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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란 환경의 진보, 발전, 향락에만 분주를 떨고 정력을 소비하는 인간들이다. 그래서 저들은 사람을 정치 이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이상한 존재가 되었고, 철저히 환경의 노예로, 물질의 종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 정치의 위에 학문, 철학, 진리, 종교의 세계가 엄존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5척 단신의 우리 내면에 불멸의 양심과 고귀한 덕성과 영원한 생명의 세계, 영적 세계가 깃들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예수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 때에 이와 함께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이 주어질 것이다”(마태 6: 33)라고 했다.
과거 영국에서 철학자도 못되는 H. G. 웰스마저도 사회보장제도를 공격하면서, 이는 영국을 일대 양로원화 하여 영국인의 정신을 무기력하게 할 것이며, 도대체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했다. 오늘날 교육이나 종교도 무슨 복지사업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못하고, 또 무엇보다도 이를 위해서는 시설을 위한 돈이 첫째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이 영국인의 사고를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영국 식자층의 이런 사고야말로 영국인의 위대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유럽 덴마크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사회보장제도로써 복지국가를 이룩했으나 유럽에서 으뜸가는 자살국, 음탕한 나라가 되었다. 이는 그들의 정신과 도덕 양면의 무기력을 드러낸 것인데, 사실 과거 키에르케고르는 일찍이 이를 내다보고 그룬트비히의 종교 없는, 철학 없는 단순한 민중 교육에 의한 국민운동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이웃 일본의 오늘날의 발전의 근원이 그들의 메이지 시대 이래의 서구 문명, 특히 서구 학문의 소화에 있는 것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중동 여러 나라의 정치적 소요에 반해, 신생 이스라엘의 확고히 안정된 토대를 구축하면서 발전하는 모습이 그들의 위대한 종교 신앙에 기인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요사이 동남아 후진국들의 모든 정치적, 경제적 계획과 운영이 실패로 귀결하는데 반해, 인도의 정치만은 수상 네루의 인격, 그리고 그보다 더욱 힌두교 신앙에 의한 국민의 그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와 협력과 희생으로 착착 진보의 성과를 얻고 있는 것도 우리는 보고 있다.
민족의 번영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저 이를 정치 상황의 호전 정도로 생각하고, 또 정치가도 저마다 이를 한다고 떠들어대지만, 어느 나라 역사이건 그것이 진보적 국면일 때는 종교 신앙에 의한 도덕력과 정신력으로써 고난을 극복하고 결정적으로 이의 토대를 놓은 시기가 다 있었던 것이다. 미국사에서도 청교도 정신에 의한 개척기가 이를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은 돈으로, 그것도 외화에 의한 정치적, 경제적 번영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다.
국민의 정신적, 도덕적인 진정한 자각에서 이것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대하는 바이다. 그렇지 않다면, 요사이 이웃 일본 현실에 대해 자타가 모두 ‘경제 동물’ 운운 하고 있는 것처럼, 경제적 번영이 국민을 더 큰 타락으로 몰아갈 우려가 없지 않은 것이다.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성서연구> 제104호 (1962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