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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숲 터널과 해벽능선 장관
거문도 불탄봉-보로봉-수월산 산행
거문도는 여수에서 114.7km 떨어진 섬으로 여수항을 떠나 징검다리 처럼 이어지는 다도해의 포구 손죽도와 초도를 거쳐, 약 2시간 소요되며, 제주도와 여수의 중간위치에 있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최남단의 섬이다. 거문도는 서도, 동도, 고도의 세개의 주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도와 서도는 연도교(삼호교)로 연결 되어 있다. 옛 이름은 삼도, 거마도 등이었으나, 중국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이 섬에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문장가들이 많다는 뜻인 '거문도(巨文島)'로 개칭하도록 건의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섬이다.
필자 일행은 거문도에 도착하자 마자 오전에 백도 유람 후 오후에는 불탄봉-수월산 산행에 나섰다. 거문도 등산코스는 통상 4코스로 구분된다. A코스는 녹산등대-서도리-음달산-불탄봉-억새군락지-기와집몰랑-신선바위-보로봉-목넘어해안-거문도 등대-목넘어해안 코스로 약 7시간, B코스는 불탄봉-억새군락지-기와집몰랑-신선바위-보로봉-목넘어해안-거문도 등대-목넘어해안 코스로 약 5시간, C코스는 덕촌리-불탄봉-억새군락지-기와집몰랑-신선바위-보로봉-목넘어해안-거문도 등대-목넘어해안 코스로 약 4시간, D코스는 유림해수욕장-기와집몰랑-신선바위-보로봉-목넘어해안-거문도 등대-목넘어해안 코스로 약 3시간 소요된다. 필자 일행은 일정관계상 이중 C코스를 택하였다.
고도 거문리 여객선터미널 주변에 숙소를 잡은 후 삼호교를 건너 C코스 산행에 나섰다. 삼호교는 고도와 서도를 이어주는 연도교로 250m에 이르는 제법 긴 다리이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덕촌마을. 마을 입구에는 덕촌마을 유래를 새긴 표지비가 세워져 있다. 마을 어디에도 등산로 표시가 보이지않아 할 수 없이 동네사람에게 불탄봉 오르는 길을 물으니 남강수퍼 골목으로 가라고 한다.
골목길에 접어들어 조금 가니 정자가 보이고 할아버지 한 분이 정자에서 쉬고 계시다. 할아버지에게 다시 불탄봉 오르는 길을 묻는다. 우측계단에서 좌측으로 계곡을 따라가면 된다고 한다.
좁은 계곡길을 계속 따라간다. 중간에 철계단이 보인다. 필자는 선두에서 길을 찾기 위해 철계단을 건넜는데 길이 보이지않는다. 다시 원위치하여 처음 할아버지가 알려준 대로 계곡만 따라간다.
이제 길을 제대로 잡은 것 같다. 남강수퍼 들머리에서 10여분 오르자 시야가 트이면서 고도 거문리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풀섶이 무성하다. 중간에 쑥밭도 만난다. 풀밭에는 검은 염소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풀섶 여기저기에서 메뚜기떼들이 콩볶듯 튀어오른다. 정말 오랫만에 메뚜기떼를 본다. 어릴 적 논에서 메뚜기를 잡아 볶아먹던 생각이 난다. 산에서 메뚜기 떼를 만나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이곳 거문도가 그만큼 청정하다는 뜻일께다. 남강수퍼 들머리에서 30분 가까이 오르면 불탄봉 가는 이정표를 만난다. 우측은 불탄봉 방향, 직진하면 신선바위 쪽이다. 필자 일행은 불탄봉을 오른 후 다시 내려와 신선바위 방향으로 가야 한다.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와야 하다니 조금 부담이 간다. 허지만 어쩌랴. 불탄봉 산행을 와서 불탄봉 정상을 보지않고 갈 수는 없지않은가.
나중에 '주탐방로 안내판'을 보고 안 사실이지만 필자 일행이 오른 코스는 마을 주민들이 다니는 임시등산로이고 주등산로는 덕촌마을을 지나 해군함대선착지에서 좌측능선을 따라 오르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불탄봉 오르는 길은 여전히 풀섶이 무성하고 동백숲도 만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았는지 길이 대부분 잡초로 덮혀 있다. 등산로 중간에 '뱀 출현 경고문'도 보인다. 필자가 섬 산행을 다녀본 경험으로는 섬등산로에서 종종 뱀을 만날 수 있는데 문제는 그 뱀들이 대부분 독사라는 사실이다. 섬 산행을 즐기면서도 이 때문에 필자 역시 늘 조심하며 다각도로 독사퇴치법을 고안해 내곤 한다. 예를 들어 비상시 방어용으로 스틱은 필수이고, 다리 아래 쪽은 겨울눈산행에서 사용하는 스패치나 두꺼운 비닐로 감싸기도 한다. 여자들과 산행할 경우에는 반바지는 절대로 입지못하도록 함은 물론이다. 아직까지는 한번도 뱀에 물린 적이 없어 스패치나 비닐이 어느 정도 방독수단이 될지는 필자도 알지못한다. 뱀은 건드리지않으면 덤비지않는다고 하니 산행시 뱀을 만났을 경우 건드리지않도록 늘 발 아래를 주의깊게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시야가 더욱 넓어진다. 멀리 수월산과 목넘어해안도 보인다. 갈림길에서 10분 쯤 오르면 불탄봉관측소 안내판을 만난다. 이곳 거문도는 일본, 중국, 러시아를 오가는 선박의 기항지 역할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일제시대부터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섬이었다고 한다. 1944년 말 일본방위총사령부는 보병 1중대로써 선박기지 엄호 임무를 수행하면서 군사시설을 구축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거문도에는 불탄봉 관측시설을 포함하여 방어시설 등 17여 곳에 일제시대 군사시설이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드디어 불탄봉 정상 도착. 정상에는 전망데크와 함께 망원경도 설치되어 있다. 불탄봉은 해발 195m로 그리 높지않은 산이지만 바다 위에 솟은 봉우리여서 제법 고도감이 느껴진다.
전망데크에 서서 사방을 둘러본다. 조망이 매우 아름답다. 정면으로 여객선터미널이 위치한 고도 및 삼호교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동도도 한눈에 들어온다.
우측으로는 거문도등대가 위치한 수월산, 뒤로는 필자 일행이 갈 예정인 능선이 우람하게 다가온다.
정상에서 잠시 쉰 후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잡초 우거진 풀밭길을 가다보면 억새군락지도 만나고,
동백숲도 만난다. 하늘이 보이지않을 정도로 울창한 동백숲길은 거문도의 자랑꺼리 중 하나이다. 거문도에는 숲의 70-80% 정도가 동백숲이라 한다. 산행길에서도 다섯차례 정도 동백숲을 지나야 한다.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동백 숲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동백꽃이 만발할 계절에 오면 정말 장관일 것 같다.
두번째 동백숲에 들어서면 보로봉 갈림길 이정표를 만난다. 동백숲이 더욱 깊어진다. 새소리, 풀벌레소리가 한데 얽혀 터널 속을 뒤흔든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귀가 따가울 정도다. 자연 그대로의 소리, 육지에서는 들어보기 힘든 자연의 교향악이다.
동백터널을 나오면 곧 촛대바위와 마주친다. 촛대바위는 불탄봉 정상에서 약 45분 정도 지난 위치에 우뚝 서 있다. 촛대바위 뒤는 까마득한 절벽. 추락하지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좌우로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능선길을 간다. 공룡의 등뼈처럼 굽이쳐 흐르는 능선. 해발 200m 미만 높이의 산이라고는 믿어지지않을 정도로 웅장하다.
촛대바위에서 8분 정도 가면 다시 삼거리를 만난다. 좌측은 유림해수욕장에서 올라오는 길, 직진하면 신선바위 방향이다. 불탄봉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는 1.7km 거리이다. 이곳 주변의 해안능선을 섬 주민들은 '기와집 몰랑'이라고도 부른다. '몰랑'은 산마루를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로, 바다에서 보면 이 능선이 마치 기와집 영마루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삼거리에서 약 5분 쯤 가면 돌탑 네개를 만난다. '소망탑'이라고 이름붙여진 이 돌탑들. 바다를 바라보고 있어서인지 모습이 무척 애절해 보인다. 바다 멀리 고기잡이를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섬 아낙의 모습일까? 아니면 육지를 그리워하는 섬의 생태적 간절함일까?
돌탑에서 다시 10여 분. 동백 숲 터널을 지나면 신선바위를 만난다. 능선절벽에 붙어 홀로 우뚝 서 있는 바위봉우리. 신선바위에 올라서면 마치 신선이 된듯한 느낌이 들 것 같기도 하다.
신선바위에 오르려면 가파른 절벽길을 내려가야 한다. 신선바위와 거문도 등대가 서로 인사라도 나누는 듯 마주보고 있다.
기와집몰랑 능선은 특히 조망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좌측으로 동도, 서도와 고도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정면으로는 굽이쳐 흐르는 능선 뒤로 거문도 등대도 한 눈에 들어온다. 또 우측으로는 신선바위가 내려다보이고 깎아지른 절벽 아래 검푸른 비취색 물결이 출렁인다.
신선바위 위 능선에서는 잠시 급경사구간도 만난다. 어려운 곳은 아니지만 좌우가 절벽이라 약간 공포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곳이다. 좌측으로 로프난간이 설치되어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경사길 꼭대기에 올라 뒤를 돌아본다. 지나온 보로봉 능선이 우람한 자태로 솟아있다.
해발 170m의 보로봉엔 영국군이 만든 포대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1885년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을 견제하기 위해 3척의 군함으로 거문도를 23개월 동안 무단 점거한다. 그들은 고도에 관측소를 설치하고 거문도와 인근의 해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보로봉에 진지를 구축했다.
영국군은 홍콩으로 철수하기까지 주둔지인 고도에 우리 나라 최초의 정구장과 당구장도 만들고 통신을 위해 중국 상하이와 거문도를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도 설치했다. 고도의 영국군 묘지와 해저 케이블은 거문도 피침 역사의 증거물이다.
다시 동백숲 터널. 이곳은 특히 365계단으로 유명한 구간이다. 마치 지하동굴을 내려가듯 동백터널 속 돌계단을 탄다.
365계단을 내려오면 산행 날머리인 목넘어해안에 이른다. 천천이 여유있게 산행하다 보니 덕촌마을 들머리에서 이곳까지 약 2시간 50분 정도 걸렸다. 안내팜플렛을 보면 거문도 등대까지 3시간 소요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목넘어해안에까지 이미 3시간 가까이 걸렸으니 꽤 지체된 셈이다.
목넘어해안은 불탄봉-보로봉 능선과 수월산을 연결하는 해안이다. 태풍이나 해일이 있을 경우 바닷물이 넘나든다 하여 '목넘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거문도 등대를 가기 위해서는 이곳 목넘어해안을 건너야 한다. 등산을 하지않고 그냥 관광목적으로 거문도 등대를 찾는 여행객들은 고도 여객선터미널에서 이곳까지 걸어오거나 택시를 타고 온 후 이곳에서부터 거문도 등대까지 걸어간다. 소요시간은 왕복 2시간 정도.
목넘어해안에서 거문도 등대 가는 길 역시 동백숲 터널이 대부분이다. 수월산 허릿길로 거의 평지 수준이라 산책길로 아주 좋다. 길 중간에 선바위도 내려다 보이고 바다 건너 보로봉 절벽능선도 시야에 들어온다.
드디어 거문도 등대 도착. 거문도 등대는 해발 196m의 수월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인천 팔미도 등대에 이어 두번째 설치된 등대로 유명하다. 1905년 4월 10일 준공되었으며 이틀 뒤인 12일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고 한다. 등탑은 높이가 6.4m에 이르며 흰색의 원통형으로 벽돌과 콘크리트의 혼합 구조물이다.
등명기는 3등대형으로 유리를 가공한 프랑스제 프리즘렌즈를 사용하였으며, 수은통에 등명기를 띄우고 중추로 회전시켜 15초 간격으로 불빛을 밝혀 약 42km 거리에서도 볼 수 있게 설치되었다. 노후된 시설을 대신하여 높이 33m의 새로운 등탑이 신축되면서 2006년 1월부터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100년 동안 사용한 기존 등탑은 등탑 외벽과 중추식 회전장치 등을 보수하여 해양유물로 보존하고 있다.
등대 주변의 조망도 매우 수려하다. 등대 절벽 위에는 남해 바다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관백정이 자리하고 있으며, 관백정 아래로 우람한 암봉이 고래등처럼 바다를 향해 허리를 내리고 있다.
관백정에 올라 잠시 주위 경관을 둘러본다. 필자 일행이 지나온 보로봉 능선이 보이고 삼각형 모양의 선바위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바위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았다 하여 '선바위'라고도 하며, 위에서 보면 검푸른 천 위에 노인이 앉아있는 모양 같다고 하여 '노인암'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등대에서 잠시 쉰 후 다시 목넘어해안으로 돌아온다.
덕촌리-불탄봉-억새군락지-기와집몰랑-신선바위-보로봉-목넘어해안-거문도 등대-목넘어해안까지 총소요시간은 약 5시간. 목넘어해안을 건넌 후 택시를 불러 여객선터미널 인근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10시 30분 거문도를 떠나면서 필자 일행은 배 위에서 1박2일 간의 백도-거문도 여행을 되돌아본다. 백도 경관도 아름답기 그지없었지만 일행 중 여자산우들은 특히 거문도 산행길의 동백숲 터널에 대해 감탄해 마지않는다. 동백꽃 피는 계절에 다시 오자고도 한다. 필자 역시 일반등산이나 섬등산을 많이 해봤지만 거문도 동백 숲 터널 만큼 길고 아름다운 동백숲을 본 적이 없다. 섬 숲의 70-80%가 동백숲이라니 그럴만도 하다. 하늘도 보이지않을 정도로 울창한 동백숲 터널의 장관! 거문도야 말로 ‘동백섬’이라는 애칭을 붙여줄 만 하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