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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토인비는 일본을 방문하여 동경대학과 기독교대학에서 ‘정신적 과제로서의 이데올로기 전쟁’이란 강연을 했다. 이에 대해 나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토인비는 이 강연에서 근대 산업혁명이 역사에서 노예제도를 철폐시킨 것과 같이, 오늘날 원자혁명은 인류사에서, 특히 양대 진영 사이에서 전쟁을 철폐시킬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진영 사이의 대결은 앞으로 더욱 치열한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즉 전도전(傳道戰)으로 전 인류를 상대로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두 진영의 이데올로기를 분석한다. 그는 두 진영의 정치경제적인 체제는 양쪽 다 통제와 자유 어느 한 편만을 절대적으로 고수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상대적인 문제일 뿐이며, 두 진영의 절대적인 차이는 바로 정신적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 공산 진영이 집단적인 인간 권력을 숭배하는데 반해, 서방 진영은 개인 인격의 가치와 존엄 및 신성을 옹호한다는 것이다. 물론 두 진영이 모두 인간 자체의 높은 가치를 인정하는 점은 같다고 했다. 토인비는 서방 진영의 인간관이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것을 인정하고, 그러나 여기에서 중대한 문제는 오늘날 서구인이 대체로 기독교 신앙을 포기해버린 관계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열정 면에서 공산주의자들보다 허약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그들이 신앙 자체를 버리고 이를 다만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하나의 유산으로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서구인의 이데올로기 강화를 위해서라도 다시 서구가 기독교로 돌아가야 할 것인데, 그러나 종교란 어떤 이용가치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므로, 즉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므로, 17세기 이래 지적으로 많은 발전을 보인 서구인에게 적합하도록 기독교의 내용에서 그리스적인 신조(信條)와 예수의 신성(神性) 등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그가 남긴 기독교의 내용이란 신의 창조와 이 창조물에 대한 그의 사랑과 구원을 위한 희생을 믿는 것이었다.
우리는 토인비가 기독교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도 알 수 있고, 더욱이 공산주의자와의 이데올로기 전도전에서 서구를 위해 걱정하고 있는 것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시 토인비는 지식인으로서, 현대인으로서 기독교를 하나의 사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절실한 그 자신의 내면의 양심 문제, 즉 죄의 문제, 도덕 문제로서 다루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를 이렇게 절실한 양심 문제로 받지 못하는 태도야말로 종교를 이용하는 것임을 토인비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서구인이 그들의 조상인 루터, 웨슬리 등의 신앙을 그대로 받지 않아도 그들과 같은 인격의 존엄만은 가질 수 있을 것으로 토인비는 믿는가? 이점은 바로 예수의 신성의 문제와 직결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이 지적 교만으로 종교를 부정하고 도덕적인 파산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 바로 그것이야말로 현대의 위기의 본질이다. 토인비는 역사가이다. 역사 전문가이다. 그는 종교에 대해서는 루터나 칼뱅의 말을 경청할 필요는 없는가? 이들의 성서적인 종교개혁의 순수 신앙을 통해 유럽 근대사가 창조된 것임을 역사가인 토인비 자신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유물론적인 공산주의에 대한 토인비의 관점 또한 너무 안이하다는 생각이다.
<성서연구> 제98호 (1962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