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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에 옮겨져 있는 함무라비 법전이 새겨진 비
6.23~7.7간 화명도서관에서 빌린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백두산을 오르고, 지리산을 종주해 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 생각 해보고 또 630쪽 넘는 이런 책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생각도 하면서 책 읽었다. 독후감이라고 쓴 것이 A4용지 25장이니까 읽는데도 제법 마음을 다잡고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책은 에세이도, 시집도, 소설책도 아니고, 철학서는 더더구나 아니다. 책 표지에 “역사와 현대 세계에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책! 문명의 배를 타고 진화의 바다를 향해한 인류는 이제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라고 묻고는 “인간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인가? 역사, 사회, 생물, 종교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류역사의 시간을 종횡무진 써내려간 문명 황해기!”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인류문명의 발전과 한계를 고찰한 책, 한 나라의 역사가 아닌 인류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는 짐작은 해 보게 한다.
책머리에서 ‘한국의 독자들에게’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이 독자 스스로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막대한 힘을 얻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는 또한 이 같은 이해 덕분에 생명의 미래에 대해 우리가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하고
이어서 “이 책이 한국 독자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한국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딜레마를 더욱 압축해서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 세기 안에 파괴적인 전쟁과 식민 지배를 모두 겪었고 매우 짧은 기간 안에 저개발 전통사회에서 선진경제 국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가진 나라 중 하나로 성장했다. 첨단 기술의 전도유망함과 더불어 위험도 두 배로 많이 느끼고 있고, GDP와 생활수준이 올라가는 동안 자살률도 치솟았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은 선진국 중 최고, 세계 전체로 보아도 가장 높은 수준에 육박하는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행복도’조사에서도 멕시코, 콜롬비아, 태국 등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나라보다 뒤처져 있다. 이는 가장 널리 통용되는 역사법칙의 어두운 한 단면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국이 가르쳐 주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기술은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고 마침내 사람들이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1945년 한반도 남쪽과 북쪽의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기술은 정확히 똑 같았다. 하지만 오늘날 남북한의 기술격차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동일한 언어와 역사와 전통을 지닌 동일한 민족의 사람들이 거의 비슷한 기술을 사용해서 완전히 다른 사회를 건설한 것이다.
전 세계의 모든 지역 사람들은 놀라운 신기술에 접근할 수단을 가지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은 우리에게 그것으로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유전공학, 인공지능, 그리고 나노기술을 이용해 천국을 건설할 수도 있고, 지옥을 만들 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그 혜택은 무한할 것이지만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인류의 멸종이라는 비용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선택은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고도 했다.
지구역사 45억년 보다 더 오래된 137억 년 전에 우주에 빅뱅이 일어나 물질과 에너지,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게 되었고 이런 우주의 근본적 특징을 다루는 것을 ‘물리학’이라 부르고, 우주 생성 30만년 후 원자라는 복잡한 구조가 형성되고, 이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되었고, 원자와 분자의 상호작용에 관한 것을 우리는 ‘화학’이라 부른다. 그리고 지구가 탄생한 뒤 7억 년 후 그러니까 38억 년 전, 지구라는 행성에서 모종의 분자들이 결합해서 특별히 크고 복잡한 구조물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을 ‘생물’이라 한다. 생물에 대한 이야기가 ‘생물학’이고, 지금부터 7만 년 전에 현재의 우리인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하는 생명체가 좀 더 정교한 구조를 만들기 시작됐는데 이때부터 문화가 출현했다. 이 인류문화가 발전해 온 과정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중요한 요인은 다음 세 개의 혁명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20만년 전 쯤에 호모 사피엔스가 7만 년 전에 일어난 ‘인지혁명’을 시작으로, 12,000년 전에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 속도를 빠르게 가속화 시켰으며, 세 번째 ‘과학혁명’은 불과 500년 전 일이다. 이들 세 가지 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앞으로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롭게 시작하게 할지도 모른다. 이들 세 가지 혁명은 인간과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것을 찾는 것이 책의 주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1】인지혁명
인류는 역사가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며, 현대 인류와 아주 비슷한 동물은 250만 년 전(400만 년 전 설도 있다) 출현하였는데 그들은 수많은 세대 동안 같은 지역에 서식하는 다른 동물들과 딱히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 등장한 이들을 ‘남쪽의 유인원’이란 뜻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하는데 이들은 고향 아프리카를 떠나 여행을 시작해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정착했다. 이들을 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보다 덩치가 크고 근육이 발달한 덕분에 유라시아 서부에서 빙하기의 추운 기후에도 적응했고, 동쪽 아시아 지역에서는 ‘호모 에릭투스’(똑바로 선 사람이란 뜻)라 불리며 인도네시아와 중국 등에서 200만 년 가까이 살았다. 가장 오랫동안 산 인간의 종이 이들인데 지금까지 7만년을 살아온 우리‘호모 사피엔스’와는 2백만 년이란 시간은 우리와 동떨어진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릭투스들과 교배해 후손으로 지금의 우리가 되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연결되어 있다는 설, 아니라는 설이 그것이다. 설령 네안데르탈인 로미오와 사피엔스 종 줄리엣이 사랑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낳은 아이는 불임이었다는 것이고, 두 집단의 유전자 격차가 너무 커서 매울 수 없는 지경으로 이들은 서로 완전히 분리된 상태로 존재했다는 것인데 네안데르탈인이 죽거나 살해됨으로써 유전자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론이 사실이라면 지금 우리 인류의 조상은 7만 년 동아프리카에 기원을 둔 ‘순수 사피엔스’인 것이다.
최근 수년 동안은 교체이론이 상식이었다. 이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가 상대적으로 확고하였고,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2010년에 끝났다.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지도가 발표된 것이다. 유전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현대인과 비교해 보았는데 그 결과 오늘날 중동과 유럽에 거주하는 인간집단의 고유 DNA 중, 1∼4%가 네안데르탈인 DNA와 같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최소한 두 집단 간 교배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이론에 근거가 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교체이론을 무시할 정도로 완전히 틀렸다는 것도 아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오늘날 우리 게놈에 아주 작은 양만 기여했기 때문에 두 집단의 교류번식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으나 접촉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피엔스 탓이든, 아니든 사피엔스가 새로운 지역에 도착함으로써 그곳 토착 인류는 멸종했다는 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피엔스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생태적으로 전혀 다른 오지에서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 말이다. 사피엔스보다 튼튼하고 머리 좋고 추위에도 잘 견뎠던 네안데르탈인은 왜 우리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을까? 논쟁은 뜨겁게 계속되고 있다. 가장 그럴싸한 해답은 바로 이런 논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언어 때문으로,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들만 갖고 있는 고유 언어 덕분이었다.
그런데 모든 동물은 언어를 사용한다. 벌이나 새는 물론 원숭이를 비롯하여 수많은 영장류는 목소리를 사용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다. 앵무새는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모든 것을 말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벨소리, 사이렌 소리도 흉내 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앵무새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목소리와는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대체 사피엔스 언어에 어떤 특별한 점이 있었기에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우리 언어가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제한된 개수의 소리와 기호를 연결해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무한 개수의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주변 세계의 막대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며, 소통할 수가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무엇보다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협력은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개별적으로 사자나 들소의 위치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보다는 무리 내의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지, 누가 누구와 잠자리를 같이하는지, 누가 더 정직하고 누가 속이는지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사피엔스 언어의 특이한 점은 사람이나 사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보다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 직접보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 할 수 있는 존재는 우리 사피엔스 뿐이다. 전설이나, 신화, 신과 종교는 인지혁명과 함께 등장했다. 이전의 많은 동물과 인간 종이 “조심해! 사자야!”라고 말할 수가 있었다면 사피엔스는 ‘인지혁명’덕분에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신이야”라며 허구를 말할 수도 있는 능력을 가졌던 것이다. 이것은 사피엔스가 사용한 언어의 가장 독특한 점이다.
원숭이를 설득해 지금 나에게 바나나 한 개를 준다면 죽은 뒤 원숭이 천국에서 무한히 많은 바나나를 갖게 해 주겠다고 하더라도 원숭이는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허구 덕분에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성경의 창세기, 현대 국가의 민족주의, 신화와 같은 공통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는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래 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개미나 벌도 많은 숫자가 모여서 함께 일하는 능력이 있지만, 이들의 일하는 방식은 경직되어 있고 그것도 가까운 친척이나 무리들과만 함께한다. 늑대와 침팬지들의 협력은 개미들보다는 유연하지만 협동의 상대는 친밀하게 지내는 소수의 개체들뿐이다. 그에 비해 사피엔스는 수 없이 많은 이방인들과 매우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다. 개미는 우리가 남긴 것을 먹고 침팬지는 동물원이나 실험실에 갇혀 있는데 비해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일 수천 마리의 침팬지를 텐안문 광장이나 월스트리트, 바티칸, 국회의사당에 몰아넣으려 한다면 결과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장소에 주기적으로 수천 명씩 모인다. 우리가 침팬지와 차이는 수많은 개인과 가족과 집단을 결속하는 가공의 접착제 때문이다. 이 접착제는 인간을 창조의 대가로 만들었다.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하는 기술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과 협력하는 능력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도구제작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3만 년 전만해도 막대기나 돌, 흙으로 된 창밖에 없었던 우리가 오늘날 어떻게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 미사일을 만들었을까? 생리학적으로 3만 년 사이에 우리의 도구 제작 능력이 크게 개선된 것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고대 수렵채취인에 비해 손재주가 훨씬 뒤떨어졌다. 하지만 많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능력으로, 극적이고 크게 개선시켰다.
일대일 결투라면 네안데르탈인이 사피엔스에게 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백 명이 맞붙는다면 네안데르탈인에게는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사지(死地)가 어디인지에 대한 정보는 공유할 수 있었지만, 픽션을 창작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대규모 협력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는 없었다.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볼 수는 없지만 사피엔스와 비교했을 때 그들의 인지능력에 한계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간접증거는 많다. 3만 년 전 사피엔스 유적지에서는 조개껍질이 발견되는데, 유럽대륙 내부에서 발견된 이 조개껍질은 사피엔스 무리들이 교역을 통해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 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지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그들은 현지재료로 도구를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피엔스는 교역을 통해 재료를 교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가 45,000년 전 최초로 호주까지 여행했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에 도착한 것과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것 못지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것은 인류가 아프로아시아(아프리카와 아시아가 합쳐진 고대륙)에서 호주로 건너간 첫 사례로 사피엔스가 호주 대륙 해안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들은 대륙의 먹이사슬에서 최상층부로 올라갔고 이후 지구라는 행성의 연대기에서 가장 치명적인 종이 되었다. 이전에도 인간은 획기적인 적응 형태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것이 지구 환경에 끼친 영향은 무시할 정도였다. 다양한 서식지에 침투해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모습에서 서식지를 극단적으로 바꿔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호주로 이주한 이들, 정확히 말하면 정복자들은 현지 생태계에 적응만 한 것이 아니라, 생태계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이들은 내륙으로 진격하면서 결코 지울 수 없는 발자국을 남겼는데, 몸무게 200㎏, 키가 2m나 되는 캥거루와 호주에서 몸집이 가장 큰 포식자로 호랑이만 했던 유대목(캥거루처럼 주머니가 있다)등 생전 처음 보는 존재들로 가득한 이상한 세상을 만났는데, 몸집이 너무 커서 귀엽거나 깜직한 것과는 거리가 먼 코알라들이 나무 위에 있고, 현재의 타조보다 두 배나 큰 날지 못하는 새와 용 같이 생긴 도마뱀과 몸길이 5m나 되는 뱀들이 덤불 속에서 나왔다. 포유동물인 유대목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호주에서는 이미 이들이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피엔스가 호주에 상륙한 뒤 몇 천 년이 지나지 않아 이들 대형 동물들은 사실상 모두 사라졌다. 몸무게 50㎏이 넘는 호주의 동물 24종 중, 23종이 멸종했고, 호주의 먹이사슬은 붕괴되고 재조정되었다. 이는 지난 수백만 년 이래 호주의 생태계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다. 이 모든 것이 호모 사피엔스 탓일까?
사피엔스가 호주 대륙에 상륙함으로써 바뀐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학자들은 우리 종에 면죄부를 주고 싶어 한다. 전형적인 희생양은 흔히 말하는 기후변화에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 호주에는 150만 년 이전부터 대형 동물들이 살았고, 이들은 몇 차례 빙하기에도 살아남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왜 45,000년 전에 사라졌을까? 대형동물 90% 이상이 사라졌다는 증거는 정황에 불과하지만 사피엔스가 마침 동물들이 추위로 죽어가고 있던 시기에 호주에 도착한 것 때문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호주에 도착했을 때 이들은 불을 질러 농경지를 만드는 화전농법에 통달해 있었고, 사냥과 화전 농업이 대형동물의 멸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과정도 평화롭지는 않았다. 14,000년 전 미대륙의 동물군은 지금보다 훨씬 풍요로웠다. 최초 시베리아인들이 베링해를 건너 알래스카, 캐나다, 미국 서부로 남하했을 때 마주친 동물 중에는 매머드, 마스토돈, 곰 크기의 설치류, 말과 낙타, 사자 등 오늘날 전혀 알려지지 않은 대형동물 수십 종이 있었다. 무시무시한 검치고양이, 무게 8톤, 키 6m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늘보도 있었으며, 남미에는 이보다 더 이국적이고 기묘한 대형 포유류와 파충류, 조류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사피엔스가 도착한지 2천년이 지나지 않아 이들 유일무이한 종 대부분이 사라졌다. 짧은 기간 동안 북미에서는 대형동물 47속 중 34속이 사라지고 남미에선 60속 중 50속이 사라졌다. 3천만 년 넘게 번성하던 검치고양이가 멸종했고, 땅나무늘보, 대형 사자, 미국 토종 말과 낙타, 대형 설치류와 매머드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조금 작은 포유동물과 곤충, 기생충까지도 수천 종이 사라졌다.
【2】농업혁명
인류가 수렵채취로 먹고살다가 농업으로 이행한 것은 기원전 9,500∼8,500년경으로 터키 남동부, 서부 이란, 에게 해 동부에서 처음 시작했다. 시작은 느리고 지리적으로 제한된 지역에서 시작되었는데 농사가 거기서 점차 전파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지역별로 따로 따로 농업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밀을 재배하고 염소를 기른 것이 기원전 9,000년경, 완두콩과 렌즈콩은 기원전 8,000년경, 올리브나무는 기원전 5,000년경, 포두는 기원전 3,500년경 농업으로 재배하기 시작되고, 말은 기원전 4,000년경부터 기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농업이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삶이 더 나아지겠지’생각하고 열심히 일했지만, 아이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고 추가로 생산된 밀은 늘어난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모유를 덜 먹이고 죽을 더 많이 먹이면서 면역력이 약해진다는 사실도 간과했다. 채집이 아닌 단일 식량원에 의존하면 가뭄에 취약하다는 것과 풍년이 들어 곡식이 넘쳐나면 도둑이 생기고 이를 방비하려 방벽을 쌓고 보초를 서야한다는 사실도 예견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왜 그것을 포기하지 못했을까?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 상당수는 돈을 많이 벌어서 40살쯤 때 아니면 은퇴 후에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유수 회사에 들어가 힘들게 일한다. 하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면 주택융자에, 학교 다니는 자녀에, 자녀 결혼에, 적어도 두 대의 차가 있어야 하고 교외의 집과 좋은 와인과 멋진 해외 휴가가 없다면 삶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채소나 가꾸는 삶으로 돌아 갈수 있을까? 노력을 배가해야 하고 노예 같은 노동을 계속해야 한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의존하기 시작하고 무엇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는 기계를 무수히 발명했다. 세탁기, 진공청소기, 식기세척기, 전화, 휴대전화, 컴퓨터, 이 메일 등등... 이들 기계들은 삶을 더 여유 있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은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를 과거보다 열 배 빠르게 만들었고 일상은 불안과 걱정이 넘쳐난다. 돌아보면 인류가 수렵채취인으로 살다가 자신의 사냥터를 들판과 목초지로 내준 뒤에 돌아보니, 이제 도망치거나 스스로 쟁기를 잡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가 어느 쪽을 택하든 과거의 삶의 방식은 끝난 것이다.
지구의 표면은 5억 1천만 ㎢, 이중 1억 5,500만 ㎢가 육지이다. 비교적 최근(15세기)까지도 육지의 2%에 해당하는 1,100만 ㎢에 불과한 좁은 지역에서 인류는 농사를 짓고 살았다. 다른 지역은 너무 춥거나 덥거나 건조하거나 습하거나 해서 경작에 맞지 않은 곳이다. 이 좁디좁은 지역에서 역사가 펼쳐졌다. 하지만 고대의 농부들은 가난하지 않았다. 그와 가족이 소유한 인공물은 수렵채취인의 한 부족이 지닌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도 왜 그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농부는 힘들여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그토록 원하던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는 얻지 못했다. 모든 곳에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이들은 농부들이 생산한 잉여식량으로 먹고살면서 농부에게는 겨우 연명할 것밖에 남겨주지 않았다. 이렇게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과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왕궁과 성채, 기념물과 사원을 짓고 또 사치를 즐겼다. 근대 후기까지도 인류의 90%는 구슬땀을 흘리며 땅을 가꾸는 농부였다. 잉여생산은 소수 엘리트를 먹여 살렸는데, 왕, 정부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상가 등.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들의 이야기다. 역사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땅을 갈고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들이 해온 그 무엇이다.
앞에서 사피엔스의 상상력은 신화와 허구를 만들었다고 했다. 신화가 어떻게 인류를, 제국을 지탱했는지 하는지는 의문이 남지 않는다. 기원전 1776년경 함무라비 법전*과 1776년에 만든 미국의 독립선언문이 그 예다. 함무라비 법전은 오늘날 많이 퇴색되었지만 미국 독립선언문은 오늘까지 미국인의 협력 매뉴얼로 기능을 다하고 있다. 바빌론은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국가였다. 바빌론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오늘날의 이란, 이라크, 시리아를 다스렸다. 이때 바빌론의 유명한 왕이 함무라비다. 그의 명성은 그의 이름을 딴 함무라비 법전에서 기인한다.
이 법전은 돌에 새겨져 전하는데, 통일된 법체계를 확립한 토대역할은 물론 후손에게 정의가 무엇이며, 정의로운 왕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가르치고 있다. 바빌론 관료들은 법전을 추앙했고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이것은 사회질서를 구축하는데 좋은 자료 혹은 지침서가 되고 있다. 법전의 첫머리는 메소포타미아의 주신인 아누 엘릴, 마르두크 신이 함무라비에게 “정의가 지상에서 널리 퍼지고 사악하고 나쁜 것을 폐지하며,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것을 방지하는 임무를 주었다.”고 하였고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경우에 판결은 이러이러하다.”고 했는데 약 300건의 판결 목록이 나열되어 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널리 알려진 이들 판결은 함무라비 왕이 내린 공정한 판결이며, 여기에 백성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진리의 길에 따라 올바른 삶의 방식으로 인도한다고 여겼다. 또 왕은 “나는 함무라비 고귀한 왕이다. 나는 엘릴 신이 내게 보살피라고 맡긴 백성, 마르두크 신이 내게 이끌 책임을 맡긴 백성을 부주의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겠노라.”고 하고 있다.
바빌론의 사회적 질서는 보편적이고 영원한 정의의 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원칙은 신들이 읊어준 것이라고 단언했다. 법에 따르면 인간은 두 개의 성별과 세 개의 계급, 귀족·평민·노예로 나뉘고 성별과 계급에 따라 각기 다른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민여성의 목숨 값은 30세겔, 노예여성은 20세겔, 이에 비해 평민 남성의 눈은 60세겔, 어린이는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부모의 재산이었다. 하지만 함무라비와 바빌론 사람들에게 이것은 절대적으로 정당해 보였다.
함무라비가 죽고 3,500년 후, 영국의 식민지 열세 곳의 주민들은 영국 왕이 자신들을 불공정하게 대한다며 대표들이 필라델피아에 모인 1776년 7월 4일 자신들은 더 이상 영국의 신민이 아니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보편적이고 영원한 정의의 원칙을 선언했는데, 원칙은 함무라비 법전과 마찬가지로 신이 영감을 내려준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미국의 신이 불러준 중요한 정의는 바빌론 신들이 불러준 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가 자명하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이들은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포함하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했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200년 넘게 미국의 학생들에 의해 베껴지고 암송되고 있다.
두 문서를 보면,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옳고 바빌론 사람들이 틀렸다고 말할 것이고, 함무라비왕은 당연히 자신이 옳고 미국인들이 틀렸다고 받아칠 것이다. 사실은 모두가 틀렸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신화일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인가? 인간의 상상력을 벗어난 어디에 우리가 진정으로 평등하다고 느끼는,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세계가 있단 말인가? 모든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평등한가? 미국 독립선언문 구절을 생물학적 용어로 번역하면 이렇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가 자명하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이들은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포함하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것인데 생물학에 따르면 인간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된 것이다. 또한 평등하게 진화하지도 않았다. 미국인들은 인간의 평등사상을 기독교신앙에서 찾는다. 모든 사람의 영혼은 신이 창조했으며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고 하는 신앙 말이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신과 창조와 영혼에 관한 신화를 믿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은 틀렸다. ‘평등한 창조’란 ‘각기 다르도록 진화했다’고 번역되어야 한다.
성경 구절에 이런 말이 있다. “남자가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만나, 그녀를 붙잡아서 동침한 사실이 밝혀지면 그 남자는 여성의 아버지에게 은 50세겔을 지불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여자는 그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신명기 22:28∼29)고대 히브리인들은 이것이 타당한 해결책이라고 보았다. 어느 남자에게도 속하지 않는 여성을 강간하는 것은 전혀 범죄로 취급되지 않았다. 남편이 된다는 것은 아내의 성을 마음대로 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으로, 이런 사고방식은 고대만 통용되던 것이 아니라 2006년 기준으로 세계 53개국에서 아내는 남편을 강간죄로 기소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독일은 1997년 부부 강간죄를 범죄로 보았고, 우리나라는 2009년 2월부터 이 법이 시행되고 있다.
아무튼 호모 사피엔스가 먹이사슬의 최상층에 위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보는데 만약 신체적 능력이 중요했다면 우리는 먹이사슬의 중간쯤에 위치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상층에 위치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적, 사회적 기량 덕분이었다. 사피엔스 종 내의 권력 사다리도 폭력이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남자가 신체적으로 여자를 강제할 수 있다는 사실로만 영향력이 크고, 안정적인 사회적 위계질서의 토대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인간과 뗄 수 없는 관계, 돈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역사상 최초의 주화는 기원전 640년경 아나톨리아 서부에 있었던 소아시아의 리디아 왕 알뤼아테스가 처음 만들었다. 이 주화는 표준화된 무게의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졌고, 식별을 위한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표식은 두 가지를 증명해 주었는데 하나는 해당주화에 귀금속의 양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다른 하나는 주화를 발행하고 그 내용물을 보증한 당국이 누군지를 나타냈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거의 모든 주화는 이 리디아 주화의 후손들이다.
또 종교가 우리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심대하다. 유신론·무신론, 유일신·다일신 등 종교의 종류와 만들어진 과정도 다양하지만, 내가 특히 관심이 가는 종교는 불교다. 싯달타에 의해 만들어진 불교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들은 이야기로서 여기서는 결론을 보도록 한다. 불교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풍요나 정치권력을 쫓은 따위가 아니라 번뇌로부터 완전한 해방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불교도의 99%는 열반에 도달하지 못했고, 설령 언젠가 내세에라도 열반을 이르기를 원한다 할지라도 현세의 삶 대부분은 세속적 성취를 추구하는데 바친다. 이들은 인도의 힌두신, 티베트 본교(笨敎)신, 일본의 신도(神道)신, 한국의 산신 등을 비롯해 다양한 신들을 계속 섬겼다.
불교도들은 해탈할 능력을 지닌 인간(보살)과 비인간적 존재인 부처에 대한 연민 때문에 해방을 포기했다고 말한다. 아직도 불행의 덫에 빠져 있는 무수한 존재들을 돕기 위해서 말이다. 보이지 않는 신을 숭배하는 대신에 이들은 이런 깨달은 자들을 숭배하고 있고 보살과 부처에게 열반에 이르도록 도와달라고 할 뿐 아니라 세속의 문제까지 해결해달라고 빌고 있다. 우리는 동 아시아 곳곳에서 수많은 부처와 보살이 비를 부르고, 전염병을 막고 심지어 피비린내 하는 전쟁에서도 이기기 위해 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도와 색색의 꽃과 향과 쌀과 사탕을 받는 대가로 말이다.
불교의 궁극목표이기도 하고 불교도들이 그토록 원하는 열반(涅槃)이란 무엇일까? 모든 것을 집착 없이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싯달타는 집착 없이 실체를 있는 그대로 느끼게끔 훈련하는 일련의 명상기법을 개발했다. 방법은 우리의 마음이 ‘지금과 다른 어떤 경험을 하고 싶은가’보다는 ‘지금 나는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온 관심을 쏟도록 훈련시킨다. 이 같은 마음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싯달타는 이러한 명상기법을 일련의 윤리적 규칙 위에다가 구축했는데, 그 규칙들은 집착이나 환상에 빠지지 않으면서, 실제로 경험에 초점을 맞추기 쉽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는 추종들에게 살생, 음행, 도둑질을 피하라고 했는데, 이런 행동은 반드시 집착(권력과 감각적 기쁨 그리고 부에 대한)의 불을 지피기 때문이다. 불이 완전히 꺼지면 집착은 완벽한 만족과 평온의 상태와 자리를 바꾸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불이 꺼진 상태 즉 열반에 드는 것이다. 열반에 이르면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다. 이들은 실재를 극도로 분명하게 경험하며 환상이나 망상에서 자유롭다. 집착이 없는 사람은 고통을 받지 않는다.
‘인류의 통합’을 이룬 종교로 기독교를 꼽을 수 있을 것인데, 서기 306년 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제위에 올랐을 때, 기독교는 동방의 비밀스런 하나의 분파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당시 누군가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될지 모른다.”고 말 했다면 사람들은 웃다 못해 밖으로 뛰쳐나갔을 것이다. “2050년이 되면 힌두교의 하레 크리슈나 교단이 미국의 국교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1913년 10월에 볼셰비키는 러시아의 작은 급진주의 파벌에 지나지 않았다.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파벌이 4년 내 이 나라를 접수하리라 예측하지 않았고 또 못했다. 기원후 600년 사막에 살던 한 무리의 아랍인이 머지않아 대서양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정복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 터무니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비잔틴 제국의 군대가 이슬람의 첫 맹공을 격퇴할 수 있었다면 이슬람교는 오늘날 한줌의 전문가들만이 아는 무명의 종교로 남아 있을 것이다.
【3】 과학혁명
지난 500년간 인간의 힘은 경이적이라고 할 만큼 커졌다. 서기 1500년 지구 전체에 살던 사피엔스는 5억 명 정도, 이때 인류가 생산한 총재화 양은 오늘날 화폐가치로 치면 약2,500억 달러였으나, 오늘날 60조 달러, 당시 하루 소비한 에너지는 약13조 칼로리, 오늘날은 1,500조 칼로리로 인구는 15.6배, 생산량은 240배, 에너지 소비는 115배가 늘었다. 오늘날의 대형 화물선 다섯 척만으로 당시 세계의 모든 상단이 실어 나르던 짐을 실을 수 있고, 지금의 컴퓨터 1대는 그때 세계 모든 도서관에 있던 사본과 두루마리의 단어와 숫자들을 저장하고도 남는다. 또 오늘날 대형 은행 한 곳에서 보유한 돈은 중세 모든 왕국이 가졌던 돈을 모은 것보다 많다.
그때는 3층 건물이면 초고층이었고, 도로는 바퀴자국이 나 있는 비포장 흙길로 여름에는 먼지, 겨울에는 진창이 되었고 길에는 보행자, 말, 염소, 닭과 마차 몇 대가 오갔을 뿐이었다. 도시의 소음은 인간의 목소리와 동물의 울음소리 정도, 가끔 망치질과 톱질하는 소리도 들렸지만 소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해가 지면 캄캄해져 어둠 속에서 촛불과 횃불이 보일 뿐이었다. 그런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오늘날 뉴욕, 도쿄, 서울, 뭄바이를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전까지 지구를 일주한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1522년 상황은 바뀌었다. 마젤란의 배가 7,200㎞ 향해 끝에 출발지 스페인으로 돌아온 것이다. 3년에 걸친 대항해로 탐험대 전원은 희생되었다. 심지어 마젤란 본인까지도... 1873년 쥘 베른은 필리어스 포그라는 영국의 모험가가 80일 만에 세계를 일주할 수 있다는 상상을 이야기로 소설로 썼다. 오늘당장 중산층 정도면 단 48시간 안에 비행기로 편안히 한 바퀴 돌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1,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치르고, 사람이 달나라에 갔다 오는 등 헤아릴 수 없는 변화를 겪은 지난 500년 동안 수없이 일어난 일을 두고 우리는 ‘과학혁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동안의 가장 결정적 순간은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29분 45초에 있었다. 이때 미국의 과학자들은 앨러머고도 사막에서 첫 원자폭탄 실험을 했다. 이후 인류는 역사를 변화시키는 능력뿐 아니라 역사를 끝장낼 능력도 가지게 되었다.
작은 일일지 모르겠지만 1199년 사자왕 리차드는 전장에 나갔다가 왼쪽 어깨에 화살을 맞았다. 이 상처는 감염을 일으켰고 2주일 후 그는 커다란 고통 속에 죽었다. 1815년 워털루 전투가 끝난 다음날 야전병원 근처에는 사람들의 팔다리가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징집된 목수와 백정은 의무대로 보내져 상처 입은 병사의 팔다리를 잘라내는 일을 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감염을 막기 위해 수술에서 칼과 톱으로 잘라내는 기술 외에 필요한 것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이전 농경사회 어린이 중 1/3이나 1/4은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했는데, 대부분 디프테리아, 홍역. 천연두로 희생되었다. 17세기 영국의 경우 신생아 1천 명당 평균 150명이 출생하자말자 죽었고, 모든 어린이 1/3이 15세가 되기 전에 죽었다.
그런 영국이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린 힘은 어디에서 나왔던 것일까? 영국은 장거리 항해에 나섰던 선원의 절반이상이 마젤란 때처럼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죽음의 신이 있다고 믿었던 것인데 그것은 분노한 원주민도 적의 전함도, 향수병도 아니었다. ‘괴혈병’이라 불린 의문의 질병이었는데 병에 걸린 사람은 피로하고 우울해 지며, 잇몸을 비롯한 연약조직에서 피가 흘렀다. 또 열이 나면서 황달이 생기고, 결국 사지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 괴혈병으로 사망한 선원은 2백만 명으로 추정된다. 원인을 몰랐으니 치료법도 없었다.
전환점은 1747년 영국 의사 제임스 린드가 환자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치료법을 찾던 중, 민간요법으로 쓰던 감귤을 먹이자 급격히 회복되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에 린드는 감귤이 선원들의 몸에 부족한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몰랐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것이 비타민 C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시 선원들이 먹던 식품은 비스킷과 말린 쇠고기였고, 과일과 채소는 거의 먹지 않았다. 영국 해군은 린드의 실험결과를 믿지 않았지만, 제임스 쿡 선장은 린드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기 배에 절인 양배추를 실었고 육지에 상륙할 때마다 선원들에게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먹으라고 했다. 결국 쿡은 괴혈병으로 한명의 선원도 잃지 않았다.
쿡의 탐사대는 남서 태평양을 점령하고, 호주와 뉴질랜드를 정복했으며 이로 인해 수백만 명의 유럽인이 새로운 식민지에 정착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그곳 토착문화를 파괴하고 원주민 대부분을 박멸할 기초를 닦았다. 호주와 뉴질랜드 원주민들은 비옥한 땅을 정착민들에게 빼앗겼고, 원주민의 수는 90% 가량 줄어들었으며 생존자들도 인종차별이라는 가혹함 속에 정권의 지배를 받았다. 호주 원주민들과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에게 쿡의 탐사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시작이었다.
이렇듯 ‘과학혁명’은 근대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와 연대하여 구축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는 과학기술이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초기에는 기술의 중요성에 한계도 있었다. 핵심은 동식물을 찾는 학자들과 식민지를 찾는 해군장교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졌다는데 있다. 이들은 “지구 밖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라면서도 둘 다 미지의 밖으로 나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야겠다는 강박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렇게 얻은 새로운 지식이 자신을 또 다른 주인으로 만들어 주기를 희망했다.
이런 과정이 과학과 제국주의의 관계지만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닌 것처럼 다른 제도와 지원도 작용했다. 유럽의 제국들의 발흥에는 과학 외 요인들이 숨어 있었는데, 그것은 ‘자본주의’였다. 돈을 벌려는 사업가들이 없었다면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대륙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고, 쿡은 호주에 도착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또 닐 암스트롱은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했을지 모른다.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있는 그것, 부의 상징이기도 한, 돈을 벌기 위해 정부가 나선 악명 높은 사례는 영국과 중국이 벌인 제1차 아편전쟁(1840∼1842)이다. 영국의 동인도회사와 사업가들은 마약 수출로 돈을 버는데, 수백만 명의 중국인이 중독자가 되었고, 중국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쇠약해졌다. 1830년대 말 중국정부는 마약거래를 금지하는 포고령을 내렸으나 영국 상인들이 법을 완전히 무시하자, 중국은 배에 실려 있는 마약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에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던 마약상인들은 영국정부가 행동에 나서라고 압력을 넣었다.
1840년 영국은 ‘자유무역’이라는 명목으로 중국에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했다. 자신감 과잉이던 중국은 영국의 증기선, 대구경 포, 로켓포와 소총 같은 신무기에 속수무책이었다. 급기야 중국은 영국 상인의 활동을 제약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경찰이 마약상인에게 끼친 피해까지 보상하기로 하고도 모자라 홍콩의 조차(租借)요구에도 굴복했다. 홍콩은 안전한 마약거래 기지로 계속 사용되었다. 19세기말 중국 인구의 1/10에 이르는 4천만 명이 마약 중독자였다.
20세기 초 자본주의의 탐욕에 어느 정도 고삐가 죄여진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불평등은 여전히 만연했고 파이는 커졌지만 농부와 노동자들이 집에 가져가는 것은 500년 전보다도 더 적었다. 농업혁명과 마찬가지로 경제성장은 거대한 사기로 드러나고, 인류와 세계경제는 성장을 거듭했을지라도 기아와 궁핍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더욱 힘들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두 가지 대답을 가지고 있다. 첫째, 자본주의는 오직 자본주의자만이 운영할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한다.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운영하려고 했던 유일하고 진지한 시도가 공산주의였으나, 그것은 거의 모든 면에서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나빴기 때문에 다시는 시도해볼 배짱이 있는 사람은 없다. 기원전 8500년 농업혁명으로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 수도 있겠지만 농업을 포기하기에는 늦어버렸던 것처럼 우리는 자본주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 없이는 살 수가 없게 되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인내심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것. 자본주의자들은 천국이 눈앞에 와 있다고 약속한다. 대서양에서 노예무역과 노동계층을 착취한 것 같은 실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거기서 교훈을 얻는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파이가 더 커지도록 놔두면, 모두에게 좀 더 두꺼운 파이조각이 돌아갈 것이다. 평등하게 분배되는 일은 없겠지만, 모든 남자와 여자, 어린이들을 만족시킬 만큼 충분히 돌아갈 것이라는 말말이다.
경제적 파이가 무한대로 커질 수 있을까? 파이를 만드는 데는 원자재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어두운 결말을 예견하는 사람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조만간 지구의 원자재와 에너지를 고갈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9세기 중국에서 화약이 처음 발명되고도 폭죽으로만 사용되다 600년이 지난 후 대포가 만들어졌듯이, 인간이 불을 떼 만든 열을 운동으로 전환한다는 아이디어는 직관적인 것이 아니었기에 그것으로 물건을 움직이는 차세대 기계가 발명된 것 또한 3세기가 흐른 다음의 일이었다. 열을 이용한 신기술은 영국의 석탄광산에서 시작됐다. 1825년 한 엔지니어는 석탄을 가득담은 운반차의 행렬에 증기기관을 연결했다. 이것은 광차를 20㎞ 떨어진 항구까지 끌고 갔다. 역사상 첫 증기기관차였다. 이후 20년 만에 영국에는 수만㎞의 철로가 놓였다.
이무렵 내연기관이 발명되고, 아인슈타인이 모든 종류의 질량은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는 ‘E=mc2’의 의미를 밝힌 지 불과 40년 만에 원자폭탄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고, 핵발전소는 전 세계에 우후죽순처럼 솟아났다.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석유는 지붕을 방수하거나 회전축이 매끄럽게 돌아가게 하는 데만 쓰였다. 지금부터 1세기 전에도 그 이상의 효용이 있을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고, 또 2세기 전까지 전력은 경제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는데 기껏해야 과학실험이나 미술기교에 사용되었다. 하지만 일련의 전기를 이용한 발명으로 도처에서 램프 속의 거인이 되었고, 손가락만 까딱하면 책을 인쇄하고, 옷을 꿰매고, 채소를 신선하게 보관하고, 아이스크림을 얼리고, 저녁식사를 요리하고, 범죄자를 처형하고, 우리의 생각을 기록하고, 웃음을 녹음하고, TV쇼를 통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전력이 어떻게 이런 일을 다 해내는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전기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없다.
TV에서는 여전히 기린과 늑대와 침팬지가 넘쳐나지만 실제로는 이들은 매우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다. 남은 기린은 8만 마리, 늑대는 20만 마리, 침팬지는 25만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반면에 사육되는 소는 15억 마리, 개는 10억 마리, 사람은 78억 마리(?), 정말로 인간이 지구를 접수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생태계파괴는 자원의 희소성과 같은 문제가 아니다. 자원의 희소성으로 인간 종말론을 말하는 예언가들은 언젠가 지구의 자원이 고갈될 것이라고 하지만, 아마도 그것은 헛짚은 것 같다. 지구의 아니 우주의 자원은 아직도 인간이 찾지 못한 것이 더 많다. 그렇지만 생태계 파괴에 대한 두려움은 그 근거가 확실하다. 미래의 사피엔스들은 온갖 새로운 원자재와 에너지원의 보고를 손에 넣을지 모르지만, 이와 함께 자원 서식지를 파괴하고 지구의 종을 멸종시킬지 모른다.
생태계 혼란으로 사피엔스는 자신의 생존까지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지구온난화, 해수면 상승, 늘어나는 지구오염은 우리 종이 살기 부적합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고 그 결과 미래에 인류의 힘과 인류가 유발한 자연재해는 쫓고 쫓기는 경쟁의 나선을 그리며 커질지도 모른다. 인류가 힘으로 자연의 힘에 대항하고, 생태계를 자신의 필요와 변덕에 충족시킨다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위험한 부작용은 점점 더 많이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생태계를 더욱 극적으로 조작하는 것인데, 이것은 더더욱 큰 혼란을 초래할지 모른다.
사람들은 이것을 ‘자연파괴’라고 하지만, 사실은 파괴가 아니라 변형이다. 자연은 파괴되지 않았다. 6,500만 년 전에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져 공룡을 쓸어버렸지만 그럼으로써 포유류가 번성할 수 있는 길이 열렸듯이 오늘날 인류는 많은 다른 종들을 멸종의 위기로 몰아넣고 심지어 자신조차 멸종시킬지 모른다. 그러나 그 속에서 매우 잘 버티고 있는 생명체도 있는데 들쥐와 바퀴벌레 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능력과 준비를 갖춘 상태로 어쩌면 지금으로부터 6,500만년 후 지능 높은 쥐들은 인류가 일으킨 대량학살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켜볼지 모른다. 오늘날 우리가 공룡을 멸종시킨 소행성에 감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 시대에 누군가 ‘휴거’가 올 것이라고 말했지만 우리 종이 멸종할 것이라는 소문은 조금 성급하다. 산업혁명 이래로 세계 인구는 사상 유래 없이 급증했다. 1700년대 7억 명, 1800년대 9억 5천만, 1900년에는 거의 두 배로 늘어 16억 명이 되었고, 2000년에는 네 배 늘어 60억 명, 2020년 오늘에는 무려 78억 명으로 늘었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 읽기가 이제는 대미로 가고 있다. 책을 도서관에 반납할 날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저자도 그것을 짐작하는지 마무리해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농부들은 수렵채집인보다 열심히 일해야 했지만 먹는 음식은 영양가도 더 적었고 근근이 버틸 양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질병과 착취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되었다. 유럽 제국들의 확대는 아이디어와 기술과 농작물을 이동하고, 순환시켜 새로운 상업로를 개척한 덕분에 인류의 집단적 힘은 크게 늘었다. 하지만 수백만의 아프리카인, 아메리카 원주민, 호주 원주민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우리인간은 모든 동물들의 운명을 깡그리 무시할 때만 우리 사피엔스가 이룩한 전례 없는 성취를 자축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는 질병과 기근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물질적 부를 자랑하지만 그 중에 많은 부분은 실험실의 원숭이, 젖소와 병아리, 흰쥐 덕분에 축적된 것이다. 지난 2세기 동안 수백억 마리의 동물들이 실험용 등으로 희생되었다는 그 잔인성은 지구라는 행성의 연대기에서 전대미문이다. 행복을 평가할 때도 오로지 상류층, 유럽인, 남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잘못이다. 인류만의 행복을 고집하고 고려하는 것도 그렇다.
우리는 지금 모든 질병을 고치는 치료법, 노화를 효과적으로 막아주는 요법, 젊음을 영원히 유지하는 회춘법 등을 찾아내려고 연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들의 직접적 결과는 분노와 불안현상으로 일어날지 모른다. 새 기적의 요법을 받지 못할 돈 없는 사람들-대다수-들은 결렬한 분노에 휩싸일 테니까 말이다. 역사를 통 털어서도 가난하고 압박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위안해온 것은 적어도 죽음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은 죽어야 하는데 부자들은 영원히 젊고 아름답게 살 수 있다면 결코 편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요법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가진 사람들도 결코 희열을 느끼지는 못할 것인데, 걱정해야할 일이 많이 생길 것이고 새로운 요법이 생명과 젊음을 연장해 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시체를 되살리지는 못할 것이고, 나와 내 사랑하는 이는 영원히 오래 살 수 있지만 트럭에 치이거나 테러리스트에 의해 산산조각 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영원히 살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은 심지어 아주 조그만 위험을 무릅쓰는 것도 싫어하게 될 것이고, 배우자나 자녀, 친한 친구를 잃은 뒤 따르는 고통은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영원히 살고 싶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유다.
마지막은 나는 행복한가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행복은 자기가 만드는 것이고 마음속에 있다고 들었다. 아니 노래에도, 고전에도 대부분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자신이 행복한지 비참한지 아는 것은 자신이라고 믿기 쉽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자유주의의 특성으로 역사에 존재했던 종교와 이데올로기들은 선함과 아름다움, 당위에는 객관적 척도가 존재한다고 한다. 보통사람의 느낌이나 선호는 신뢰하지 않았다.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입구에 새겨져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글귀는 ‘너 자신을 알라!’이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보통사람은 진정 자신에 대해 모르며, 따라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나 기독교 신학자에게 물으면 여기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기도보다는 성관계를 좋아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성 바오로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관계가 행복의 핵심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둘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증명하는 바는 인간이 본래 죄 많은 존재이며 쉽게 사탄의 유혹에 빠진다는 사실뿐이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헤로인 중독자와 비슷한 상태다. 헤로인 중독자들이 마약을 할 때만 행복하다고 하더라도 어느 심리학자가 ‘헤로인이 행복의 핵심’이라고 논문을 발표할 것인가? 종교와 철학은 행복에 대해 자유주의와 매우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불교에서도 행복을 중요하게 취급했지만, 불교신도들은 지난 2500년에 걸쳐 행복의 본질은 무엇인가, 무엇이 행복을 가져다주는가를 연구하여 행복은 외부 세계의 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과정의 결과라고 말했지만 생물학자들과는 매우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즐거운 감정, 고통을 불쾌한 감정과 동일시 한다. 그래서 자신의 느낌을 매우 중요시하며 점점 더 많은 즐거움을 추구하되 고통을 피하라고 한다. 불교는 번뇌의 근원이 고통이나 슬픔에 있지 않고 심지어 덧없음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번뇌의 근원은 순간적인 감정을 무의미하게 끝없이 추구하는데 있다고 한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긴장하고 동요하고 불만족스러운 상태에 놓인다.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런저런 덧없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속성을 이해하고 갈망을 멈추는데 있다. 이것이 불교 명상의 목표다. 명상 할 때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깊이 관찰하여 감정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되, 그 감정을 추구하는 것이 덧없음까지 깨달아야 한다. 즐거움, 분노, 권태, 정욕 등 모든 종류의 감정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사라지지만 일단 특정한 감정에 대한 추구를 멈추면 어떤 감정이든 있는 그대로 맏아들일 수 있게 된다. 무언가를 공상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가운데서 평정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피엔스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룩한다고 할지라도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이것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사피엔스 스스로 한계를 초월하게 되었다. 이제 자연선택의 법칙을 깨기 시작하여 지적 설계의 법칙으로 대체하고 있다. 지난 38억년 동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자연선택의 법칙에 따라 진화했다. 구약성서와 달리 창조자에 의해 설계된 생명체는 단 하나도 없다.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계통들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지식으로 설계해서 만들어낸 존재, 바로 인간이 신인 것이다.
40억년 가까이 이어져온 자연선택의 구체적 개체는 오늘날 완전히 다른 종류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전 세계 실험실에서 과학자들은 살아 있는 개체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원래 해당 종에게는 없는 특성을 부여하는 정도까지 자연선택의 법칙을 위반하는 중이다. 브라질의 생물학자 카츠는 지난 2000년 녹색 형광 토끼를 만들고자 했고, 프랑스 연구소와 접촉해 자신의 설계대로 토끼가 빛을 내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돈을 받고 연구한 프랑스 연구소는 흰토끼 베아에 녹색형광을 발하는 해파리 유전자를 삽입했고 이듬해 이를 성공시켰는데 ‘알바’라고 한 형광토끼의 존재는 자연선택의 법칙으로는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토끼는 지적설계의 산물이며 앞으로 다가올 것에 대한 선구자이다. 이런 과학혁명은 역사혁명이 아니라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한 이래 가장 중요한 생물학적 혁명이 될지 모른다.
과학의 힘을 빌어서 우리 사피엔스는 과거 어느 때 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그 힘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고,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과거 어느 때보다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친구라고는 물리학법칙밖에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면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느끼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우리의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 추구하는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체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인 사피엔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 2020.7.7. 오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