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간 23분 동안의 행복한 비행
하늘여행패러클럽 김장성 전문조종사
나는 패러글라이딩이 너무 좋다. 이륙장에 올라가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해서 글라이더와 하네스를 점검하고 마지막으로 이륙장에 기체를 펼치면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마치 예쁜 여학생을 기대하며 미팅을 앞둔 순수한 18세 남학생의 가슴처럼.... 최고 절정은 기체를 들어 올리고 뒤돌아서 이륙장을 박차고 나갈 때이다. 이 순간 나는 오르가즘을 느낀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무엇이 지천명의 나이인 나를 이렇게 가슴 뛰게 하는 것이 있겠는가?
물론 뚝섬 승마장에서 말을 타고 비월 장애물을 넘을 때, 팔라우 블루코너에서 조류걸이를 걸고 상어와 같이 유영하고 있을 때, 일본 아르츠 반다이 스키리조트에서 아무도 없는 슬로프를 대회전하며 내려올 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지만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기껏해야 60분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패러글라이딩은 보통 2시간을 넘게 즐기고 기상이 좋으면 4시간을 넘게 즐길 수 있다. 어느 조종사나 더 높이 더 멀리 더 오래 비행하기를 소망하지만 특히 나는 오랜 시간 비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장거리를 도전하지만 아직 실력도 많이 부족하고 경험도 많이 부족해서 존경하는 선배님들에 비해서는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7~8년 전 봄 시즌이면 항상 공주에 내려가서 장거리 대회에 참석을 하지만 선수들은 바로 고도를 잡고 무리지어 출발을 하지만 실력이 부족한 나는 고도를 잡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고도를 잡고서도 출발해도 고급 기체를 쫓아갈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바람 좋아 고도를 높이 잡으면 그것으로 만족했고 더 이상 올라가지 않으면 선수들이 출발한 바람 방향으로 유유히 날다보니 항상 뒤처지고 혼자 잘 모르는 지형에서 열을 잡다보니 버티다 못해 어느 순간에는 착륙해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행복하다. 픽업 온 우리 하늘여행 클럽 회원들과 전주 막걸리 골목 용진집에서 한상차림에 막걸리 한잔하고 있으면 이 또한 행복하지 아니한가.
나는 장거리 대회보다는 그저 유유자적 비행하는 것이 좋다. 그러다 보니 날씨가 좋으면 대부분 4시간 이상 비행하려 한다. 7년 전인 2013년 9월 20일에는 진 글라이더 스프린트 에보 기체로 하동 형제봉에서 7시간 52분을 비행한 적도 있다. 그날은 날씨가 좋아 한번 돌기도 어렵다는 하동 분지 능선을 두 바퀴나 돌았다. 아침 8시 45분에 이륙해서 오후 4시 37분에 착륙을 했다. 날씨도 좋았지만 볼레로4 이후 두 번째 사용한 에보 기체의 도움이 크다. 볼레로4 보다 속도도 빠르고 가볍고 조종하기 쉽고 안정적이어서 어떠한 기상에서도 편안하게 비행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지난주 6월 19일 금요일에는 단양에서 소백산 능선을 구경하다보니 4시간 28분 동안 비행했다. 그 다음날인 20일 토요일에는 9시간 23분 동안 소백산 능선과 단양 주변을 비행을 했다. 두산활공장에서 10시 54분 이륙해서 20시 18분에 단양 경비행기 착륙장에 착륙했다. 이륙하자마자 짱패러의 임선태 선배님의 비행 전 프리핑대로 두산활공장 강 건너 마을에서 오전 11시 초기 열을 잡아 올리자마자 탠덤 조종사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활공장 오른쪽 산 능선으로 붙었다. 기회가 되면 이 능선에 붙어서 열을 잡아 고도를 높여 소백산 능선까지 건너뛸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전이라 그런지 9부능선까지 붙였지만 열을 못 찾아 5부 능선에 밀려서 내려와서 헤매고 있었다. 이때 내 비행을 지켜보고 있던 임선태 선배님의 무전이 날아왔다. “북쪽의 바람을 좀 더 받기 위해서는 왼쪽으로 회전하지 말고 착륙장이 정면으로 보이시면 오른쪽 회전을 하세요. 그러면 상승에 조금 더 도움이 될 겁니다.” 말씀대로 따르니 조금씩 더 상승하기 시작한다. 역시 임선태 선배님이시다. 내가 아는 한 최고의 패러 스승이시다. 패러에 대한 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비행 중 기체를 천천히 살펴보고 두 다리를 털어서 마음을 차분히 하는 방법을 가르치시고 왼쪽회전에만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 오른쪽 회전 연습을 충분히 해서 회전 방향에 대한 핸디캡을 만들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시는 진정한 스승이시다.
임선태 선배님의 조언에 따라 고도를 잡아 운이 좋게도 소백산 능선까지 높은 고도로 도착할 수 있었다. 이날 최고 고도가 2,838미터까지 올라갔으며 18시가 넘었는데도 구름 밑까지 기체를 올려주었으며 석양비행을 하느라 단양시내를 가도 도담3봉을 가도 고도가 낮아지지 않았다. 기상이 오후 늦게까지 정말 좋았다. 또한 나와 함께한 카레라 기체도 장시간 비행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볼레로4와 에보 그리고 현재의 카레라 기체 밖에 타보지 않아서 다른 기체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든든한 반려자가 되어 주었다. 서멀을 잡을 때는 안으로 파고들어 안정적으로 상승시켜주고, 다음 능선을 향해 날아갈 때도 공기의 저항도 줄이고 두 손도 쉴겸 두 손을 밸러스트 백위에 올려놓고 비행해도 마음 편히 쉴 수 있도록 기체가 안정적이었다. 특히 고도를 높이 잡아 두 손 놓고 편안하게 발아래 보이는 주변 뭉게구름 들은 마치 푸른 바다에 퍼지는 새하얀 우유처럼 흐드러지게 퍼져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아 인생은 아름다운것이구나” 소리치게 만들었다. 이 순간 비발디의 사계가 음악이 울려 퍼지는 듯 했다. 9시간 23동안 최고로 행복한 시간을 나에게 허락해준 패러가 나는 정말 좋다.
소백산 천문대 건물과 비로봉 정상에 새 하얗게 우뚝 솟은 하얀 원통형 건물도 내 발아래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니 손오공의 ‘근두운’이 부럽지 않았다. 나의 근두운을 자주 바꾸거나 높은 사양의 고급기체로 바꾸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첫기체인 볼레로4는 2010년 9월 25일~2013년 3월 31일 총 2년 6개월 동안 278회 31시간을 탔고, 두 번째 기체인 스프린트 에보는 2013년 5월 4일~2014년 9월 6일까지 총 1년 4개월 동안 162회 115시간을 타고 중고로 판매를 했으며, 그 돈을 보태 지금의 카레라도 2014년 9월27일~ 2020년 6월 20일까지 약 6년 동안 116회 200시간 33분을 탔지만 아직도 카레라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내 실력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기체를 바꿀 때에는 나뿐 아니라 내가 속해있는 ‘하늘여행패러’ 클럽의 공통된 가치관이 있다. ‘내가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기체, 내가 편안하게 비행할 수 있는 기체, 내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기체를 오래 동안 즐기며 타자’이다. 이 가르침의 시작은 나의 지상연습부터 가르친 친구이자 스승인 단양 코리아패러의 ‘임강혁 지도자’이다. 내가 어느 날 스승에게 물었다. 다른 스쿨이나 클럽은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고 경지에 도달하면 지도자가 6개월이 멀다하고 1년이 멀다하고 기체를 바꾸라고 하는데, “왜 스승님은 우리에게 그러지 않느냐?”고, 그러자 스승님은 일침을 주신다. “네가 주말 비행자로서 1년의 비행시간이 얼마나 되지? 매주 나와 열심히 타도 60시간이 될까? 네가 60시간을 탔다고 해서 그 기체를 충분히 네 것으로 만들었냐? 이제는 네가 그 기체를 편안하게 느낄 수 있냐? 그 기체의 퍼포먼스를 모두 발휘 할 수 있냐?” 그 질문에 나는 스스로 답을 찾았다. 그 후로 나는 기체 욕심을 버렸다. 그러니 마음이 더 편하고 스트레스 없이 비행이 즐겁다. 그래서 더 오래도록 비행을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우리 하늘여행 클럽에는 하지 않는 불문율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하늘여행에는 점심시간이 없다. 배고픔 보다는 비행의 즐거움이 더 좋기 때문이다. 대신 아침을 든든히 먹는다. 저녁이나 돼야 먹을 수 있으니... 그래서 우리 클럽의 저녁식사는 허기져 뭐든지 맛있고 행복하다. 둘째, 하늘여행은 비행하고 있는 사람에게 배고프다고 빨리 내려오라 무전을 날리지 않는다. 비행을 즐기고 있는 사람이 왕이기 때문이다.
우리 클럽은 비행을 마치고 만찬을 즐기면서도 그날의 비행에 대한 성과와 과오를 서로 애기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숙소에 들어와서도 비행 로그를 다운받아 구글어스에서 트랙을 보며 비행을 분석한다. 이 지점에서 왜 그렇게 했는지 서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서로 많이 배우게 된다. 특히 임강혁 지도자님의 평가를 받아보면 내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도 어섬에서 이착륙 연습을 처음 배울 때 전방이륙도 제대로 못해 5번이나 꼬라박고 기체를 수습해서 다시 올라가면 임강혁 지도자님으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던 그때의 김장성보다는 많이 발전한 것 같다. 모두 임강혁 지도자님 덕분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이 혼나가면서 배우고 있다. 그래도 “강혁아 내가 사랑하는거 알지?”
장시간 비행하고 내려오면 사람들이 가끔 물어본다. ‘배고프지 않냐?’, ‘피곤하지 않냐?’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장시간 비행하면서 배고프거나 피곤해서 비행을 못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기상이 받쳐주는데 내가 비행을 접었던 이유는 딱 하나뿐이었다. 바로 오줌이 마렵기 때문이었다. 이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고 참더라도 비행에 집중할 수가 없어 착륙하게 된다. 한번은 비행복을 입은 상태에서 바지에 그냥 오줌을 싸고 비행을 더 해보려고 했는데 방광이 터질 것 같은데도 하늘에서 흔들리니 오줌이 나오지를 않았다. 그래서 방광 터지기 전에 내려오게 되었다.
이렇게 오줌 때문에 몇 번 내러오고 난 뒤에 나에게는 루틴이 하나 생겼다. 비행하는 날은 가급적 물을 마시지 않고 이륙장에 올라가면 몇 번이고 오줌을 눈다. 그래도 비행을 3~4시간을 하게 되면 오줌이 마렵게 되는데 그때 하네스에 빈 삼다수 페트병이 있어서 비행복 지퍼를 내리고 다시 바지를 내리고 페트병에 구멍을 맞추고 오줌을 누워보니 수월하게 나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몇 번을 받아서 하늘에다 뿌리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 후로는 항상 빈 페트병을 하네스에 항상 넣고 다닌다.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비행을 해보았는데 지금은 이 방법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몇 시간 동안 기저귀를 차고 비행하면 기저귀가 비벼져 터지고 흡수제 약품 때문인지 엉덩이가 짓무른다. 오줌한번 눠보지 못하고 애꿎은 엉덩이만 고생했기 때문이다.
나는 비행이 너무 좋다. 비행도 좋고 비행 마치고 그 지방 활공장 인근에 있는 양조장에 들러 지방마다의 막걸리 맛보는 재미도 좋고, 그 지방 맛집을 찾아 미식의 세계에 빠지는 것도 좋다. 더군다나 이 모든 즐거움을 패러라는 한 가지 주제로 모여 함께 즐기는 우리 하늘여행 클럽의 형님들이 있어 더욱더 좋다. 끝.
첫댓글 장성님 9시간 23분 동안의 비행 축하합니다..
세계 최장 비행기록으로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