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文解)1)교실 할머니들의 작은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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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8일 토요일 오전 11시55분 손전화가 울렸다. 대강면으로 가는 길에서 였다.
“어디세요. 안 오시는 건가요.”
유선생님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평소의 쾌활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12시10분경 대강면 대광교회 앞에 도착했다. 목사님과 면사무소 총무담당이 밖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교회 교육장안으로 들어가니 앞쪽 벽에 ‘행복한 할머니들의 작은 나눔’이라고 붙여놓은 큰 글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소백학교 대강면 문해교실(대광교회)에서 뭔가를 준비해 지역의 문해교사들을 초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상밖으로 참석자가 많지 않았다. 유선생님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작은 나눔 행사는 30분이 지나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대강면 지역 문해교사 4명과 올 해 교육을 이수한 2명의 문해교사, 그리고 면사무소 총무담당과 내가 마지막이었다.
행사가 진행되었다. 할머니 학생 반장님의 인사말씀이 있었다. 뒤늦은 배움의 길을 함께 가고 있는 할머니 아홉명이 앞으로 나와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소개를 하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스승의 날 노래를 불렀다. 이제 막 한글을 깨우친 할머니들이 노래를 배워 부르며 그 동안의 배움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5년부터 시작된 대강면 문해교실(대광교회)에서는 할머니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궁리했다. 비록 글을 모르고 60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살림에서만은 누구보다도 경험이 많은 이들이다. 그 가운데에도 두부를 만드는 일에 의견이 모아졌던 모양이다. 그래서 모두 함께 두부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인근의 대강초등학교에서 방과후학교가 운영되고 있는데 결손가정 아이들이 간식을 준비해 오지 못하고 있으니, 그렇게 만든 두부를 간식으로 아이들에게 먹이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할머니들이 함께 콩을 물에 불리고, 방앗간에서 찧었다. 토요일에는 새벽 5시부터 나와 두부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순두부와 손두부로 한 끼 식사를 준비해 문해교사들과 나누는 자리였던 것이다.
스승의 날 노래가 끝나자 할머니들이 정성스럽게 손수 만든 카네이션을 문해교사들의 가슴에 달아주었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받아야하는 할머니들이 그 동안의 가르침에 감사하는 뜻을 카네이션에 담아 한참이나 젊은 선생님들에게 달아드린 것이다.
행사장 한쪽에는 이제까지 배운 솜씨로 할머니 한 사람 한 사람이 순서데로 작성한 ‘손두부 만들기’라는 제목의 글이 벽에 붙여져 있었다. 나중에 자신이 쓴 글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또박또박 적어 넣었다.
저 만큼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이웃들에게 심지어는 자식들에게까지 글을 모른다는 것을 숨기며 살아온 세월... 이웃들의 손가락질과 수군거림... 글을 몰라 물건을 하나 사는데도 버스를 한 번 타는 데도 겪어야했던 어려움... 관공서에서의 증명서 발급 신청서도 은행에서 입출금 전표도 쓸 수 없었던 날들... 할머니들은 이런 날이 오리라 상상이나 했을까. 글을 읽어내려 가는 그 짧은 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행사가 진행되면서 숨겨진 뜻들이 하나씩 들어났다.
비문해인으로 이 교육장에서도 교육생으로 늘 객으로만 살아왔던 할머니들이 오늘은 주인이다. 학생들의 학예발표회처럼 자신들이 준비한 행사의 주인으로 손님을 맞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다시 지역의 어려운 아이들과 나누기로 의기투합했다. 이 쯤되면 그 동안의 배움이 지역사회에 나눔으로 환원되는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중학교까지 국가에서 의무교육의 혜택을 주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지만 배움이 나눔으로 이어지는 예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배움은 늦었지만 나눔은 누구보다도 앞선 할머니들...
우리가 살아가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들은 너무도 많다. 사고의 영역은 늘 한계가 있고, 경험도 마찬가지다. 오늘 대강면 문해교실(대광교회) 교육생 할머니들이 주인이 된 행사를 다녀온 뒤 조금 더 확장된 사고와 경험의 영역을 느끼게 된다. 결국 이제 막 문해의 길로 들어선 할머니들이 소중한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에서 할머니들의 생각을 모으고 그 생각이 실현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있는 대강면 문해교실(대광교회) 선생님들(대표 유진선문해교사)과 이운영목사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행사가 끝나고 먹어 본 두부는 어느 것보다도 맛이 있었다. 그 두부에 베인 정성과 뜻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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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해(文解)는 비문해(非文解)의 상대되는 말이다.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 글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금 더 부연해서 이야기하자면 글자를 읽고, 쓰며 글자로서 의사소통을 하고 이를 이해하는 것까지를 의미한다. 여기서 글자는 한글만을 뜻하지 않는다. 일상 생활에 의사소통을 위해 쓰여지는 글자는 모두 해당된다. 알라비아 숫자와 외국어 가운데 영어, 한자가 대표적이다. 단순히 일상생활에 쓰는 글자만을 생각해 보드라도 사람들은 누구나 다 문해인이면서 비문해인이다. 우리는 한글을 다 아는 것 같지만, 한글로 쓰여진 말들의 뜻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 또한 알라비아 숫자도 다 아는 것 같지만, 그것들이 조합되어 만들어지는 수식은 모두 알지 못한다. 또한 영어의 알파벳도 아는 것 같지만, 그것들이 조합되어 언어화되었을 때는 모두 알지 못한다. 한자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상대적인 개념으로 보자면, 문자생활의 기본이 되는 한글을 미처 배우지 못한 이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의 가장 큰 부분이 과거의 가난이나 전쟁, 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같은 사회적 현상에 의해 우리 사회가 미처 그들을 돌보지 못한 사이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문해를 쉽게 개념적으로 이해하려면 과거의 ‘까막눈’ 또는 ‘문맹’이란 단어를 떠올려 보면 쉬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말들에는 사회적인 현상으로 사람을 인격적으로 무시하거나 비하는 뜻이 베어버린 말이 있다. ‘장애인’을 ‘병신’이라고 한다거나, 비문해인을 ‘까막눈’이나 ‘문맹’이라고 하는 말들이 그것이다. 전체 사회적으로 보면, 어째든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은 다수고 그렇게 불리는 사람들은 소수다. 어떤 이유에서건 다수 쪽에 서지 못하는 소수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의 상처로 박히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문해, 비문해인이란 말도 일반적인 말들이 되길 바래본다. // 4. 28.시작 도담삼봉에서 김 영 식.
첫댓글 사진과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스칩니다...감동... 어느학습장에나 시설은 갖춰져 있는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실천 하는 교육 장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는것 과 많은 프로그램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게 좋을까 가능 할까등...학습장마다 개성있는, 특징 있는, 교육장도 좋을것 같고.....하여튼 단양문해 화이팅! 잘 될거야!!!!!!!!.
계장님 글을 읽으니 마음이 보이네요. 진정한 뜻은 신께서 아실테지요 우린 늘 보이는 것이 전부일줄 알지만 보이지 않는것에 더 큰 사랑이 있습니다. 애쓰셨습니다 어머님들 마음과 선생님들 마음이 곱게 모여져서 누군가에게 따스한 사랑으로 번져 나가기를 기도해 봅니다.
노선생님 안녕하시지요? 교장선생님과 솔뫼학교도 물론이구요. 요사이도 바삐 움직이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물론 문해 때문에...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어머님들의 정성어린 마음에 혹 실망과 상처가 되지는 않으셨는지...정말정말 죄송합니다...
문해교육의 이해와실행 (문화해방) 을 실천 하신 선생님께 장하다는 칭찬의 꽃다발을 드립니다.
정말 가슴아팠습니다. 좀더 많은 선생님들이 함께 했었으면! 계장님의 노고가 눈에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