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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예배에서 음악의 수용과 한계
최근 한국교회에서 예배갱신이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하나는 성례 전의 회복이고, 다른 하나는 찬양의 강조, 특히 경배와 찬양식의 예배이다. 성례전의 회복에 대해서는 역사적 연구나 성서적 근거와 신학적 고찰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반면에, 경배와 찬양식의 예배에 대해서는 논의되고 있는데 비해서 이에 대한 신학적 연구들이 아직 미흡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경배와 찬양식의 예배가 한국교회에 어떻게 수용이 될 수 있겠는지를 다룬다.
가장 자주 제기되는 질문은 "주일 예배 중에 복음송을 부를 수 있는가? 부를 수 있다면, 곡의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일 것이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교회들은 주일 낮예배 이외에는 복음송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가는 추세이다. 그러나, 대중음악의 변화에 따라 급격하게 변해가는 복음송이나 CCM1)을 수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청소년이나 청년집회에는 비교적 관대하지만, 기성세대들은 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수용과 한계의 범위를 정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예배에서 음악적 표현의 정당성.
예배에서 음악은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예배 중에 음악을 통해서 표현하는 것은 다양하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 기도, 신앙적 결단, 권면,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 봉헌, 간증등 예배의 모든 요소를 다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설교, 기도, 헌금, 광고등 예배의 각 요소가 이미 하고 있는 것을 음악이 다시 중복하여 할 필요가 있는가?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 것일까? 예배에서 음악이 사용되어야 할 것은 성서적으로나, 음악의 고유의 특성으로보나, 신학적인 면에서 근거를 가지고 있다.
1. 성서적 근거.
예배에서 음악을 사용해야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경이 찬송할 것을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 노래하라2) 찬송하라3)는 명령이 신구약에 걸쳐 수없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음악을 사용한다는 것은 주의 명령에 따라 성례전을 행하는 것처럼, 순종해야할 성질의 것이다.
2. 음악 고유의 특성.
예배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세가지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즉, 말, 침묵, 노래이다. 각자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예배에서 회중에게 작용한다. 말과 침묵은 사람의 사고체 계에 영향을 주는데 비해, 음악은 마음과 감정에 작용을 한다. 브래번트(F.H.Brabant)는 예배는 "단순한 표현적 기능(expressive function)뿐만 아니라 암시적(suggestive) 혹은 감명적(impressive)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4)" 예배의 각 순서는 이 두가지 기능을 모두 기대하고 있으나, 설교나 기도, 신앙고백 등은 언어의 표현적 기능에 더욱 의존한 것이라면, 음악을 포함을 모든 교회 예술은 암시적 또는 감명적 기능에 더욱 의존하고 있다. 전자는 진리를 서술하고 설명하는 것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예배자로 하여금 진리로 향하게 하고 마음을 예비하게 한다.
3. 성화의 과정에 있는 예배자의 믿음을 적절하게 표현.
그리스도인과 찬송은 불가분리의 관계를 지닌다. 하나님의 백성의 존재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고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게 된다. 나아가, 성경에서 특히 시편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들의 삶의 상황 을 반영한 노래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한다.
음악의 역활과 위험성
예배에서 음악은 이미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주일 예배의 경우 1시간의 예배시간 중에서 회중찬송, 오르간 연주, 송영, 성가대 찬양, 기도송 등으로 20분에서 25분 정도를 음악이 차지하는 것을 보면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예배에서 음악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길래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는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한 회중의 독립적 응답이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이러한 음악의 역할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올드(H. O. Old)가 경계하고 있는 기존의 생각들을 수정해야한다. 즉, 예배에서 음악을 예배의 장식(decoration)으로, 어렵고 따분한 진리에 쵸코鵛 코팅처리하는 것으로, 회중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으로, 설교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설교의 주제나 교회력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5) 음악은 예배의 다른 요소를 돕는 보조 수단이 아니라, 설교나 기도처럼 자체적으로 완전한 요소로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해 응답한다. 입례송, 송영, 기도송, 성만찬에서 분배 중의 성찬찬송 연주 등도 그 자체가 온전한 의미가 담긴 순서이지, 순서간의 부드러운 연결을 위한 것이 아닌 것이다.
둘째, 예배의 다른 요소의 의미를 강화한다.
그러나, 이것은 첫째의 역할, 즉, 음악이 예배에서 독립적인 요소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한 후에야 인정된다.
위에서 음악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극복했다고 하더라도, 예배에서 음악에 대한 기대나 음악이 가져오는 효과를 모두 예배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예배를 위협하는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예배에서 음악의 역할의 한계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음악의 예술적 미의 성취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압바(R. Abba)는 예배에서 음악은 완전의 미 또는 예술적 미(Beauty of Wholeness)를 통하여 성결의 미(Beauty of Holiness)를 구하는 것6)이라고 하는데, 때로는 예술적 미를 성취하다가 성결의 미를 놓치는 때가 있다. 어거스틴은 이런 위험성을 그의 참회록 (10.33)에서 경고하고 있는데,
"...나의 신앙초기에 있어서 찬양에 의해 감동을 받아 흘렸던 눈물을 기억할 때, 맑은 음성과 적당한 억양으로 불려질 때, 그 노래의 소리에 의하여서가 아니라 노래로 불리 워지고 있는 그 일들에 의하여 감동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될 때, 나는 이 찬양의 유용함 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노래로 불리워지는 그 일보다는 노래 자체에 의하여 감동될 때에 나는 비통스럽게도 죄를 짓고 있음을 인정하며 그러한 때에는 노래를 듣지 않았었다면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두가지 미적 추구를 엄격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예배에서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할 때마다 스스로 물으면서 관찰하지 않으면, 음악의 예술적 성격 때문에 예술적인 미에 머무르려고 하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둘째, 음악이 주는 정서적 감동을 영적이고 도덕적인 발전으로 혼돈해서는 안된다.
음악을 통해 기쁨이나 환희, 간절함 등을 느꼈다고 해서, 영적으로 성장했다거나, 도덕적인 행동능력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셋째, 어떤 음악 속에 예측 가능한 감동과 힘이 있다고 확신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그 음악의 곡과 내용이 좋고, 은혜스럽다고 해도, 그 음악 자체에 그러한 감동과 힘이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예배를 결과가 예측되는 그런 음악들로 꾸미려고 하는 것은 예배를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
넷째, 음악이 예배와 예배자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이 믿음과 감격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속에 있는 믿음과 감격을 음악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해롤드 베스트(Harold Best)는 다음과 적절히 말한다.
음악이 우리를 감동시키느냐의 여부와 상관없이 성령님은 언제나 자유롭게 우리의 예배를 인도한다. 음악으로부터 오는 감동이 하나님을 향해 본래 가지고 있던 열정과 연결될 때 우리는 진실로 감동하게 된다.......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와서 예배를 계속하라는 주님의 끊임없는 초대가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원하신다. 음악, 예술, 연극, 무용, 건축, 분위기, 환경 같은 모든 부수적 감동 뒤에는 으뜸가는 감동 제공자가 있는데, 주님의 조용한 부르심과 상기시키심은 그 어떤 감동적인 예술품보 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7)
이같이 음악과 예배의 우선 순위가 전도된 상황에 대한 진단을 위해 다음과 같은 질 문이 필요하다. 음악이 없이도 예배할 수 있는가? 예배자는 음악이 없이도 예배할 수 있어야 비로소 음악을 올바로 사용할 수 있다. 음악이 우리의 예배분위기를 돋우는 것 이 아니라,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음악과 함께 표현하는 것이다.
CCM 또는 가스펠 음악의 특성8)
선조들의 신앙 유산을 전통적 선율에 따라 질서 있게 부르는 찬송가와는 달리, CCM 음악들은 개인의 구체적 고백들은 현대적 유행 음악적 선율에 맞춰 부른다. 찬송가가 이지적이라면, CCM은 감정적이며, 전자가 회중들이 표현해야 할 것을 담고 있다면, 후자는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담고 있다. 넓은 의미의 가스펠 음악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시작되었다.9) 20세기초 미국 LA에서 시작된 성령운동은 가스펠 음악에 새로운 장을 열었는데, Harvey Cox는 성령운동과 재즈의 근원적 유사성을 주장한다.10) 그에 의하면, 성령운동과 재즈의 유사성은 근원적인 것에서 뿐아니라, 그 성격에서도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성령운동과 재즈는 세가지 유사점이 있는데, 첫째는 실체화 또는 현장화이다. 성령운동은 자유로운 성령의 역사를 통한 말씀의 실체화를 꾀하고, 재즈는 악보를 벗어난 즉흥적 연주를 시도한다. 둘째, 홀림(possession)인데, 성령운동이 무아적 몰입 상태를 경험을 강조하는 것처럼, 재즈 음악도 연주자와 악기와 청중이 하나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셋째, 비통제성이다. 성령운동이 교회제도와 교리의 틀을 벗어나는 것처럼, 재즈도 기존의 음악형식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11) 콕스의 이러한 분석은 오늘날 CCM 또는 가스펠 음악의 성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CCM의 가치과 위험성
CCM은 사실 현대적이기는 하지만, 회중에게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음악은 아니다. 이미 사회에서 유행되고 있는 음악을 반영한 것이기에, 베스트(Harold Best)의 말처럼, 음악적으로는 급진적이라기보다는 보수적이며, '새로운 것'이기보다는 '선호되는 것'이다.12) 베스트가 CCM의 가치에 대해서 분석한 것을 보면, CCM의 예배에서 사용가능성을 높여준다. 그에 의하면 CCM은 음악적으로나 가사에 있어서 다원론적 음악문화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요, 가요, 락(Rock), Rap등 대중적인 스타일 뿐아니라, 세미클래식 스타일도 가지고 있어서 대중 문화의 모든 것을 요약해 놓았다는 것이다. 또한 CCM은 질적인 면에서도 높은 수준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인격적이고 영적인 성실성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젊은 세대에게는 세속음악에 대한 확실하고 유익한 대안이 되고 있고, 그들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쏟아 부을 수 있다는 것이다.13) 그러나, 이러한 가치가 예배에서 유지되기 위해서는 CCM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CCM에 대해서 전통적인 예배에서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가장 큰 이유는
CCM의 상업주의적 성격 때문이다. CD 제작, 매니저, Concert 알선자, 라디오 방송국 PD와의 관계 등 세속 대중음악의 상업주의적 요소들을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위험성은 CCM은 스타에 의해서 주도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음악에 있어서는 스타는 없다. 있더라도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믿음 과 삶에 대한 안정된 기억들이 있는데 비해서, CCM의 스타들은 여전히 우리의 눈 앞에 있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과 삶의 변화에 따라, 그들의 음악에 대한 가치도 달라질 수 있다. 아울러, 세속음악에서처럼 스타의 독특하고 강한 이미지가 음악을 지배해서 회중에게 영향을 줄 때가 많다.
셋째, CCM을 선호하는 예배자는 고전적 찬송에 대해 배타적인 경향이 있다. 고전 음악인들 중에는 고전음악을 하면서도 현대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으나, 이상하게도 CCM을 선호하는 예배자는 대개 CCM만을 참된 영적 음악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편협한 자세로는 그리스도교 예배의 역사성과 세계성을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행에 따라 노래가 바뀌면서, 경험했던 예배 의 감격이 유치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당시 유행했던 CCM을 통해 느꼈던 기쁨과 감사가 노래의 잊혀짐과 함께 사라질 수 있다.
예배에서 음악의 수용의 기준
예배에서 사용될 음악의 기준이 필요하다. 이미 앞에서 성스러운 음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첫째, 성서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성서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문자적인 것이 아니라, 성서의 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음악의 가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물론, 기도와 간구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와 이 세상을 향해 행하신 것을 선포, 고백, 권면, 결단하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둘째, 교회의 공동체적 공감대을 지녀야 한다.
아무리 나에게 은혜가 되는 음악이라도, 그것이 모두에게 은혜스러운지를 따져봐야 한다. 이것은 회중찬송은 물론이고, 성가대의 연주찬송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셋째, 높은 예술성이 있는 음악이어야 한다.
여기서 예술성이란 부조화, 조잡함, 천박함, 적당주의, 무질서의 반대를 말한다. 또한 유행 따라 움직이는 상업성을 뛰어 넘는 것을 말한다. 경쟁적이나 모방이 아닌 진정성을 추구하는 음악이어야 한다. 다른 영역 의 음악에 대한 예술성에 대해 따지는 대신, 자신이 선호하는 음악의 예술성을 물어야 한다.
넷째, 다양한 음악적 형식에 대한 개방성이다.
예배에서의 음악은 고전음악형식이나 대중음악형식을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적인 음악을 익숙한 것과 생소한 것, 도덕과 비도덕으로 나누기는 쉽지 않다. 음악에 대한 편협한 자세는 음악이 예배의 장애 물이 되게 한다. 고전음악형식을 선호하는 예배자는 대중음악형식을 선호하는 예배자 들을 모방적이고, 세속적이고, 상업적, 감정적인 이로 보는 반면, 후자는 전자를 형식적이고, 고지식하고, 감격이 없는 이들로 본다.14) 그러나, 음악적 가치의 우열을 가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베스트는 확신하기를 추상적으로는 X음악이 Y음악보다 좋다고 하더라도 다른 상황에서는 Y음악이 X음악보다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고 하면서, 음악적 가 치란 상황에 매우 많이 좌우된다고 한다.15) 예배자들은 자기의 '음악적 고향'만을 회상할 것이 아니라, 다른 회중들이 선호하는 음악을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16)
<註>
1) CCM은 Christian Contemporary Music의 약자로, 그리스도인들이 부르는 현대적인 음악을 가 리킨다.
2)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시 96:1),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시137:3),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사54:1),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습3:14), 여호와께 노래하라(렘 31:7), 주께 노래 하며 찬송하며 (엡5:19),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골3:16),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골 3:16).
3)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계 19:5), 너희여 그 를 찬송할지어다(시 22:23),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시 66:2)
4) F. H. Brabant, "Worship in General" in Liturgy and Worship (ed. Clarke and Harris), 13, recited in R. Abba, 기독교 예배의 원리와 실제 (기독교서회, 1973), 145.
5) Nicholas Wolterstorff, "The Genius of Reformed Liturgy", Reformed Worship No. 2(Winter 1986/1987), 11.
6) R. Abba, <같은 책>, 146.
7) Harold Best, 151.
8) 양동복은 찬송과 성가곡 이외의 모든 기독교 음악을 '가스펠 음악'이라고 부르고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가스펠 음악(양동복은 이러한 기독교적인 대중음악을 '대중성가'라고 부른다.)
1. CCM --Pop/Rock, Hard Rock/Heavy metal, Punk, Techno Pop, New wave,
Southern Rock/Classical Rock, Country Rock, Ballard, Folk, Acapella
2. Gospel--전통 가스펠, 흑인 가스펠, Country Gospel, Southern Gospel, Gospel Hymn
3. 경배와 찬양(Praise and Worship)
4. 연주 음악--Jazz, 명상/무드 음악.
9) 양동복, 16. 1874년 당시 미국의 부흥사 D. W, Whittle의 집회에서 찬양인도자로 활동하던 Phillip Bliss에 의해서 출판된 노래모음집 <가스펠송>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님의 진리등대' '저 장미꽃 위의 이슬' '저기 갈보리산 험한 십자가는'등이 있다.
10) Harvey Cox, Fire From Heaven(1995) <영성.음악.여성> 유지황역 (동연, 1996), 213-215. 재즈는 남부 지역 부흥집회에서 주로 사용되던 찬송이 사회적으로 차별이 심한 뉴올리언스의 흑인 지역에서 합치됨으로써 탄생한 것처럼, 성령운동도 LA의 Azusa Street에서 W. Seymour의 인도하에 열렸던 부흥집회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11) Harvey Cox, 218-223.
12) Harold Best, 160.
13) Harold Best, 176-179.
14) 성령운동과 재즈의 유사성을 강조하며 개인적으로 재즈 풍의 기독교음악을 선호했던 Harvey Cox는 수많은 교회집회를 관찰한 후에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최근 나는 은사운동에 대 한 초기의 부정적 생각을 교정했다. 세상에는 내가 싫어하고 따분해 하는 음악적, 종교적 표 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다른 사람들의 음악적, 종교적 태 도에 대해 관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eke게 되었다." Harvey Cox, 225.
15) Harold Best, 108.
16) 홍정수교수가 음악을 진단할 수 있는 용어로 '좋아하다'와 '이해하다'를 설명하면서, 주로 대 중음악처럼 자연 현상적 음악은 '좋아하는 음악'으로, 역사적으로 연구되어온 비범한 음악들은 '이해하는 음악'으로 나누는데, 이 두 관점들은 서로를 비난하기 쉽지만, 서로 보완되어야 한다 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홍정수, <미학적 음악론>(정음문화사, 1986), 16-31.
김세광 목사(서울장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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