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3) 영적인 그리스도인의 필수적 조건들/ 내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한15,4)
<먼저 그리스도 안에>
지난 글의 주제는 로마6,11절의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길지어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우리 자신 안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안“은 우리가 죽는 장소가 아니다.
”내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한15,4).“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데 있어서 우리의 몸부림과 노력이 조금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는 우리가 이미 그분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 안에 거하라, 곧 머물러 있으라고 하셨다. 이는 곧 우리가 놓여진 곳에 머물러 있으라는 뜻이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두신 것은 하느님 자신의 역사이다. 우리 편에서 해야 할 일은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이다. 또한 이 구절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가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성취하셨다는 것이다.
먼저 만유를 포함하신 하느님의 아들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 밖에서“ 완전하고도 궁극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리스도의 이런 역사는 장차 그리스도인의 체험이 되며 그분 밖에서는 우리의 영적 체험이 없다. 성경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분 안에서 살리셨고 하늘에 앉히셨으며, 우리가 그분 안에서 충만하여졌다고 말한다(로마6,6; 에페2,5-6; 골로2,10).
이런 일들은 우리가 완성하도록 남겨둔 일이 아니다. 물론 우리는 이런 체험들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런 일들은 이미 그분으로 인하여 완성된 일들이다. 하느님께서 그분의 은혜 안에서 이루신 일은 바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포함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이루신 역사는 이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루어진 것이다.
그분이 머리를 다루실 때 모든 지체도 다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그분을 떠나서 자신 안에서 단독적으로 영적인 생명을 체험하려 한다면 우리는 완전히 끝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영적 체험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 곧 그리스도께서 이미 다 체험하셨다. 그러므로 소위 ”우리의 체험“은 우리가 그분의 역사와 체험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한 그루의 포도나무에 가지마다 색깔이 다른 포도를 맺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포도 가지의 성질은 포도나무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안에서 각종 체험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것과 부활과 승천을 각각 개별적인 일로 잘못 생각한다.
그들은 모든 것이 주님 안에 포함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직 주님이 우리 눈을 열으사 그분이 만유이심을 보게 될 때 비로소 참된 체험이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모든 진실한 체험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사실을 발견하고 그 사실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에 대한 모든 역사는 하느님께서 우리 개인 안에서 역사하지 않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다.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곧 하느님은 이미 그분의 아들 안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셨고 또한 우리를 그분의 아들 안에 포함시켰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고 그리스도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끌어내어 그리스도 밖에 있게 하려고 한다. 사탄은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다고 여기도록 우리를 권하고 설득한다. 또한 유혹과 실패와 고통 그리고 시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다고 확실히 느끼게 한다. 이때 우리는 ‘주여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넣어 주소서’라고 기도한다. 이것은 잘못된 기도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고 명하셨다. 이것이 구원의 방법이다. 어떻게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 되는가? 이렇게 할 때 하느님은 우리 몸에서 무언가를 역사하실 기회를 얻으실 수 있다. 이럴 때 그분은 뛰어난 능력, 곧 부활의 능력(로마6,4, 9, 10)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사실을 점차적으로 매일 우리가 체험하는 사실들이 되게 할 기회를 얻게 되신다.
본래는 ”죄가 왕노릇하였으나(로마5,21),“ 이제는 기쁨 안에서 우리는 진실로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게(로마6,6)“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만유하는 기초 위에 굳건하게 서 있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이 점차적으로 우리 안에서도 그러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기초 위에 서 있다면 우리는 옛사람의 모든 것이 여전히 우리 몸에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서 있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 들어간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스도 밖에서 자아파쇄를 찾으면 실패한다>
많은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 밖에서 자아파쇄를 찾으려고 한다. 이것은 장소를 잘못 찾은 것이다. 이는 죽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만일 우리가 계속 우리 속을 들여다본다면 죄를 향하여 우리는 언제나 살아 있을 것이다.
그 반면에 만일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며, 하느님으로 하여금 죽음을 여기에 역사하시도록 한다면, 결국 새 생명은 우리의 것이 된다. 이때 우리는 하느님을 향하여 산 자가 될 것이다(로마6,4, 11).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그러나 하느님에 대해서는 산 사람으로 여기십시오.“ 곧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죄의 세력이 붕괴되고 하느님께 순종하는 삶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요한15,4절의 ”내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이것은 이중적인 내용이 담긴 말씀이다. 한 부분은 명령이고, 다른 부분은 약속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역사에 객관적인 면이 있는 반면에 주관적인 면도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주관적인 면은 객관적인 면에 근거한다.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는 말씀은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한 것의 결과이다.
우리는 주관적인 면을 지나치게 관심함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소홀히 하고 자신을 향하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는 객관적인 면인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을 붙잡고, 주관적인 면은 하느님께 맡겨야 한다. 주관적인 면은 하느님께서 감당하시고 행하신다.
전등의 예를 보자. 만일 당신이 집 안에 있고 날이 점점 어두워진다면 책을 읽기 위해 당신은 등을 켜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벽에 있는 스위치를 켜야 한다.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등에 빛이 들어올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주님과 동행할 때 우리는 초점을 그리스도 한 분께 늘 고정시켜야 한다. 수시로 주님의 이름, 곧 ”예수“를 부르는 것이 초점이다.
”내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이것은 하느님이 정하신 순서이다.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믿음은 그 사실들을 주관적인 진실로 만든다. 이것은 사도 바오로의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2코린3,18)“는 말씀과 같다.
같은 원칙으로 이것은 생명의 열매 맺음에 적용할 수 있다.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요한15,5).“ 우리는 스스로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하거나 혹은 맺은 열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다만 우리의 본분은 그분을 바라보고 사모하며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이럴 때 그분은 우리 안에서 그분의 말씀을 이행하신다.
<어떻게 내가 그분 안에 거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분 안에 거하는가? 1코린1,30절은 ”너희는 하느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느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라고 말한다. ”너희는 하느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두신 것은 하느님의 역사이다. 또한 그분은 이미 이것을 다 이루셨다.
자신 안에 있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 다만 그리스도를 주시하고 그분 안에서 당신을 보라. 그분의 이름 ”예수“를 불러보라. 그러면 즉시 그분의 임재를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있었던 것으로 돌아가지 말라. 그분 안에 거하라. 하느님께서 당신을 그분의 아들 안에 두셨다는 사실에 안식하라.
또한 그분이 당신 안에서 그분의 일을 완성하실 것을 믿으라. 그분은 영광스러운 그분의 약속을 실현하신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로마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것이 가능한 까닭은 율법이 은혜의 지배를 통하여 대치되었기 때문이다.
알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