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평구전집> 예수의 세계전도 명령
근일 신문을 보면, 우리 사회의 모든 범죄가 더욱 악마적으로 되어가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학생이 학교 우물에 독을 푼다든지, 아동을 유괴하고, 차량사고를 가장하여 일부러 사람의 생명을 끊는다는 식이다. 이는 물론 표면적으로는 우리 현실의 어려움과 혼란에서 오는 것으로 동정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는 사람 자체의 죄악성, 영혼의 병적 상태에 기인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지나친 동정은 금물이다.
사람의 죄성(罪性)이란 범죄를 실행했건 안했건 종이 한 장의 차이이다. 독자들은 각자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일이다. 여기에서 나는 예수가 말한 세계전도의 명령을 상기한다. 다소의 차이는 있어도 신약성서의 네 복음서가 모두 전도명령으로 끝을 맺고 있다(마태 28: 19, 마가 16: 15, 누가 24: 47, 요한 21: 15). 기독교의 전도란 결국 예수의 복음에 의한 죄의 문제의 해결, 영혼의 구원이다. 그리고 예수의 이 전도 명령은 실로 그의 유언으로서, 오늘날의 이른바 교회 조직이나 특정 전도인 또는 직업 종교가에 대한 것이 아니고, 그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상대로 한 것이다.
이는 예수의 종교가 기존 모든 종교에서의 신전 조직, 의식, 제도, 형식을 타파하고, 영과 진리에 의한 신앙을 확립한데 근거하는 것이다(요한 4: 23-24). 그리고 이 전도명령이 그 자신의 죽음에 의한 인류의 속죄의 완성과 부활을 이룬 뒤 ‘영적 상태’에서 행해진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영과 진리의 종교라고 할 때, 이는 결국 그 자신에 의한 인간 영혼의 구원과 이를 통한 신자와의 영적 결합을 말하는 것이며, 그의 전도명령은 구원의 사실에 접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유언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구원과 전도는 뗄 수 없는 것으로서, 예수는 이를 그의 모든 제자들에게 명했다. 그리고 세계전도라고 하지만 모든 사람이 리빙스턴이나 허드슨 테일러가 될 필요는 없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있는 그 자리에서 이를 행할 때 복음은 자체의 힘으로 세계화 된다. 그리고 전도는 자기 영혼의 구원에서 발동되는, 동포, 이웃, 타인의 영혼에 대한 자발적인 사랑의 발로이다. 따라서 전도는 구원의 바로메타이며, 신앙 진보의 척도(尺度)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이며, 어떤 특정한 방식이 있을 수 없다. 어머니의 생활 전체가 자녀의 교육을 위한 사랑의 수고인 것과 같이, 우리의 생활 전체, 삶 전체가 동포, 이웃, 타인의 영혼에 대한 동정과 배려, 사랑에서 행해지면 그뿐이다. 오늘날 우리 동포의 영혼이야말로, 죄악의 상태야말로 절실히 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그렇다, 사람의 영혼의 병과 죄를 구하는 것은 이 복음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루터의 신앙 절대주의와 만인사제주의를 생각한다.
<성서연구> 제110호 (1963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