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의 백암산(栢岩山) 이야기

[인계]

                         내 고향의 백암산(栢岩山) 이야기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학교의 남쪽 하늘을 보면 절벽바위산인 백암산이 솟아 그 위용을 자랑했다. 빨리 커서 저 산에 올라가야겠다는 꿈을 항상 꾸고 있었다.

어느 해 선생님께서 우리 모두를 대리고 백암산에 올랐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별천지 같았다. 눈 아래 펼쳐진 우리학교, 우리 마을은 아주 작게 보였고 귀미마을, 창말마을 들도 멀리 보였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넓은 세상이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눈 아래 펄쳐진 산천이 신기하게 느껴졌던 옛 추억이 떠오른다.

요사이 뜻있는 향토출신들로 조직된 자양산악회에서 백암산 탐방로를 개척하여 올라가기 좋게 만들었고, 작가로 등단한 정순희씨의 ‘다시만난 백암산’글도 소개하고, 그리고 정연찬 가

수의 ‘자호천리 내고향’도 올려본다.  

            사진의 오른쪽이 서봉인 주봉(主峰)이고 왼쪽이 동봉인 탕건바위가 있는 산

          

      

                    수몰전의 백암산에서 찍은 면소재지인 용산리의 모습.

                
수몰 직전의 용산리의 모습

                                              一, 지난날의 백암산 

           1.장군 이야기

                

             장군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백암산 주봉 - 이곳에서 꼬깔산으로 뛰었다.

            꼬깔산의 왼쪽에 절벽 바위가 보인다. 그 바위의 어느 곳이 희게 보인다.

우리 마을 뒷솔밭에 큰 바위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때 이야기로는 장군들이 공기놀

이를 하고 놀던 돌이라 했다.

그리고 그 장군이 하루는 백암산에 올라 저 멀리 있는 북쪽의 고깔산으로 건너뛰다가 칡덩

굴에 걸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장군의 얼굴이 바위에 새겨져 멀리서 희게 보인다고

했다. 수몰 전에 조사를 하니 장군의 공기돌은 3000여년 전 신석기시대의 고인돌로 판명되

었다.

         2.백암산의 절벽 바위가 떨러져 내리면 마을사람이 죽는다는 전설

백암산의 서봉인 주봉의 모습

백암산은 서편의 주봉(主峰)과 동편의 적은 봉우리로 되어있다. 비가 오면 때로는 절벽의 바

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자호천에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전설로는 서쪽 주봉의 절벽에서 바위가 떨러지면 인구마을에 초상이 나고, 동쪽의 절벽에서 바위가 떨러지면 월연마을

에 초상이 난다는 전설이 있었으나 한 번도 맞은 사례는 없었고 한다.

         3.절벽에 부엉이 집이 있었다.

  <자료사진>
 백암산 절벽의 바위 구멍에 부영이가 살고 있었다. 때로는 자호천에 내려와서 우는 모습도 보았다. 어느 해 아버지와 백암산 아래 자호천 여울에서 파리낙씨를 하고 있는 데 큰 부엉이가 큰 소리로 울고 있어 어린마음에 아주 무서웠다.

         4.절벽 아래에 깊은 소(沼)가 있었다.

                                                                            <자료사진>

백암산 아래에 깊은 소가 있었는데 어릴 때 하배기 보안에서 물놀이를 하였으나 그 소에 무

서운 이야기가 있었다. 물속에는 ‘이심’이가 살고 있어 사람이 들어가면 잡아먹는 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물 색깔도 하루 12번 바뀐다는 이야기 등이 무서워서 접근을 못하였다. 자호천에는 가마소, 딴덤소, 등 여러 소가 있었는데 그 소의 형성 원인은 큰 홍수가 나 물길이 바위에 부디치면 토사가 쌓이지 못하여 깊은 웅덩이가 생긴다 그 웅덩이를 소라고 했다.

           5.자호천의 하배기 보(洑)

                                                                                <자료사진>

백암산 밑으로 자호천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귀미마을을 지나 탕건바위에 물이 부디친 물길이 용산 쪽으로 흘러 백암산에서 좀 떨어져 흐르게 되었다. 그 물길을 막아 보를 만들어 그 이름이 하배기보라 불렀다.

이곳은 우리고장의 일등 수영장이었다. 여름날 학교를 파하면 가장 먼저 찾은 곳이 하배기

보안이다. 나도 그곳에서 수영을 배워 수영실력이 또래 중에는 제일 좋았다.

           6.식목일 행사로 백암산에 나무를 심었다.

                                                                     <자료사진>

어느 해 식목일 날 행사로 학교에서 백암산에 나무를 심는다고 했다. 학교에서 묘목을 나누어 받아 신나게 산에 올랐다. 정성껏 심고 친구들과 같이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놀다가 내려왔다. 그러나 그때 심은 나무가 자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7.백암산에 아가위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자료사진>

산에 오르면 백암산에 자생하는 아가위나무가 여기저기 자라고 있었다. 가을이되면 열매가

열려서 따먹으면 맛은 없었다. 지금도 아가위나무가 자생하고 있겠지? 어느 해 월연의 문식

씨의 묘를 찾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대 묘 가에 아가위나무가 심어져 있어 물으니 고인의 어

린 시절 추억이 있어 원했기에 옮겨 심어둔 것이라 하였다.

           8.탕건바위 아래서 화전(花煎)놀이 하다. 

                         사진의 중앙부분의 바위산 모습이 탕건같이 생겼다.

                                   화전놀이를 하고 찍은 기념사진

백암산 동봉 아래에 탕건같이 생긴 바위가 있다. 그래서 일명 탕건바위로 불렀 다. 여름날

그 탕건바위 아래에서 수영과 다이빙도 하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 의 놀이터였다. 물놀이에

지치면 그늘진 청석 바닥에 낮잠도 잤다,

그리고 1953년 동내 청년 딸래들이 모여 화전놀이를 했다. 백암산의 진달래꽃을 따다 적을

부치고, 자호천의 물고기를 잡아 국도 끓여 밥 먹고 놀던 화전 놀이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놀던 친구들은 대다수가 세상을 떠났다.

멀지 않는 곳에 아랫귀미 마을이 있다. 그 마을 근처에 문필봉도 있지만 탕건바위 영험(靈驗)으로 그 마을에서 진사가 8분이나 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二. 오늘의 백암산

        1.자양산악회에서 등산로를 개척하다. - 사진 제공 정태기

                                                백암산 전경

               마당지산 아래 용산리 본마을은 물에 잠기고 몇 집만 옮겨 살고 있다.

                월연마을은 물에 잠기고 뒷 언덕(골방두들)이 과수원으로 변했다.

                      태기(胎基)가 백암산에 올라 물에 잠긴 고향마을 배경으로...

                                    비석 뒷면의 정순희 작가 글

       2.우리 작가의 작품

                                        다시 만난 백암산

                                                                                                             素眞 정순희

참 좋은 계절이다. 연일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신께서는 수많은 향수병을 들고 계시다가

유독 오월에는 실수가 잦으신 건지 병마다 뚜껑을 활짝 열어놓으시는 모양이다. 어딜 가나

향기로 채워지는 이 오월이 얼마나 싱그럽고 좋은지 모르겠다. 향기로운 꽃과 나무와 봄나

물을 생각하노라면 고향의 추억은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

꽁보리밥 한 덩이와 참나물 찍어 드실 생된장 조금 싸서, 엄마께서는 아지매들과 우르르 새

벽같이 운주산을 향해 가셨다. 큰 산엘 가야 좋은 나물을 뜯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는 하루 종일 나물하러 가신 엄마를 기다렸다. 해가 지고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오시겠지만 우린 삽짝 밖에서 꼬챙이로 땅에다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엄마의 나물 보따리 한 쪽에 가지런히 담아 오실 회초리처럼 쭉쭉 뻗은 송기를 학수고대했던 것이다. 낫으로

겉껍질을 살살 벗겨내고 하모니카처럼 송기 막대기를 좌우로 왔다갔다 빨아먹으면 입 안 가

득 차오르는 솔 향이 어찌나 좋던지. 먹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런 향긋한 음식을 어디서 다시 맛볼 수 있을까.

언젠가 어느 어른께서 자양의 산에 대해서 쓰신 글을 읽었는데 거기에도 운주산이 등장해서 왠지 든든했지만 안국사가 소실됐다는 소식엔 마음이 아팠다. 가서 일박 하며 들었던 계곡물의 시원함이 아직 기억 속에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그 외에 생소한 이름의 산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쩌면 산마다 이렇게도 자세하게 기록하셨나 싶어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 중에서도 내 어릴 적 추억이 깃든 백암산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반가웠다.

  송정 끝에 있는 과수원을 지나 텃밭 넘어가는 골짝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오르면 백암산 능선이 시작되었는데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불미이가 줄지어 있기도 해서 그런 날은 산나물 횡재를 만난 것 같았다. 어린 마음에도 본 건 있어서 나물이라면 그저 탐나고 사랑스러웠던

것이다. 운주산 나물보다야 못하지만 이른 봄의 나물로는 불미이 만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큰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잎을 먹는 것이 아니라 꽃봉오리를 먹었던 그 불미이 꽃이 지금은 꽃 애호가들 사이에서 멱쇠채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사랑받는 봄꽃으로 귀하신 몸이다. 그리고 이맘때엔 송화가 통통하게 살쪄있었다. 다식을 즐겨 만드시던 엄마께서는 어린 나를 봄이면 꼭 언니 따라 송화를 따오라 보내셨다. 다식은 송화다식을 최고로 쳤고 송화는 필대산 송화가 최고였다.

솔밭 가득 통실하게 알이 밴 송화들이 뿜어내는 향기에 섞여서 또 다른 달콤하고 우아한 향

이 있었는데 그 향의 주인은 분꽃나무였다. 필대산은 소나무도 많았지만 야생화의 보고이기

도 해서 백암산 가는 길에 꼭 들러서 꽃들과 놀곤 했었다. 어쩌면 나물은 의무였을 테고 나의 관심사는 야생화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나는 분꽃나무 꽃이 애인처럼 사랑스럽다. 며칠 전에 친구가 필대산 분꽃나무를 사진 찍어 보냈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여름에 큰비라도 내리면 귀미 앞 자호천은 건너지 못할 정도로 물이 불어 결석을 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노항 쪽은 강폭이 넓어서 물이 깊지도, 물살이 세지도 않아서 노항 거랑을 건너려고 또 백암산 능선을 따라 가곤 했다.

그런 고향이 수몰 된지도 어언 40년.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그리움으로 남은 추억의 백암산이 거짓말처럼 가까이에 왔다.

2018년 1월 14일 일요일에 참으로 뜻 깊은 행사가 있었던 것이다. 위에서 적은 내 개인적인

추억이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올려다보던 높디높던 백암산, 교가에도 등장하는 그 웅장한(?) 백암산 정상에서 표지석 제단식이 있었다. 내겐 삼종 오라버니인 정동율 총동창회 회장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등산로가 만들어진 것인데 시작 지점인 귀미에서 시산제를 지

낼 때는 어린 시절의 잊혀졌던 여러 이야기들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엄청나게 무거운 표지석을 남자 후배들이 지다가 들다가 270m 정상까지 올라가는 내내 동행을 했던 내겐 그 행사가 좀 더 남다른 감회로 다가왔기 때문에 힘들고 무거운 이동이 더 애틋하게 여겨졌다. 표지석

한 면엔 백암산 270m라 새겨졌고 또 한 면은 영광스럽게도 내가 쓴 그리움의 글귀가 새겨졌기 때문이다. 짧게 쓰라는 주문이 있어서 재회의 기쁨을 충분히 표현하진 못했지만 나름 공모에서 선정 된 글인 만치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도록 찾지 못했던 긴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도 살짝 담았던 것 같다. 후배들이 땅을 파고 시멘트로 정성껏 표지석을 고정 시켰다. 약식으로 의례를 하고 글은 작가가 직접 낭독하라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짧은 글이지만 정성을 다해

낭독하면서 앞으론 자주 오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졌다.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본의 아니게 추억과 애환을 비롯한 모든 것은 수장되고 없지만 기억 속에서 사라짐을 방지하기 위해서 고향 산의 면면들을 알차게 기록해서 알리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시는 어른이나 발길이 끊겨 밀림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옛 길을 등산로로

 재탄생 시키는 일에 정열을 바친 어른이나 이토록 애를 쓰시는 어른들이 계시기에 물속에

잠긴 고향의 많은 것이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깊은 감동으로 인해 너무나도 행복해지는 마음이다. 그날의 시산제와 백암산 정상에다 표지석을 세운 행사는 솔직히 현실에 얽매어서 사는 일에 허덕이던 내겐 크나큰 역사적 사건이었다. 고향은 그저 떠나간 옛이야기의 일부로만 여기고 살아왔는데 나의 무심함을 일깨워 주기도 한 행사여서 다시금 기억이 새롭고 감사하다.

아울러 백암산 등산로가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금의 향수라도 갖고 있는 사람이

라면 어차피 가는 등산길, 이왕이면 옛 이야기가 아직도 도란거리는 백암산 산행을 추천하고 싶다. 정상에서 굽어보는 댐의 광활함이 비록 자호천의 예전 모습을 간직하진 않았지만 어느 여름날 광복절에 청년딸네 모여서 민물고기 매운탕을 끓여먹다가 우리 모두가 흠모해 마지않던 자상한 국모, 육영수 여사의 피격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해서 함께 울었던 가매소 갱빈이

저기 저쯤 어디였지, 오빠들이 복숭아 서리하던 누구네 밭이 저기였던가, 짐작도 해보면서 추억에 젖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고향의 발전과 조상님의 유적을 보존하고자 애쓰시는 여러 어르신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덕분에 이 봄이 더 향기롭다는 생각을 해본다.

                 3.자호천리 내고향   [52191]                                          가수 정연찬

                                       자호천리 내고향

                                   1. 물안개 짙게 피던 내고향 자호천리~~

                              수려~한 너의 모습 그리~웁~구~나~~

                            기룡산 넘나들때 날 반겨주던

                            산새들 구름 따라 어드메 갔나

                            아~아~~아~ 자호천리 간직한

                            명경지수 네모습에 사연을 담고

                            쓸~쓸한 산새만이 한가롭구나 한가롭구나~~

                                  2. 봉선화 곱게 피던 내고향 자호천리~~

                           어여~쁜 너의 모습 그리~웁~구~나~~

                           백암산 자락 아래 뛰며 노닐던

                           그 옛날 그 친구들 어디로 갔나

                           아~아~~아~ 자호천리 간직한

                           수중궁궐 네모습에 세월을 담고

                           떠~도는 물새만이 외로웁구나 외로웁구나~~

               *  <자료사진>은 이해를 돕기위해  딴곳의 사진를 인용 게시함

[마당지945]

백암산의 배경으로 내력과 추억을 되세겨 보는 기회를 작성하여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세번이나 등산 한곳이라 언제나 가보고 싶은 고향을 바라보는 좋은 명소입니다,,,,,,

[희야]

소중한 사진들과 함께 올려주신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어 오늘이 더 값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의 선친께서는 무재공할배께서 축지법으로 백암산을 오르셨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주셨어요.
바위로 공기놀이를 했다는 장군의 이야기는 더 엄청나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