탐방로가 긴 휴식에 들어갔다. 지난 봄에 이 곳에서 난생 처음으로 <한계령풀>을 만났었다.
금대봉(金臺峰 1,418.1 m)
이번 산행은 야생화 탐방이 아니다. 태백산 – 함백산 - 은대봉에서 이어지는 금대봉 – 매봉산의 백두대간 산줄기 산행이다. 평소 이 시간이면 야생화 탐방객들로 북적이는 두문동재 관리소 앞이 한산하다. 오전 10시 30분 두문동재 이름돌 앞에서 단체 인증사진을 남기고 산행을 시작한다. 입구는 탐방로 관리를 위해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넓게 닦아 놓은 임도길이다. 울퉁불퉁 굵은 자갈이 박혀 있지만 지리산부터 1년 반동안 걸어 올라온 자유인 대간팀에게는 레드카펫이나 마찬가지다. 금대봉으로 이어지는 좁은 산길도 계속해서 오르막이지만 우리는 중간에 숨만 한 번 고른 채 쉬지 않고 오른다.
금대봉(金臺峰 1,418.1 m)이란 산 이름도 참 예쁘다. 지난 번 함백산 산행 때 마지막 봉우리였던 은대봉과 짝을 이룬다. 이 아래 정암사에 있는 금탑 은탑의 이미지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름돌도 은대봉과 똑 같은 모양과 크기로 세워놓았다. 금대봉에서 올려다본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파랗다. 올라오면서 길 양옆으로 늘어선 신갈나무 잎들은 벌써 겨울 서리를 만난듯 쭈글쭈글하다. 단풍철이 지났나 하는 의구심을 일으킨다.
따님과 함께 대간을 걷는 김 용호 선두 대장님 - 만인의 부러움을 산다
그러나 그런 의구심은 금대봉을 지나 비탈진 산길로 한 걸음 내려놓자 마자 기우였슴을 알게 되었다. 누가 봄꽃이 예쁘다 하였나. 화려한 진달래나 은은한 목련꽃이 이처럼 아름다웠던가. 4월 도로위에 나부끼던 벚꽃이 이렇게 풍성했던가. 아직 늦여름의 초록을 간직한 참나무 잎과 샛노란 단풍잎과 진한 핑크색 회잎나무와 눈이 시리도록 붉은 당단풍나무 잎이 길 양옆으로 줄지어 서 있다. 우리는 단풍터널을 지난다. 오늘은 길을 걷는 우리가 아니라 숲 속에 울긋불긋 피어 있는 단풍나무가 주인공이다. 단풍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단풍나무가 거리목이 되어 한껏 느려지기만 한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마치 하룻밤만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신기루라도 되는 양 우리는 좌우로 쉴새없이 눈을 돌리며 단풍을 감상한다. 와 ~ 눈으로 보는 아름다운 풍경이 감탄사가 되어 입으로 흘러나온다.
금대봉에서 수아밭령으로 가는 길이 단풍으로 불탄다
회잎나무
복자기
수아밭령
그렇게 정신없이 걷다 보니 손목 통증이 많이 가라앉는다. 산행을 시작한 지 한 시간가량 정말 정신없이 걸어왔나보다. 갑자기 앞 쪽이 어수선하여 다가가니 벌써 저 멀리 달아났을 줄만 알았던 선두팀이 보인다. 수아밭령이다. 밑동이 크게 한 아름은 넘음직한 나무가 큰 어르신처럼 앉아 있고 주변은 널찍한 마당처럼 펑퍼짐하다. 우리 회원님들은 한 켠에 불길처럼 타고 있는 단풍나무 주변에서 서로 서로 사진찍어주기에 정신없다. 오전의 마지막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파고 들어 노란 단풍잎에 화살처럼 꽂힌다. 얼굴은 붉게 물들고 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빛이 우리에게 베풀어주는 치유, 요즘 흔히 말하는 힐링이 바로 이런 것인가보다.
옛날 먹고 살것이 없던 시절 이 산골짝에도 밭을 일궈 밭벼를 심었다고 한다. 벼라는 것은 원래 물이 마르지 않는 논에서나 자라는 것인데 물이 부족한 고원지대에서 적응하는 밭벼를 심어 쌀을 생산한다. 그런 연유로 예부터 이곳을 수화전(水禾田)이라 하였고 이를 줄여 화전(禾田)이라고 썼으며 사람들은 “쑤아밭”이라 불렀다 한다. 지금은 이처럼 나무가 울창한 숲이 되었지만 그 지명은 남아 있어 “수아밭령”이라고 지도에 표기되어 있다.
밭농사를 짓던 곳이라 하여 수아밭(水禾田)이라 불렀다 한다.
모델 역할을 하느라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단풍나무
수아밭령을 지키고 있는 나이든 물푸레나무
이 곳에서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에 갈 수 있다
한 바탕 소란이 가라앉은 후 수아밭령은 다시 한적한 숲으로 남는다.
이정목에는 검룡소 주차장이 1.4 km 그 반대편으로 용연동굴 주차장이 또 1.4 km 라고 표시되어 있다. 우리가 지나온 금대봉은 2.8 km이고 이 다음 여정인 비단봉이 0.6 km 남았다. 그러니까 이 수아밭령은 사거리인 셈이다. 여유있는 사람은 약 1 km쯤 떨어진 검룡소에 들렀다가 올 수도 있겠다. 검룡소는 화천과 춘천을 거쳐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합쳐져 서울을 지나는 한강의 발원지로서 하루에 약 2천톤의 샘물이 솟아난다고 한다.
잠시 달아올랐던 흥분의 도가니에서 벗어나 선두팀이 먼저 출발하고 별동대가 뒤따른다. 지난주 설악산에서 그렇게 화려한 단풍을 보았음에도 다시 보는 단풍바다에 모두들 빠져버렸다. 수아밭령까지 내리막을 치닫던 산길은 서서이 올라간다. 앞에 우뚝 솟은 봉우리에 올라서면 또 내리막이 있겠지. 하지만 우리나라 산의 모습은 그렇게 쉽게 정상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마루에 올라서면 그 앞에 더 높은 봉우리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내려다보고 있는 그런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손짓을 따라 또 오른다.
비단봉 (1,270 m)
그리고 그 곳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가슴이 뻥 뚤리는 그런 시원함을 맛보았다. 눈 앞에 작은 바위 봉우리가 서 있는데 앞서 올라간 사람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돌부리를 잡고 한 단계 올라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앞에는 시야를 막는 나무 한 그루 바위 하나도 없이 그야말로 망망대해 내가 상상했던 단풍산의 면모가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이제까지 조망이 하나도 없는 숲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해 주는 듯 왼쪽으로는 태백산 줄기부터 시작해 함백산을 거쳐 중함백 은대봉 그리고 오늘 걸어온 금대봉부터 이어지는 그 넓은 숲이 주황빛 단풍에 초록색이 점점이 수 놓아진 양탄자처럼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초록빛은 소나무나 낙엽송 군락지다. 낙엽송은 아직 물들지 않았지만 그것도 조만간 샛노랑으로 물들어 가을의 행진에 동참할 것이다.
비단 병풍을 배경으로 한 컷 !
함백산에서 은대봉 금대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뚜렷하다
오른쪽으로 더 가면 대덕산을 거쳐 검룡소로 내려간다.
왼쪽으로 태백산 줄기가 보인다.
바위전망대 위에는 아담한 크기의 둥근 돌에 ‘비단봉’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단봉, 그래 정말 이름 하나 잘 지었다. 여기서 바라보는 산군의 모습은 마치 은은한 색깔로 물들인 부드러운 비단이 잔잔한 바람에 흩날리는 그런 풍경이다. 파노라마 영화의 한 장면을 본 그런 기분이다.
영화가 끝나고 애잔한 여운을 간직한 채 우리는 다시 숲속으로 난 산길을 걷는다. 12시 30분 길 가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식사를 하는 회원님들과 어울려 점심을 먹는다.
비단 물결을 바라보며 황홀한 감상에 젖어보는 별동대원들
금강산도 식후경이 아니라 화려한 소풍 뒤에 먹는 점심밥이다.
바람의 언덕 그리고 고랭지 채소밭
백두대간은 호젓하고 아름다운 산길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지나온 길에도 황폐화된 채석장도 있었고 포장된 도로도 있었다. 마을도 지나고 잡초 무성한 묵은 밭도 지나왔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또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비단봉에서 점심을 먹고 조금 숲길을 걸어 내려오자 눈 앞에 광활한 조망이 펼쳐진다. 이미 산행기에서 읽어보았던 고랭지 채소밭이다. 그냥 밭이 아니라 채소재배 단지(團地)라고 해야겠다. 이미 추수를 마친 빈 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군데군데 하얀 첨탑의 풍력발전기가 서 있다. 두 군데 추가로 풍력발전기가 건설되고 있다. 우리가 걸어야 할 대간 산행길은 저 고랭지 채소밭 사이로 난 농로를 따라 한참을 돌아서 바람의 언덕 너머 매봉산으로 이어진다.
추수를 마친 고랭지 채소밭이 빈 밭이 되었다. 대간길도 야금야금 파먹고 이제 대머리 까진 상투만 남았다.
바람의 언덕을 오르면서 뒤돌아본 비단봉
바람의 언덕 위에는 멋진 하늘이 펼쳐진다. 요 앞에 있는 기둥은 한창 건설중인 풍력발전소다.
늦둥이 각시취와 나비
각시취 군락 뒷쪽으로 멀리 금대봉에서 내려오는 능선길 그리고 가까이 비단봉
매봉산 이름돌 앞에서
탁 트인 밭 위로 풍차가 줄 지어 서 있고 그 위에는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흰 뭉게구름이 떠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이국(異國)적인 풍경이다. 어쩌면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없고 강원도 태백에 와야만 볼 수 있는 고유의 풍경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매봉산 (천의봉 1,303 m)
채소밭에서 바람의 언덕을 거쳐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길은 개발과 보존이라는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렸을 때 고슴도치처럼 자란 머리를 바리깡으로 깍을 때처럼 얼마 남지 않은 매봉산의 숲과 채소밭의 경계가 뚜렷하다. 이제까지는 개발이라는 명분이 더 우세하여 얼마 남지 않은 숲을 야금야금 파먹어가던 추세였다면 백두대간을 보존해야 한다는 명분이 힘을 받는 건지 지금은 소강상태에서 보존의 힘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매봉산 바람의 언덕으로 오르는 길에는 농사를 짓지 않는 묵밭에 전나무를 심어 가꾸고 있다. 앞으로 십여 년 후 이 나무들이 자라나면 이 곳에는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으로 관광의 명소가 될 수 있겠다. 식재된 전나무 사이 널찍한 공간 무성한 잡초들 틈에 <각시취>가 큰 군락을 이루었다. 2 주 전쯤 이곳을 지났더라면 아름다운 꽃길에서 황홀경을 맛보았을 법하다. 이미 져버린 각시취 틈에서도 늦둥이 꽃들이 남아서 무심한 산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고랭지 채소밭 끝자락에 “바람의 언덕”이라는 테마를 설정하여 태백시에서 관광 마케팅을 전개하는 모양이다. 해발 1,200 미터 고지라서 여름에도 선선한 기운을 선사하니 가족단위로 이곳을 찾아 이국적인 풍경도 즐기고 시원한 바람도 쐬고 갈 만한 여행지라는 생각이 든다. 백두대간 매봉산 표지석을 지나 바람의 언덕도 넘어서 조금 더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매봉산(1,303 m)이 나온다.
오늘의 주인공은 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르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다.
매봉산(천의봉) 이름돌이 주먹으로 깨질까요?
함백산에서 이어지는 백두대간길
태백시에서 세운 매봉산 이름돌 뒷면에는 천의봉이라는 산이름이 새겨져 있다. 산봉우리 하나에 이름이 둘 있는데 산이름은 매봉산이요 봉우리는 천의봉이라고 해야 할까. 천(千) 벌의 옷을 입고 있는 산이라 하니 춘하추동 철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는 산의 성격을 표현한 이름이다. 천의봉에는 작은 데크 전망대를 설치해 놓아 태백산과 함백산을 두루 조망할 수 있다.
피재인가 삼수령(三水領)인가
매봉산은 백두대간 진행에 있어서 꼭지점과 같다.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 삼수령 방향으로 한참 내려간다. 아직 물들지 않은 낙엽송 숲을 오른쪽에 끼고 다시 고랭지 채소밭과 숲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걷는다. 잠시 숲 속으로 이어진 내리막 산길에 아담한 이름돌이 서 있다. 낙동정맥 시작점을 알리는 표지석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왼쪽으로는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오른쪽으로는 낙동강줄기와 함께 부산까지 연결되는 낙동정맥이다. 백두대간을 마치면 9정맥 중에서 낙동정맥을 우선 시작하자는 의견이 봄날 아지랑이 일 듯 솔솔 일어나고 있으니 멀지 않은 날에 다시 이곳에 올 것 같다.
낙엽송(일본잎갈나무)도 곧 화려하게 불타오르겠지.
저 구름은 예쁘다고 하니 어디 가지도 않고 그 자리를 지킨다.
내 곧 다시 찾아 올께... 낙동정맥을 찾아서
삼수령 - 이곳에 물을 부으면 한강, 낙동강 그리고 오십천 이렇게 세 갈래로 흐른다.
낙동정맥 갈림길에서 조금 더 내려가니 고랭지 채소밭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오고 이어서 삼수령(三水領)이라는 상징성 조형물이 보인다. 한강과 낙동강은 알겠는데 세 물줄기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강 ‘오십천’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설명을 읽어보니 서쪽으로는 한강이요 남쪽으로는 낙동강이고 동쪽 태백시를 관통하여 동해로 흐르는 것이 오십천이라 한다. 마치 마트에서 두 개를 사면 하나 더 얹어 주는 소위 끼워팔기 마케팅이다. 태백시에서는 이 곳 삼수령에서 흐르는 물이 우리나라의 큰 젖줄의 역할을 해 낸 것처럼 오십천의 영험한 힘을 얻어 태백시가 부흥할 거라는 논리로 삼수령이라는 상품을 내 놓았다. 어쨌든 나 같은 문외한도 이제 오십천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으니 성공한 메케팅이라고 해야겠다.
선두팀은 우리보다 15분 일찍 이 곳을 통과했다고 한다.
이 지역의 원래 이름은 ‘피재’였다. 지형이 험하고 지대가 높아 전쟁을 피해 이곳에 숨어들면 안전하다는 뜻에서 예전부터 불리워온 이름이라고 한다. 매봉산이 천의봉이라는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있듯이 피재도 삼수령이라는 이름과 함께 병행하여 부르는 것 같다. 태백시에서는 피재라는 이름을 지우고 삼수령이라는 상징성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하는 듯하지만 옛날부터 부르던 이름이 하루 아침에 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15분 쯤이야 뭐 ~~ 별동대원들의 얼굴엔 자신감이 엿보인다. 근디 뭘 믿고 그리 자신만만한겨 ?
오후 3시 삼수령에는 먼저 도착한 사람들 중에서 10 여 킬로미터의 힘든 여정에 지친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오늘 산행 날머리인 건의령까지는 6 km 를 더 걸어야 한다.
고려 충신들이 넘던 건의령(巾衣領 858 m)
건의령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키 큰 신갈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나무 아래에는 생강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노랗게 물들어 있고 산길에는 싸리나무가 사람 키만큼 자라고 있어 가끔씩 몸을 휘감는다. 싸리나무 군락지에는 아름드리 금강송도 많이 보인다. 나무가 조밀하게 자라난 탓에 건의령에 이르기까지 조망다운 조망처는 없다. 이미 꿈결 같은 단풍나무 숲과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하늘을 실컷 보고 와서 그런지 조망처가 없어도 좋다. 앞서가는 황일영님이 등고선이 표시된 지도를 보면서 이제 가파른 오르막은 없고 고만고만한 언덕만 몇 개 넘으면 된다며 별동대를 독려한다. 이제까지 ‘빨간불’도 외치지 않고 별동대의 선봉에 서서 거침없이 걷던 큰형님의 보폭이 조금씩 좁혀지면서 오르막에는 빨간불을 외친다. 빨간불을 외치면 우리 별동대원들은 따라서 복창하고 숨을 고른다. 맨 뒤에서 유튜브에 올릴 동영상을 촬영하며 뒤따르는 박상범 님은 삼수령에서부터 벌써 고개를 네 개나 넘었다며 특유의 유머로 좌중을 웃게 한다.
평소 걷던 대간길에 비하면 오솔길 같이 편안한 길이지만 거리가 거리니만큼 쉽지만은 않다. 잠깐 쉬면서 과일도 먹고 물도 마시면서 완보한다. 서두를 일도 없다. 어짜피 하산하면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산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간단한 피로연을 열고 있을 터이다. 5시가 가까워지니 꼬리잘린 가을해가 서쪽 산마루에 내려 앉으며 참나무 숲 나무 사이로 강렬한 빛을 쏘아댄다. 오늘은 해넘이를 볼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도 해본다.
산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커다란 참나무가 우뚝 서 있다.
해가 서산 마루에 걸리고 마지막 불타는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강렬하게 쏱아진다.
날머리인 건의령이 가까워졌을 때 갑자기 눈 앞이 탁 트이면서 넓은 평지성 벌판이 나타난다.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역에 얼기설기 도로가 나 있고 중간중간 나무를 베어 쌓아놓은 무더기가 줄지어 있다. 우리는 그게 뭔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전에 포 사격장으로 쓰던 곳을 복원하는 것일거라고 누군가 얘기한다. 정말 그럴싸 하다. 전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산불로 타버린 나무를 베어 정리하고 숲을 복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더욱 그럴싸 하다. 정구진 님은 그 근거로 대간길 왼쪽에도 간간이 보이는 죽은 나무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오른쪽 허허벌판의 큰 숲이 불에 타고 불길이 이 대간을 넘지 못하고 잡혔다는 추측이다.
웃자란 수풀 속에 어린 소나무가 보인다. 그리고 소담스럽게 무더기로 피어 있는 <개쑥부쟁이>와 <산구절초> 그리고 <뚝갈>꽃도 군데군데 보인다. 나무가 없는 벌판 너머로는 긴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저녁 햇살이 능선 끝자락에 걸려 있다.
건의령(巾衣領)은 태백시 상사미동과 삼척시 도계읍을 연결하는 412번 지방도로 위에 있다. 고려말 이미 권력을 쥔 이성계가 꼭두각시로 앉혀놓은 공양왕이 고분고분하지 않자 그를 삼척땅에 귀양보냈다. 이에 고려 충신들은 귀양간 공양왕을 따른다며 불원천리 먼길을 달려왔으나 이미 공양왕은 죽임을 당한 뒤였다. 이에 고려의 충신들은 다시 이 고개를 넘어오며 다시는 정계에 들지 않으리라 맹세하는 의미로 머리에 썼던 관모(巾)와 입고 있던 관복(衣)을 벗어 고개마루에 걸어두고 태백산으로 들어갔다고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들의 충절을 기려 건의령(巾衣領)이라 불렀다 한다. 지금 우리 같은 후세 사람들이 듣고 느끼기에는 우리나라 긴 역사의 한 모퉁이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처럼 보이지만 이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는 거대한 소용돌이였을 것이다.
큰 산불로 인해 파괴된 산림을 복구하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고려 충신들의 한이 서린 고개 건의령이다.
소나무 사이에는 야생화를 심었다. 개쑥부쟁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대간길 건의령에서 한 발짝 내려선 곳에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건의령 터널까지 이어진다. 길가에 핀 꽃을 감상하며 여유를 부려본다. 이 곳 숲 복원계획에 소나무뿐만 아니라 야생화 식재도 포함되어 있다. 머지 않아 건의령 주변에는 대단위 야생화 탐방코스가 조성되어 있겠다. 건의령 대간길 옆에는 숲 복원사업에 기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는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가을이 깊어간다. 산국이 익어간다.
묵은 밭에는 털별꽃아재비와 개쑥갓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노란 가을꽃 <감국>이 활짝 피었다. 넓은 묵밭에는 <털별꽃아재비>꽃이 많이 보이고 밭은 온통 <개쑥갓> 꽃씨가 하얗게 달려 있어 어둑어둑한 저녁 어스름빛에도 뚜렷하다.
오후 5시 50분 산행을 마치고 버스 옆에서 뒤풀이를 한 후 6시 30분에 건의령을 출발하여 10시 30분 양재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