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2-2) 하나님의 세 위격과 사람의 세 부분/ 생각과 마음의 차이
이제 우리 자신에게로 와서 그릇인 우리는 어떠한 지를 생각해 보자. 문제는 사람은 음료를 담는 병처럼 그렇게 단순한 용기가 아니다는 것이다. 사람은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 위격 뿐만 아니라 사람의 각 부분도 알아야 한다.
고린도후서 4장의 각 구절에서 사람의 각 부분이 얼마나 많이 발견되는지 생각해 보라. 4절에는 생각이 있고, 6절에는 마음이 있다. 곧 생각과 마음을 이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세상 신은 믿지 않는 자들의 생각을 가리지만, 하나님은 믿는 이들의 마음 안으로 그분의 빛을 비추신다.
이 부분을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카메라를 예로 들어 보겠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카메라 안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카메라 밖에 있는 형상을 카메라 안에 담는 것이다. 카메라에 하나의 사진을 담기 위해서는 밖의 렌즈와 안의 필름과 그리고 빛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물체를 카메라 속에 담을 수 있다. 많은 경우 믿지 않는 자들이 복음을 들으러 왔을 때, “오늘 밤에는 이 사람이 틀림없이 구원을 받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의 대적이 그의 생각을 가린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이해하는 기관인데, 사탄이 복음을 듣는 사람의 이해력을 어둡게 만들었다. 그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고, 지식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의 이해력이 어둡게 되고 가려진 것이다. 그의 생각은 여전히 텅 비어 있고, 그 속에는 아무것도 들어온 것이 없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이 세상 신이 그의 눈을 가리지 못하도록 대적을 묶어 달라고 하나님께 더 많이 기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렌즈의 덮개를 벗기는 것을 의미한다. 렌즈의 덮개를 벗긴 후에는 올바른 필름이 필요하다. 맞지 않는 필름을 사용하면 올바른 사진을 만들 수 없다.
필름은 바로 우리의 마음에 해당된다. 생각은 렌즈와 같고, 마음은 필름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적절히 조절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렌즈도 필요하고, 필름도 필요하다. 이해하는 생각도 필요하고, 받아들이는 마음도 필요하다. 마음은 순수하고 께끗하며 올바르게 조절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렌즈를 통하여 필름에 비춰지는 빛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을 넣어 주기 위해 우리에게 비친다. 바로 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질그릇 속에 있는 보화인 것이다. 이 예가 완전히 적절하지는 않을지라도 다소 도움은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설명을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다루는지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렌즈와 필름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만일 모른다면 결코 좋은 사진을 찍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영적인 체험도 사진을 찍는 것과 동일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사진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어떻게 우리의 카메라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조정하는 법을 모른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사실상 그들은 그들 자신이 카메라인 것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엄격히 말한다면, 기독교란 사람들에게 이것저것을 하라고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다. 다만 우리 안으로 분배되어 들어오신 살아 계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주님께서 바로 물체이시오 형상이시며, 우리는 카메라이다. 물체이신 주님께서 렌즈를 통해 필름에 거룩한 빛을 비추심으로써 우리 안으로 분배되어 들어오셔야 한다.
우리가 매일 매일,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 안으로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신성한 빛이 생각의 이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우리의 마음에 비추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과 마음을 조정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영적인 체험이란 무엇인가? 영적인 체험이란 다만 그리스도의 사진이 카메라인 우리 안에 찍히고 우리의 영적인 필름 위에 새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렌즈는 거의 항상 가려져 있으며, 필름도 보통 부적절하게 조정되어 있다.
만일 우리가 그들의 필름을 본다면 거기에는 사진이 없다. 필름의 모든 사진은 텅 비어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사도 바울의 카메라를 열고 필름을 꺼내 본다면, 사진마다 그리스도로 충만한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렌즈를 어떻게 조절하며 필름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달려 있다. 곧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다루며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합당하게 조정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우리가 이 일을 잘할 때, 신성한 빛이 우리에게 비칠 때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으로 비춰질 것이다.
또한 우리는 아름다면 그리스도의 사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과 그 표적이다. 우리는 우리의 각 부분에 하나님을 담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우리는 생각과 마음 외에도 그 모든 다른 부분을 계속해서 더 알아야 한다. 다음 글에서 그 모든 부분을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