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주(鄭碩胄) 1642년(인조 20) ~1690년(숙종 16) 영천(永川) 출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원직(元直) 호는 양곡(暘谷)
아버지는 무공랑 시행(時行) 동생은 석구(碩耉) 석우(碩祐)이다
처부는 의성 김방렬이다.
현종(顯宗) 14년(1673) 생원시에 합격했다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나 조부 牧使公이 크게 장래를 기대하였다.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에 권세가의 자제가 권세를 믿고 횡포함을 보고 성토하여 쫓아내었다. 그 후 10년 동안 급제하지 못하자 과거에 뜻을 버리고 書史로 自娛하였다.
肯庵 李敦禹이 묘갈명을 지었다.
갈암집 제10권
서(書)
정원직(鄭元直) 석주(碩胄) 에게 답함 기사년(1689, 숙종15)
현일은 궁벽한 산골에 살면서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선계(先契)의 중함과 분의(分義)의 깊음으로 고풍(高風)을 우러른 지 오래입니다. 이제 먼저 편지를 보내시어 곡진히 안부를 물어 주시니 감격스럽고 부끄럽기 한량없습니다. 다만 부탁하신 뜻은 비루하고 서툰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일은 본래 거칠고 글재주가 없으며 또 덕행을 잘 기술할 만한 자격도 없으니, 어떻게 아름다운 덕을 그대로 표현하고 감추어진 뜻을 드러내 밝힐 수 있겠습니까. 다만 존숙부(尊叔父)께서 생전에 저에게 편지를 보내시어 서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자는 뜻으로 말씀하셨는데, 제 집안의 상사(喪事)와 우환으로 그 말씀에 부응하지는 못했지만 저를 버리지 않으신 데 대해 감사하는 뜻은 항상 마음에 걸려 있었습니다. 사람의 일은 알 수 없어 일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지금 혹 이 일로 인하여 조금이라도 저의 작은 정성을 담을 수 있다면 지하에 계신 분에게 이 마음을 전할 수 있겠기에 감히 다시 굳게 사양하지 않습니다만 또 끝내 좌우께서 바라시는 수준에 부응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편지를 쓰려 하니 마음이 슬퍼져서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합니다. 아직 추위가 다 가지 않았으니 절기에 따라 더욱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答鄭元直 碩胄 ○己巳
玄逸屛伏窮山。未嘗一奉顏色。而以先契之重分義之深。慕仰高風。爲日已久。茲承辱先以書。曲賜存記。感愧無量。但所以見屬之意。非鄙拙所敢當。玄逸本荒拙不文。又無能言德行之實。其何以侔狀德美。揚闡幽潛哉。第念尊叔父無恙時。嘗貽書見喩以麗澤相資之意。雖以喪患憂慼。未得副敎。感念不遺之意。尋常往來於心。事之不可知者。乃至於此。今者儻因茲役。少寓微誠。則庶幾導達此情於窮泉窀穸之中。故不復敢堅辭。而又恐終無以副左右所需也。臨書悽黯。不暇究悉。只祝餘寒。順序加衛。