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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의령에서 출발하기전에 단체인증을 남긴다.
2019년 10월 27일 일요일 백두대간 45 회차 덕항산
자유인 산악회
백두대간 45 회차 : 건의령(한의령) – 푯대봉– 구부시령 – 구미사봉 – 덕항산 – 환선봉 (지각산) -자암재 - 귀네미골
산행거리 : 약 14 km 산행시간 : 약 6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756019
거리 14.2 km
소요 시간 6h 47m 15s
이동 시간 6h 5m 1s
휴식 시간 42m 14s
평균 속도 2.3 km/h
최고점 1,095 m
총 획득고도 486 m
난이도 매우 쉬움
백두대간 (白頭大幹) 45 – 덕항산
경계에서
양산박
배가 고플 땐 차라리
이것저것 못먹는 게 없었지
조금 배가 부를 땐
맛없는건 제쳐두었어
먹고 살만 해졌다 이제는
분위기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다
없이 살땐 그저
산을 파서 밭을 일궜지
채소 팔아 번돈으로
쌀을 사먹어야 했었어
지금 그 밭들이 다시
푸른 옷을 찾아입고 단장을 한다
날씨 : 맑음, 단풍 절정, 미세먼지 약간, 기온 선선,
옷차림 : 반팔 셔츠 위에 긴팔 등산복 입고 산행. 쉴 때나 뒤풀이 때는 재킷을 입어야 함.
프로로그 : 스크린 마운틴
산행하기 전에 아파트 상가 지하에 있는 사이버 산행방에 들렀다. 우리나라 산뿐만 아니라 전세계 왠만한 산행 코스는 다 있는데 난 내일 가는 백두대간 덕항산 구간을 선택했다. 계절과 날씨, 바람세기 등 여러가지 옵션별로 세팅을 한 후 시작 버튼을 누른다. 발 아래 자동 주행판이 산행 코스에 따라 오르막 내리막 경사로가 만들어지고 머리에 쓴 헬멧에서는 새우는 소리와 바람소리 등 청각기능 그리고 눈에 쓴 고글에서는 아름다운 하늘과 단풍 그리고 주변 산군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오르막 경사를 빠른 걸음으로 걸으니 몸에 땀이 배어 나온다. 자신의 체력과 기호에 따라 쉬면서 물도 마실 수도 있고 힘들면 중간에 하산해도 된다.
지금 시중에는 사이버 골프와 사이버 야구가 있다. 사이버 스키나 자동차 경주 등 사이버 세계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지만 아직 사이버 등산은 도입되지 않았다. 만일 사이버 등산이 도입된다면 위와 같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이버 골프와 실제 골프가 다르듯이 실제 등산은 물론 사이버 등산과 차이가 있다. 실제로 시간을 많이 할애하여 산행 들머리까지 이동해야 하고 불규칙한 산길에 다칠까 조심하며 걸어야 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길을 잃을 염려도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이버 세계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진정한 산행의 묘미가 따른다.
산행기
다시 건의령으로
여느때와 같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을 챙겨먹고 산행 채비를 갖추고 6시에 집을 나선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6시면 날이 훤했는데 이제 상강(霜降)이 지나고 나니 어둑어둑하다. 긴팔 재킷을 입었는데도 몸속으로 파고드는 한기가 낯설지 않다.
대만 여행을 마치고 어제 귀국한 한문희 총대장님이 23기를 따라가시기 때문에 이번에는 22기 산대장님들 인솔로 진행하게 된다. 오늘 산행까지 합하여 6번의 산행만 남겨두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참여하는 인원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작년 3월 11일 노치마을에서 시작한 대간길이 어느 새 두 해를 넘기고 졸업산행이 목전에 다가왔다. 위 아래로 넘나드는 산행코스에 머릿속 대간 줄기가 엉켜 있지만 그 동안 열심히 다닌 덕에 조금이나마 우리나라 산줄기를 알게 되었다. 사람이 죽을 때 뭔가를 해서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해보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하나 했으니 참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태백시에서는 망가진 산림복원에 힘을 쓰는 모양이다. 자작나무 조림지
지난 번 날머리였던 건의령으로 가는 버스는 휴식의 장소다. 맨 뒷좌석 구석에 앉아 정신없이 잤다. 두어시간 자고 나니 주변이 어수선하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버리고 국도를 달린다. 차창으로 비쳐드는 가을 빛이 화려하다. 짙은 주황색으로 물든 숲 사이 사이 아직 파란 색 삼나무 숲이 조화를 이룬다. 어떤 데는 하얀 줄기가 시원하게 벋은 자작나무 군락이 보인다. 도로가의 가로수는 모감주나무다. 태백시에서 큰 그림을 그려서 숲을 가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건의령 터널 입구에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10시 20분에 도착했다. 지난번 어둑할 때 내려와 버스 옆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먹던 자리가 휭하다. 밤에도 하얗게 씨앗을 날리던 개쑥갓이 낮에 보니 녹색이 더 돋보여서 그런지 그냥 잡초밭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영화도 불을 끄고 보다가 환한 곳에서 보면 감동이 덜해지는 그런 현상이랄까.
10시 20분 버스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한다.
건의령 들머리까지 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오솔길처럼 편하다. 왼쪽은 지난 2017년 큰 산불로 인해 다 타버린 숲의 나무를 정리하고 소나무를 심었다. 아직 무릎정도까지 올라온 나무 숲이라 마치 아무것도 없는 빈밭같다. 고랭지 채소밭처럼 앞에 아무것도 가리는 것이 없으니 드넓은 공간을 뚫고 내 시야는 아주 멀리 사방을 둘러 싼 산줄기에 날아가 앉는다. 백두대간을 타면허 지금 여기처럼 시원한 조망을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저 멀리 오른쪽으로는 태백산이고 이어서 함백산 그리고 조금 가까이는 매봉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다. 정면으로는 멀리 골프장 (블랙 밸리) 뒤쪽으로 여름철 이끼계곡으로 유명한 육백산과 응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지금은 나무가 작아 가까이 있는 것만 보이지만 앞으로 10년쯤 지나 나무들이 크게 자라면 굉장한 볼거리가 펼쳐지리라는 상상을 해본다.
멀리 블랙벨리 골프장 그리고 첩첩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오른쪽 끝에 매봉산 그리고 그 왼쪽 멀리 태백산이 보인다.
푯대봉 (1009 m)
건의령 표지판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10시 40분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대간길은 작은 오르막 뒤에 푯대봉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급격하게 꺽여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삼거리에서 약 50미터 떨어진 푯대봉은 대간에서 벗어났지만 우리는 순례자들처럼 푯대봉을 찾아 이름돌 앞에서 인증사진을 남긴다.
오늘 하루 임시 별동대장님
푯대봉 정상석앞에 선 별동대원들
다시 푯대봉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오른쪽으로는 건의령 불탄 숲이 넓게 펼쳐진다. 복원중인 땅에는 나무와 함께 심어 놓은 개쑥부쟁이 꽃이 예쁘게 피어있다. 진행방향으로 왼쪽으로는 불에 탄 것이 아닌데도 드넓은 산이 나무가 잘라진 채 민둥산이 되어 있고 그 끝자락에 고랭지 채소밭이 펼쳐진다. 고랭지 채소밭 아래에는 파란 함석지붕을 한 농가 한 채가 덩그라니 서 있다. 의도적으로 벌목을 한 듯 나무가 남아 있는 경계선이 실질적인 백두대간 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무가 없이 시야가 뻥 뚤린 벌목지를 지나는 편한 길을 따라 걷는다.
더 벗을 것인가 아니면 입을 것인가. 멀리 오른쪽에 고랭지 채소밭이 보인다.
길 가에는 커다란 소나무 밑둥이 시커멓게 그을린 산불 흔적이 남아 있다. 건의령 아래 넓은 숲을 태웠던 불똥이 이곳까지 날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산길은 다시 숲속길을 따라 가파르게 치닫는다. 그러나 오르막은 길지 않고 다시 약간의 내리막 오르막이 이어진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단풍빛이 곱다. 단풍나무는 진한 색깔로 산길을 환하게 밝힌다. 신갈나무에는 겨우살이가 들붙어 자라고 있다. 햇빛에 비치는 단풍나무와 신갈나무 잎이 천상의 색깔이다. 인간이 흉내낼 수 있는 그런 빛이 아니다.
신갈나무잎이 가을빛으로 물들었다.
단풍에 맘껏 취해 느린 걸음으로 걷는 것은 앞서 달려간 선두팀이 구부시령쯤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배낭에 김밥 한 줄 들어 있으니 점심이야 간단하게 먹을 수 있으니 급히 서두를 이유가 없다. 그렇게 얼마쯤 걷다 보니 생각지도 않게 선두팀이 자리잡고 점심먹는 것이 보인다. 대부분 벌써 반쯤 밥그릇을 비운 상태다. 나보다 조금 앞서 가던 별동대도 벌써 라면을 끓여서 막 먹을 태세다. 난 별동대 팀 구석자리에 앉아 배낭에서 커피와 김밥을 내었다. 과일은 나중에 가다가 출출하면 나눠먹을 참으로 배낭에 담아 두었다.
구부시령 (九夫侍領 950 m) – 기구한 여인의 운명인가?
점심식사 후 조금 내리막길이 보인다 했더니 갑자기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다. 1055 미터봉이다. 아침 8시에 댓재에서 출발했다는 대구 산악회 회원들과 마주쳤다. 대간 산행을 하면서 타 산악회 사람들을 만나는 게 드문 편이다. 전에 오대산 신배령에서 만났던 산행팀도 대구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어쩌면 같은 팀인지도 모르겠다. 1055봉 정상에 앉아 쉬고 있는 후미팀을 만났다. 여유있어 보인다. 건의령에서 6.1 km 이제 반쯤 왔나보다.
길은 1055봉에서 조금 내려가 구부시령에 닿는다. 구부시령(九夫侍領)은 옛날 태백시 하사미동에서 삼척시 대기리로 넘나들던 고개다. 아홉명의 지아비를 섬긴 여인이 이 고개 아래 삼척시 대기리에 살았다 한다. 나는 왜 이런 전설이 생겨나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아홉이라면 그저 많다는 뜻으로 쓰이는 숫자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여러 남편을 거느리고 살던 여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일처다부제가 실행되던 시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세워둔 팻말에는 박복한 여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와 혼인한 남자는 금방 죽게 되어 새로 남편을 얻다 보니 아홉번째 남편까지 보게 되었다는 얘기다. 조선시대에는 지아비가 죽으면 따라서 죽던가 독수공방에서 수절(守節)하며 살기를 강요하던 시대다. 만일 그런 시대에 남편을 아홉이나 볼 수 있었다면 그 여인은 박복하기는커녕 대단한 권세나 재산이 있는 집안의 사람이었을 터이다. 고개 이름이 참 재미있다.
구부시령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구부시령에서 왼쪽 태백시쪽으로 내려가면 예수원이라는 천주교 시설이 있다고 한다.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이곳에서 머물면서 노동을 제공하면 무상으로 숙식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삼척 방향은 경사가 급한 반면 예수원쪽으로는 완만하여 이곳을 통해 덕항산을 오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덕항산(德項山 1071 m)
구부시령에서 덕항산까지 1.1 km 다. 그러나 그 1.1 km 거리가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이번 덕항산 구간은 크고 작은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코스다. 덕항산 오르기 전 작은 봉우리를 먼저 만난다. 이정목에는 구부시령이라 적혀 있지만 이곳이 고개일리는 없고 누군가 나무에 걸어 놓은 “구미사봉 1007 m “라 써 놓은 이름표에 눈이 쏠린다. 내 나름대로 해석하면 꼬리 아홉개 달린 뱀이란 뜻이겠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아홉구(九)자가 들어갔다. 혹시 아홉명의 서방을 두었다는 그 여인이 꼬리 아홉개 달린 여우(九尾狐)는 아니었을까?
구미사봉 - 진짜 산이름인가요? 요즘 개인이 산이름표를 만들어 걸어놓는 것이 자주 보인다.
구미사봉에서 길은 왼편 아래쪽으로 급히 꺽인다. 아직 시퍼런 풀이 우거진 허리를 지나 길은 갑자기 가파르게 올라간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오대산에서 응복산을 내려갔다가 마늘봉을 지나 약수봉으로 오르는 산길만큼이나 힘들다. 힘들면 빨간불 신호등을 켜고 잠시 선채로 휴식을 취하면서 오르다보니 마침내 덕항산(德項山 1071m)에 도착한다. 우리나라 100 대명산에 속한다며 100대명산 인증을 하려는 사람들이 찾는 산이다.
덕메기산이라는 이름이 덕항산으로 변했다고요 ~
삼척시 너머 동해바다가 하늘과 맞닿아 있다.
옛날 삼척 사람들이 절벽 같은 고개를 넘어 이 산에 올라 보니 넓고 평평한 지대가 펼쳐져 있어 그 산을 개간하여 화전(火田)을 일궜다. 이처럼 고마운 산을 두고 덕을 베풀어주는 산이란 뜻으로 “덕메기산”이라 불렀던 것을 일제시대 전국토지 신고 때 ‘덕목이산’으로 알아듣고 목을 항(목項)자로 써서 덕항산이라 기록한 것이 그대로 산이름으로 굳어졌다 한다. 즉, 덕메기산 – 덕목이산 – 덕항산으로 변천되었다 한다.
정상에 선 감회가 어떠신가요?
환선봉(幻仙峰 지각산 1080 m)
왼쪽으로는 줄곧 신갈나무와 단풍나무 그리고 박달나무 등 다양한 활엽수림 속에 소나무가 간간이 섞여 자라고 있는 완만한 경사지역이고 오른쪽은 직벽에 가까운 석회암 절벽이다. 이 아래는 천연기념물 178호인 환선굴(幻仙屈)이 있다. 나무 사이로 간간이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 아찔한 절벽 아래 모노레일이 굴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한 발만 절벽에서 벗어나면 그야말로 환상적(幻想的)인 조망이 펼쳐질 터인데 그러려면 말 그대로 신선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아쉬운 조망에 목이 말라 오른쪽 절벽을 기웃거리면서 덕항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쉼터라고 표시된 고갯마루에 이른다. 오른쪽에는 환선굴쪽에서 올라오는 철계단 길이고 왼쪽으로는 예수원으로 내려가는 완만한 오솔길이 있는 사거리이다. 명색이 쉼터라고 되어 있으니 잠시나마 쉬어가려고 하니 큰형님은 조금만 더 가면 멋진 조망터가 있을거라며 거기에 가서 쉬자고 하신다. 우리는 그 ‘멋진’ 조망처의 환상에 이끌려 다시 고개를 오른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지는 풍광이 예사롭지 않다. 마치 마천루 같이 깍아지른 절벽 위에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짙은 녹색 고랭지 채소밭 위로 하얀 첨탑처럼 풍력발전기가 서 있는 모습이 자못 이국적이다.
하지만 좀더 트인 조망에 대한 갈증은 가시지 않는다. 조금만 더 가면 멋진 조망처가 나올 테니 거기에 가서 쉬자는 큰형님의 예지력도 시효를 잃어갈 즈음 덕항산 정상에서 1.4 km 떨어진 환선봉(지각산 1080 m – 달리 찌걱산이라고도 부른다)에 도착한다. 덕항산에도 없는 커다란 이름돌이 신선처럼 서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곳에서 그 동안 참아온 조망에 대한 갈증을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정상석 뒤쪽으로 안전로프가 양쪽으로 이어져 있고 그 회랑 끄트머리 좁은 곳이 삼면으로 탁 트여있다. 여기까지 오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잠깐잠깐 보여주던 장엄한 파노라마가 이곳에 펼쳐져 있었다.
회가 거듭될수록 걸음이 빨라진다. 까이꺼 뭐 ~
환선봉 뒤 작은 조망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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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방금 전에 보았던 풍력발전기가 있는 산상(山上) 농촌마을이다. 단풍이 물든 나무들 사이사이 회색빛 석회암 절벽이 난공불락의 성벽처럼 우뚝 서 있고 그 위에는 평평한 들판이 펼쳐져 있다. 그 들판 위에 녹색으로 수 놓은 듯 그림처럼 아련한 밭은 당연히 고랭지 채소밭이겠다. 벌판 끝에는 하얀 풍력발전기가 우뚝 서 있고 그 바람개비 대열은 마을 왼쪽으로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곳은 우리가 날머리로 삼은 귀네미마을이었다.
발 아래 만길 낭떨어지 밑에는 환선굴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환선굴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이어진 건물들이 하얀색으로 빛난다. 이 곳은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골말이겠다. 고개를 들면 멀리 삼척시가 작지만 뚜렷하게 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로 하늘과 구분이 어려운 푸른 동해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오른쪽에는 방금 지나온 덕항산 산줄기 뒤로 태백산이라 짐작되는 산줄기가 푸른 색으로 이어지고 이름도 모르는 산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굳이 환선굴에 들어가지 않아도 이런 풍경을 가슴속에 넣고만 다녀도 신선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아보인다. 하지만 신선이 될 때까지 오래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장소가 좁아 뒷사람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얼른 속세로 돌아가야 한다.
자암재 (920 m)
환선봉에서 출발한 산길은 급한 내리막으로 뚝 떨어진다. 다시 눈 앞에 우뚝 솟은 봉우리를 피해 오른쪽으로 꺽어지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백두대간길은 분명 능선을 타고 봉우리를 넘어가야 하는데 지금은 마치 계곡으로 내려가는 느낌이다. 길 가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이 길이 자암재로 이어진다고 표시되어 있어 길은 제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그러니까 대간길은 봉우리에서 90도 오른쪽으로 꺽어 진행하는 것이 맞지만 위험요소가 있거나 어떤 다른 이유로 ‘빗금치기’하여 좀 편안한 길을 가는 것이다.
이렇게 내려간 산길은 낙엽송숲을 지나 다시 정상적인 대간길로 이어진다. 다시 오른쪽으로는 낭떨어지를 낀 작은 오르막이다. 조금 오른 작은 봉우리를 내려서자 제법 평평한 지대가 나온다. 자암재라고 표시된 이정목이 서 있다. 이곳의 바위 색깔이 자색을 띄어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주변에는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 달리 장암재라고도 부르는데 오른쪽으로 환선굴이 있는 삼척쪽 대이리로 내려가는 길과 연결되어 있다.
일본잎갈나무 (낙엽송) 숲 - 이제 며칠만 지나면 노랗게 물들겠지
바로 코 앞에 있을 것 같았던 풍력발전기는 아직도 저 멀리 서서 우리를 부르는 것 같다. 한 걸음 다가가면 다시 한 걸음 멀어지는 무지개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점점 무거워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먼 듯 가까운 듯 어디선가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아마 저 풍력발전기 세워진 곳 가까이에 또 한 대 발전기를 설치하나보다.
자암재에서 짧은 가을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귀네미마을에서 산행을 마치다
마침내 고랭지 채소밭이 보이고 나무 틈새를 비집고 밭으로 나서자 환선굴 뒤 조망처에서 보았던 그 멋진 풍경의 실체가 드러난다. 귀네미마을 계곡을 사이에 두고 좌우 그리고 뒷면의 비스듬한 경사지는 모두 고랭지 채소밭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이쯤되면 농경기업의 규모다.
귀네미마을의 정경
귀네미마을의이름은 마을의 모양이 소귀를 닮았다고 하여 원래 우이곡(牛耳谷), 즉 소귀골이었다고 한다. 1988년 이 마을 아래에 광동댐이 생기면서 그 마을에 살던 30여 가구 사람들이 이주 조건으로 국유림지를 불하받아 채소밭으로 개간하여 현재까지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고 한다. 2004년부터 마을 뒷산 능선을 따라 풍력발전기가 세워지면서 마을 풍경이 변해가고 있다.
마을 뒤쪽 풍력발전기 아래 채소밭은 점차 숲으로 복원되어가는 모양새다. 먼 발치로 살펴보니 상당히 넓은 밭에는 전나무인지 주목인지 상록침엽수가 줄지어 심어져 있다. 이제 서서히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이 힘을 얻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는다. (아니면,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면서 조건으로 고랭지 채소밭 농장주들과 타협이 있었는가.)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윗부분 채소밭은 점차 숲으로 탈바꿈한다.
오후 5시 콘크리트 포장된 농로로 내려섰다. 서쪽 산마루 너머로 해가 뉘엇뉘엇 넘어간다. 길 가에는 파란색 커다란 물통이 세워져 있다. 한여름 농번기때 배추밭을 적셔주던 시설이리라. 큰재까지 1.8 km 남았다는 거리목이 서 있는 곳에 앞서 간 별동대원들이 서 있다가 귀네미마을로 내려간다고 한다. 농로를 따라 내려가며 바라본 풍경은 정말 멋지다. 지난번 선자령 구간을 통과할 때 보았던 목장의 풍경처럼 목가적(牧歌的)이다.
귀네미마을의 저녁풍경
저 아래 마을에 빨간색 버스가 보이고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진흙탕길 농로를 버리고 자갈이 뒤섞인 빈 밭을 지나 콘크리트 길로 내려선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나보다. 농로가 이리저리 얽혀 있다. 다시 수풀을 헤치고 마을길로 들어선다. 이 작은 마을에도 변두리에 지은지 오래되지 않아 보이는 집들이 폐가로 남아 있다. 하나, 둘, 셋 아마 네 채나 다섯 채쯤 되어 보이는데 번듯한 집들이 비어 있다. 지붕의 기왓장은 조금 내려앉고 유리창은 깨져 있다. 앞마당에는 <어수리>와 갖은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귀농을 꿈꾸며 들어왔다가 마음을 돌린 사람들의 집인가? 그래도 한 집이 아니라 여러 채가 폐가로 남아 있는 것은 분명 무슨 사연이 있어보인다.
폐가가 되어버린 집들이 늘어 서 있다.
버스가 서 있는 마을회관에 가까워지는데 길 옆 돌배나무에 탁구공 만한 배가 많이 달려있다. 땅바닦에는 나무에서 떨어진 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어렷을 때 다 익기도 전에 시큼한 돌배를 먹던 기억이 새롭다. 배를 주워 한 입 베어무니 배살이 부드럽고 단물이 질컹 배어나온다. 서리맞은 돌배가 다 익었나보다. 구진님이 옹벽에 대 놓은 작은 사다리를 타고 나무에 가까이 가더니 주섬주섬 땅에 떨어진 배를 모아 놓는다. 나무에 달린 배는 너무 높아서 닿지 않는다. 폐암걸린 친구에게 약에 쓰라고 전해주겠다 한다. 기침감기에 꿀과 배를 넣어 달여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알고 있지만 폐암에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친구의 정성을 한 술 더 넣어서 복용한다면 암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나게 하시나요?
산골마을에는 저녁이 일찍 찾아온다. 앞서 내려온 선두팀에 섞여 허겁지겁 라면을 좀 먹다 보니 날이 어두워지고 으슬으슬 한기가 옷속을 파고든다. 배낭에 넣어두었던 재킷을 꺼내 걸친다. 오후 6시가 넘어가니 어둠이 짙어진다. 날이 어두워지고 몸이 추워지니 귀소본능이 급히 발동한다.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버스에 오른다.
뒷 이야기 – 대간산행이 끝나면 뭐하지?
버스에 오르면 몸을 뒤로 젖히고 피로가 가실 때까지 잠을 청하면 된다. 보통 소변이 급한 환자들을 위해 가장 가까운 휴게소에 들리는데 그 때까지가 1차 휴면기간이다. 오줌이 마렵든 안마렵든 만약을 위해 화장실을 들른다. 그리고 다시 2차 휴면기간에 돌입한다. 단풍 행락철이니 서울까지는 4시간쯤 걸릴 테니 잠잘 시간은 충분하다. 좁은 의자에서 불편한 자리지만 무거운 눈꺼풀은 자동으로 내려않는다.
이게 평상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안의 풍경인데 오늘은 조금 다른 분위기다. 졸업을 5구간 남겨놓은 시점에서 간헐적으로 졸업 이후에 어찌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는데 우연챦게 유챔프님이 이야기의 시동을 걸었다. 선두에 서서 산행하면서 구성진 노래를 잘 부른다는데 행렬의 뒤에 따라가다보니 그 노래를 들은적이 없다. 그래서 버스에서 노래를 청하니 마이크를 잡은 유챔프님이 엉뚱하게 우리 회원들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얘기하자고 제안한다.
전역하신지 10년도 넘었건만 아직도 포스가 느껴진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서 그의 꽃이 되었다.
마치 대학을 졸업하고 어떤일을 할 것인지 의견을 나누는 자리처럼 되어버렸다. 앞에서부터 차례로 일어나 자기 이름과 자유인 대간팀에 합류하게 된 계기와 졸업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하는 토론장이 되었다. 대부분 동네 친목산악회에서 이 산 저 산 따라다니다 백두대간을 타게 되면 좋다는 얘기를 듣고 아름아름 찾아온 곳이 자유인이라는 것이 공통된 이력이다. 처음에는 이 힘든 과정을 잘 마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들고 혹시나 산행을 하다가 부상을 당할까 하고 겁도 났었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 벌써 졸업얘기를 하는 것에 대한 감회를 얘기한다. 서로 속깊은 얘기를 나눈적은 없지만 알게 모르게 정이 들어버린 22기 회원들끼리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함께 산행하기를 소원한다고 한다.
나 이번에 졸업생 명단에 낄 수 있나여 ?
졸업이 뭐가 중요하간디요?
김용호 선두대장님의 주선으로 긴급 투표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세 번째 주 토요일에 함께 산행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게 성에 차지 않는 사람들은 좀 더 자주 모이자고 한다. 여기서 얘기는 안나왔지만 별동대에서는 진작에 낙동정맥에 대한 얘기가 거론되었었다. 22기가 주축이 되어 낙동정맥을 진행한다면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한다.
킬리만자로에 갔다와서 한 때 허리가 아팠었는데 지금은 별동대에서 탈피했다구요 ~
공정한 사회, 나눔 뭐 이런 얘기를 많이 한 것 같은데
그리고 아무도 말은 안했지만 우리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공통된 한 가지 소망은 반토막짜리 백두대간을 계속 이어서 걸어가는 것이리라. 공식적인 산행은 설악산 끝자락인 진고개에서 끝난다. 이어지는 향로봉 구간은 군부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설사 군부대의 허락하에 향로봉까지 걸어가더라도 거기서 끝이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 하지만 모두 가보고 싶은 대간길이 향로봉 너머로 한없이 어어져 있다.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이 흩어지면 ~~ 구성진 노래로 좌중을 숙연하게 만든다.
원래 태생적으로 별동대 타입인데 ~ 발이 빠르다보니 선두에 섰어요 ~
작년 이맘때 남북대화가 한창 무르익을 때는 우리가 진부령에 다다를 즈음 한정적으로나마 북한 쪽 대간길을 개방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보였는데 요즘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그야말로 ‘도로아미타불’이 되어가는 것 같다.
한강에 나가 지쳐서 돌아오니 집에서 싫어하는 거에유 ~
그래서 주말에만 백두대간 간다고 하니 좋아하대유 ~
선두와 후미를 넘나드는 오락부장으로 거듭난 ~~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나의 계획은 우선 향로봉까지 걸어가보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갈 수 없는 이 감옥의 창살너머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북녘의 눈보라를 맞아보고 싶다. 그 눈보라속에 묻어오는 우리 민족의 한이 섞인 바람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남풍이 불어오는 따뜻한 봄날에 나의 간절한 소망을 걸머지고 얼어붙은 땅에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백두대간길을 걸어가고 싶다.
우리가 돌아가며 마음속 얘기를 털어놓고 다시 긴 수면모드로 전환한다. 버스는 제천을 거쳐 여주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늦은 밤 10시 20분 양재역에서 길고 긴 여정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