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8일
27일 오전 부산 출발 하여 인천공항에서 환승하여 당일 저녁 이스탄블 도착
다음날 아침 기상후 호텔에서 바라본 "이스탄블" 도시와 바다
이스탄블은 동로마제국의 수도였지만 터키의 수도는 아니다. 이곳 이스탄불은 유럽에 붙어 있어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가 공존하는 나라이다.
<블르 모스크 >
히포드롬 광장 옆에있는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오스만 제국의 제14대 술탄 아흐메트 1세의 지시 아래 건축가 시잔의 제자인 메흐메트 아아(Mehmet Ağa)가 1609년 착공을 시작해 1616년 완공했다.
아야소피아 성당의 건축 양식을 모방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슬람 사원에는 4개의 미나레(뾰족한 기둥)가 있지만, 블루 모스크는 6개의 미나레를 가지고 있다.
당시 미나레의 높이와 개수는 술탄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 졌고 당시 이슬람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메카의 미나레도 6개이다.
내부의 벽과 돔은 21,043장의 푸른색과 흰색의 이즈니크 타일로 꾸며져 있고, 250개가 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햇빛이 들어와 화려하게 빛난다. 화려한 푸른색 타일 덕분에 ‘블루 모스크’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고, 현재는 원래 명칭인 ‘술탄 아흐메트 1세 사원’이라는 말보다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이슬람 신자들은 일생에 한 번쯤은 메카에 대한 성지 순례를 해야 하는데, 블루 모스크는 성지 순례의 출발지가 될 정도로 중요한 사원이라 한다.
<성 소피아 성당>
성 소피아 성당은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 비잔티움 예술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니카의 반란(532)으로 불타 버린 것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재건하였다.
아야 소피아 또는 하기야 소피아 라고도 불리운다.
아야 소피아 또는 하기야 소피아로 불리는 이성당은 537년부터 1453년까지는 그리스 정교회 성당이자 콘스탄티노플리스 세계총대주교의 총본산이었으며,라틴 제국에 점령된 1204년부터1261년까지는 로마 카톨릭교회의 성당으로 개조됐다.
1453년 5월 29일 부터 1931년까지는 모스크로 사용되었고,1935년에 박물관으로 다시 개장 되었다.
성 소피아성당은 그리서어로는 Hagia Sophia 이고 터키어로는 Ayasofya 입니다.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입니다.
성 소피아 성당은 얼핏 보면 돌로 건축된 건물같이 보이는데, 실제로는 벽돌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제일먼저 눈에 들어오는게 성모마리아 상과 이슬람사원에나 있을 법한 이슬람 성인의 이름이 적힌 원판입니다.이 성당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장면 입니다.
회교 사원에는 인물화같은 것이 없어야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을 전부 뚜꺼운 회칠을 했다고 합니다.
이 곳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비잔티움 건축의 대표작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건축물로 여겨지고 있다.
판토크라토르(전능하신주) 그리스도와 황제 레오 6세라는 모자이크화 입니다.
성전의 중심에 서면, 천장 돔이 보이는데 중심부를 보면 이슬람 식으로 무늬를 만든듯 합니다.
이 건출물이 대단한건 사실 건물에 기둥을 세우지 않고 큰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현재도 쉽지 않은 기술인데
약 1500년 전에 지어진 이 성당의 메인 홀이 매우 넓은데도 저 아치의 기둥만으로 천장을 버티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건축술 입니다.
이곳은 예배드리는 장소였던 곳입니다.
얼핏 보면 그림같은데 실제로는 그림이 아니라 모자이크화 입니다.
모자이크로 머리카락과 얼굴의 색과 눈동자등을 표현한걸 보면 정말 비잔티움 예술 중 걸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오네스 황제의 모자이크화 입니다. (IMPARATOR II, lOANNES KOMNENOS)
콘스탄티누스 9세 황제와 조예 황후의 모자이크화 입니다(Imparator IX, KONSTANTINOUS)
가운데 왕좌에 있는 인물을 그리스도 입니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성당이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히포드럼 광장
히포드럼은 말과 길의 합성어로 경기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래 로마 황제 세비루스(Severus)에 의해 지어진 검투장으로 203년에 첫 검투경기가 열였으나,330년경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중축한후 검투경기를 금지시키면서 대신 말이 끄는 전차 경기장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오벨리스크>
광장 남쪽끝에 외관이 지저분한 오벨리스크가 서 있느데 4세기 콘스탄티노스 대제때 세운 32m 높이로 당시에는 대리석에 금박 청동 장식을 입힌 아름다운 모습 이었다고 한다.그런데 콘스탄티누폴리스를 함락시킨 제4차 십자군들이 무기를 만들기 위하여 장식물들을 떼어내는 바람에 훼손되어 콘스탄니누스7세 황제가 수리를 했지만 흉물스러운 모습이 남아 있어 십자군의 만행을 지금까지 전하고 있는 셈이라 하네요.
오벨리스크 뒤로는 세 마리의 뱀이 몸을 휘감고 올라가는 형상의 이 청동기둥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앞에 있던 것을 서기330년 콘스탄티노스 대제의 명에 따라 이 곳으로 옮겨졌다.이 기둥은 479년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에 벌어진 플라테이아 전투에서 31개의 연합군이 페르시아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페르시아 청동방패를 녹여서 만든 것이다. 원래는 기둥꼭대기에 뱀들의 머리 사이에 삼각발이 황금그릇을 받치는 형상 이었으며, 뱀의 머리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과 폴란드 대사가 잘라 버렸다고 한다.
이 청동기둥 밑면 바닥이 예전 바닥 높이며 이기둥은 전차 반환점으로 사용 되었다고 한다.
오벨리스크의 기단에는 당시의 새긴 조각 작품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마술사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기둥 하단부에 보이는 조각에는 오벨리스크를 세우는 작업과 테오도시우스 1세의 가족이 작업을 구경하는 모습,이방인에게서 충성 서약을 바든 네명의 황제가족,오벨리스크를 세우게 된 과정을 설명한 그리스어 비문,전차경기 모습과 구경하는 황제가족모습,경기 승리자에게 관을 씌워주는 모습과 경기 관람객과 승리에취해 춤추는 군중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베이파자르
오스만 터키 가옥들이 밀집된 지역으로 앙카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전통 터키의 시골 도시
당근 주스가 유명한 곳으로 시장 골목으로 가다보면 즉석에서 갈아서 작은 병으로 넣어 파는 집이 많아 우리도 사서 먹어 보니 당근 맛ㅋㅋ
골목 길을 따라 시장이 형성 되어 있었다.
이곳은 옛날 상인들이 머물던 숙박지
다음 여행지로 가는 도중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니 아직 환하여 호텔 후문 민가로 혼자 나가 보았다.
노 부부가 내가 다가 가니, 밭으로 들어가 버리고 초등학교 정도의 손녀 딸이 나와 새끼 염소와 함께 노는 모습을 보다 호텔로 돌아왔다.
노 부부가 나를 피한 이유가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여성의 얼굴 노출을 피하는 종교적인
이유 인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