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결혼 계절이다. 결혼을 통해 새로운 인생여정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을 축복하는 마음은 모든 사람이 동일할 것이다. 성경은 결혼을 ‘남자와 여자가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 정의한다. 남편과 아내 둘이서 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일생은 크게 세 시기로 분류된다. 먼저는 결혼하기 전까지 자기 홀로 한 인생을 사는 시기다. 그다음은 결혼해 배우자와 함께 둘이서 한 인생을 사는 시기이고, 마지막은 배우자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 남은 사람이 먼저 간 사람의 몫까지 홀로 두 인생을 사는 시기다. 이처럼 인간은 홀로 한 인생을 사는 시기와, 홀로 두 인생을 사는 시기 사이에 배우자와 더불어 둘이서 한 인생을 살게 된다. 그 기간이 얼마 동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기간은 결혼과 동시에 시간의 속도만큼 계속 단축될 뿐 어떤 경우에도 연장되는 법은 없다. 결혼한 부부가 최선을 다해 둘이서 한 인생을 살아야 할 당위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각자 자기 인생을 살던 두 사람이 단지 결혼식을 치렀다고 절로 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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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김회룡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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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결혼함으로 비로소 상대를 알기 시작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상대를 다 알았다는 속단 속에서 결혼하기에, 부부가 되어서도 자기 배우자가 어떤 사람인지 서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불행을 겪고 있다. 자신의 부모형제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물며 고작 몇 달 혹은 몇 년 사귄 남녀가 서로 상대를 다 안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상대를 다 안다는 교만을 버려야 한다. 자신이 아는 상대는 상대의 실상이 아니라, 자신의 바람과 생각이 빚어낸 상대의 허상일 뿐이다. 그 허상을 깨지 않는 한, 부부는 일평생 상대의 실상을 부정하는 어리석음 속에서 둘이서 두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부부가 한 공간 속에서 두 인생을 사는 것보다 더 큰 비극은 없다. 자신의 교만이 빚어낸 상대의 허상을 겸손하게 버리는 순간부터 남편과 아내는 상대의 실상을 매일 더 깊이 알아가는 감격을 누리게 될 것이요, 둘이서 누리는 한 인생의 감격 역시 깊어질 것이다.
결혼은 서로 죽는 것이다. 결혼은 총각으로 살던 남자가 죽는 것이다. 그래야 아내의 남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처녀로 살던 여자도 죽어야 한다. 그래서 신랑의 아내로 거듭나야 한다. 많은 사람이 결혼한 뒤에도 처녀·총각의 마음을 고수하느라 둘이서 한 인생을 살지 못한다. 결혼한 남자와 여자는 처녀·총각 시절의 생각과 태도와 습관을 철저하게 버려야 한다. 다시 말해 온전히 죽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죽어야 한다. 그래야 두 사람은 하루라도 더 빨리 한 몸을 이룬 남편과 아내, 둘이서 한 인생을 사는 부부로 거듭날 수 있다. 이것은 파란색과 노란색이 서로 죽어져 한데 어우러짐으로 초록색이란 전혀 새로운 색으로 재창조되는 것과 같다. 둘이서 한 인생을 산다는 것은 약한 쪽이 강한 쪽으로 흡수되는 일방적 동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남편과 아내가 한 인생을 사는 것은 상호 동화를 통해 전혀 새로운 존재로 새롭게 빚어지는 신비로운 재창조를 의미하고, 그것은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온전히 죽어짐으로써만 가능하다.
부부의 사랑은 상대의 성(性)을 지켜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여성으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부여하신 아내의 여성성을 지켜주는 것이다. 많은 남자가 결혼 후에 아내의 여성성을 짓밟아 버린다. 여성성을 상실한 여자가 남편에게 좋은 도구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좋은 아내가 될 수는 없다. 좋은 엄마가 될 수는 더더욱 없다. 좋은 아내도, 좋은 어머니도, 아내가 여성성을 지닐 때만 가능하다. 남편은 일평생 아내의 여성성을 소중하게 지켜주어야 한다. 여성성은 부드러움과 섬세함이다. 아내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꽃망울에 감격하는 여성성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남편이 일평생 아내를 사랑한 증거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남성으로 만드셨다. 따라서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남편의 남성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남자를 여성화시키고 있다. 여자는 여성화된 남자를 마음대로 다룰 수는 있다. 그러나 여성화된 남자는 이 험한 세상에서 책임 있는 가장도, 훌륭한 아빠도 될 수가 없다. 그것은 남성성으로만 가능하다. 남성성은 너그러움과 대범함이다. 너그럽던 남자가 결혼 후에 마음이 바늘귀처럼 좁아졌다면 아내가 남편을 잘못 대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된 남편이 젊은 시절보다 도리어 더 대범한 남성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는 일평생 아내의 사랑 속에서 살아온 남자다.
결혼의 행복은 반복 속에 있다. 사람들은 직선 위에서 행복을 추구한다. 어제보다 수입이 많고 아파트와 자동차가 더 커져야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직선 위에는 언제나 자기보다 앞선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의 목표가 이루어지는 순간 잠시의 만족이 있을 뿐, 자기보다 앞선 사람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나 열등감에 시달리게 된다. 참된 행복은 늘 반복 속에 있다. 결혼한 남편은 아내와 가정을 위해 평생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자신만을 위해 매일 동일한 일을 반복한다면 그보다 더 따분한 일은 없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가 서로 상대를 위해 그 반복을 감수하면 그것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무의미한 단순반복이 아니라, 마치 상승하는 나사의 골처럼 그 반복을 반복할수록 더 진한 행복으로 승화한다. 그 반복의 행복 속에서 남편과 아내 둘이서 살아가는 한 인생은 날로 농익지 않을 수 없다.
부부가 둘이서 한 인생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이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인생사용설명서를 좇을 때 결과적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의미다. 결혼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이재철 100주년기념교회 목사 그림=김회룡 기자
http://news.joins.com/article/651/4129651.html?ctg=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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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결혼을 앞둔 남녀가 결혼식(Wedding) 준비로 시간과 돈을 낭비할 게 아니라 결혼예비학교 같은 곳에 다니며 결혼 생활(Marriage)을 준비한다면 이혼율이 훨씬 낮아질 거라는 생각.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는 이런 데도 해당되는 것 같네요. 너무 겉모습에 치중하는 세태...
어제 친구들이 자녀들의 군대 취업 결혼등에 대해
두루두루 이야기했는데...(그 내용은 아래에 적어 놨음)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어요.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답니다.
결혼 적령기의 건강한 남녀가 결혼할까 생각을 하게 되면...
남자들은 하려고 하는데, 여자들은 생각해 보거나, 하기 싫다고 한다네요.
우리 민족의 멸종이 임박했나요? @@;
우리 민족의 멸종 임박? ㅋㅋ 너무 웃었더니 땀이 다 나네요.
인구가 줄고 역피라미드에 문제가 심각하긴 하죠.
일본 다음으로 초 고령화 사회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