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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윈난성 여행-신비의 낙원 샹그릴라를 찾아서(2)
샹그릴라와 후타오샤 트레킹의 들머리인 차오토우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샹그릴라를 향해 출발한다.
먼저 마음부터 설렌다. 전세계 수십개국을 여행했지만 오늘처럼 마음 설렌 적이 있었던가? 왜 그럴까? '샹그릴라'라는 이름, 우리들의 뇌리에 깊이 심어져 있는 그 이름, 바로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름 때문이 아닐까? 호기심을 넘어 내가 지금 바로 그 유토피아의 땅을 찾아간다. 그곳은 정말 피안의 세계일까?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향이 정말 그곳에 있을까?
현실에 존재하든 존재하지않든 꿈을 꾼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종교도 어쩌면 같은 맥락에서 연유된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사후세계에서 찾아보겠다는 바램이 종교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자신이 그리는 이상향, 머물고 싶은 유토피아가 있을 것이다. 이제 필자 일행은 그 유토피아의 땅으로 들어간다.
차오토우 마을 중심부를 지나면 이정표가 보인다. 우측은 후타오샤 트레킹 코스, 직진하면 샹그릴라 방향이다. 길 좌측으로는 샹그릴라 쪽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 물이 보인다. 우리 일행을 태운 빵차가 계속 완만한 고갯길을 달린다. 고도를 높일수록 계곡은 점점 깊어지고 문명세계의 흔적들이 점점 사라져간다. 빵차도 하늘사다리를 오르듯 숨가쁘게 올라간다. 오래전에는 아무나 오를 수 없었던 숨겨진 땅. 그 비밀의 고원을 찾아 산을 넘는다.
얼마쯤 달렸을까?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면서 발 아래 까마득하게 그랜드 캐년 같은 대계곡과 평원이 열린다. 사람이 살 것 같지않은 고원지대에 들어서 있는 마을. 문명세계의 가옥구조와는 사뭇 모양이 다르다. 마치 울릉도의 '너와집' 같은 집들이 무리지어 자리를 잡고 있다. 한마디로 목가적인 풍경이다.
이 높은 곳에 왠 마을? 혹시 이곳이 우리들이 찾아가는 샹그릴라는 아닐까? 마음이 먼저 조급해진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이곳은 해발 2,800m 지점, 소수민족 중 하나인 이족들이 사는 마을이란다. 이족은 인구도 많고 분포지역도 광범위한 소수민족이다. 중국 전체로 약 650만명이 있으며, 고유언어를 가지고 있다. 이족은 아주 오랫동안 노예제도를 유지했는데 1950년대까지도 깊은 산속에서는 이런 노예제도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샹그릴라 가는 초입이다. 샹그릴라는 앞으로도 3,200m 수준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나무펜스로 구획지워진 들판에는 야크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마을 곳곳을 아무리 찾아봐도 사람들의 움직임은 보이지않는다. 마을 전체에 죽은 듯한 고요가 깔려있다. 시간이 멈춘 마을, 바로 그런 마을같다.
우측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구름 아래 5천미터가 넘는 하바설산 봉우리가 여인의 가슴처럼 봉긋히 솟아 있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않는 고원에는 크고 작은 봉우리와 언덕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굽이친다. 우리나라 백두산 정상보다 높은 곳에 이처럼 광활한 고원지대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가슴이 뻥 뚤리는 기분이다. 공중으로 떠오르 듯 몸과 마음이 가볍게 출렁인다. 멀리 하바설산으로부터 달려온 찬 바람이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도로 옆 조망포인트에는 매점과 화장실이 만들어져 있고 이족 청년이 땅콩, 호두 등과 비슷한 건과류를 팔고 있다. 일행 중 오교수님 사모님께서 '수암마이'라고 하는 견과류 한 봉지를 사주신다. 껍질을 까먹는 땅콩같은 모양인데 맛이 구수하다.
가이드가 조그만 산소통을 꺼낸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고산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행중 한두명은 산소통을 입에 대보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은 모두 건재하다.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고산병의 초기증세는 감기나 체증 증세와 비슷하다. 머리가 무거워지고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아무리 건강한 체질이라도 고산병에 대해 자만해서는 안된다. 예방책은 따뜻한 물을 평소보다 많이 마시고 천천히 고도에 적응하면서 여행지를 이동하는 것이다. 약국에서 고산병 약을 사먹는 방법도 있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즉시 해발고도가 낮은 지역으로 내려와야 한다. 비아그라가 고산병 예방에 좋다고 해서 함께 한 여성분들과 한바탕 웃음꽃을 피운 일도 있는데 의학적으로 맞는지는 확인해보지 못했다.
다시 차에 올라 고원지대를 가로지른다. 고도를 점점 높인다. 3,000m를 넘어 이젠 3,200m 지대로 올라선다. 갈수록 평원은 더욱 넓어진다. 고원지대라고는 전혀 믿어지지않는 넓고넓은 들판, 마치 우리나라의 김제평야와 같은 들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백탑이 보이고 그 뒤로 다시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은 '소샹그릴라'. 이름 그대로 작은 샹그릴라 마을이라 한다. 샹그릴라로 지명이 바뀌기 전에는 이곳이 '중덴'으로 불렸으니 구지명으로는 '샤오중덴'(小中甸)'이다. 들판은 풀한포기 보이지않을 정도로 삭막하고 들판의 하얀 집들만 듬성듬성 찬바람을 맞고 있다. 아니 이곳이 샹그릴라라니... 우리가 그토록 꿈꾸던 이상향이 이런 곳이라니...일행들의 입에서 실망스런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우리들의 판단은 너무 성급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직 이른 봄. 5월부터는 이 평원이 온통 야생화와 풀밭으로 덮혀진다. 소와 야크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대평원, 멀리 6천7백미터가 넘는 하얀 메이리설산(雪山)이 눈부시게 반짝이고 호수에는 이름모를 철새들이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곳. 멀리 라마사원의 첨탑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곳. 이곳은 바로 그런 곳이란다.
필자 일행이 샹그릴라를 찾았을 때는 건조기라서 호수가 보이지않았지만 이곳 대평원에는 '나파하이(海)'와 '비타하이' 등 몇개의 고원호수도 있다. 호수인데도 '바다 海'자를 쓰는 게 특이하다. '나파하이'는 7-9월 경에는 호수가 되었다가 나머지 달에는 초원으로 변하는 신비로운 곳이다. 3,200m 고원의 넓은 들판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소와 말과 돼지 등 가축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고산초원의 모습은 티베트 지역이 아니면 흔히 보기어려운 풍경이다. 또 호수면 해발고도 3,500m, 넓은 쪽 길이 3km, 폭 1km인 '비타하이'호수는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삼림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자연관광명소이다. '비타(碧塔)'라는 말은 티베트어로 '상수리나무가 지천인 곳'이라는 뜻이라 한다. 또 '호수에 비치는 주위의 산 모습이 마치 탑처럼 생겻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비타하이는 샹그릴라 시내에서 25km나 떨어져 있어 일정상 그냥 지나치기가 쉬운 곳이다.
이곳의 토착민들은 이처럼 오랜 세월동안 해발 3,200m 이상의 하늘공원에서 문명세계를 등지고 자연과 함께 자연의 일부로 살아오고 있다고 한다. 넓은 들판에 청보리와 야채 등을 재배하고 야크 젖을 마시면서 들풀처럼 야생화처럼 근심걱정 모르고 살아가는 그들, 그래서 누군가 이런 곳을 샹그릴라라고 이름붙였는지도 모른다.
'샹그릴라'라는 말은 티베트의 사투리로, 중덴 현 말로 '내 마음 속의 해와 달'이란 뜻이라 한다. 그렇지. '꿈'이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에서 나타나듯 우리가 그리는 샹그릴라 역시 보이는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마음 속' 깊은 곳에, '느끼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들판 한 구석에는 검은 야크 두마리로 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이 보인다. 새 생명을 일궈가는 그들, 그들은 그렇게 수천,수만년을 평화롭게 살아오고 있을 것이다.
힐턴의 책에 등장하는 기이한 이야기들은 아라비안나이트를 연상시킨다. 주인공은 죽음 직전에 한 지역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이곳은 티베트 지역이다. 부근에는 라마사원이 있다. 그곳이 바로 샹그릴라다"
탕하이정 저 '윈난에 가봐야 하는 20가지 이유'를 보면, 힐턴의 '잃어버린 지평선'이 출판되기 3년 전 류만칭(劉曼卿)이라는 여성탐험가가 이미 이곳 '디칭'에 자신의 발자취를 남겼다고 한다. 류만칭은 중화민국 정부가 티베트 지역 조사와 한족과 티베트 민족 사이의 관계증진을 위해 그곳에 파견한 사람이다. 1929년 7월 15일 난징에서 출발한 류만칭은 1930년 디칭에 도착했고, 황홀한 절경을 갖춘 디칭현 중덴을 이렇게 묘사했다. "리장에서 서쪽으로 난 길은 모두 험준한 암석으로 되어 있어 하늘계단을 오르는 듯 하다. 늙은 전나무 가지가 드리워져 있고, 산에는 안개가 자욱해서 길이 잘 보이지않는다. 이 길로 가면 혼돈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3일 뒤 갑자기 광활한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늘과 풀이 조화를 이루고, 노란 꽃들이 피어 있다. 소와 양들이 무리를 지어 커다란 휘장을 지탱하고 있다. 멀리 마을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길을 잃고 신선의 경지에 들어설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이곳은 어디인가? 이곳은 윈난과 간쑤가 만나는 곳에 자리한 중덴이다" 류만칭이 묘사한 중덴의 모습이 힐턴의 소설 속 샹그릴라와 너무나 닮았다.
차창에서 카메라의 줌을 당겨본다. 장족 가옥이 가까이 보인다. 집앞에는 몇개의 건조대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끝이 하늘을 찌르듯 뾰족한 건조대는 장작토착민들이 농작물을 말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장족마을에는 어느 집을 막론하고 이같은 건조대들이 세워져 있다.
이제 샹그릴라 시내로 들어선다. 리장에서 184km 거리. 샹그릴라는 윈난성 서쪽에 위치한 디칭 장족 자치주의 4개 현(縣)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중소규모의 시(市)에 해당한다. 전체인구는 약 36만명 정도이지만 중심지인 현 성안의 인구는 4만 명 가량이다. 장족(藏族) 자치주로 장족이 30%를 차지하지만 이외에도 이족, 나시족, 한족 등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산다.
시내는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건물들로 빽빽하다. 시내 여기저기에 공사가 요란하다. 이곳 샹그릴라도 개발 붐이 한창하다. 샹그릴라 시내를 보면 또 의문이 생긴다. 3,200m 높이의 고원지대에 이처럼 넓은 현대식 도시가 들어서 있다는 점 자체가 의아하다. 유토피아의 땅 샹그릴라의 모습으로서는 어울리지않는 도시형태이다. 시내 외곽 도로변 백탑 앞으로 두마리의 야크가 여유롭게 걸어간다. 야크가 제 마음대로 시내를 돌아다니는 곳, 여유로워 보인다.
황의봉 저 '샹그릴라 하늘호수에 서다'라는 책에 의하면, 디칭 장족 자치주의 중덴이 샹그릴라로 바뀌게 된 계기는 우연하게도 싱가포르 관광단으로부터 비롯됐다고 한다. 1996년 봄, 이 지역을 돌아본 싱가포르 관광단이자연풍광과 인문경관이 제임스 힐턴이 묘사한 소설 속의 샹그릴라와 비슷하다는 견해를 주 당국에 제시하기에 이른다. '샹그릴라와 흡사하다'는 문제제기는 디칭주에서 윈난성으로 보고되고 , 윈난성 차원에서 조사연구단이 발족하게 되는 계기를 만든다. 수십 명의 전문가, 학자, 실무자들이 참여해서 자연환경, 종교 사회, 티베트 방언 등에 대해 1년여에 걸쳐 조사한다. 그리고 중덴 현을 소설에 나오는 샹그릴라로 확정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1997년 9월 14일 윈난성 정부가 중덴을 샹그릴라로 선포하고, 2001년 12월 중국 국무원에서 샹그릴라 현으로 개명을 비준함으로써 일련의 모든 과정이 마무리된다. 당시 조사단이 제시한 근거는 지세, 지형, 기후 등의 자연환경을 비롯해 사회 환경, 종교적인 배경, 티베트어 방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망라한 것이었다고 한다.
샹그릴라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광활한 초원과 산 사이로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이 보인다. 건축물 정상에 놓인 금빛 기와가 멀리서도 눈을 부시게 한다. 거대한 고성을 방불케 하는 이 건축물은 바로 쑹짠린스(松贊林寺)다. 시내 중심가에서 약 5km 떨어진 포핑산(佛屛山) 기슭에 위치한 쑹짠린쓰는 샹그릴라를 대표하는 사원으로 정치, 종교의 중심이자 도시의 랜드마크다. 시내에 위치한 매표소에서 쑹짠린스까지는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1679년 달라이 라마 5세 때 창건되었고 문화혁명기에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가 후에 복구되었다고 한다. 윈난 최대의 라마교 사원으로 현재 700명 이상의 승려가 정진 중이다. 매년 음력 11월 29일 승려들이 각종 동물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거똥지에'라는 불교축제도 있다.
쑹짠린스는 티베트불교사원으로 티베트 포탈라궁의 설계를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초원에 세워진 이 웅장한 사원은 포탈라궁을 축소해놓은 듯 하다.
쑹짠린스의 중심인 대전은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야 자세히 볼 수 있다. 계단 상단에 서면 멀리 샹그릴라 시내가 보이고 바로 발 아래에는 작은 탑이 서 있는 라무양춰호수도 보인다.
쑹짠린스를 둘러본 후 다시 시내주차장으로 돌아온다. 셔틀버스 내 필자 바로 앞에는 전통의상을 입은 장족 여인이 앉아 있다. 머리 위에 쓴 둥근 테 모양의 적색모자가 특이하다. 장족 전통의상 뿐 아니라 대부분의 소수민족 의상이 화려하고 현란하다.
쏭짠린스를 둘러본 후 장족마을을 방문했다. 2층 구조의 본채가 꽤 크다. 장족 중에서도 비교적 부유한 집인듯 하다. 1층은 주로 창고로 쓰고 2층에 거실과 안방 등이 배치돼 있다. 처마부분은 마치 절처럼 화려하게 단청돼 있다.
이집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들 부부, 손자손녀 등 3대가 함께 살고 있다. 2층 거실에는 두개의 솥이 올려져 있는 난로형식의 부엌이 있어 취사와 난방을 겸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목제로 된 벽에는 꽃병그림 등 다채로운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난로 위에는 모택동 사진과 여러개의 촛대도 보인다. 장작으로 불을 때는 모습이 정겹다. 며느리가 쓴 모자에 영어글짜가 선명하다. 관광객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곳 샹그릴라 마을도 점점 현대화, 서양화돼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거실 입구 천정에는 건조된 고기들이 꽤 많이 걸려있다. 장족들은 야크나 소, 양 등의 고기를 말려 보관 후 요리해 먹는다고 한다. 천정에 주렁주렁 매달린 마른고기와 가죽들. 부(富)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당 옆 별채에도 화덕이 있다. 주인 할머니는 필자 일행을 위해 수유차를 끓여준다. 수유차는 야크 젖과 치즈로 만든 것이라 한다. 화덕 주위에는 긴의자가 두개 놓여 있다. 가족들이 주로 사용하겠지만 손님 응접실로도 훌륭하다.
큰 그릇에 담긴 노오란 수프 모양의 수유차. 마셔보니 맛이 담백하다. 장족들이 가정에서 즐겨마시는 우리나라의 '숭늉'같은 차라고 한다.
할머니가 손님접대에 바쁘다. 실로 짠 빵모자를 쓰고 있는 할머니의 머리가 특이하다. 어릴 적 엄마가 어린 딸에게 해줬던 댕기머리, 바로 그 댕기머리를 하고 있다. 뒤에서 보니 꼭 댕기머리 소녀같다.
할머니의 옷과 얼굴에는 기름끼가 번들번들하다. 일에 찌든 듯한 모습, 그런데도 할머니의 미소가 티없이 맑고 순수해 보인다.
마당에는 검은 야크가 여물을 먹고 있다. 우리나라 시골풍경과 흡사하다.
본채 2층 베란다에서 대문 쪽을 내려다본다. 흙벽돌 담에 대문 상단은 기와로 지붕을 만들고, 대문 옆에 붙은 창고인 듯한 공간은 울릉도의 '너와집'처럼 나무조각들로 지붕을 덮었다. 장족마을 집들은 본채 기둥 크기에 따라 그집의 부유함의 정도를 알 수 있다고도 한다.
얼마 후에 남자 두명이 대문 안으로 들어온다. 그중 한명이 필자 일행에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이분이 이집 주인할아버지라고 한다. 역시 모습이 순박해 보인다. 친절한 동네아저씨같다. 을에서 한참동안 시간을 보낸 후 시내 관광지 한두곳을 더 돌아본다.
넓은 광장 옆에 '홍군장정박물관'이 보인다.
1936년 중국공산당 홍군이 국민당 군대에 쫒겨서 샹그릴라에 들어오게 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시간이 없어 안으로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관련자료를 보니 대형 스크린과 모형으로 당시의 행군과정, 그림과 각종사진, 조형물 등에 음향효과까지 곁들여 생생하게 재현해놨다고 한다. 홍군 병사들이 혹한 속에서 눈 덮힌 산을 오르는 모습, 늪지대를 통과하고 장강을 건너는 광경 등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도 전시돼 있다고 한다.
홍군장정박물관 옆에는 큰 절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세계 최대의 '마니차'가 있는 사원이다. 중국식으로 '전경통(轉經筒)'이라 부르는 '마니차'는 불교의 경전을 넣어두는 통이다.티베트 인들은 이것을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똑같은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마니차'는 21m 높이에 무게가 60톤에 달한다고 한다. 거대한 마니차는 도금이 되어 황금빛을 띠고 있다.
황의봉 저 '샹그릴라 하늘호수에 서다'에 의하면, 이 초대형 마니차 내부에는 '옴마니반메훔'이라는 여섯 글짜가 무려 124억개나 새겨져 있다고 한다. 마니차를 세번 돌리면 372억 구(句)의 옴마니반메홈을 암송하게 된다는 것이다. '옴마니반메훔' 여섯글자는 불심으로 공덕을 쌓아 성불하게 해달라는 의미라고 한다. 장족 자치주 일대에선 사람 눈에 띌만한 곳이면 예외없이 이 여섯글자가 티베트문자로 새겨져 있다. 대형 마니차가 돌고 있는 따구이산(大龜山) 꼭대기에 오르면 샹그릴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지척지간에는 샹그릴라 고성인 '일월성'이 있다. 일월성 한 가운데로 들어가면 리장의 쓰팡제에 해당하는 작은 광장이 나온다. 이 '샹그릴라 광장'은 특히 먹을거리로 유명하다. 각종 꼬치구이를 파는 노점이 일렬로 늘어서 구워대는 모습이 장관이다. 가을에 샹그릴라에 갈 경우 특히 송이꼬치를 원없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해가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샹그릴라에서 잠을 잘 수도 있지만 3,200m 높이의 고원지대라 사람에 따라서는 고산증으로 잠을 못이룰 수도 있다고 한다. 이제 다시 2시간 이상 차로 달려 숙소를 정해놓은 차오토우 마을로 가야 한다. 우리나라 남한 넓이의 무려 4배에 이르는 윈난성을 7박8일로 돌아본다는 건 애초부터 무리다. 샹그릴라 역시 6,740m의 메이리설산을 포함, 인근관광지를 제대로 볼려면 이곳 샹그릴라에서만 몇일은 더 묵어야 할 것 같다.
돌아가는 길에 '소샹글리아'에서 잠시 차를 세운다. 멀리 해발 5,396m의 '하바설산'이 석양에 물들고 있다. 꿈에 그리던 하늘공원 샹그릴라, 차마고도의 길 샹그릴라. 그 샹그릴라를 뒤로 하고 석양을 따라 다시 세상 속으로 내려간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