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회신앙이란 한마디로 산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한국 사람으로서 거짓 없이 마음과 힘과 진실과 열심을 다하여 직접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며 살자는 신앙이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사람과 그리스도 사이에 어떤 인간이나 교직이나 제도, 의식이나 방법이나 비결도 개입시키지 않고, 오로지 양심과 더불어, 건전하고 진실 되게 우주와 만물의 창조주요, 인류와 역사의 지배자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감찰하시고 은혜로써 사랑을 부으시는 아버지 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여 하나님의 자녀이자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속죄와 부활과 구원의 주 되시는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려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무교회신앙은 위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교제, 그리고 아래로는 사람 사이의 도덕적이고 진실한 생활을 고수하고자 한다. 이 이하로 떨어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를 위해 무교회신앙은 오직 기독교 신앙에서 제일의적(第一義的)이고 근본적인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만 전력을 기울이려고 한다.
교회 신자 중에는 유일한 공교회(公敎會)를 주장하는 카톨릭이 아닌 이상 오늘날 교회와 의식을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이 역시 다만 믿음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토론’보다는 ‘증거’가 중요하다. 오늘날 이 변질된 교회주의 때문에 신앙이 무시.압살 당하고, 진리가 구박을 받고, 양심이 마비되고,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천대와 모욕을 당하는 것이 과연 사실 아닌가?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우리는 기독교를 처음부터 신앙체험과 진리 소화가 아니라, 외적.피상적이고 천박한 교회 출입으로, 의식.형식으로, 교리와 신학, 기독교사상과 사업으로 받았다. 이로 인해 오늘날까지 기독교는 산 믿음.진리.사랑,양심.도덕.인격.민족성격.사회생활 등과는 아무 상관없는 한낱 형식이 되고 만 것이다. 이리하여 끝내 민족의 양심을 죽이는 고질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 복음서에는 교회란 말이 한 두 마디 밖에 없다.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마저도 저주했다. 바울의 교회는 단순한 신앙인들의 가정모임이었다. 이미 구약 시대에 아모스나 이사야는 의식을 부정했다. 기독교는 루터의 ‘신앙만’으로 된 것이다. 오늘의 서양 기독교는 교회주의로써는 더 이상 운신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저명한 신학자 에밀 브루너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런데 우리는 기독교 백년 역사에 여태껏 교회주의와 제도를 신앙생활이라 하고, 이로써 신앙이 다 된 줄 알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근래 더욱 심해지는 교회의 추태야말로 우리의 거짓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질책.심판이 아닌가? 무교회는 일단 제도 교회와 의식을 떠나, 오직 성서 한 권으로 오로지 신앙 진리에 의해 믿음의 재출발을 하려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루터의 ‘신앙만의 신앙’을 민족적 체험으로 만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