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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일 일요일 백두대간 49 회차 닭목령 ~ 대관령
사니조은, 고인돌 형님과 함께
백두대간 49 회차 : 닭목령 – 고루포기산 – 전망대 – 능경봉 - 대관령
(대관령에 차를 세워두고 택시로 닭목령으로 이동하여 산행시작)
산행거리 : 약 15 km 산행시간 : 약 7 시간
대관령에서 닭목령까지 택시 :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811558
닭목령에서 대관령까지 도보 :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811574
자유인 산행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j8Xbqd6emHA&feature=youtu.be
거리 15.2 km
소요 시간 7h 19m 11s
이동 시간 6h 3m 4s
휴식 시간 1h 16m 7s
평균 속도 2.5 km/h
최고점 1,254 m
총 획득고도 700 m
난이도 보통
백두대간 (白頭大幹) 49 – 고루포기산, 능경봉
대관령에서
양산박
겨울 찬바람이 잠시 숨을 고른다
아직은 십이월 초
겨울 문턱은
벌써 넘었다
구비구비 긴 고갯길 위로
차가운 햇살 뉘엇뉘엇 넘는다
겨울 나그네
집이 그립다
대관령 일몰 - 하늘비 님 사진 -
날씨 : 대관령 아침 기온 영하 3~4도, 흐림, 산행중 눈발 날림,
옷차림 : 두꺼운 옷차람, 방한모,
뒷풀이 : 귀가 중 평창 휴게소에서 소고기 국밥, 서울 도착후 성남 순대국집에서 술국
프로로그 : 백두대간 선행학습
원래 12월 8일 진행하는 코스인데 싱가폴에 출장 계획이 있어 고민하다가 사니조은 님과 고인돌 형님과 함께 송년회 겸 함께 산행할 코스로 닭목령 ~ 대관령 코스를 잡았다. 사니조은은 벌써 십여년 전에 이 곳을 걸은 적이 있지만 워낙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기꺼이 함께 하기로 했다.
토요일 대전 청솔산악회를 따라 이화령 ~ 희양산 구간을 걸은데다 밤 늦게 귀가하여 잠도 제대로 못잔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니 몹시 피곤하다. 일기예보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내릴 거라는데 마음 한 구석에 비 핑계를 대고 다음으로 미룰까 하는 꾀도 나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강원도에는 비 대신 눈이 내릴 것이 분명한 터라 5시에 맞춰놓은 알람시계보다 더 일찍 일어나 산행을 준비한다. 윤이가 사다 놓은 빵을 챙기고 커피를 끓여 보온통에 담았다. 엊저녁에 만병초와 뽕잎 그리고 벌나무를 넣고 달여 놓은 물을 챙긴다. 토요일엔 날이 더워서 물이 부족했기에 이번에는 큰 통 하나에 작은 페트병 하나를 챙겼다. 사과도 씻어 넣었다.
사니조은과 고인돌 형님 모두 약속한 7시보다 조금 일찍 복정역에 나와 있었다. 셋이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여 곧바로 강원도로 달렸다. 횡성 휴게소에 들러 간식을 먹고 횡성 나들목으로 나가 국도를 조금 달리자 길 가에 눈이 조금 쌓여있다. 올 해 처음 보는 눈이다. 오늘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소식에 강원도에는 눈이 내릴거라고 은근히 기대해본다.
대관령 양떼목장 주차장에서 택시기사분과 담소하고 있는 고인돌 형님 - 택시타고 닭목령으로 가기로 했다.
서울을 출발한지 2시간 반 만인 9시 15분쯤 대관령에 도착했다. 양떼목장 주차장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차가 많이 주차되어 있다. 주차장 바닥은 얼마전에 내린 눈이 녹았다가 얼어붙은 얼음으로 바닥이 미끄럽다. 차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얼음바람이 준비되지 않은 몸을 휘감는다. 주변에 세워진 풍력발전기 바람개비도 세차게 돌아간다. 우리는 대관령에서 택시를 타고 닭목령으로 가서 산행을 시작해서 대관령에서 마치기로 결정하였다. 마침 택시 한 대가 미끌어져 들어오기에 우리는 곧바로 닭목령으로 향했다.
대관령 아흔아홉 구비를 돌아 강릉으로 가는데 고도가 낮아질수록 가을 정취가 남아 있다. 아직 단풍든 나무도 많이 보인다. 차 창 밖으로 올려다 보이는 대간길은 설산이다.
일 주일만에 다시 찾은 닭목령
지난주에 화란봉에서 내려선 닭목령에 다시 왔다. 오전 9시 50분 이번에는 밝은 대낮에 닭목령을 만난다. 주변에는 서설(瑞雪)이 성성하다. 비 예보가 있지만 강원도 고지에는 틀림없이 눈이 내릴거라는 기대감이 든다.
사니조은 하대감은 이 곳을 10년 전에 걸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고 고인돌 형님은 초행길이니 나와 마찬가지다. 백두대간길은 산꾼들이 다닌 흔적이 분명한데다 애매한 곳에는 리본을 많이 걸어두어 길을 잃을 걱정을 안해도 된다.
일주일만에 다시 닭목령을 찾았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천상의 닭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에서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백두대간 길이 밭 끄트머리 경계를 따라 지난다.
길에 나 있는 산죽이 눈과 잘 어울린다.
산행 초입부터 거대한 금강송 군락이 산꾼을 맞이한다.
대간길까지 야금야금 갉아먹은 고랭지 채소밭 가로 돌아가며 산행을 시작한다. 눈이 쌓이 조릿대 숲에 늠름하게 자란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산길은 다시 맹때기(맹덕)농장으로 가는 포장도로와 교차한다. 끼니조차 잇기 힘들었던 극빈의 시대에 이런 펑퍼짐한 산을 개간하여 밭으로 일궈먹는다는 것은 국가에서도 장려했던 사업이었다.
맹때기 농장마을 너머로 전에 지나왔던 화란봉이 흰눈을 덮어쓰고 오돌오돌 떨고 있다. 이제 겨울이 깊어지고 찬바람이 몰아치면 지나가는 산객도 없이 한 겨울 한산하겠지.
백두대간길은 맹때기(맹덕)농장으로 들어가는 포장도로를 건너고
그리고 다시 숲으로 향한다.
맹때기 농장은 지금도 여전히 숲과 치열하게 땅 빼앗기 놀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뒷편은 서득봉이다.
지난주에 종주한 화란봉이 눈에 덮여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산길에는 낭만이 흐른다. 저 먼 옛날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하다. 나무 줄기가 일자로 갈라져 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예전에 있었던 산불로 입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푸르름을 자랑하는 낙락장송’ 이라는 설명문이 세워져 있다. 또 한참 가다 보니 이번에는 상처 모양이 좀 다르게 위에서부터 갈라진 소나무가 보인다. “저건 번개 맞아서 갈라진 거에요” 소나무 예찬자인 고인돌 형님이 소나무 상처를 보며 설명해준다. 이런저런 상처를 입은 나무와 깨끗하게 자라나 가지를 길게 벋은 나무 등 우람한 소나무 줄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오래전 산불로 인해 속이 타 버린 금강송
대간길에는 오래된 낙락장송이 즐비하다.
우리가 지나가고 난 뒤에서 또 다시 수 백년을 이 자리에 서서 지나가는 길손을 내려다 보겠지.
저 앞에 산 봉우리 두 개가 우뚝 서 있다. “저게 고루포기산인가요?” 십년 전에 이 대간길을 걸었다는 사니조은 님도 확신이 안서나보다. 왕산 제2쉼터에서 간단하게 간식을 먹고 가파르게 솟은 산길을 또 오른다. 소나무 대신 참나무가 대신한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가파른 길을 오르는데 허벅지에 은근한 통증이 느껴진다. 어제 이화령 ~ 은티마을 구간을 걸었던 피로가 아직 다리에 남아 있나보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낫다.
저 위 능선길 왼쪽 봉우리가 고루포기산이다.
힘들게 오른 산 마루에 송전탑이 서 있다. 풍력발전기에서 생산한 전기를 실어나르는 시설인가보다.
고도가 높아진 탓인지 능선길에는 눈이 꽤 많이 쌓여있다.
오르막이 끝날 즈음 눈 앞에 까마득히 높다란 송전탑이 나타난다. 다른 산행기에서 보았던 풍경이라서 좀 덜하지만 산길에서 이런 위압적인 인공물을 만나면 허탈함을 느낀다. 산은 걸어서 올라야 하는데 힘들어 올라갔을 때 누군가가 미리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더구나 백두대간길에서 말이다. 송전탑에서 오르막 경사가 누그러지고 넓어진 평탄한 길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다. 겨울산행 기분이 물씬 풍긴다.
강원도 사투리로 골짜기를 골패기라고 한다. 이 봉우리 아래 고루포기(골짜기) 마을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산이라서 고루포기산이라 부른다.
고루포기산에서 한 발 아래 내려 서면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안반데기 고랭지 채소밭이 훤하게 조망된다. 그 뒤에는 노추산이겠지. 옛날 율곡 이이가 이 산에 올라 공자와 맹자 두 성현의 책을 읽고 공부했다고 하여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와 맹자가 태어난 추나라의 이름을 따서 노추산이라 불렀다 한다.
눈을 보며 산행 기분에 취해 사진을 찍는 동안 고인돌 형님은 눈 깜짝할 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함께 산행하면서 늘 그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서 마치 축지법을 쓰듯이 수시로 사라졌다가 꽃이나 특이한 풍경이 있으면 기다렸다가 우리에게 가리켜 준다. 이번에도 벌써 안반데기 고랭지 채소밭 위로 줄지어 서서 돌아가는 풍력발전 바람개비를 다 보고 고루포기산(1238.3 m) 정상에 서서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는 고루포기산 정상석 앞에서 서로 인증사진을 찍어주고 안반데기 고랭지 채소밭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한 걸음 내려선다. 나무계단에 쌓였던 눈이 녹았다 얼음으로 바뀐 것이 무척 미끄럽다. 만만하게 계단을 밟고 내려가다 그만 뒤로 쿵하고 넘어졌다. 엉치가 아프지만 아픈 기색을 억지로 감춘다. 사니조은이 걱정스러워하면서도 재미난 듯 웃는다. 등에 배낭을 매지 않았더라면 크게 다쳤을 수도 있겠다.
높다랗게 줄 서 있는 풍차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여름 내내 채소밭으로 푸르렀을 고랭지 채소밭이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완연한 겨울풍경이다. 안반데기는 강원도 사투리로 떡메를 칠 때 쓰는 평평한 받침을 일컫는데 넓게 펼쳐진 밭의 모양이 떡판처럼 보였던가 보다. 안반데기는 1965년 전후 미국의 양곡원조를 받아 개간하기 시작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1995년 각자 개간한 땅을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불하 받으면서 정착되었다. 지금은 28 가구가 거주하면서 씨감자와 고랭지 채소 등의 농사를 짓는 전국 최대 규모의 고랭지 채소재배 단지라고 한다.
고루포기산에서 지르메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는가보다.
지르메로 내려가는 길
우리는 오른쪽으로 꺽어 능경봉으로 향한다.
다시 큰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이어진다.
고루포기산을 지나자 산길에 눈은 더욱 많아진다. 산줄기가 오른쪽으로 꺽여 내려가기 전 능선 끄트머리에 데크판넬로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화란봉에 있는 하늘전망대와 비슷하다. 흰 눈이 등성듬성 덮인 횡계리 넓은 지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으로는 오늘 가야할 능경봉(陵京峰 m)가 제법 뚜렷이 보이고 그 밑으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풍력발전기 풍차가 돌아가는 대관령이 보인다. 삼양식품의 양떼목장과 그 윗쪽으로는 선자령 그리고 구름이 끼어 시야가 선명하지는 않지만 소황병산과 황병산도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겠다. 지난 여름 우리가 저 진부령~대관령을 진행할 때 짙은 안개와 가랑비로 인해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었다.
평평한 길 끝 절벽 위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서면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능경봉이 그리고 그 아래 대관령이 보인다. 발 아래 마을은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다.
고인돌 형님, 이제 절반쯤 왔나요? 산길에서 반을 지나면 산행속도가 반으로 줄어든다. 그만큼 힘이 빠졌다는 거겠지?
오후 2시가 가까워지는데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내려 앉아 주변이 어둠컴컴하다. 이제 조 앞에 보이는 능경봉만 오르면 하루 일정이 끝이 난다. 그리 힘든 줄은 모르겠지만 무리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조심하면서 진행한다. 전망대에서 급한 내리막 눈길을 걸어내려가던 사니조은 님이 어이쿠 하면서 넘어질 듯 비틀거린다. 과감하게 배낭을 열고 아이젠을 꺼냈다. 왠만한 눈길에는 아이젠을 신는 것이 귀챦은데다 가끔씩 눈길에 미끄러지는 것도 재미있다는 생각에 아이젠 착용을 망설여 왔었지만 오늘은 안전위주로 산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리막 눈길이 편안하다. 아이젠의 위력이다.
전망대에서 샘터까지는 음달이라서 그런지 쌓인 눈이 그대로 남아 있다. 12월 첫 날 이렇게 신선한 눈을 밟으면서 산행하는 기분이 정말 좋다. 발이 빠른 고인돌 형님은 또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지고 사니조은과 나는 마치 눈 맞은 강아지처럼 사진을 찍으면서 맘껏 여유를 부려본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하늘은 흐리지만 기온은 그다지 차지 않아 산행하기에는 좋은 날씨다.
전망대에서 이어지는 길은 급한 내리막이다. 쌓인 눈이 미끄러워 아이젠을 착용한다.
앞으로 가야할 능경봉이 코 앞에 보인다.
숨은 그림 찾기 - 연리목이 보이나요? 두 개의 다른 나무가 어찌어찌 이어져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란다는 연리목.
나무 숲 사이로 영동고속도로가 비친다. 지난 번 화란봉 하늘 전망대에서 보았던 그 고속도로다. 고속도로 터널은 고루보기산과 능경봉 사이 산 밑을 통과한다. 나무 사이로 눈 덮인 화란봉이 크게 보인다.
고루포기산 전망대에서 볼 때는 능경봉이 코 앞에 있었는데 막상 오르막 길을 걸으려니 끝도 없이 이어진다. 간간이 눈발이 흩날리고 구름이 짙게 깔린 탓인지 날도 일찍 저물어가는 느낌이다. 작은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고 또 오른다. 연 이틀 계속된 산행의 피로감이 다리에 전달된다.
왼쪽으로 멀리 보이는 산줄기는 칠성산이렸다.
훼손된 산을 복원하기 위해 막아 놓은 곳으로 가다가 꽈당하고 넘어진다.
산 아래 영동고속도로 횡계터널이 보인다.
2001년 대관령 터널이 개통되어 강릉과 서울간의 거리가 부쩍 짧아졌다.
코 앞에 있을 줄 알았던 능경봉은 쉽게 그 정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후 4시 마침내 능경봉(陵京峰 1,123.2 m)에 도착했다. 닭목령에서 10시경에 출발하여 6시간동안 약 12 km 를 걸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산행속도라고 할 수 있겠다. 펑퍼짐한 정상(頂上) 널찍한 마당에 한글로 예쁘게 새겨놓은 이름돌이 서 있고 수 많은 등산객들이 즐겨 찾은 산임을 증명하듯 산행안내 등 여러가지 정보가 담긴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정상석 옆에는 누군가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환하게 웃고 있다.
행운의 돌탑 - 마치 성황당의 돌무덤처럼 지나가는 길손이 돌을 던져 떨어지지 않으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옛날 학교가는 길에 이런 성황당을 지나면서 늘 돌을 던져 올리던 기억이 새롭다.
조금만 더 힘내자구요. 다 와 갑니다. - 이 말은 산행을 하면서 길을 묻는 산꾼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이제 오세요? 마침내 오늘 산행의 대표산인 능경봉 정상에 오르니 눈사람이 웃으며 반긴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잠시 머무는데 두 명의 젊은 산꾼들이 대관령쪽에서 올라 오는데 등에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있다. “저 눈사람 직접 만드신거에요?” 섬세한 여자의 눈에는 눈사람이 먼저 보이나보다. “네. 우리가 만든거에요.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요금을 내야 해요.”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들에게 부탁하여 세 명이서 단체 사진을 남긴다. 그들은 이 능경봉 정상에서 야영을 할 참이라 한다. 눈을 치우는 삽자루도 보인다. “집이 없으신가봐요. 이 추운 엄동설한에 이렇게 밖에서 잠을 자려고 하니 말이에요.” 이 추운 엄동설한에 이렇게 야영을 할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워서 하는 말이다.
둘이 닮았나요? 큼직한 머리와 뚱뚱한 몸매가 닮았어요.
음.. 꽤나 멀리도 걸었군. 닭목령에서 능경봉까지.............. 11.6 Km 다.
이렇게 오늘도 아름다운 산행을 무사히 마치게 된다.
이제 대관령까지 1.8 km 남았으니 기어가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산 모양이 커다란 무덤처럼 생겼다 하여 능경봉이라 불렀다는 말처럼 이 산은 해발 865 m 인 대관령에서 불쑥 솟아오른 봉우리다. 그런만큼 내리막 경사가 제법 심하다. 아이젠을 신지 않은 고인돌 형님과 사니조은 님이 길 가에 설치된 밧줄을 잡고 설설 기어 내려간다. 대관령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에 눈이 녹을 줄 모르는가 보다. 어쩌면 겨울 내내 이런 눈이 쌓이고 또 쌓여서 늦은 봄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작은 눈사람이 서 있는 작은 헬기장을 지나고 다시 경사로가 시작된다. 내가 주변 풍경을 영상에 담는 동안 다리가 길어서 걸음이 빠른 고인돌 형님은 어느새 사라지고 사니조은님은 뒤에 오는 내가 걱정되는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동행한다. 작은 쉼터에서 고인돌 형님이 빨리 와 보라 한다. 속이 텅 빈 신갈나무 고목 앞에 서서 그 나무 속으로 몸을 넣어 보겠다며 씨름한다. 참 신기한 나무다. 사람 키보다 훨씬 큰 높이에 둘레가 한 아름은 됨직한데 속이 다 썩어서 텅 비어 있고 우리가 서 있는 쉼터쪽으로 그 갈라진 틈을 보이고 있다.
능경봉에서 대관령까지 하산길은 1.8 km 짧은 거리다.
속이 썩은 나무 둥치 속이 궁금했나요?
추운 겨울밤 비박을 즐기려는 낭만의 청춘들
“나는 못들어가겠는데 이리 와서 한 번 해봐” 장난기 어린 고인돌 형님이 우리를 부른다. 배 나온 사니조은 님은 어림도 없을테고, 그 동안 살 좀 빠졌는지 한 번 시험해봐야겠다고 내가 몸을 들이대는데 어림도 없다. 벌어진 틈이 날씬한 여자나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좁다. 옆으로 몸을 세우고 숨을 내 쉰 다음 다시 한 번 몸을 힘껏 밀어본다. 될 것 같다. 엉치뼈가 걸린다. 몸을 조금 비틀어본다. 결코 들어가지 않을 것 같던 내 몸이 나무 속으로 쏙 들어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힘들게 들어간 몸을 빼 낼 수가 없다. 나무 앞에 있는 벤치를 발로 디디고 몸을 조금 밀어서 올려보지만 역부족이다. 몸에 지녔던 크로스백을 벗는다. 나무 속은 썩어서 미끄러워 발을 디딜 수가 없다. 큰 일이다. 밖의 두 사람은 신났다. 119를 불러야겠다고 한다. 몸을 돌려본다. 이제 오른발로 벤치를 딛고 몸을 위로 조금 끌어올린다. 밑이나 위나 나무 벌어진 틈은 별반 차이가 없지만 조금 올리니 뮛몸을 밖으로 뺄 수가 있었다. 이제 엉치뼈를 조금 비틀면서 다리에 힘을 주니 쏙 빠진다. 짧은 시간이지만 유쾌하고 황당한 사건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사냥하는 방법에 대해 티비에서 본 적이 있다. 아니 책에서 읽었던가? 나무에 원숭이 손이 들어갈 만큼 작은 구멍을 파고 그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멸치를 한 줌 넣어 놓는다. 그러면 원숭이는 이를 지켜보고 있다가 사냥꾼이 가고 나면 얼른 달려가 구멍에 손을 넣는다. 욕심많은 원숭이는 멸치를 한 손 가득 쥐고 손을 빼 내려 하지만 편 상태에서 간신히 들어간 손은 주먹 쥔 상태에서는 나오지 못한다. 멸치를 놓으면 손을 쉽게 뺄 수 있지만 원숭이는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결국 바둥거리다가 사냥꾼에게 고스란히 잡히고 만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나무 속에 갖힌 상황이 꼭 원숭이 처지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늦은 시간인데 또 한 무리의 비박팀이 올라온다. 20 kg 쯤 되는 배낭을 짊어지고 능경봉으로 가는 중이라 한다. 낭만이 있는 청춘이다. 다시 짧은 급경사 내리막이 이어지고 나무숲을 지나 길이 완만해지면서 산불감시초소 앞 날머리에서 끝난다. 대관령이다.
대관령(大關嶺 832 m)
동서를 가르는 긴 고갯길에 검문소라도 있었을까? 강릉에서 서울로 가는 첫번째 고갯길이다. 큰 관문이라 하여 이름붙인 대관령(大關嶺 832 m)은 1915년 일제시대에 도로가 개설되었고, 1975년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어 동서간 교통흐름이 원활하게 되었으니 그 감동은 무척 컷을 터이다. 대관령 휴게소에 화강암 거북이 위에 약 10여미터는 됨직한 오석(烏石)으로 영동고속도로 준공 기념비를 만들어 세웠다. 지금은 산 밑으로 터널이 뚫려 대관령 아흔아홉 구비를 돌아가는 차들은 많지 않으나 이 고속도로 준공비가 옛날의 영화를 상기시켜주는 듯하다.
산불 감시초소를 지나고
영동고속도로 준공 기념비를 지나
옛 영동고속도로 옆 백두대간 기념비에서 긴 산행을 마친다.
오후 다섯시 귀소본능이 나아 있는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난 대관령을 뒤에 남기고 서둘러 서울로 향한다.
대관령 백두대간 기념석 앞에서 인증사진을 남기고 주차장에 세워 둔 자동차로 향한다. 등산화에 눈녹은 물이 고였는지 찌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물 묻은 발이 불편하다. 자동차 문을 열려고 리모콘 키를 누르는데 작동하지 않는다. 몹시 당황스럽다. 밧데리가 다 되었나? 만일 차 문이 열리지 않으면 어찌해야 하나? 짧은 순간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잠시 온기를 불어넣으니 그제서야 문이 열린다. 추위가 심하면 전자기기도 별 수 없나보다.
이렇게 다음 주에 예정된 대간길을 미리 걸었다. 2 주 후에 짧은 구간 산행을 마치면 백두대간을 다 마치게 된다. 작년 3월 11일 남원시 노치마을에서 시작한 대간길 산행이 1년 9개월만에 막을 내린다. 부분부분 파노라마처럼 산행의 장면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지만 자세한 기억이 나지 않는 곳도 있다. 아쉬운건 아쉬운대로 흐릿한 장면으로 나의 기억속에 담아두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국밥으로 저녁을 먹고 마치려 했으나 수리조은 아니 사니조은 님이 보채는 바람에 성남에 들러 순대국에 소주로 이야기를 나눠마셨다. 사니조은 님은 곧 정맥을 완주한다고 한다. 정말 산을 좋아하는 만큼 술도 좋아하는 풍류객이다. 오늘 하루 함께 산행하게 되어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